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유리창 값은 누가 내냐 feat. 지현석
이제 막 서른하나가 된 평검사 지현석은 화를 내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감정을 티 내듯 쿵쿵 내딛는 발걸음에서는 힘이, 아니, 분노가 느껴졌다.
서류를 가득 실은 수레를 들고 검사실을 오가던 직원이 흠칫 놀라며 옆으로 물러섰다.
지현석 검사는 온화하고 직원들에게도 잘해주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청년이 왜 화가 났는지는 사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하성필 검사님이 사건 빼앗아 가셨대.
검사는 한 명 한 명이 단독적인 기관이다.
이미 배정된 건을 다른 검사한테 준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마저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떤 사건인데요?
-그거 혹시 기억나세요? 국회의원 아들이 음주운전 하다 단속 걸려서 면허 취소된 거.
-아, 의원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대충 알 것 같아요. 그 아들내미 저번에 또 무면허 운전 하다가 사고 내서 송치되어 오지 않았어요? 근데 인사 사고가 아니라서 그냥 집행유예 때리고 끝났던 것 같은데.
-이번엔 마약으로 왔대요.
-마약이요? 똑같은 사람이?
-네. 그놈 아버지는 대국민 사과 하고 난리 났는데 또 정신 못 차리고 마약에 손댄 거죠. 저번에도 사실 음주가 아니라 마약도 한 것 같다고 우리끼리 얘기했었잖아요.
-맞아요. 눈동자랑 치아 색을 보니까 수상했는데 어차피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당한 거 뭐 하러 건드리냐, 해서 모른 척하고 넘어갔죠.
-이번에는 공급책이 불어가지고 빼박이라 머리카락 뽑아서 검사했는데 양성 떴거든요. 근데 지현석 검사님이 그 아들내미 별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니까 2차 공급책이 의심된다고 혐의 적용하려 한 거예요.
-국회의원 아들놈이 다른 사람들 초대해서 마약 나눠줬나 보네요.
-팔았든지 나눠줬든지 하여튼 아들놈이 사다가 공급한 건 맞으니까요. 근데 위에서 바로 얘기가 나왔어요.
-덮으라고?
-당연하죠. 아버지가 5선 의원인데 어떻게 안 덮겠어요. 대국민 사과도 하루 이틀이지. 어떻게든 중형 안 때리려고 여기랑 옆집이랑 합심해서 애쓰잖아요.
여기서 옆집이란 법원이었다.
검찰과 법원이 나란히 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두 기관은 큰 차이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가까웠다.
검찰청에서 일하는 직원이 택배를 시키면 법원으로 간다.
공판 검사가 법원에 출석할 때는 걸어서 간다.
그런 관계였다.
-진짜 어떻게든 집행유예 받아주려고 고생하는 거 보면 일하기 싫어져요.
-그게 문제가 아니고요. 아, 문제긴 한데 지현석 검사님이 이번엔 절대 못 참는다고 벼르고 계셨잖아요?
-이미 집행유예인 상태에서 또 걸린 거니까요. 거기다 마약이면 얄짤 없죠.
-근데 위에서 덮으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됐겠어요?
-그래서 빼앗아 갔구나!
-그거예요.
-그럼 사건 재배당은 누구한테 갔어요?
-하성필 검사님이요.
-아…….
서울서부지검 내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하성필의 소문은 좋지 않았다.
누구 말로는 건설사 회장과 밥을 먹었다는 말도 있었고.
비싼 한정식 집에서 부장검사와 함께 나오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거기에 윗선에서 신경 쓰는 사건을 강제로 빼앗아 하성필에게 맡긴다니.
어찌 보면 소문을 사실로 확인해 준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번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다는 윗분들의 의지표명이기도 했고.
어느 선에서 내려온 명령인지는 모른다.
직원들은 그 자세한 것까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리 검사가 단독 기관 취급을 받는다지만 완전히 윗선을 무시할 수도 없다는 건 분명했다.
