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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목표
* * *
“꺄아아아아아……!”
다키가 행복에 젖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무렵, 방에서 깨어난 헤베 역시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침대를 뒹굴고 있었다.
‘투사님하고 섹스했어! 투사님하고 섹스했어! 투사님하고 섹스했어!’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랑하는 연인과의 섹스. 비록 헤라클레스 본인이 아닌 그의 환생 다키와 했으나 헤베에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미 헤라클레스가 곧 다키고 다키가 곧 헤라클레스였으니까.
“하지만 안에 안 싼 건 너무해요, 헤라클레스……! 전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됐었다구요……! 오늘은 모처럼 위험한 날이었는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던 헤베는 문득 아랫배의 허전함을 느끼며 불만을 토로했다.
헤라클레스와 자신은 이미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 전생에 맺은 혼약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헤베였기에 다키가 꼭 질 안에 사정해주기를 바랐다. 그의 아이를 가지는 것이야 말로 헤베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오늘은 위험한 날이었다. 다키의 사정량을 돌이켜 보면 언제 해도 임신 확정일 것 같았지만 모처럼의 기회를 날린 것이 너무 아쉬웠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랫배가 허전해졌다.
“역시 임신시키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런 걸까……?”
다키는 당장 내일부터라도 재앙신과 싸우러 가야하는 몸이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를 임신시키는 일은 굉장히 부담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던 아쉬움이 금세 감격으로 바뀌었다. 임신 시키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뜻이니까.
‘그러고 보면 여기까지 데려와주신 것도 투사님일 테고…….’
다키 생각에 푹 빠진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얼굴을 붉혔다. 공주님 안기로 자신을 이곳까지 옮겨준 다키의 모습이 상상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섹스할 때는 그렇게 짓궂고 야성적이었으면서 끝나고 난 뒤엔 신사적이라니. 헤베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남자였다.
“꺄아아아앙! 못 참겠어어엇!! 헤라클레스 너무 좋아아아앗!!”
팡팡팡팡팡!
다시 행복 수치가 최대까지 오른 헤베는 침대 시트를 마구 두들겼다.
이곳이 본인의 방이 아닌, 브릴린트의 방이란 것도 까맣게 잊고서 말이다.
“뭐, 뭐야 헤베? 여기서 뭐해? 꼴은 또 왜 그렇고?”
때마침 공방에서 돌아온 브릴린트가 그녀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놀랄 만도 했다. 헤베는 여전히 알몸이었고 자신의 침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뒹굴고 있었으니까. 이 방의 주인인 브릴린트 입장에선 이게 무슨 난장판인가 싶을 거다.
그런 브릴린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벌떡 일어난 헤베는 브릴린트에게 달려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앗! 마침 잘 오셨어요, 언니! 안 그래도 상담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뜬금없이 웬 상담……?”
“투사님이랑 그렇고 그런 일을 했단 말이에요! 엄청 좋았지만 생각한 만큼의 결과는 안 나와서……! 어쨌든 연애 상담이 필요해요! 남자 경험 많은 브릴린트 언니라면 저한테 조언해주실 게 많겠죠?!”
헤베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그녀의 말에 브릴린트는 얼굴을 화악 붉혔다.
“그, 그렇지……? 하하핫……! 사내놈들이랑 뒹굴어 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시선을 피하는 브릴린트.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녀는 지금 굉장히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헤베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 역시 수백 년 동안 순결을 지켜온 처녀이기 때문이다.
다소 경박한 성격과 노출도 높은 복장. 알몸조차 아무렇지 않게 보일 수 있는 당당함.
이러한 면모 때문에 브릴린트는 남자 경험이 많을 거란 인식이 박혀있다.
허나 이는 헤베 같은 NPC들만 가지고 있는 착각일 뿐, 가디스 던전을 플레이한 유저들은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메인 히로인은 아니지만 브릴린트 역시 공략 가능 캐릭터 중 한 명. 그런 그녀가 문란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면 유저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러한 이유로 브릴린트에겐 대장일에 너무 열중하느라 남자와 사귀어볼 기회조차 몇 없다는 설정이 붙었다.
