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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50화 (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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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이 다니는 길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내장이 길게 늘어졌다. 뱃가죽이 뚫린 놀은 피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끼잉……! 끼기잉……!]

즉사한 건 아닌지 몇 번이나 경련하는 놀. 나는 놈에게 자비로운 최후를 선사했다.

푸후욱!

놈이 머리에 쾌도를 꽂았다. 그 즉시 놈의 움직임은 깔끔하게 멈췄고 신음소리도 나지 않았다. 놀이 절명한 것을 확인하며 나는 칼에 묻은 피를 털었다.

촤악!

“후우우…….”

그때쯤 마신처럼 변한 왼팔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장을 잡은 감촉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왼팔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마신화한 팔과 원래의 내 팔은 별개로 치는 모양이다.

“1349…… 역시 적출 안 배웠을 때랑 차이가 크네.”

허공에 뜬 데미지 표시를 보며 중얼거렸다.

적출의 효과는 결정타 데미지를 50퍼센트 올려주는 것. 본래라면 +500퍼센트인 결정타의 데미지가 +550퍼센트까지 상승하는 것이다.

쾌도로 결정타를 가했다면 데미지가 1243 정도 떴을 거다. 놀의 생명력이 250, 방어력이 35라는 걸 감안하면 어느 쪽이든 오버킬이 떴겠지만.

“다, 다키님…….”

“응? ……!”

그렇게 내가 데미지뽕에 취해 있을 때였다.

곁에 있던 나나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가 몇 방울이나 튀어 있었다. 백옥 같은 피부여서 핏자국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나, 나나야.”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나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그녀 역시 게임 캐릭터에 빙의했다곤 하지만 피가 낭자하고 내장을 뽑아버리는 광경에는 충격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껏 혼자 싸워 와서 나나가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나는 낭패한 기분을 느끼며 서둘러 나나를 달랬다.

“미, 미안해 나나야. 많이 무서웠지? 일단 진정하고 심호흡부터 해보자. 그러면 좀 나아질…….”

“너무! 너무 멋있으세요오옷!!”

응……?

내가 다급히 주워섬기던 도중 나나가 기습적으로 소리쳤다.

그녀의 눈빛에는 동경심이 깃들어 있었다. 십대 소녀가 아이돌 그룹을 바라보는 것 같은 눈초리였다. 눈동자가 흔들리던 것도 공포 때문에 동요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해서 그런 거였다.

“방금 쓰신 거 공격 패링이죠?! 그건 기억나요! 엄청 어려운 기술인데 가볍게 성공하시다니 굉장해요! 그걸로 저 개 같이 생긴 새끼를 티이잉! 한 다음에 푸화악! 하고 죽여 버리시고! 진짜 조오오온나! 멋있었어요!! 반해버릴 것 같아욧!!”

“그, 그러니……?”

끊이지 않는 칭찬에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괜한 걱정이었나? 하긴 나도 게임 캐릭터가 된 이후로 비위가 세졌는데 나나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하물며 우리는 지금 전장 한 복판에 있다. 언제 어디서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으며 피와 살이 낭자하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다. 그런 걸 보고 동요하면 죽는 건 이쪽이 될 거다.

여자라는 선입견 하나로 너무 과보호 하려 했다. 정작 나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반성해야지. 나나가 정말 패닉에 빠졌더라도 단호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과보호는 악영향 밖에 미치지 않는다.

“과연 6천 시간짜리 고인물은 다르네요! 방송 볼 때도 매번 감탄했는데 직접 보니까 지릴 뻔했어요!”

“그, 그래. 칭찬해줘서 고마워. 근데 우리 좀 진정하자. 너무 크게 말하면 다른 놈들 몰려올 수 있으니까요.”

“핫……! 네 다키님……! 조심할게요……!”

내 경고에 나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속닥거렸다. 조금 경박한 부분이 없잖아 있는데 말은 잘 들어서 다행이다.

나는 쾌도를 납검하면서 나나에게 말했다.

“그럼 나나야. 나는 지금부터 이놈 해체할 테니까 너는 망 좀 봐줄래?”

“앗, 혹시 그 해제 작업 제가 해도 괜찮을까요?”

“응? 네가?”

생각지도 못한 요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전까지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사람이 시체를 해체한다고?

가슴에 있는 이코르만 빼낼 거라 딱히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솔직히 좀 걱정됐다.

옆에서 구경하는 거랑 직접 시체를 만지는 건 또 다른 일이니 말이다. 방금 전엔 괜찮았더라도 뼈나 내장 같은 걸 만지다 보면 비위가 상할지 모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나나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까 들개들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는 다키님한테 도움만 받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힘들고 귀찮은 일은 제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직 구해주신 보답도 못 드렸고 말이죠!”

감탄이 다 나왔다. 처음부터 공과 사가 뚜렷한 친구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 기특할 줄이야.