얽히고 싶어 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이 정도면 그냥 조용히 물러나는 게 좋다.
그러나 지현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하성필의 사무실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하! 성! 필!”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벌컥 연 지현석은 폐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고함을 터뜨렸다.
복도에서 수레를 끌던 직원이 화들짝 놀랐다.
소리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복도 곳곳에서 문이 열리고 직원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헉, 지현석 검사님이 하성필 검사님한테 갔어!”
누군가는 자기 검사님을 부르기도 했다.
지현석은 평소처럼 후줄근한 상태가 아니었다.
풀어헤친 넥타이도 목을 조르듯 꽉 맸고, 소매도 단정하게 커프스로 고정했다.
머리는 흐트러짐 없이 빗어 넘겼고 셔츠와 재킷에는 한 점의 구김도 없었다.
항상 소매를 걷어 올리고 머리카락도 산발한 채로 다니는 지현석이 이러고 왔다는 것은 사태가 많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깨끗하게 다려놓은 여분의 정장을 꺼내 입었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높으신 분에게 갈 각오를 마쳤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현석 나름의 전투복이었다.
하성필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 미친놈이 진짜 쳐들어왔네…….”
하성필은 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내 자신의 뒤에 누가 있는지를 떠올렸다.
절대 꿀릴 이유가 없었다.
“서, 선배님.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저야 시키는 대로 한 거고…….”
그러나 결심한 것치고는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초장부터 지현석의 박력에 눌린 것이다.
하성필 검사실에서 일하던 계장과 사무관이 저런, 하고 혀를 찼다.
누가 봐도 하성필은 기선 제압을 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해를 못 하는 바도 아니다.
지현석이 정장까지 갖춰 입고 나왔으면 아무도 못 말린다.
같은 검사들조차 학을 떼니까.
저런 대쪽 같은 성정의 검사는 요즘 와선 꽤 희귀한 족속이라서 신기하기도 했다.
대체 언제까지 버틸지.
그것도 이번이 고비인 것 같아서 안타까웠지만.
지현석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며 하성필의 책상 앞에 섰다.
하성필이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상체를 뒤로 뺐다.
이미 진 싸움이었다.
“하성필 검사. 이번 사건 어떻게 처리할 거야?”
지현석이 으르렁거리듯 묻자 하성필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그러다 자신의 태도가 영 못났다는 걸 깨닫고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그 또한 못나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선배님이 제 사건에 왜 관여합니까?”
“네 사건? 억지로 빼앗아 간 내 사건이겠지.”
“그거야 제가 한 건 아니죠. 윗선에서 선배님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저한테 넘긴 걸 제가 어쩝니까.”
“자기 말을 안 들으니까 갈아 치운거지. 너도 나도 알 만큼 다 아는데 이렇게 얘기 돌릴 거야? 하성필 검사, 솔직히 말해. 어떻게 하라고 지시 내려왔지?”
하성필은 우물거렸다.
그러나 지현석의 말이 맞았다.
알 거 다 알면서 뭘 빼는가.
웃긴 일이었다.
하성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도 아시잖아요. 구속만은 피하라고 했습니다. 최대한 잘 갖다 붙여서 집행유예로 끝낼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지현석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긴 뭘 아냐. 스폰서 받고 뒤 닦아주는 거 다 아는데.”
하성필이 기겁했다.
“선배님!”
하성필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직원들의 눈치를 살폈고, 직원들은 애써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귀는 막을 수 없는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걸 보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현석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내가 너랑 말해봐서 뭐 하겠어. 하성필 검사 말이 맞아. 너는 그냥 쩌리인데. 그렇지?”
“네, 저는 쩌리…… 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하성필이 우뚝 멈췄다.
맞는 말이었고 애초에 하성필 역시 그런 의도로 한 말이었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하성필이 기분 나쁜 기색을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뚜르르르.
