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인사청문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관의 청문회장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사람도 평소보다 많았다.
원래는 다루는 의제의 특성상 기재위보다 법제사법위원회가 인기가 많았다.
촬영 열기든, 대중의 인지도든 말이다.
기재위의 경우에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은 경우가 달랐다.
국회뿐 아니라 온 국민의 관심이 기재위에 쏠려 있었다.
그들은 경제 정책에 관한 의결을 담당했으며 전문성이 꽤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런 것보다는 기재위가 담당하는 딱 한 가지의 관청 때문에 모였다.
바로 국세청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동안 세간을 들썩이게 만든 남자였다.
가끔 국정감사에 불려 나온 적은 있지만 그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국세청장 인사청문회.
한마디로 앞으로 국세청장이 될 후보자를 붙잡고 털어보자는 청문회였다.
지나가는 누구를 붙잡고 ‘국세청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입니까?’ 하면 100명 중 100명이 그 이름을 부른다.
-신재현이라는 사람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국세청은 설립 역할을 다한 게 아닐까요?
-국세청이 뭘 한다고 해도 믿습니다. 충분히 잘해주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테니까요. 신재현 화이팅!
-저, 국세청한테는 미안하지만 신재현 씨를 국회에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신재현을 국회로! 아니, 청와대로!
신재현의 이름값은 그야말로 최대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국세청장 청문회의 대상은 바로 그였다.
그런데 평소의 청문회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의원들이 일찌감치 들어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목이 타는지 연신 물을 마셨다.
정작 청문회 대상은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웬만한 장관 청문회였다면 당장 불호령이 날아갔을 것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개판이네요. 후보자는 국회를 뭘로 보는 겁니까? 의원님들 바쁜데도 일찌감치 와서 앉아 있는데 후보자는 아주 편안하네요.’
좋게 보던 위원들도 마이너스 점수를 깔고 시작하고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을 준비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천하의 국회의원들도 그럴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후보자가 위원회장 문을 열고 성큼성큼 나타나자 몇 위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기재위는 특성상 경제 관료나 교수들이 앉아 있게 마련인데, 그들 중 일부는 이 남자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해본 사람도 있었으며, 나이와 상관없이 남자를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예전에 가문대학교 회계학과 교수였던 야당 인사처럼 말이다.
그는 연예인을 영접한 팬처럼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가 크흠,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남자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더니 먼저 자리에 앉기 전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늦어졌습니다.”
호통은 나오지 않았다.
‘의원 길들이기’라느니 ‘자세가 안 되어 있다’는 날 선 비난도 나오지 않았다.
“공사다망한 와중에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일이 많이 바쁜가 봅니다.”
기재위원장이 대표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실제로 남자는 의원 길들이기를 할 생각도 없었으며 정말 일이 바빠서 늦어진 것이라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상증세 건 확인하느라 늦었습니다. 정말로, 제가 원래도 바쁘긴 했지만 요즘에는 정말 미치게 바빠서요.”
“상증세요? 신 국장이 직접 확인하는 거라면 큼직한 일일 텐데, 혹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한울 그룹 승계에 관한 겁니까?”
요즘 한울은 후계자에게 미리 경영권을 승계하느라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특히나 사전 승계인지라 국세청에서도 까다롭게 보고 있었다.
장남이 아니라 막내에게 계승하는 것도 언론이 좋아하는 가십거리였다.
돌아온 탕아, 대기업의 총수가 되다!
그야말로 최근 최고의 화제였다.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오늘 청문회에서도 이거 물어보실 거죠? 죽도록 바쁩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눈 밑에는 검게 다크서클이 껴 있었다.
국세청장 후보자치고는 나이도 어리다 보니 청장 청문회라기보다 회사원 하나 데려다 앉힌 것 같았다.
“이따 후보자께 자세히 묻겠습니다. 오늘 국민 여러분께 신재현 후보자의 업무 적합성을 납득시켜 드리고 앞으로 국세청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비전을 듣는 유익한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위원장의 말은 이미 반쯤 남자를 통과시키겠다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여기 앉아 있는 위원들 대다수가 그런 생각이어서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서. 공직후보자인 본인은 국회가 실시하는 인사청문회에서 양심에 따라…….”
남자의 선서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청문회장에 울려 퍼졌다.
결과가 이미 확정된 게임이나 다름없었지만 느슨하게 긴장을 푼 사람은 없었다.
“그럼 질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여당의…….”
첫 질문인 데다 질문자가 여당의 의원인지라 아무도 질문 내용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다.
여당, 즉 대표가 전 국세청장 정상훈인 이 당은 신재현 덕분에 대통령을 배출했으며 정권 유지까지 성공한 이력이 있었다.
