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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
[당신은 아크 데몬을 토멸했다. 그의 죽음이 당신의 새로운 위업이 된다.]
[보상으로 3 위업 포인트를 얻었다.]
놈이 죽자 눈앞에 대문짝만한 문구가 나타났다. 보스들을 처치할 때 나오는 메시지였다.
보상으로 나온 위업 포인트는 일종의 경험치다.
가디스 던전의 성장 시스템은 굉장히 독특한데, 타 게임과는 달리 일반 몬스터에게선 경험치를 전혀 얻을 수 없고 보스나 그에 준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처치했을 때, 혹은 퀘스트를 클리어했을 때 위업 포인트를 받는다.
위업 포인트는 획득처가 매우 한정되어 있는 대신 1 포인트 당 원하는 스탯을 자유롭게 하나 올릴 수 있다. 경험치 대신 스탯을 바로 얻는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어쨌든 아크 데몬은 죽었다. 놈의 절명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수명이 10년은 줄어든 느낌이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방구석 폐인에 불과했던 내가 대악마를 쓰러뜨리다니. 스스로 해낸 일인데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겼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아크 데몬의 시체를 보고 나서야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가슴 속에서 만감이 피어올랐다. 수많은 감정이 솟구쳤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을 뽑으라면 단연 성취감이었다.
그렇게 난생 느껴본 적 없는 크나큰 성취감 속에서 말을 잇지 못할 때였다.
“콜록! 콜록!”
“……!”
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것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사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리라.
“기사님!”
서둘러 달려온 나는 여기사의 상태를 살폈다.
위급한 상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녀의 몸에는 이렇다 할 외상이 전혀 없었다. 갑옷이나 피부가 조금 그을리긴 했지만 척 보기엔 멀쩡했다.
그러고 보니 가디스 던전의 시스템 중에는 ‘신의神衣’라는 것이 있다.
설정상 신의 권능을 사용하여 장비를 보호막 형태로 변환하는 것인데, 이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몸에 두르고 있으면 몸이 터지거나 두 동강 날 정도의 피해를 받아도 멀쩡할 수 있다.
덕분에 여기사는 번개에 직격 당했음에도 상처 하나 없이 살아있을 수 있었다. 보호막이 전부 소진되긴 했지만 이 이상 공격당하지 않으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기침도 주위에서 난 흙먼지 때문에 한 듯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나는 여기사의 모습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겁나 예쁘네…….”
주홍색 머리를 트윈테일로 묶은 날카로운 인상의 여성. 원래 세계에선 찾아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미모의 여성이었다.
도자기처럼 뽀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 거기에 기다란 속눈썹까지. 그야말로 잘 만들어진 게임 캐릭터를 보는 것 같았다. 커스터마이징이 예쁘기로 소문난 가디스 던전이지만 커마 장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예쁜 캐릭터를 만들려면 몇 시간은 쏟아 부어야 할 거다.
체구는 140cm 정도로 무척 왜소했는데 대신 비율이 훌륭했다. 솔직히 키도 작고 얼굴도 앳돼 보여서 어린애인가 싶었지만 이 예술적인 발육 상태를 보면 틀림없이 성인인 듯했다.
특히나 크게 출렁거리는 가슴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 씹덕 지식대로라면 G컵을 넘기고도 남았다. 그야말로 가슴 조절 스크롤을 최대로 설정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경이로운 크기인 것이다.
“아니, 아니…… 기절한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되지…….”
여기사의 몸매를 구경하던 나는 무안한 기분이 들어 뒤늦게 시선을 돌렸다.
무방비한 여성을, 더군다나 날 위해 목숨까지 내던진 여성을 추잡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게임 세계에도 성추행 관련 법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세계와 비슷하거나 같다면 여기사가 깨는 순간 기소 확정이다.
