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화. 도원결의 side. 민치호 (3)
뜬금없이 법인세과 사무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과장은 이선균에게 종이를 던졌다.
그가 화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 말을 무시해서.
과장은 다른 것보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어떻게 보면 자격지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나마나 내가 국세대 출신이랍시도 과장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고깝게 보는 거겠지. 흥! 그러면 너희들도 공부하든가!
정작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동안 쌓여온 오해가 과장에게 확신이 되어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국세대를 다니면서 들은 것도 한몫했다.
-우리는 평범한 직원들하고 달라. 배움의 양도 다르고. 경찰대처럼 국가적인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란 말이야. 그런데 막상 발령받아서 나가보면 질투하는 사람들이 있어.
-꼬우면 자기들도 공부하면 되는데. 지들이 못한 걸 우리한테 질투한단 말이지. 그 왜 육사 나와서 소위 임관하면 상병장이 무시하잖아. 비슷한 거야. 절대 밀리면 안 돼.
나름 그들끼리는 네트워크가 있었는데, 졸업하고도 동기들끼리는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과장 또한 수시로 겪은 일을 보내곤 했고, 그럴 때마다 같은 국세대 출신 동기들은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저번엔 7급 두 명이 회식 자리에서 뛰쳐나가더라니까.
-그건 진짜 확 잡아야 해. 얼마나 얕봤으면 감히 회식에서 멋대로 나가냐.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고 엄연히 과장이 그 자리에 있는데.
-7급 애들이 대가리가 커서 신임 과장 길들이기 하는 거야. 세게 나가. 네가 윗사람이야.
전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어떤 미친 공무원이 5급 과장을 무시하겠는가.
아, 물론 그런 사례가 있긴 했다.
5급이랍시고 이상한 짓을 하는 놈들 말이다.
바로 지금의 과장처럼.
“일하기 싫어? 하기 싫으면 그만둬. 공무원이 철밥통이라니까 너 같은 놈들이 개나 소나 공무원 시험 봐서 들어오는 거지. 전문성도 없는 놈이.”
이선균도 이건 참기가 힘들었다.
국세대에 비하면 밀리지만 그 역시 7급 시험을 봐서 들어왔으니까.
“제가 언제 일하기 싫다고 했습니까? 과장님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시잖아요!”
세상에, 하고 곳곳에서 공무원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과장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어차피 스쳐 지나갈 인연이었다.
그냥 대충 얼러주면 될 것을 저렇게 대놓고 싸울 필요도 없을 뿐더러 하극상이었다.
그 민치호조차 이렇게 대놓고 싸운 적은 없었기에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과장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제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분명히 여기 보면 인수합병 과정에서 한쪽의 지분 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어 있어요. 이러면 주주에게 손해고 엄연한 비리 아닙니까!”
“야. 이선균. 너 몇 년 차야.”
“2년 차입니다.”
“학교 어디 나왔어.”
“…….”
질문의 의도가 너무나도 명확한지라 이선균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과장이 의기양양해졌다.
“네가 너보다 더 잘 알아? 네가 뭘 아는데? 내 판단이 그렇다고 하면 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네가 회계를 알아? 그 회사 인수 본부 봤지? 네가 걔네보다 더 잘 알아?”
학력과 직업 가지고 무시하는 게 제일 치사하다.
이선균은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지.”
“이 새끼가?”
과장의 얼굴이 한층 험악해지자 공무원들 틈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민치호였다.
“죄송합니다. 얘가 분위기 파악을 못합니다. 아직 어려서 그러니 한 번만 봐주세요.”
같이 싸우려고 나오는 건가 싶어 움찔했던 과장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웬일이야? 민 조사관이야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 아닌가?”
민치호는 뭔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적어도 지금 과장과 싸워서 좋을 게 없다는 이성적인 판단은 가능한 상태였다.
“아, 조사관님! 왜 막으시는…… 으읍!”
이선균이 배신감을 느끼는 얼굴로 따졌지만 민치호는 그의 입을 대번에 막아버렸다.
그리고 억지로 뒷덜미를 눌러서 고개를 숙이게 했다.
과장이 의아한 얼굴로 민치호를 떠보았다.
“민 조사관 생각은 어떤데. 한번 봐봐.”
과장이 바닥에 흩뿌려진 종이에 턱짓을 했다.
주워서 읽어보라는 뜻이다.
민치호는 얌전히 보고서를 줍고는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의 눈이 반짝였지만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탓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과장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아닌 거죠.”
“읍읍!”
이선균이 핏발 선 눈으로 발버둥 쳤지만 민치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민치호가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나오자 과장이 누그러졌다.
웃는 낯에 침을 뱉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더 붙잡고 훈계를 했다간 민치호까지 덤벼들지도 모른다.
과장은 대충 마무리하기로 했다.
화가 가라앉자 민치호에게는 자동으로 반존대가 나왔다.
“쯧. 데려가서 교육 좀 잘 시켜요. 요즘 신입들은 과장을 뭘로 보고.”
“감사합니다, 과장님.”
민치호는 아직도 버둥거리는 이선균의 뒷덜미를 잡고 법인세과 밖으로 나갔다.
공무원들의 시선도 먹이를 좇는 새끼 새처럼 줄줄이 따라가 그의 등에 꽂혔다.
민치호는 법인세과를 나와 아예 세무서 건물까지 나갔다.
주차장 뒤로 가자 사람들이 담배를 피울 때 자주 찾는 쓰레기통이 하나 있었다.
