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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51화 (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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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의 영역

“어때요? 훨씬 낫죠?”

이게 대체 뭐냐고 반박하려 했지만 나나의 미소가 너무 새하얀 나머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억지로 웃으면서 나나에게 감사했다.

“고, 고마워 나나야. 덕분에 살았어.”

“헤헤헷, 이 정도로 뭘요!”

그러는 와중에도 내 쥬지는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헤베 때에 이어서 내 음경이 다시 한 번 원망스러워졌다.

부끄러운 경험을 한 나는 최대한 앞장서서 걸었다. 더 이상 내 발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나는 금세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러는 걸로 모자라 내게 밀착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가 친구한테도 다키님 영상 소개해줬었거든요! 처음에는 이게 뭐냐면서 질색하던 애가 며칠 지나고 나니까 저한테 본방 언제냐고 물어보는 거 있죠? 여자애들도 다키님 방송 재밌어한다니까요!”

“그, 그래…… 그거 참 좋은 일이네…….”

“다키님이 받는 도네 중 제 친구 도네도 엄청 많았을 거예요! 아주 그냥 광팬이 돼서 돈을 쏟아 부었으니까요! 언제부턴가 저보다 다키님을 더 좋아하게 된 거 있죠?”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기분 탓인가? 그녀가 의도적으로 나한테 달라붙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발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살결과 머리카락의 향기가 내 성욕을 자극했다. 헤베나 브릴린트와는 다른 냄새였다. 마치 복숭아 같은 향기였다.

뭔가 그녀와 떨어질 계기가 필요하다. 안 그러면 진짜 위험하다. 나나를 함부로 건드리는 것도 큰일이지만 이곳은 몹들이 가득한 위험지대. 한눈파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길 잠시, 나는 원하는 것을 발견했다.

“아, 잠깐만 나나야. 뭐 좀 챙겨가자.”

“네? 뭘요?”

내가 어떤 나무 앞에 멈춰 서자 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나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콰앙!!

나무가 크게 흔들리면서 잎이 흩날렸다. 잠시 후, 충격을 견디지 못한 열매가 바닥에 떨어졌다. 밝은 주황색으로 빛나는 과일인데 생긴 게 망고랑 비슷했다.

“오오, 이게 뭐예요? 먹는 건가요?”

그것을 본 나나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다가갔다. 살짝 피해 있던 나는 과일들을 하나하나 주우면서 설명해줬다.

“황근과라는 건데 가디스 던전 세계관에 등장하는 식용 과일이야. 개발자 말로는 파인애플이랑 비슷한 맛이라더라.”

“오오~ 뭔가 말랑말랑한데 파인애플 맛이라니 신기하네요! 하나 먹어봐도 돼요?”

“물론이지. 자 여기 잘 익은 거.”

부드러운 껍질을 다용도 단검으로 까준 뒤 나나에게 건넸다. 그러자 독특한 향기가 물씬 풍기면서 노란색 즙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킁킁…… 껍질 까니까 신기한 냄새가 나요. 딱히 나쁜 냄새는 아니지만요!”

“확실히 향이 강하긴 하네. 민감한 사람한텐 호불호 심하게 갈리겠어.”

그렇게 우리는 각각 손에 든 황근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입 안 가득 과즙이 가득 퍼지면서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졌다. 파인애플과 같은 상큼한 맛, 거기에 복숭아나 망고 같은 부드러운 과육이 합쳐져서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맛있었다. 마침 산행 때문에 목이 마르기도 해서 풍부한 과즙이 더욱 달게 느껴졌다.

“우우움~! 맛있어요, 다키님! 예상보다 훨씬 졸맛탱이에요!”

“그러게…… 신령들이 좋아하는 과일이라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구만.”

나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 입맛에 딱 맞는 듯했다. 나 역시 생전 경험해본 적 없는 맛에 신선함을 느끼면서 손에 쥐고 있던 황근과를 금세 먹어치웠다.

“뭔가 배도 차는 게 밥 대신 먹어도 괜찮겠어요! 식량으로 챙겨가는 거 어때요?”

어느새 두 번째 황근과를 까먹으면서 나나가 말했다. 나 역시 또 다른 황근과를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떨어진 거 모아서 가방에 넣어줄래? 먹는 거 외에도 쓸 데가 있으니까 열 개 정도는 가져가는 게 좋겠어.”

“네 다키님! 맞겨주세욧!”

내 부탁을 듣자마자 나나가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홀장도 바닥에 꽂아둔 채 황근과 모으기에 열중했다.

“앞으로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보이면 가져가도록 하자. 오늘 안에 율리아나까지 도착 못할 수도 있으니까.”

황근과를 다 모았을 때쯤 나나에게 설명했다. 내 말에 나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물었다.

“율리아나라는 동네가 그렇게 먼 가요?”