어쩌다가 게임 세계에 왔는지도 모르는데 은팔찌부터 차고 볼 수는 없지. 그게 아니더라도 생명의 은인을 이런 식으로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모쏠 아다 씹덕이라곤 하지만 기절한 여자에게 마수를 뻗는 쓰레기 새끼는 아니라 이거다.
“강제로 깨우기도 뭐하니까 일단 저대로 두자.”
자리를 피해준 나는 바깥 상황을 보고 오기로 했다.
[키에에에에엑!! 끼아아아악!!]
[으어어어어어……!!]
아크 데몬이 쓰러져서일까. 다른 악마들은 패닉 상태 빠져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마치 정신 착란이라도 온 것처럼 머리를 감싼 채 괴로워했으며 어떤 놈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서 몸부림쳤다.
“영지에 소환된 악마들은 아크 데몬 덕분에 멀쩡히 활동할 수 있다, 놈이 없으면 소환의 부작용으로 몸도 가누지 못 한다…… 대충 이런 설정이었지…….”
악마들은 본래 마계의 존재들이다. 일반적으론 현세에서 활동할 수 없으며 억지로 소환할 경우 신체와 정신에 과부하가 걸리고 만다.
아크 데몬이 살아있을 때는 놈이 대악마의 힘을 사용해서 소환의 부작용을 혼자 떠안고 있었다. 그런 아크 데몬이 내 손에 죽으면서 소환 부작용도 다시 악마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부작용이 없어지려면 못 해도 2, 3일 정도는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때까지 악마들은 계속 저 상태일 거다.
“많이 약화된 상태긴 한데…… 역시 도시로 돌아갈 생각은 접어야겠어.”
소환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곤 하나 아무 것도 못하는 건 아니다. 내가 대놓고 시내를 활보하면 놈들은 나를 공격할 거다. 한 두 마리라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겠으나 한꺼번에 덤벼들면 답이 없다.
게다가 놈들 중에는 아크 데몬보다 훨씬 큰 단두대 데몬도 몇 마리나 섞여 있다.
그런 놈들이 마구잡이로 공격을 가해오면 많이 위험할 거다. 보스 한 마리를 잡는 것보다 잡몹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게 더 힘들 때도 있는 법이다.
이대로 방치해두면 놈들은 이 영지를 자신들의 소굴로 만들겠지만 그건 내가 어찌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적어도 저택을 향해 돌진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나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으으음…….”
“……! 괜찮아요?!”
현관에서 악마들의 상태를 살피고 올 무렵, 여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급히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이럴 때는 뭘 해줘야 되지? 뭔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 나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일단 마실 물이라도 찾아볼까? 기절해 있는 동안 먼지를 많이 먹어서 목이 아플 거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당신은…….”
“네, 네……!”
여기사의 부름에 나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어떡하지?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난 외간 여자랑 대화해본 적이 손에 꼽는다.
마지막으로 가족 외의 여자랑 이야기 나눈 적이 언제였더라? 젠장 고등학교 때 반 친구랑 나눈 대화 밖에 기억 안 나.
그것조차 의미 있는 대화가 아니라 여자애 쪽에서 나한테 지우개 빌려달라고 부탁한 게 전부였다고. 게다가 그때 당시 난 전형적인 찐따 새끼마냥 말 더듬으면서 지우개만 건네줬단 말이다.
침착하자,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거야 자연스럽게.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는 것뿐이잖아? 긴장할 거 전혀 없다. 아크 데몬과 싸웠을 때를 기억해라. 그때 느꼈던 자신감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는 거다.
“아, 미안…… 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 잠깐 불 좀 켤게.”
내가 찐따다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여기사가 그리 말했다. 생각해보니 메인 홀은 상당히 어두웠다. 나야 어둠에 익숙해져서 괜찮았지만 여기사는 방금 일어난 터라 내 얼굴이 잘 안 보일 거다.
비단 메인 홀만 그런 게 아니라 도시 전체가 비현실적인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마 이것도 악마 소환의 영향이겠지. 악마들이 나타났는데 해가 쨍쨍하면 분위기가 안사니까 가디스 던전 제작진들이 어거지로 집어넣은 연출일 거다.