결국 그녀는 무늬만 문란한 처녀 빗치. 살아온 세월이 있다 보니 성적인 지식은 알만큼 알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험은 단 한 번도 없는 숫처녀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대놓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사실 브릴린트 본인은 처녀 빗치를 가장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어졌고 다들 자신이 경험 많고 능숙한 여자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수 백 년 넘게 처녀였다는 게 딱히 자랑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헤베야 제우스의 금지옥엽이라 그랬다 쳐도 처녀신도 아닌 자신이 남자 경험 한 번 없다고 털어놓는 건 자폭이나 마찬가지다. 브릴린트도 이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왔던 것이다.
“역시 경험자는 다르네요! 브릴린트 언니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브릴린트가 은근슬쩍 시선을 피할 때 헤베는 두 눈을 반짝이면서 감탄했다.
그녀라면 자신의 고민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헤베의 눈이 반짝거릴수록 브릴린트는 양심을 찔리는 것 같아 괴로웠다.
“아, 아무튼…… 이번에는 또 뭐가 고민인데? 다키랑 떡치다가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하면서 질문을 건넸다. 그러자 헤베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양쪽 검지를 톡톡 맞댔다.
“그런 건 아니구요…… 투사님이 안이 아니라 밖에다가 사정하셨거든요.”
“어…… 그래……? 그게 왜?”
“그게 왜라뇨?! 안에다 사정하지 않은 건 절 임신시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잖아요! 완전 심각한 일이라고요!”
엄격, 진지 근엄하게 말하는 헤베를 보며 브릴린트는 할 말을 잃었다.
결혼 하지 않은 남녀가 피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 의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그, 그거 참 큰일이네. 헤베 너도 상심이 참 심했겠다, 얘.”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있던 브릴린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헤베를 위로했다. 허나 헤베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부정했다.
“그렇지 않아요! 비록 질내사정은 안 해주셨다지만 투사님은 절 잔뜩 사랑해주셨는걸요! 고작 이런 걸로 상심했다니! 당치도 않은 일이에요!”
“그, 그래……?”
그럼 뭐 어쩌라는 거야.
나름 정성스레 위로했던 브릴린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내심 불평했다. 그녀와 함께 성소에서 지낸지도 벌써 백여 년이 넘었지만 참 알다가도 모를 것 같은 아이다.
“그러면 뭐 문제없는 거 아니야……? 질내사정이야 다음 기회에 받으면 되고, 이제부터 계속 얼굴 보면서 살 건데 섹스할 기회도 많잖아? 아예 다음에 할 땐 애는 내가 키울 테니까 걱정 말고 안에 싸라고 하던지.”
어느덧 침대에 드러누운 브릴린트가 턱을 괴면서 말했다. 그녀가 보기엔 이미 모든 게 해결된 것 같았다.
“앗! 듣고 보니 그러네요! 역시 브릴린트 언니예요, 경험자는 생각하는 것부터가 다르군요! 존경스러워요!”
예상대로 헤베는 브릴린트의 제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손을 부르쥐면서 의욕을 불태우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잘 넘어갔다…….’
이로써 브릴린트는 오늘도 자신이 처녀라는 사실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헤베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면요 언니, 임신 잘 되는 체위 중에서 뭐가 제일 좋을까요?”
“으, 응? 체위……?”
“어머니한테 이것저것 배우긴 했지만 딱히 임신 잘 되는 체위가 어떤 건지는 콕 집어서 듣지 못했거든요. 언니라면 알지 않을까 해서요!”
열성적인 기세로 헤베가 질문을 거듭했다. 그에 브릴린트는 은연중에 암담한 얼굴로 창가를 바라보았다.
달은 어느새 머리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오늘은 참 힘든 밤이 되겠구나 싶었다.
* * *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브릴린트에게 찾아갔다.
아침 먼저 먹고 갈까 했지만 여행을 떠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장 그녀에게 가서 새 장비를 구하지 않으면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까앙! 까앙! 까아앙!
그렇게 신전 로비를 지나 대장간으로 다가가자 쇠 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상 오전 7시 정도 밖에 안 됐는데 용광로에선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대장간에 발을 들이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적어도 한 시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한 듯했다.
