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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의 영역
나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신당 열쇠
버려진 마을의 신당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이것을 입수한 놀은 열쇠의 사용법을 몰라 귀이개 정도로 사용했다. 이물질이 좀 묻어 있지만 사용하는데 지장은 없다.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보니까 틀림없는 것 같았다. 여기서 말하는 신당이란 와호의 터널에 있던 신당과는 다른 것으로 산길 끝자락에 위치한 버려진 마을에 있다.
이 열쇠는 본래 놀들을 잡다보면 자연스레 드랍되는 아이템이다. 이걸 통해서 신당의 문을 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보상을 획득하는 식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로 이상할 게 없으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아이템이 등장한 시기다.
‘원작 게임에선 폐촌에 가야 먹을 수 있었던 아이템인데…….’
버려진 마을은 산길의 끝자락, 즉 산을 내려가기 직전에 나오는 구간이다. 그에 반해 이곳은 맵의 중반부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버려진 마을과는 수백 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인 것이다.
“왜 그러세요, 다키님?”
그때 나나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나와 어깨를 맞대더니 내가 들고 있던 열쇠를 바라보았다.
“으엑…… 이렇게 더러운 열쇠는 또 어디서 나셨어요? 와 미친 저거 설마 귀지예요? 으으, 씹극혐…….”
사정을 모르는 나나에겐 이게 그저 귀지 묻은 더러운 열쇠로만 보일 것이다. 나는 열쇠에 묻은 이물질을 흙으로 닦은 뒤 나나에게 설명했다.
“이 앞에 있는 폐촌에서 사용하는 열쇤데, 원래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에요?”
“딱히 심각한 건 아니지만 이상하지. 여기서 수백 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나와야할 아이템이 벌써부터 나왔으니까.”
달리 생각하면 여기 있는 놀들이 본래는 마을에 있어야할 녀석들이란 말이 된다.
마을의 놀들이 수백 미터 거리의 산길까지 무장한 채 걸어왔다. 난 그 사실이 무척 신경 쓰였다. 뭐 놀들에게도 교대 시간이 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낌새가 좀 이상해. 이 앞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어.”
“다키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연히 그런 거겠죠! 저도 바싹 긴장할게요!”
일말의 이의제기도 없이 나나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게임에 관한 정보를 몰라서인지, 아니면 목숨을 빚진 적이 있어서인지 나를 향한 신뢰가 살짝 비정상적인 수준이었다.
살짝 의아하긴 했지만 말만 잘 들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나는 가방을 등에 매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곳저곳 살펴보면서 가자. 게임하곤 다른 변수 있을 수 있으니까 신중히 확인할 필요가 있어.”
“좋아요……! 저도 신경 쓰이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속삭이듯 이야기하면서 나나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는 벌써 자신의 장점을 파악한 모양이다. 확실히 그녀의 청각을 잘 활용한다면 갑작스러운 위험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산길을 걸었다. 이후부턴 이렇다 할 습격이 별로 없었다. 풀벌레 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귐만 들리는 산길은 평화롭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상한데…….”
나나에게 설명했던 것처럼 신령이 다니는 길에는 적이 많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놀들과 싸우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이 구간에선 놀들의 출현이 빈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길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어디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매복 가능한 위치를 전부 살펴봤는데도 놀은커녕 놀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적이 없지?”
불필요한 싸움이 없는 건 좋았지만 원인불명의 평화가 이어지니 그건 그것대로 불안했다.
이곳은 가디스 던전을 본떠 만든 세계. 그렇다면 몹들의 배치도 가디스 던전과 비슷하거나 똑같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인내하는 자의 신전은 조금씩 차이야 있었지만 가디스 던전의 몹 배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그러한 배치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놀들의 씨를 말린 것처럼 말이다.
‘설마…….’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같은 몬스터라고 해서 서로 우호적이리란 법은 없다. 종류에 따라, 분파에 따라 서로 싸우기도 하고 동맹을 맺기도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다른 몬스터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부류가 하나 있는데, 그놈이 출현했다면 놀들이 이토록 안 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아냐, 그럴 리는 없어. 놈의 출현 조건은 한 맵에 최소 세 명 이상의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진입하는 거야. 이런 험한 길에 나랑 나나 외의 다른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가디스 던전의 몬스터 중에는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출현하는 놈들도 있다.
이런 놈들은 조건이 충족되면 귀신 같이 튀어나오는 반면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 점을 고려하면 내가 생각하는 몬스터는 이 사태의 원인이 아닐 것이다. 가급적 그렇게 믿고 싶었다. 현 시점에서 그 놈이 나오면 비단 놀들이 전멸하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나도, 나나도, 확실하게 위험해질 거다.
“앗! 다키님……! 또 소리가 들려요……!”