화르륵!
여기사의 손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내게 자멸의 부적을 건네준 기사, 라울도린이 썼던 주문과 같은 것이었다.
이곳이 게임 세계고 그녀가 성기사라면 저 불꽃은 성스러운 불씨라는 법술일 거다.
법술이란 가디스 던전의 주문 분류 중 하나로 사제나 성기사 등이 사용하는 주문이다. 다른 게임의 신성 주문, 혹은 기적 등을 생각하면 편하다.
“하아…… 이제야 좀 보이네. 그보다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대악마가 우리 기사단을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성스러운 불씨를 내 쪽으로 비추면서 여기사가 질문했다.
그런데 여기사의 말이 점점 느려졌다. 왜 그러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여기사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에 공포에 서려 있는 게 보였다. 순간 위기감을 느낀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요?! 내 뒤에 뭐 있어요?!”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녹부검을 겨누며 경계했지만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뭐야, 그런데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벼, 변……!”
“응?”
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여기사가 입을 열었다. 괜찮다고 말하려는 건가? 잠시 그런 생각을 한 나였지만 이후 여기사가 보여준 반응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 변태애애앳!!”
퍼어어어억!!
“어억?!”
여기사가 내 몸을 있는 힘껏 밀쳤다. 평범한 여성의 완력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가디스 던전의 캐릭터, 게다가 성기사라면 근력이 굉장히 높을 거다.
근력 5인 나는 여기사의 힘을 못 이겨 무력하게 밀려났다. 나와 거리를 벌린 그녀는 바닥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다급히 찾았다. 그녀가 애타게 찾는 물건은 다름 아닌 본인의 주무기 랜스였다.
“오, 오지 마! 오면 찔러버릴 거야!!”
“아, 아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저 이상한 사람이에요!”
느닷없는 적대에 나는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설마 쓰러질 때 머리라도 다친 건가? 아니면 너무 잔혹한 경험을 한 나머지 정신이 어떻게 된 걸 수도 있다. 동료들이 번개에 맞아 불타는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무튼 큰일이다.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날 공격할 거다. 기껏 얻은 미녀 여기사와의 인연을 이렇게 날려먹을 수는 없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 일단 진정하세요, 기사님. 저는 기사님의 적이 아니에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기사님과 싸우던 아크 데몬도 제가 해치웠어요. 지금 당장 놈의 시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그거 내려놓으시고…….”
“히, 히이이이익!!”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여기사는 더욱 질겁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분명 공포감에서 비롯된 눈물이리라.
아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뭐 어때서! 캠 켜고 방송하면 ‘다키님 은근 잘 생기셨네요.’ ‘역시 창남도 얼굴이 돼야 하는 듯.’ 같은 칭찬 한 두 마디 정도는 듣는 외모라고!
내심 그렇게 소리쳤지만 내 마음 속의 항의 같은 건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말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난 천성이 모쏠 찐따라 이럴 때일수록 말이 잘 안 나오는 버릇이 있다.
결국 여기사는 나를 향해 랜스를 내질렀다.
“오지 말라고오오오옷!!”
“……!”
랜스에 붉은 빛이 감돈다.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그녀의 스펙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킬을 사용한 이상 적어도 150 이상의 데미지는 뽑아낼 거다.
카아아아앙!!
나는 반사적으로 녹부검을 휘둘렀다. 절묘한 순간에 반격을 가하자 공격 패링이 발동됐다.
“꺄악……?!”
여기사는 무방비 상태가 됐고 그녀가 들고 있던 랜스는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여기사에게 접근하여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또 랜스를 잡고 휘두르면 곤란하니까 실례를 무릅쓰고 제압하기로 한 거다.
“기, 기사님! 혼란스러운 건 알겠지만 일단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우리끼리 이래봐야 좋을 거 없다니까요!”
“꺄아아아아악! 이거 놔! 이거 놔아아아앗!!”