신재현의 덕분에 현재도 정권 지지도는 높았다.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첫 번째로 한 외부 행사가 현충원, 두 번째가 국세청 방문일 정도였다.
이런 경우에 여당에서는 질문을 빙자한 칭찬을 쏟아붓는다.
주어진 시간 내내 후보자의 업적을 늘어놓고는 마지막에 형식적인 질문 한마디만 던지는 것이다.
-앞으로 잘하실 자신 있습니까?
이렇게.
그러나 이번 여당은 기세가 아주 등등했다.
다른 사람들은 여당이 신재현과 한편이라 생각했으므로 미래의 국세청 수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여당 의원이 입을 열자마자 던진 것은 그의 약점이었다.
“신 후보자께서는 이제 37세입니다. 내년부터 임기를 시작하신다 해도 38세죠? 너무 어린데 국세청의 수장 역할을 잘하실 수 있을지 의문이 갑니다. 당장 지금 지방청장과 국장, 하다못해 과장급만 해도 후보자보다 훨씬 나이가 많죠. 50줄이 넘는 아랫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국세청이라는 큰 조직을 다룰 수 있겠습니까?”
첫 질문부터 홈런이라니.
싸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야당 의원들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국회가 통째로 공중 분해되고 국회의원 300명이 전부 10pt의 활자가 되어 신문에 실렸다.
신재현은 건재하다.
그들이 그 사건을 잊는 순간 똑같은 꼴이 될 거라는 건 명백했다.
탈세한 국회의원이라는 표제로 신문에 오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그동안은 약간 경직된 기조가 흐르고 있었다.
국세청은 건드리지 말자.
그런 와중에 건드려 버린 것이다.
‘저저 미친놈들이! 아무리 청장이 좋게 봐줄 거라 믿어도 한도가 있지! 화나서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튀면 어쩌려고!’
물론 착각이었다.
여당과 신재현은 같은 편도 아니었으며 신재현은 국세청이 성역 취급받길 원하지 않았다.
그건 또 다른 폐해를 만들어낼 뿐이다.
그러니 지금 여당의 공격은 두 팔을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이야, 초장부터 잘 찔러주네. 재밌겠는데.’
긴장하거나 떠는 모습은 없었다.
이미 훨씬 젊을 적부터 청장 앞에서 3시간짜리 면접을 보던 신재현이다.
채 서른이 되기도 전부터 국회를 들락거리며 의원들의 날 선 압박을 받아본 적이 있다.
이 정도 질문은 놀라운 축에도 끼지 못했다.
신재현은 여유롭게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승진이 조금, 아니, 많이 빨랐습니다. 스물여덟에 6급이 되었죠. 이미 제 주변에는 수많은 선배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제 동료이자 멘토이며 같은 길을 걷는 국세인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으로 일에 지장을 줄 분들이 아닙니다. 저하고 일한 기간이 길기도 하고, 다들 세법의 프로시거든요.”
신재현은 능숙하게 약점을 덮으면서도 국세청의 동료들을 추켜세우는 걸 잊지 않았다.
그 순간 야당 의원들과 눈치 빠른 정치부 기자들은 눈치챘다.
신재현은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었다.
여당 의원들이 신재현의 약점을 찌르는 건 그를 적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구설수에 오를 일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검증하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상황이 너무 다른데.’
의원들은 오고 가는 질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청문회장에서 자기 약점을 들추길 원하는 후보자는 없다.
그걸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쳐내는 것도 그렇고.
신재현에게는 이것이 치명적이지 않다는 걸 뜻했다.
‘이번 청문회는 정말로 별 이변 없이 넘어가겠네.’
다른 의미로 의원들은 후보자의 청장 취임을 직감했다.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은 없다.
그 정도가 불법이거나 도덕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된다.
들어오는 공격을 바로바로 처리할 정도의 대처 능력, 그게 바로 수장급 직위에 필요한 것이었다.
‘진짜 못하는 게 뭐냐…… 이 괴물 같은 놈.’
여당의 몰아치는 질문이 끝나고 야당의 차례가 돌아왔지만, 해당 의원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어…… 그러니까, 음…… 후보자께서…….”
여당이 했다고 자신이 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의원이 식은땀만 닦고 있자 오히려 신재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무거나 물어보세요. 민감한 질문이 또 뭐가 있더라. 국세청이 신재현의 사조직화 되는 것 아니냐는 칼럼을 제가 몇 달 전에 봤거든요.”
“커흠! 쿨럭쿨럭!”
의원은 사레가 들렸는지 연신 기침을 해댔다.
얼굴이 파리해지고 있었다.
신재현에게 요 몇 년간 과하게 권력이 집중된 건 맞았다.