브릴린트는 아침 일찍부터 대장간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 같다. 어제 식당에서 봤던 식기들은 전부 그녀가 아침 일찍 식사한 흔적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게임 세계의 브릴린트도 원작 NPC 못지않게 부지런한 듯했다. 용광로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몸은 벌써부터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새삼 그녀의 열정에 감탄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브릴린트를 불렀다.
“누나 좋은 아침.”
가급적 자연스럽게 인사하려 했는데 누가 봐도 어색한 인사가 나왔다.
누나뻘 되는 사람에게 친근하게 아침 인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세계 누나들과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던 나에겐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던 것이다.
“여, 여어…… 다키 왔구나. 어서 와.”
“……?!”
인사를 건네자 브릴린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어제와 너무 달라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활기가 넘쳤는데 오늘은 사흘 밤낮으로 야근한 직장인처럼 피로해보였다.
눈가에는 다크 써클이 짙게 내려앉았으며 눈동자도 퀭했다. 나는 당황하면서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뭐야, 누나 왜 그래? 잠이라도 설쳤어?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아하핫…… 어젯밤이 일이 좀 있었거든……. 그래서 평소보다 더 늦게 자버렸지 뭐야. 하아암…….”
이야기를 하면서 브릴린트가 크게 하품했다.
보통 하품하면 누구나 못 생겨지기 마련인데 브릴린트는 하품하는 모습까지 귀여웠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미녀란 말인가. 새삼 신기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좀 더 자지 그랬어. 아직 해도 제대로 안 떴는데.”
“괜찮아, 괜찮아~ 일찍 일어나는 게 익숙해서 이 시간엔 잠도 안 와. 망치질 좀 하다보면 나아지겠지 뭐.”
“그럼 다행인데…….”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나로선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여기가 원래 세계였다면 커피라도 한 잔 사주는 건데.
아쉬운 대로 나는 준비해둔 선물을 꺼냈다. 비록 카페인은 아니지만 이거라면 그녀의 피로한 몸도 조금은 활력을 되찾으리라.
“그보다 누나, 잠깐 손 좀 내밀어 볼래?”
“손? 갑자기 왜?”
“누나한테 줄 게 있거든. 빨리 내밀어 봐.”
내 요구에 브릴린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나 별 의심 없이 손을 내줬고 나는 그녀의 거친 손 위에 숨겨두었던 망치를 건네주었다. 인내하는 자의 신전에서 발견한 붉은색 망치였다.
“어……? 어, 어라? 이, 이게 너한테서 왜 나와? 어어어……?!”
얼떨결에 망치를 받아든 브릴린트가 경악을 터뜨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나와 망치를 번갈아 보았고 끝내 휘둥그레진 눈으로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이거 불을 품은 망치잖아?! 우리 선조님들이 보물로 여기던 물건이라고……!! 수 백 년 동안 찾아 헤맸던 건데 네가 어떻게……?!”
불을 품은 망치. 그게 저 신기하게 생긴 망치의 이름이다.
가디스 던전의 오리지널 설정상 이 망치는 그리스 신화 3주신들에게 무기를 만들어줬다던 최초의 퀴클롭스, 브론테스, 스테로페스, 아르게스 형제가 사용했던 망치 중 하나다.
비록 오리지널 설정이지만 세계관 내의 입지는 원전 신화의 보물들 못지않다.
평범한 대장장이가 들어도 전설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지며 이러한 이유로 대장장이들 사이에선 동경의 대상으로 손꼽힌다.
검사들이 엑스칼리버를 선망하듯이 대장장이라면 누구나 이 불을 품은 망치를 선망할 정도인 것이다.
그렇게 대단한 망치를 브릴린트가 달면 어떻게 되겠는가. 범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처럼 안 그래도 비할 바 없는 실력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이는 곧 게임상에 등장하는 강력한 장비의 제작으로 직결된다.
저 망치를 사용함으로써 그녀가 만드는 무기에는 각종 추가 효과가 붙게 된다. 여기에 몇 가지 설비만 더 구해주면 보스 이코르 무기도 만들 수 있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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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에 브릴린트가 공략 불가 캐릭터라고 언급됐던 부분은 구 설정입니다. 제가 미처 수정하지 못했었네요. 독자 여러분의 지적으로 수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