퍽! 퍽! 퍽!
“악! 악! 아아악!”
팔을 못 쓰게 된 여기사는 내게 연신 박치기를 날렸다. 키가 작아서 그녀의 박치기는 내 명치에 정확하게 꽂혔다. 진짜 말도 못하게 아팠다.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눈이 뒤집힐 정도의 고통이었다.
“어딜 만져! 어딜 만져어어어엇!!”
“팔 만졌어요! 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팔도 만지지마 이 변태!! 치한! 나한테서 떨어져!! 당장 이 더러운 손 치우란 말이야아아앗!!”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여기사. 근력이 나보다 높아서 쉽게 제압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내 손길을 뿌리쳤고 반대편으로 도망치려 했다.
안 돼, 저택으로 나가는 순간 악마들이 득실거린단 말이다. 그녀의 정신 상태로는 놈들에게서 제대로 도망칠 수 없을 거다.
어떻게든 그녀를 말려야 한다. 사명감을 느낀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악!!”
“헛!!”
하지만 너무 다급했던 걸까. 하필이면 그녀의 트윈테일 중 한 쪽을 잡고 말았다. 여기사는 꽈당!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고 졸지에 나한테 머리채를 붙잡힌 꼴이 되었다.
와, 진짜 아프겠다. 저렇게 넘어지면 꼬리뼈 다 깨질 텐데.
아니 그보다 이래서야 내가 진짜 공포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패스 범죄자 같잖아…….
자괴감이 몰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녀의 트윈테일을 잡아당기며 안쪽으로 끌고 갔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발버둥을 치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망가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그때였다.
“이이잇!!”
“어?!”
촤아악!
여기사의 트윈테일이 잘려나갔다. 그녀가 품에서 꺼낸 단검으로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직접 자른 것이었다.
“따라오지 마 이 변태!!”
도마뱀 꼬리 자르듯 머리카락을 자른 그녀는 그 말을 남기며 빛의 속도로 도망쳤다.
너무 빨라서 나로선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정말 살기 위해서 달린다는 느낌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달릴 때 다리가 안 보였다.
“뭐 저런 게 다…….”
결국 여기사를 떠나보낸 나는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음흉한 마음을 품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난 어디까지나 그녀를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다. 은혜를 갚고자 하는 마음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내치다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중3 때 짝사랑했던 여자아이가 일찐들하고 같이 술집에 들어가는 걸 봤을 때보다 더 슬펐다.
생각해보면 난 원래 세계에서도 여자들의 기피 대상이었다. 얼굴이 못 생긴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지?
그냥 척 봤을 때 얘는 모쏠 아다 씹덕 새끼니까 가까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느낌이 확 오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울적해졌다. 과거에 겪었던 슬픈 경험들이 잇따라 떠오른 나는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원래 혼자였지만 지금은 좀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순간.
“응?”
고개를 숙인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
고간이 엄청난 기세로 솟아 있었다. 텐트로 비유하자면 수십 명은 들어갈 수 있는 대형 텐트 수준으로 말이다.
그제야 나는 내 하반신에 피가 쏠려 있는 걸 감지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려 G컵이나 되는 여기사의 가슴을 보고 더할 나위 없이 발기한 것이리라.
“아 설마…….”
한동안 발기한 육봉을 내려다보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육감적인 여성의 몸을 보고 욕정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사 입장에서 생각하면 웬 남자가 기절해 있던 자신에게 육봉을 치켜세우며 다가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온몸에 아크 데몬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다.
비를 맞아서 좀 씻겨나가긴 했지만 완전 깨끗해진 건 아니었다. 피칠갑한 변태 새끼가 자신을 겁탈하려고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지 않는가.
그제야 난 여기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서웠구나…….”
미안해라.
============================ 작품 후기 ============================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수용해서 주인공의 외모를 수정했습니다. 기괴한 외모 때문에 정주행을 고민하신 독자분들이 보다 편한 마음으로 읽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