“이 길로 가면 그리 멀진 않은데 가는 길에 적들이 많거든. 아마 이 구간만 지나면 계속 전투만 할 거야.”

“호옹…….”

나나에게 설명해주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꽤 기울었다. 나나랑 대화하는데 정신 팔려서 눈치 못 챘는데 어느덧 정오가 한참 넘었다. 대충 2시에서 3시쯤이리라.

아직 본격적인 전투 구간에 들어서지도 않은 걸 고려하면 오늘 안으로 산을 내려가긴 그른 듯했다. 설령 산을 내려간다 해도 성문이 닫혀서 도시에는 못 들어가겠지.

이렇게 된 거 조바심 내지 말고 힘을 비축하면서 걷는 게 좋겠다.

조급하게 움직일수록 피로도가 쌓이고 피로도가 최대치까지 쌓이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된다. 컨디션 조절도 전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우리 한두 시간 넘게 아무 것도 못 먹었네. 나나 너도 배고프지?”

“그러게요! 저 다키님 방송 보느라 저녁도 안 먹고 있었거든요! 어쩐지 황근과가 엄청 맛있더라니 배고파서 그런 거였어요!”

중대 사항이라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나가 힘을 주어 말했다. 마침 잘 됐다. 헤베가 싸준 도시락은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으니까.

황근과 나무 근처에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 나는 도시락을 꺼냈다.

“어차피 오늘 안에 하산하기는 튼 것 같은데 밥이나 먹고 가자. 배고프면 죽도 밥도 안 되잖아.”

“……! 설마 다키님 저한테 먹을 것도 나눠주시려는 건가요……?!”

“이제 와서 뭘 그래. 반가운 시청자한테 밥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어. 사양 말고 먹어.”

스스럼없이 말하며 도시락을 풀었다. 날 위해 준비해준 도시락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니까 헤베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하지만 우리 여신님이라면 분명 이해해주겠지.

“와아……! 뭔가 신기한 요리만 있네요! 이거 다 다키님이 만드신 거예요?”

“내가 만든 건 아니고, 어떤 여신님 만들어준 거야. 한 번 먹어봐, 엄청 맛있어.”

“여신님이 만들어준 도시락이라니……! 이 무슨 스케일……!”

내 말을 듣고 돌마데스를 집어 드는 나나. 그녀는 감격스러운 눈초리로 나와 돌마데스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키님! 맛있게 잘 먹을게요! 하움……! 우우움~!”

감사 인사를 건네자마자 나나가 돌마데스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곧 황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럴 만도 하지. 내가 먹어도 여신님이 만든 요리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한동안 휴식 시간을 가졌다.

뭐랄까. 당연히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혼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동행이 생기니까 외롭지 않고 좋았다. 한 평생 혼밥만 해온 나에게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각별한 일이었다.

가뜩이나 맛있는 돌마데스가 훨씬 더 맛있어졌다. 나나와의 대화가 훌륭한 향신료가 되어준 것이리라.

그렇게 기분 좋은 식사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다시 이동을 재개했다.

신령이 다니는 길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다.

중간, 중간 음침한 구간이 나오긴 했지만 싱그러운 초목들과 신비로운 동물들이 오가는 산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청명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맵은 결코 우리에게 편안한 여행길을 제공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고 있을 무렵 새로운 위험이 닥쳐온 것이었다.

“……! 다키님……!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으셨어요?!”

“응? 무슨 소리?”

“누가 달려오고 있는 소리요! 한두 명이 아니에요! 최소 대여섯 마리는 우리 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아요!”

나나가 초조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는 도중에도 그녀의 귀는 연신 쫑긋거렸다.

설정상 엘프는 인간보다 청각이 좋다. 원작 게임에선 딱히 구현되지 않은 설정인데 게임세계에선 제대로 반영된 모양이다.

“슬슬 온 건가. 생각보다 늦었네.”

“오다니 누가요?”

그리 말하며 나는 쾌도를 뽑았다. 시퍼런 칼날을 수풀 너머로 겨눈 뒤 나나에게 경고했다.

“아마 놀들일 거야. 내가 앞에서 어그로 끌 테니까 나나 넌 뒤에 잘 숨어 있어.”

“……! 네 다키님……!”

“혹시라도 네 쪽으로 다가오면 황근과를 터뜨려. 그러면 무턱대고 달려들진 않을 테니까.”

그리 말하면서 나는 매고 있던 가방을 나나에게 던져줬다. 나나는 눈치 좋게 그것을 받아 황근과를 꺼내들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순간, 울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컹! 컹! 컹!]

[커헝! 커허엉! 컹!]

들개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울음소리. 놈들이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깝다는 증거였다.

자신들이 야성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놀들이 돌진했다. 놈들의 수는 여섯 마리. 아까 만난 놈과는 다르게 방패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놀처럼 무리지어 다니는 몬스터들은 개체마다 각각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마주한 놀은 정찰병이다. 그렇기에 방패를 착용하지 않았고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손도끼를 무기로 사용했다.