나나가 군대에 들어간다면 틀림없이 부대 안에서 A급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 걸로 모자라 궂은일까지 도맡으려 하니 선임들에게 예쁨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역시 이코르 채취 작업은 내가 맡는 편이 좋다. 나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근력이 높아서 애먹지는 않으니까. 반대로 나나는 사제 신분이라서 근력도, 기교도 낮을 거다. 해체 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리라.

“아냐 괜찮아. 도와주려는 건 고마운데 내가 하는 편이 더 빨리 끝날 거야.”

“그래도…….”

“망보는 것도 중요하니까 지금은 그쪽으로 도와줘. 나중에 네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또 부탁할게.”

그렇게 말하며 나는 곧장 놀의 가슴을 가르기 시작했다. 헤베가 준 다용도 단검을 썼는데 놀의 늑골이 종이처럼 잘렸다. 공격력이 없는 작업용 도구지만 역시 브릴린트가 만들어서 그런지 성능 하나는 훌륭했다.

“알겠어요……! 그러면 다키님이 작업하시는 동안 눈 부릅뜨고 경계할게요! 흡!”

내 말에 수긍한 나나가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살폈다. 사실 이 구간에서 나오는 몹은 방금 전에 죽인 놀이 전부지만 구태여 얘기해주진 않았다. 열심히 경계 서는 나나가 엄청 귀여웠기 때문이다.

‘가죽도 좀 챙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역시 그것까진 무리겠지.’

흉부에서 이코르를 빼낸 나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놀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놀의 가죽은 150아웬이나 한다.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챙겨두면 상점에 팔수도 있고 장비 제작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어서 무척 유용하다.

허나 가죽 벗기는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전에도 들개들을 상대로 도전해봤다가 실패하지 않았는가. 지금이야 근력이랑 기교가 늘어서 좀 더 쉬울지 모르지만 나 같은 문외한이 도전해봤자 상품 가치만 훼손할 거다. 저급 가죽은 상점에 팔아도 헐값이고 재료로도 못 써먹겠지.

그럴 바에야 그냥 방치하는 게 낫다. 나는 미련을 버리며 떠날 채비를 했다.

“다 됐어 나나야. 뭐 이상한 건 없었고?”

“네! 다램쥐들 말고는 주위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의욕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나나가 말했다. 군인 흉내라도 내는 건지 경례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조금 전처럼 좌수 경례에 손동작도 이상했지만 말이다.

잘못된 거라고 알려줄까 하다가 괜히 꼰대짓 하는 것 같아 관뒀다. 피 묻은 단검을 나무에 닦으면서 나나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이제 그만 움직이자.”

“네 다키님!”

지시받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걷는 나나. 정말 보면 볼수록 댕댕이 같은 성격이다. 차라리 엘프 말고 강아지 수인을 선택했으면 잘 어울렸겠다.

“이 앞에 나오는 몹들은 방금 전에 나온 놀처럼 이속도 빠르고 데미지도 아프니까 조심해. 내가 최대한 지켜주겠지만 여차할 때는 스스로 잘 대처해야 될 거야.”

다시금 산길을 걸으면서 주의 사항을 이야기해줬다.

놀들은 공격 속도는 느리지만 이동 속도는 매우 빠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놈들이 휘두르는 돌도끼는 한 방당 150이나 되는 데미지를 자랑한다. 사제 신분인 나나라면 두 방만 맞아도 죽을 거다.

그런 내 경고에 나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팡이를 들어보였다.

“걱정 마세요 다키님! 저 이래 봬도 검도 유단자거든요! 저한테 덤비는 새끼들은 제가 다 해치울게요!”

“어떻게 해치울 건데?”

“이렇게요! 얍! 야압!”

대답과 함께 나나가 시범을 보였다.

지팡이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습은 제법 그럴싸했지만 내겐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지팡이는 홀장이라는 무기로 사제들의 기본 무기다.

그 중에서 나나의 홀장은 부제의 홀장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장비. 법술을 보조하기 위한 무기여서 물리 공격력은 고작 30 밖에 안 된다.

그런 걸 무기랍시고 휘두르고 있으니 귀여울 수밖에 없다. 그녀의 모습에선 뉴비 특유의 미숙함이 가득 담겨 있었던 것이다.

‘진짜 졸라 귀엽네.’

나나를 보고 있다 보니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고인물로서의 본능이었다. 뉴비를 보면 흥분하고 마는 원초적인 본능이 내 안에서 용솟음 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나의 모습을 찍어 가디스 던전 커뮤니티에 올린다면 나는 야짤 게시 혐의로 영구 정지를 당할 거다. 그만큼 고인물의 관점에서 나나의 언행은 너무나 귀엽고 야한 것이다.

물론 야하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밈일 뿐, 실제로 나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저런 걸 보고 흥분하면 그게 사람이겠는가, 짐승 새끼지. 다른 고인물들도 뉴비를 보고 야하다고 하는 건 대체로 다 장난일 거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어……?”

하반신이 뭔가 이상했다. 뒤늦게 눈치 챈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다리 사이를 확인했다.