“그래……?!”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나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다른 걱정을 하다 보니 놀들이 반가울 지경이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나나가 가리킨 방향을 주시했다.
“저쪽 수풀 안이에요……! 이번에는 대충 셋…… 아니 여섯……! 어……?”
사운드 플레이에 열중하던 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은 곧 당혹감으로 물들었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 이상해요 다키님! 수가 점점 늘어나요! 게다가 개들 소리도 같이 들리고……!”
나나의 설명을 들은 나는 다가오는 적이 어떤 놈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나나야, 이번엔 좀 위험할 거야. 언제라도 던질 수 있게 황근과 꺼내고 있어.”
“넵……!”
지팡이를 바닥에 꽂은 채 양손에 황근과를 쥐는 나나. 마치 폭탄이라도 든 것처럼 자세를 잡는 게 참 귀여웠지만 지금은 나나에게 한 눈 팔 틈이 없다.
이번에 나오는 적들은 정말로 성가시기 때문이다.
[삐이이이이이이익!!]
그 순간, 울창한 나무 너머에서 웬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 높이 울려 퍼진 그 소리는 몇 번인가 메아리쳤다.
소리가 가실 무렵, 놈들의 공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컹! 컹! 컹! 컹! 컹!]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섯 마리, 아홉 마리, 열두 마리. 수가 점점 늘어난다. 이 지역에 있는 들개란 들개는 전부 끌어 모은 듯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으게에에에엑!! 다키님 개예요!! 개가……! 개가 존나 많이 와요!!”
트라우마가 발동된 건지 나나가 대경실색했다. 울상이 된 얼굴로 소리치는 그녀에게 단호하게 외쳤다.
“쫄지 마! 개들이 보이자마자 황근과 터뜨려! 그러면 놈들도 함부로 공격 못 해!”
“아예 있는 대로 다 터뜨릴까요?!”
“그래도 좋고! 가급적 손 안에서 터뜨린 다음에 던져!”
나나에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칼을 뽑아들었다. 부가 효과가 발동되면서 쾌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칼집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날을 드러낸 쾌도는 내게 달려들던 들개 한 마리를 단숨에 베어 넘겼다.
서걱!
[캑……!!]
수직 베기에 맞은 들개가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몸에서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다른 들개들도 일제히 나랑 나나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크허어어엉!!]
“끼에에에에에엑!!”
철퍼억!!
포효하며 달려드는 들개에게 나나가 황근과를 집어던졌다. 그녀는 내가 이야기했던 대로 손 안에서 과즙을 터뜨린 뒤 이를 흩뿌리듯이 투척했다. 그러자 황근과 특유의 강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끼이잉……! 끼이잉……!]
[헥헥헥! 깨앵! 깨개앵!]
냄새가 확산되자 들개들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극심한 악취를 맡은 것처럼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고 어떤 놈들은 아예 바닥에다가 코를 비벼댔다.
“……! 먹혔어요, 다키님! 이 새끼들 과일 냄새 맡으니까 아무 것도 못해요!”
그 광경을 본 나나가 쾌재를 불렀다. 나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근과는 사람이 먹기엔 아주 맛있는 과일이지만 짐승들, 특히 개들에게는 차마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구역질나는 과일이다. 후각이 발달한 개들은 인간이 맡을 수 없는 황근과의 불쾌한 냄새까지 맡기 때문이다.
신령이 다니는 길 곳곳에 황근과 나무가 있었던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다. 몰려드는 들개와 놀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수단을 개발진이 마련해둔 것이다.
“흐으읍!”
촤아아아악!!
[깨개애애앵!!]
괴로워하던 개들을 한꺼번에 베었다. 내 넓은 횡공격에 놈들은 맥을 못 추리며 쓰러졌다. 황근의 강렬한 향기가 놈들을 약화시킨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종횡무진 움직이며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내 발놀림에 풀잎들이 흩날렸고 곧 사방에 피가 튀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들개들을 모두 처리했고 어느덧 우리 주위는 시체 밭이 되어 있었다.
허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각 소리의 주인을 처치하지 않는 한 들개들은 끊임없이 몰려들 것이다.
[삐이이이이익!!]
마침 두 번째 호각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집중한 나는 끝내 놈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북동쪽……!’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북동쪽 숲속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들개들을 부르는 조련사가 있을 거다. 그 사실을 인지한 나는 다급히 숲속으로 달려가며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 나나야! 내가 올 때까지 황근과 계속 터뜨리고 있어! 아예 네 몸에 덕지덕지 발라!”
“빠, 빨리 오셔야 돼요!!”
내 지시를 받으며 나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의욕 넘치는 그녀라도 들개들에게 둘러싸이면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우리라. 나나의 얼굴은 어느새 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 역시 그녀를 오래 방치할 생각은 없다. 황근과라고 해서 나나를 완벽히 보호해주진 않는다. 냄새를 과도하게 맡다 보면 들개들의 후각은 어느 순간부터 마비된다.
