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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라는 뚜렷한 증거-22화 (2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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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공략

그러려면 일단 고행자의 가호를 해제해야겠지.

“아무튼 네가 쓸 무기로는 이게 제격인 거 같은데, 어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브릴린트가 진열대에서 검 한 자루를 집어왔다. 그녀가 가져온 건 길이 70cm 정도의 숏소드였다.

숏소드   일반

분류: 직검   속성: 참격, 관통

공격력: 90   저지력: 10

공격 속도: 조금 빠름

내구도: 35/35   무게: 5

요구 스탯: 근력 10

보정 스탯: 근력

부가 효과: 없음

[저가형으로 만들어진 직검. 사거리가 짧고 위력이 약한 대신 다루기가 쉽다. 실력이 부족한 검사라면 무조건 강한 무기를 찾기 보단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숏소드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그에 관한 정보가 저절로 떠올랐다.

숏소드는 직검 계열 무기 중 근력 요구치가 가장 낮은 무기다.

누구나 쉽게 착용할 수 있다는 특성 덕분에 근력을 올리지 않는 다른 직업군들이 보조 무기로 많이 사용하곤 한다.

보조 무기라는 인식이 강하긴 하지만 주무기로 사용해도 꿀릴 거 없는 훌륭한 무기다.

일반적인 직검은 ‘보통’ 공격 속도를 가지는 반면 숏소드는 ‘조금 빠름’ 공격 속도를 가졌다.

공격 속도는 매우 빠름, 빠름, 조금 빠름, 보통, 조금 느림, 느림, 매우 느림, 이렇게 총 일곱 단계로 구분되는데, 한 단계 한 단계의 차이가 결코 적지 않다.

직검 수준의 공격력과 사거리를 가졌으면서 공격 속도가 보통 보다 빠르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다. 또한 숏소드라는 이름치고는 사거리도 썩 나쁘지 않아서 초반 무기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나도 원작 게임에서 근접 캐릭터를 키울 때 자주 애용하곤 했다.

“네 근력으론 이 녀석이 한계일 거야. 이게 마음에 안 들면 단검 쪽에서 찾아봐야 돼. 세검이나 도 같은 것도 있기야 한데 그건 직검 보다 훨씬 다루기 힘들거든.”

내가 숏소드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자 브릴린트가 조언을 해주었다.

단검, 세검, 도.

셋 다 근력이 아닌 기교를 요구하는 무기들이다.

사실 지금의 내 기교로는 제일 기본적인 단검인 대거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할 거다. 기교 요구치가 15를 훌쩍 넘는 세검이나 도는 말할 것도 없다.

애초부터 내 선택지는 직검 뿐이었다. 기본 스탯이 전부 5밖에 되지 않아 처음부터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이를 알고 있는 나였기에 아크 데몬에게서 얻은 3의 위업 포인트 중 2포인트를 근력에 투자했다. 고로 현재 내 근력은 총 10. 숏소드를 간신히 들 수 있는 수준이다.

참고로 나머지 1포인트는 생명에 투자했다. 고행자의 가호의 또 다른 페널티 때문이었다.

이름: 감다키

성별: 남성

나이: 25세

종족: 인간

맹약: 없음

은혜: 고행자의 가호(공격력과 피로도 상한 두 배. 일주일 안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세이브 데이터 삭제, 하루가 지날 때마다 생명력 절반으로 감소)

위업: 0

능력치: [생명 6(+16)] [정신 5] [신체 5]

[근력 7(+3)] [기교 5] [정밀 5] [민첩 5] [지성 5(+6)] [신념 5]

생명력: 330 (고행자의 가호 효과로 생명력 절반. 원래 수치 660)

마력: 150

기력: 150(+200)

고행자의 가호의 페널티는 비단 세이브 데이터 삭제만이 아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최대 생명력을 절반으로 줄여버린다. 그래서 생명을 1 투자해 660이 된 생명력이 330으로 줄어들었고 내일은 165로 줄어들 것이다.

그런 내게 생명 투자는 필수불가결이었다. 그래봤자 잡몹들에게조차 두세 대 맞으면 죽을 생명력지만 한 대라도 더 버티기 위해선 꼭 찍어줘야 했다.

“이걸로 할게. 1000아웬이면 되지?”

결정을 내린 나는 돈주머니를 꺼내며 계산할 준비를 했다.

숏소드의 상점가는 1천 아웬. 원화로 따지면 10만 원 정도다.

진검 가격이 10만 원 밖에 안 한다고 하면 굉장히 싼 편이겠지만 부랑자인 내겐 무척 부담되는 가격이다. 영주성에서 2천 아웬이 든 돈주머니를 발견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기껏 얻은 보상들을 팔아넘겨야 했을 거다.

그렇게 100아웬짜리 동전 열 개를 꺼낸 나는 그것을 브릴린트에게 건네줬다.

허나 그녀는 내 손에 있는 동전을 샌 뒤에 그 중 일곱 개만 가져갔다. 정가에서 30퍼센트나 할인된 가격으로 받아간 것이다.

“어?”