침묵을 깬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시선이 쏠리자 화들짝 놀라며 받은 사무관이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차, 차장검사님이신데요.”
올 것이 왔다.
다들 그런 표정이었다.
이런 소동을 벌였으니 누군가가 잽싸게 보고를 올린 것이리라.
그러나 의아한 것은 같은 층에 있는 부장검사가 아니라 차장검사가 직접 연락을 한 점이다.
그새 거기까지 보고가 올라간 건 둘째 치고 차장검사가 직접 전화를 했다는 게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어쩌면 평검사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무시하고 따진다는 것이 언짢았는지도 모른다.
하성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네, 하성필입니다. 네, 네…….”
그리고 곧 의기양양하게 바뀌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하성필이 턱을 치켜들며 지현석에게 말했다.
“차장검사님이 부르십니다.”
하성필은 그것 봐라, 잘됐다 하는 얼굴이었다.
지켜보던 다른 검사와 직원들이 안타까움의 탄식을 흘렸다.
지현석의 대쪽 같은 성정도 오늘까지겠구나,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지현석은 피식 웃어 보였다.
“거 잘됐네.”
생각과는 다른 반응에 어처구니없어하는 하성필을 뒤로하고 지현석은 복도로 나갔다.
그들이 있는 형사 3부는 4층이었고 차장검사실은 6층이었다.
지현석은 거침없이 계단을 올랐다.
이번에는 하성필 검사실 들어갈 때처럼 무작정 들어가지는 않았다.
-똑똑.
“들어와요.”
나름 대답을 기다려 들어갔지만 그가 차릴 수 있는 예의와 인내심은 여기까지였다.
차장검사실에 있던 송대희 차장검사는 반갑게 맞으려다가 살벌한 지현석의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뭐야, 여기 차장실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지현석은 차장검사의 책상 앞에 서서 손을 모았다.
태도는 공손했지만 날 선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가 평소와 다르게 잘 다려진 정장을 입고 온 것부터 그렇듯이, 싸울 생각이 만만해 보였다.
차장검사조차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무슨 시위인지는 잘 알겠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죠. 하 검사한테 가면 일이 해결될 것 같았습니까? 그렇게 멍청하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아닙니다. 하 검사 역시 위에서 명령이 없었다면 안 했을 테니까요.”
“그럼 왜 하 검사 사무실에 가서 난동을 부린 겁니까?”
“누가 하 검사 뒤에 있는지 보고 싶었거든요. 즉, 차장님이라는 뜻이죠.”
송대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지현석을 빤히 보았다.
대놓고 ‘너지!’ 하고 말하는 평검사는 처음이었다.
송대희는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현석은 그것을 비웃음이라고 오해하고 더욱 눈에 힘을 주었다.
평검사가 차장검사 앞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귀엽게 보였다.
“아니, 그래서 지금 내 앞에서 시위하는 거예요?”
“네. 저는 오늘 여기서 하고 싶은 말 다 할 겁니다.”
송대희는 입술을 씰룩였다.
미묘하게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그는 뭐라 말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듣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말해봐요. 들어나 봅시다.”
지현석은 오늘 옷 벗을 각오를 하고 온 것이었다.
그는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회의원 아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으며 자신은 징역 구형을 원한다는 것, 반드시 구속해서 법의 공정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
사건을 가져가 재배당한 것은 부당한 지시라는 것.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은 알지만 말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지현석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비록 이 검찰이 권력의 주구가 되었다 해도 한 명쯤은 반대하는 이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도 비슷한 결정을 내리실 때, 이 건방진 평검사를 떠올려 주십시오. 검찰을 바꾸기 위해 모든 걸 걸고 토로한 한 명의 검사가 있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지현석은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것처럼 말하더니 한 발짝 물러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은 공손한 인사였다.
송대희는 음, 하고 탄식했다.