그런 반면 지금 달려들고 있는 놈들은 본격적인 전투원인 싸움꾼들이다. 비록 인간들이 쓰다버린 것을 주운 거지만 버클러라는 제대로 된 방패도 갖췄고 도끼도 훨씬 더 컸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능력치가 먼저 만난 놈보다 월등히 강한 건 아니다. 오히려 방어력을 올린 대가로 움직임만 더 둔해지고 공속과 공격력은 그대로다.

[꺄우우우울!!]

사람의 것도, 들개의 것도 아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놀 싸움꾼. 나는 놈이 공격하는 순간 스킬을 발동했다.

[샤아아아악!]

어디선가 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서 녹색 빛이 흘렀고 그것은 곧 살무사 같은 형상을 취하며 쾌도에 휘감겼다.

그러자 내 움직임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다. 모두가 멈춰 있을 때 나 혼자만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매섭게 달려드는 놀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으며 공격의 궤도도 전부 보였다.

티이잉!!

직후, 나는 빛나는 쾌도로 놀의 도끼를 쳐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놈의 공격은 허무히 튕겨져 나갔다. 빈틈을 보인 놀은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그 순간 느려졌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신속히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케헥……!!]

깔끔한 검선이 놀의 목을 베었다. 내 반격은 노출된 급소를 정확하게 노렸다. 한 박자 늦게 433의 피해량이 떠오르면서 놀의 머리가 피를 흩뿌리며 떨어져 나갔다.

‘역시 배워두길 잘 했어.’

순식간에 절명한 놀을 보며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사용한 스킬은 뱀처럼 적의 목을 노리는 스킬, 사영격이었다.

방금 전에 공격을 쳐낸 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인 것도 전부 사영격의 효과였던 것이다.

사영격

액티브

요구 스탯: 기교 15

비용: 30 기력

사용 조건: 근접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뱀처럼 날렵하게 무기를 휘둘러 적의 목을 공격해 +90퍼센트의 피해를 준다. 적이 공격하는 순간에 사용하면 무기로 적의 공격을 쳐내어 상쇄하고 +30퍼센트의 추가 피해를 준다.

섬격이 범위와 데미지에 치중되어 있다면 사영격은 한 놈을 무력화시키기 좋은 스킬이다.

스킬 효과에 나와 있는 상쇄란 어떤 경우에도 적의 공격을 캔슬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공격 패링처럼 무방비 상태로 만들지는 않지만 타이밍만 잘 맞춰도 공격을 무조건 취소시킬 수 있으니 엄청난 활용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와! 와! 방금 뭐였어요, 다키님?! 어떻게 한 거예요?! 다키님이 순간 아예 안 보였어요!”

내 스킬을 본 나나가 경탄하면서 질문을 퍼부었다.

마음 같아선 그녀에게 스킬 효과를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새가 없었다.

[끼이잉……!]

[으르르르르르……!!]

선두에 있던 놈이 죽자 뒤따라오던 놈들은 일제히 넋을 잃었다.

허기에 미친 식인 들개들과 다르게 놀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줄 안다. 아마 방금 전의 움직임으로 나와 자신들의 격차를 확실히 깨달았을 거다. 겁먹고 머뭇거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몰아치듯 공격해야 한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수로 밀어붙이면 더 유리하다는 걸 깨달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기 전에 모조리 제압해야 한다.

“나중에 설명해줄게!!”

나나에게 대답하면서 두 번째 스킬을 사용했다.

상단 자세를 잡은 뒤 다른 놀들에게 돌진했다. 발밑에 있던 풀잎들이 허공에 흩뿌려지면서 나와 놈들의 거리가 창졸간에 좁혀졌다.

“쯔아아아앗!!”

다음 순간 나는 놈들을 향해 올려 베기를 가했다. 내 검에는 어느새 새하얀 광채가 맺혀 있었으며 움직임 또한 한층 더 빨라졌다.

또 다른 기교 전투기술, 파고들기를 사용한 것이었다.

파고들기

액티브

요구 스탯: 기교 13

비용: 35 기력

사용 조건: 근접 무기 착용

습득 방법: 운명 항목에서 습득

효과: 하단 자세를 취한다. 자세를 취한 상태에선 이동 속도가 대폭 감소한다. 다시 한 번 스킬을 방동하면 적의 빈틈으로 파고들어 강력한 올려치기 공격을 가해 +100퍼센트의 피해를 주며 인내력을 무시하고 에어본시킨다. 적이 공격하는 순간에 사용하면 +70퍼센트의 추가 피해를 준다. 적을 공격하는 동안 인내력이 50 상승한다. 인내력이 60 이상인 적에겐 효과가 발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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