이에 당황한 나는 놀란 목소리를 내며 브릴린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게 찡긋 웃어주면서 금색 동전들을 던졌다 받았다 반복했다.

“시세는 잘 아는 거 같은데 너한테는 시세대로 받을 생각 없어.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싸게 주는 거니까 군말 말고 받아가.”

“지, 진짜?”

생각지도 못한 할인에 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디스 던전에는 할인 시스템 같은 게 없다. 그렇기에 게임처럼 정가를 그대로 내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깎아주다니. 다른 사람에겐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겠으나 게임 속 브릴린트와 셀 수 없을 정도로 거래해온 나에겐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물론이지~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니니까. 난 그냥 재료값만 충당하면 돼.”

내 얼빠진 되물음에 브릴린트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브릴린트가 이렇게 인심이 좋은 NPC였다니. 순간 게임과 현실의 차이 때문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나는 300아웬어치의 동전을 도로 집어넣으며 감사를 표했다.

“진짜 고마워 누나. 뭐라고 감사해야할지…….”

“이런 걸 가지고 뭐 그리 고마워해~ 네가 이제부터 해줄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부담감 느끼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더 말해.”

내 인사에 브릴린트는 손사래를 치면서 사람 좋게 웃었다. 악의나 꿍꿍이 같은 건 일절 찾아볼 수 없는 호의로 가득한 미소였다.

그 밝고 화사한 미모를 보니 당장이라도 반해버릴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반했을지도 모른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그러면 이것 좀 부탁해도 될까? 누나라면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입 꼬리를 올리며 나는 폭풍의 권능석을 꺼내들었다. 저택의 비밀방에서 얻은 그 보석 말이다.

“세상에……, 폭풍의 권능석이잖아……?! 이렇게 귀한 걸 어디서 났어?!”

브릴린트는 권능석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세계관 최고의 대장장이여서 그런지 역시 안목이 좋았다. 권능석을 브릴린트에게 건네주면서 얻게 된 경위를 대강 설명해주었다.

“어쩌다가 나쁜 마법사 연구실에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에 고이 모셔져 있더라. 이걸로 뭔가 실험이라도 하려 했나 봐.”

“그렇구나아…… 와아……, 이렇게 깔끔한 권능석을 보는 게 대체 몇 년 만이지? 이 정도 권능석은 기원 전쟁 이후로 죄다 부서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었구나. 이야아…….”

그녀의 한 쪽 밖에 없는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권능석을 쥔 브릴린트는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만도하다. 폭풍의 권능석은 수많은 권능석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편에 속하니까.

입수처도 게임 전체를 통틀어서 두 곳 밖에 없으며 나머지 하나는 나조차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최악의 보스 몬스터다. 그 점을 고려하면 이 아이템이 얼마나 진귀한지 알 수 있다.

“이걸 방금 산 숏소드에 발라줬으면 하는데 지금 바로 될까?”

“물론이지! 20분, 아니! 15분만 줘! 아주 끝내는 무기를 만들어 줄게!”

대답과 동시에 브릴린트는 모루 앞으로 달려갔다. 문득 가격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난 신이 난 브릴린트를 향해 물었다.

“잠깐만 누나, 강화하기 전에 가격 먼저 듣고 싶은데.”

“그렇지 참! 어어어……! 이 정도만 줘!”

권능석을 다루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지 브릴린트는 급하게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보였다. 그녀의 손을 본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5천 아웬?!”

“아니 5백 아웬! 난 지금부터 작업할 테니까 다키 너는 다른 거 구경하고 있어! 갑옷이라던가!”

“뭣…….”

내가 의아해할 틈도 없이 브릴린트는 작업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확인해보니 그녀는 엉덩이까지 흔들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권능석을 다루는 게 그녀 입장에선 꽤나 즐거운 일인 듯했다. 게임에선 없었던 반응이라 보는 내가 다 재밌을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5백이라니…… 이번엔 원가의 절반이잖아…….”

원래 권능석 강화 비용은 1천 아웬으로 숏소드의 가격과 동일하다. 그런데 브릴린트는 그 절반인 5백 아웬, 원화로 5만 원가량을 부른 것이다.

내 지갑 사정을 생각해서 많이 깎아준 것도 있겠지만 권능석을 다루는 것 자체가 본인에겐 보상이기 때문에 그런 파격적인 할인율을 보여준 듯했다.

어찌되었든 나한테는 굉장한 이득이었다. 원래라면 한 푼도 안 남았을 소지금이 800아웬이나 남은 것이다. 이 정도 돈이라면 무난한 장비 하나 정도는 더 살 수 있을 거다.

“브릴린트 누나…… 엄청 좋은 사람이었구나.”

브릴린트는 시원시원한 성격과 꼴리는 차림새로 원래부터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공략 가능한 캐릭터가 아닌데다가 게임에선 묵묵히 장비만 만들어서 주요 히로인들 보다는 인기가 덜했다. 그런데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헤베 못지않게 그녀를 향한 애정이 커져갔다.