놈들이 냄새를 맡지 못하면 황근과는 무용지물이 된다. 아무리 터뜨려봤자 들개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달려들 거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한다. 조련사는 내게 모습을 보이는 순간 목이 날아가리라.
쿵! 쿵! 쿵!
[커허어어어엉!!]
“……?!”
전력을 다해 숲을 질주할 때였다.
지면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한 마리의 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풀을 비집고 나온 그것은 커다란 도끼를 든 놀이었다. 먼저 덤빈 놈들 보다 두 배는 더 커보였다. 놈이 신경질적으로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주위에 있던 나무들이 단숨에 잘려나갔다.
“도끼잡이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놈의 이름은 놀 도끼잡이. 지금까지 잡아온 놀들 보다 훨씬 강한 개체이며 인내하는 자의 신전으로 따지면 소머리 가고일과 같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놈이다.
생명력도, 공격력도 잡몹이라기엔 너무나 강력한 몬스터다. 그렇기에 원작 게임에선 보스방을 지키는 정예몹 같은 느낌으로 등장했었다.
그렇다. 이놈 역시 맵 끝자락인 버려진 마을에서 등장하는 놈이다. 그런 놈이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네가 지키고 있어야 하는 보스방 앞은 어떻게 하고?
[커흐으으응!!]
서거억! 서거어어억!
당황을 금치 못할 때 놈이 사납게 도끼를 휘둘렀다. 2미터 이상의 거구가 자신의 키 만한 양손도끼를 휘두르자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벌목기였다.
훙훙훙훙훙훙훙!!
그렇게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던 놈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냥 달려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돌진하는 것이었다.
마치 휠윈드 쓰는 바바리안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연달아 들어오는 데미지 때문에 몸이 갈려나갈 듯했다.
실제로 저 소용돌이 공격은 매우 위험하다.
회전하는 동안 슈퍼아머를 얻으며 이동 속도도 상당하다. 게다가 피격된 상대에게 부상까지 부여하니 위험하기 그지없다.
아니, 다 떠나서 놈의 그레이트 액스는 한 방당 무려 260의 데미지를 뽑아낸다. 잡몹 주제에 아크 데몬이나 마신들보다 평타 데미지가 높은 것이다.
촤자자자자자작!!
놈의 앞을 가로막던 수풀들이 시시각각 잘려나갔다. 회전을 유지한 채 나와 거리를 좁히는 도끼잡이. 등골이 서늘해지는 광경이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놈을 피하면 놈은 이대로 길로 튀어나가 나나를 위협할 것이다. 그것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흐으읍!”
카아아아앙!!
내 쾌도와 놈의 도끼가 격돌했다. 크기는 물론 저지력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났지만 나는 스스로의 피지컬로 그 격차를 극복했다.
카앙! 카앙! 캉! 캉! 카강! 카가아아앙!!
눈앞에서 쉴 새 없이 불꽃이 튄다. 마찰음 때문에 귀가 멍해졌으며 도끼가 가한 충격이 팔을 저리게 했다.
하지만 내 방어는 성공적이었다. 쾌도를 휘두를 때마다 눈앞에 새하얀 보호막이 나타나 놀의 도끼로부터 날 보호했다. 방어 패링이 발동되어 데미지가 모조리 상쇄된 것이었다.
공격 패링으로는 놈의 소용돌이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패링 타이밍을 가늠하기도 힘든데다가 설령 성공한다 해도 금세 무방비 상태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방어 패링으로 모조리 막아낸다. 그것이 놀 도끼잡이를 상대하는 방법이다. 사실 그냥 멀찍이 도망치는 게 훨씬 더 편한 방법이지만 나나의 안전을 위해선 그럴 수 없다.
고인물이라면 뉴비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크허어어어엉!!]
“쯔아아아앗!!”
카아아아앙!!
도끼잡이가 마지막 회전 공격을 가했다. 우렁찬 기합과 함께 날아든 공격은 공기를 진동시킬 만큼 매서웠으나 나는 그것마저 튕겨냈다.
나와 도끼잡이 사이에서 엄청난 풍압이 일어났다. 주위의 나무들이 한 차례 크게 흔들렸으며 산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다 쳤냐?”
[……!]
소용돌이의 패링 타이밍 같은 건 전부 외워뒀다. 그런 내게 실패 따윈 없다.
놈의 공격이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내 시간이다.
압도적으로 유린해주마.
“그럼 이제 내 차례다.”
============================ 작품 후기 ============================
도끼잡이의 체구를 5미터에서 2미터로 수정했습니다. 생각해보니 5미터는 너무 컸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