그리고 언론에는 기개 있는 기자가 있었고.
파장은 컸지만 아무도 그 화제를 다루려 하지 않았다.
못 본 척 쉬쉬할 뿐이던 그 화제를 신재현이 직접 꺼내자 다시 장내에 싸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위원회장도 마른침을 삼켰다.
괜히 청문회장에 물 마시는 소리만 울렸다.
“이 문제부터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장내의 누구도 신재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건 아예 자기 손으로 무덤을 파고 눕는 거나 다름없었다.
‘잘못 온 것 같아. 누가 자리 좀 바꿔줘.’
신재현과 가까이 앉은 의원이 덜덜 손을 떨자 물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일개 회사원 같다는 평가는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간 지 오래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지금까지 꽤 많은 장관 후보자가 국회를 거쳐 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벌했고 긴장되었다.
‘차라리 국무총리 청문회가 쉬웠다…….’
의원들이 한탄하는 와중에도 신재현의 자문자답은 계속되었다.
“솔직히 제게 권한이 많이 실린 건 옳은 지적입니다. 저도 그 기사를 보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어느 단체든 어떤 사람이든 고이면 썩게 마련이거든요.”
“아니, 그…….”
제발 멈춰.
의원들은 간절히 빌었지만 신재현은 멈추지 않았다.
“제가 지금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절대 사적으로 권한을 쓰지 않겠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이요. 제 권한은 국세청 공무원으로서 맡아둔 겁니다. 국세청이 해야 할 일만 할 거예요.”
“그, 믿습니다. 그동안 행적을 보면 저희도 아주 잘 알고 있죠.”
의원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맞장구를 쳤다.
야당이 후보자를 두둔하는 기현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 야당 의원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다.
그저 이 순간을 모면하고 싶었다.
실시간 중계도 그렇고 녹화해서 분명 뉴스에도 나올 텐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습게 나오겠는가.
그런데 신재현은 갑자기 화살을 의원들에게 돌렸다.
“의원님들이 감시를 잘 해주셔야 합니다. 국세청 내부에 감사가 있긴 한데, 결국 수장이 저라서 함부로 건들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의원님들이 항상 지켜보셔야 해요. 국정감사든 청문회든. 지금 이렇게 하시면 안 되구요.”
“넵.”
야당 의원은 기가 죽어 대답했고 여당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만약 의문이 있으시면 국회에 소환하세요. 제가 재깍 나오겠습니다. 의원님들이 정부기관 감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제가 나와서 잘못된 건 바로잡고 모두 해명할 겁니다. 아, 물론 괴롭히려고 아무 일 아닌데 부르는 분은 없을 거라 믿고 드리는 약속입니다.”
“무, 물론입니다.”
어떻게 감히 신재현을 용건 없이 세종에서 국회까지 오라 가라 하겠는가.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도 유분수다.
국세청장 길들이기 한답시고 괜히 불러볼 만큼 간 큰 사람은 없었다.
“국민 여러분께서 모두 지켜보시는 지금 여기서 약속드리겠습니다. 의원님들이 국세청의 행정에 이의가 있으시고 해명을 원하시면, 제가 거부하지 않고 출석하겠습니다. 아, 물론 일정은 봐야겠지만. 그러니 의원님들도 세정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국세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건 여야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제에 훤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세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자, 후보자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우리 의원님들에게 분발하라는 조언, 뼈에 깊게 새기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제2야당인가요?”
“……네.”
제2야당의 의원은 굉장한 부담감을 느끼는지 펜을 쥔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청문회가 시작한 지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앞서 오간 질답이 한도 초과였다.
‘적당히 시간 끌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혼날 것 같다!’
질문을 기다리는 신재현과 눈이 마주치자 절로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아무 죄도 없는데도 이럴 정도면 나중에 세무조사 나올 땐 어떨까.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깊고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하며 의원은 애써 마이크에 입을 대었다.
준비해온 질문이 있긴 했지만 전부 무난한 것들뿐이었다.
한데 방금 신재현이 한 말을 들어보면 그걸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청문회 스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앞선 제1야당 의원처럼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질문권을 가진 제2야당 의원은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짜냈다.
“한울 그룹 승계에 대해 어떻게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한울의 총수로 내정된 사람은 바로 후보자의 매형인데요…….”
“드디어 물어보셨네요!”
신재현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을 줄줄 꺼내는 걸 보고는 의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기가 지나가자 의원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자 드는 생각이 있었다.
‘딱 청장감이긴 하네. 우리나라에 내린 축복이다. 나중에라도 같이 국회에서 만나봤으면 좋겠네. 우리 당으로 오면 더 좋고.’
의원은 한울 조사 과정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는 후보자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