오늘 있었던 일을 계기로 언젠가 그녀와 야스를 하고 말리라. 가뜩이나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니 미리 밑밥을 깔아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보자…….”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진열대 쪽으로 향했다.

조금 전엔 브릴린트에게 찾아달라고 했었는데 막상 장비들의 외관을 보니 내가 직접 골라도 문제없을 듯했다. 원작 게임과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론 인게임의 모델링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 마음에 드는 건 이건데…….”

한동안 방어구들을 살펴보던 내 눈에 장비 하나가 들어왔다.

토르소 마네킹이 입고 있는 그것은 조끼 형태의 가죽 갑옷이었다. 장비 이름 역시 가죽 갑옷 세트로 경갑에 속하는 방어구 중에선 가볍고 방어력도 높아 꽤 좋은 축에 속한다.

가죽 갑옷 상의   일반

분류: 경갑

방어력: 38  인내력: 10

내구도: 45/45  무게: 8

요구 스탯: 근력 10

부가 효과: 없음

저항력

참격 3.0  관통 5.0  타격 7.0

마력 0.0  화염 0.0  빙결 0.0  전격 0.0  신성 0.0  암흑 0.0

부가 효과 하나 없는 무난한 성능이었지만 초기 장비가 이 정도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당장 들개의 데미지가 50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50의 데미지가 38의 방어력으로 인해 12까지 하락하니 이것만 입어도 생존력이 상당히 올라가는 것이다.

참고로 부가 효과 아래에 있는 저항력은 각 속성의 피해를 덜 받게 해주는 옵션들이다.

방어구에는 저마다 저항력이 있는데, 이 가죽 갑옷 상의에 경우 참격 피해를 3퍼센트, 관통 피해를 5퍼센트, 타격 피해를 7퍼센트 경감해준다.

가죽 갑옷을 입고 있을 때 들개에게 물려 50의 관통 피해를 받으면 먼저 38의 방어력이 적용되어 피해량이 12로 떨어진다. 거기에 또 다시 5퍼센트의 관통 저항력이 적용되어 피해량이 11(소수점 버림)로 감소하는 것이다.

‘다른 부위는 안 보이네. 누나가 안 만들어둔 건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상의와 한 세트인 하의, 투구, 장갑, 부츠 등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근처에 없는 걸 보면 상의 밖에 안 만들어둔 듯했다.

가디스 던전의 방어력은 여느 게임과 다르게 부위별로 세분화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게임에선 투구와 갑옷을 착용했을 때 각 장비의 방어력이 10, 20이라면 이 둘을 합친 수치인 30이 캐릭터의 방어력이 된다.

반면 가디스 던전은 투구의 방어력이 10이라면 머리의 방어력이 10, 상의의 방어력이 20이라면 몸통의 방어력이 20이 되는 식이다.

100의 피해를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같은 캐릭터가 맞았더라도 머리에 맞으면 90, 몸통에 맞으면 80의 피해를 받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시스템으로 인해 세트 방어구의 방어력은 투구나 상의, 하의 등을 가리지 않고 전부 똑같은 수치를 갖추고 있다. 각 부위의 방어도가 다르면 어느 쪽은 피해를 덜 받고, 어느 쪽은 피해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금 내 돈으론 여기 있는 상의 한 벌도 못 사겠지만…….’

가죽 갑옷 상의의 상점가는 2500아웬이다. 가죽 갑옷 세트의 가격이 아니라 가죽 갑옷 상의 한 벌만 해도 이 정도이며 세트를 맞추려면 5천 아웬, 원화로 50만원 정도의 돈이 있어야 한다.

“천 갑옷이라도 입어야 하나…….”

나는 다른 마네킹이 입고 있는 누비 갑옷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군대에 있을 때 입었던 깔깔이와 비슷하게 생긴 갑옷이었다.

경갑에 비해서 방어력이 턱없이 낮긴 해도 안 입는 것보다야 낫다. 큰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지만 당장은 생존력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게 우선이니까.

“하아, 하아, 하아……! 완성……! 완성됐어!”

그때 브릴린트가 내 쪽으로 왔다. 거친 숨결을 토해낸 그녀의 손에는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른 숏소드가 들려있었다.

“이런 걸작을 만들어낸 건 정말 오랜만이야! 허구한 날 평범한 장비만 만들어서 지겹던 참인데 덕분에 재미 좀 봤어!”

권능석을 가지고 노는 게 썩 재밌었던 모양인지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 역시 청록색으로 일렁거리는 숏소드를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이야아…….”

외관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폭풍의 힘을 얻은 숏소드는 조금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당장이라도 폭풍우를 뿜어낼 것 같았으며 검신에선 연신 번갯불이 튀었다. 실물로 보는 숏소드 자체도 멋있었지만 권능석 특유의 이펙트가 그 멋을 배로 만들었다.

폭풍의 숏소드   일반

분류: 직검   속성: 참격, 관통, 전격

공격력: 108   저지력: 10

공격 속도: 조금 빠름

내구도: 35/35   무게: 5

요구 스탯: 근력 10

보정 스탯: 근력

부가 효과: 전용 스킬, 열공의 한 획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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