자신이 찾던 젊은 친구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그를 어떻게 설득하고 자기편으로 만들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젊은 친구의 자폭을 어떻게 말릴지 고민이 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기분이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놈은 내가 먹어야 해!’
친구인 국세청 국장 민치호와 요즘 지조 있는 젊은이가 없다며 꼰대 같은 타령을 한 게 엊그제였다.
얼른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서 민치호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송대희는 크흠, 목을 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차장님!”
벌컥 문이 열리며 형사 3부의 부장검사가 들어왔다.
그 나름대로 지현석을 말리러 온 것이겠지만 별로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
송대희가 얼굴을 찌푸리자 그걸 또 잘못 알아들은 부장검사가 지현석에게 호통을 쳤다.
“야, 지현석!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너는 지금 검찰청이 우습게 보이냐!”
“거, 제가 할 말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송대희가 말렸지만 부장검사는 오히려 지현석을 나무랐다.
송대희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뜻의 과잉충성이었다.
지현석이 몸을 돌리며 피하자 부장검사가 대노했다.
“얼른 안 나와? 차장님께 이 무슨 결례야!”
“부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놈이 못 하는 말이 없네?”
“네. 오늘 저는 각오했거든요. 재배정한 거 부장님이시잖아요. 그 뒤에는 차장님의 명령이 있었고. 부장님은 그런 지시 내리면서 부끄럽지 않으셨어요? 그놈은 사회에 풀어두면 안 됩니다. 법의 역할이 그거 아닌가요? 격리해서 갱생시키는 것. 우리가 제대로 형량을 계산하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기소권을 가진 유일한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면 썩는 겁니다, 부장님처럼!”
“이 새끼가!”
부장은 순간 자신이 차장검사실에 있다는 것도 잊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들어서 던졌다.
평소 습관이었다.
지현석은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피하고서 툭 쳐냈다.
부장이 던진 것은 무슨 장식품이었는데, 지현석의 손을 맞고 튕겨 나가자마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
송대희가 멍하니 자신의 장식품을 뒤쫓았다.
그것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유리창에 명중했다.
-쨍그랑!
유리창은 버텨내지 못했다.
서울서부지검의 차장검사실 유리창을 깬 둘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부장이 서둘러 사과했지만 지현석은 뻣뻣했다.
“검찰청도 차라리 부수고 새로 만들죠.”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다시 2차전이 시작될 기미를 보이자 송대희는 버럭 호통을 쳤다.
“강 부장은 나가 계세요! 제가 부른 건 지현석 검사입니다!”
“하, 하지만 차장님…….”
“이젠 내 말도 듣기 싫다 이겁니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부장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송대희는 자신의 명함에 무언가를 갈겨쓰고는 지현석에게 내밀었다.
“오늘 저녁 7시까지 여기로 와요. 뒤에 누가 있는지, 내가 사실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두 말해주겠습니다. 와서 손해는 아닐 거예요. 나도 사실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차장님?”
“아니, 화난 표정 풀지 말아요. 여기서 너무 오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이상하니까 씩씩거리는 그 얼굴 그대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세요. 지 검사는 나한테 까인 겁니다.”
지현석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는 명함을 만지작거리더니 앞에 있던 신문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한쪽 뺨을 신문으로 때렸다.
-짜악!
“평검사가 차장검사실에 와서 따지다 유리창까지 깨졌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그, 그래요.”
한술 더 뜨는 지현석을 보며 송대희가 눈을 깜빡였다.
지현석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는 벌게진 뺨을 어루만지며 차장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송대희는 소리 없이 환호했다.
“이야! 민치호한테 자랑해야지! 내가 이겼네, 이겼어! 이게 바로 검찰의 저력이라고!”
한참을 들떠 있던 송대희는 문득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유리창을 보며 시무룩해졌다.
“근데 유리창 값은 누가 내냐.”
송대희로서는 거하게 액땜을 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