“어어……?!”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얌전하던 육봉이 팬티를 뚫을 기세로 발기해 있었던 것이다.

뭐지? 이게 대체 왜 튀어나온 거야? 나 설마 진짜 뉴비 보고 발정한 거야?

“응? 다키님 왜 그러세요?”

“……?!”

내가 당혹을 터뜨릴 무렵 나나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서둘러 하반신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팔로 다리 사이를 가리는 건 내가 발기했다고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느 쪽이든 발기한 사실은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아…….”

나나의 움직임이 뚝 멈춘다. 그녀의 시선은 내 고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어이 내 우람한 육봉을 확인하고 만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 고민이 얼마나 미련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발기한 걸 들키던 안 들키던 대놓고 보여주는 것보단 나았다.

그렇게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자각하다니. 난 진짜 대갈통 빈 빡대가리 새끼다.

“와, 와아…….”

나나의 입에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설마 내 자지를 보고 감탄하는 건가? 저렇게 귀여운 애가 내 물건을 보고 감탄하는 건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지금만큼은 자괴감이 밀려왔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됐는데 발기한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라니. 여자 입장에선 최악이지 않겠는가.

나나의 감탄도 결코 긍정적인 의미는 아닐 거다. 그러는 사이에도 내 자지는 계속해서 껄떡거렸다. 어느덧 끝부분에는 맑은 물이 맺혔고 그에 따라 팬티도 젖어갔다.

“…….”

그걸 보는 나나의 얼굴도 점차 붉게 물들어갔다. 몇 초 동안 얼어 있던 나는 뒤늦게 다리 사이를 가리면서 나나에게 소리쳤다.

“나, 나나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봐! 이건 너한테 음흉한 마음을 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생리적인 거야!! 아침 발기라는 거 들어봤지?! 남자들은 아침마다 이렇게 음경에 피가 쏠리곤 하는데 나는 그 현상이 남들 보다 좀 늦는 것뿐이야!”

아, 난 왜 이렇게 변명을 못할까.

점심시간이 다 된 마당에 아침 발기를 논하다니. 누가 들어도 개소리다. 나나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이상 내 변명은 씨알도 안 먹힐 거다.

“아무튼 난 널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안 했으니까 오해하지 마……!”

사실 전혀 안 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나는 뉴비라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충분히 요야한 모습이다.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젖가슴, 한쪽 허벅지를 훤히 드러내는 음란한 사제복, 거기에 절세의 미모까지 더해져 매력이 흘러넘쳤다. 그런 나나를 보고 아무런 감흥도 없는 남자에겐 여러 의미로 유감을 표해야 하리라.

“그러신 거라면 어쩔 수 없죠~ 저도 남동생이 있어서 다 이해해요!”

“그, 그래?”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 처음 만난 남자가 자기를 보고 발기했는데 전혀 불쾌해하지 않는다고?

다른 여자들이었다면 비명을 지르면서 뺨을 때렸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나는 나나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데다가 그녀가 좋아하는 스트리머지만 이것과 그건 또 별개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순순히 내 말을 믿어주다니. 정말 새하얗기 그지없는 인성이다. 나나의 포용심에 감탄한 나는 하반신을 가리는 것조차 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나야…….”

내가 감격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나나를 부를 때였다.

“아 그렇지! 마침 저한테 좋은 게 있어요!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나나가 치마를 걷으며 말했다. 순간 그녀의 양쪽 허벅지가 전부 드러나면서 웬 주머니 같은 게 나타났다. 사제복으로 가려져 있던 오른쪽 허벅지에는 벨트 형태의 주머니가 매여 있었던 것이다.

“흐읍……!”

어찌됐든 보드라운 허벅지를 보니까 발기가 더 심해졌다. 이 자리에서 육봉을 흔들고 싶다는 충동이 내 이성을 찍어 누르려 했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에게 나나는 어딘가 이상한 조치를 내려줬다.

“됐어요! 완벽해요!”

“응?”

갑작스러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나가 내 자지를 무언가로 돌돌 말아버린 것이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하체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뭔…….”

내 자지를 감싸고 있는 건 새하얀 붕대였다. 가디스 던전의 회복 아이템 중 하나로 사용하면 출혈과 골절 등 부상 계열 상태 이상을 해제한다. 사제 신분을 선택하면 기본 아이템으로 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걸 왜 내 육봉에 끼워 넣었냐는 것이다. 나는 의아한 눈길을 보내며 해답을 요구했다. 그에 나나는 활기차게 대답했다.

“꼬추가 선 채로 돌아다니시면 부끄럽잖아요! 이렇게 붕대로 가려두면 별로 부끄럽지 않을 거예요!”

그녀 딴에는 돌돌 말린 붕대가 발기한 육봉을 가려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확실히 붕대는 음경의 윤곽을 감춰주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치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나홀이라도 씌운 것 같아서 더 부끄러웠다. 지금 내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오나홀 쓰면서 돌아다니는 미친 새끼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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