주위에 한두 명이 담배를 물고 있다가 민치호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험악한 얼굴의 남자가 청년의 멱살을 잡고 끌고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하시는 겁니까!”
민치호는 내던지듯 이선균을 쓰레기통 옆에 내려놓았다.
쾅, 이선균이 동그란 철제 쓰레기통과 부딪히며 담뱃재가 튀었다.
“그러는 너는 뭐 하는 건데.”
“당연히 항의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저는 민치호 조사관님도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아까 분명히 보셨잖아요. 이건 비리예요! 인수합병에서 지분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네가 따지고 들면 과장이 알겠습니다, 하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냐? 너 같으면 그러겠어?”
“그럼 어떡해요? 가만 놔두면 피해자가 속출할 텐데. 게이트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일이라고요.”
이선균은 씩씩대며 콧김을 뿜어냈다.
“내가 말했을 텐데. 이렇게 하면 피해자는 네가 아니라 저쪽이 된다고. 너는 감히 과장한테 덤벼든 놈이야. 이제 세무서에 소문이 쫙 퍼질걸. 공무원 기강 해이하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막아야겠습니다. 다른 건 속으로 욕이나 퍼붓고 넘어갔는데 이건 안 되겠어요.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요!”
“너는 잘리거나 지방으로 좌천될 거고 저놈은 승승장구할 텐데?”
“그래도 따져야겠으니까 비키라고!”
이선균이 폭발할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 정도라면 위층에서도 들릴 법했다.
민치호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너는 지방에서 저놈 잘나가는 걸 보고만 있겠다? 이 멍청아, 왜 나 죽고 너 죽자 식으로 나가는데. 나는 살고 너는 죽어라, 이래야지.”
이선균이 멍한 얼굴로 민치호를 보았다.
그리고 그가 체념하거나 순응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민치호의 눈빛은 차분하면서도 그 안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방법이 있습니까?”
“없으면 찾아야지. 가만히 놔둘 거야? 그러니까 너는 걸핏하면 성질내는 것부터 고쳐. 적한테 정보를 다 줄 거야? 가만히 엎드려서 무기를 갖춰야지. 너처럼 하면 준비하기도 전에 목이 날아간다고. 사극도 안 봤어?”
이선균이 한층 침울해졌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화가 나는데 어쩝니까.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건데요.”
“정 안 되면 웃어.”
“……네? 미쳤어요?”
“화나면 웃으라고. 얼굴에 감정이 드러날 것 같으면 차라리 다른 감정으로 덮어버려. 사람 마음속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웃는 놈이 사실은 개빡쳐 있는지 어떻게 알겠어.”
민치호의 말이 그럴듯했는지 이선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렇게요?”
속으로는 화나 있는데 제대로 된 미소가 나올 리가 없었다.
눈은 부리부리한데 입만 웃는 기괴한 모습에 민치호가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너는 연습 많이 해야 되겠다.”
“그러는 자기는…… 무섭게 생겨서 말 걸기도 힘들구만.”
이선균이 궁시렁거리자 민치호가 눈을 부릅떴다.
“뭐라고 했어?”
“아닙니다.”
“말 걸기 힘들긴 뭐가 힘들어. 너 하는 거 보니까 멀쩡하게 할 말 다 하는데.”
“그건 제가 참고는 못 살아서 그런 거고요.”
“그래, 됐다. 앞으로는 그냥 항상 웃어라. 계속 웃다 보면 자연스러워지겠지.”
민치호는 반쯤 포기하고 한 말이었지만 이선균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시 숨을 내뱉은 후, 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은 여전히 웃고 있지 않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민치호는 내심 감탄했다.
‘배우는 게 빠른데. 성질이 좀 불같긴 하지만 왜 참아야 하는지 이해한 걸 보면 무조건 감정적인 것도 아니고.’
이선균은 웃는 낯 그대로 물었다.
물론 말투는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날카로웠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데요. 뭔가 할 수 있으니까 말씀하신 거죠?”
민치호가 잠시 생각을 가다듬느라 팔짱을 끼고 고심할 때였다.
뒤에서 크흠, 하고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거 나도 좀 껴주지.”
“과장님?”
방금 전까지 싸운 법인세과 과장은 아니었다.
소동을 들은 옆 과 과장이 따라 나왔는지 건물 근처에 서 있었다.
그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둘을 가리켰다.
“같이 일 좀 할까?”
여기서 말하는 일이라는 게 과장을 치자는 것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선균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민치호는 경계했다.
국세청의 파벌은 내부자라면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 이용된 직원도 많이 봤고.
더군다나 옆 과 과장은 국세대가 아닌 한국대에 행정고시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민치호 조사관은 생긴 것과 다르게 이성적이고 판단이 빠르군요. 엎드려야 할 때와 경계할 때의 타이밍도 잘 알고. 아니, 이쯤 되면 인상이 무서운 것도 장점이 되겠는데.”
“용건이 뭔지 말씀하시죠.”
자연스레 민치호의 말투도 날카로워졌다.
“저번에 말했잖습니까. 한 번쯤은 도와주겠다고.”
“순수한 호의로요? 그걸 믿으라는 말씀입니까?”
옆 과 과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좋아요. 무작정 좋다고 따라오면 실망했을 겁니다. 이런 경계심은 있어야 뭘 믿고 함께할 만하죠.”
반색했던 이선균이 무안해서 표정을 지웠다.
그랬다가 아까 민치호의 충고가 생각나서 다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옛날부터 그쪽 과장이 싫었습니다. 국세대라는 이유로 탄탄대로 약속받고 잘난 척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과장이면서도 무능한 데다 뇌물이나 밝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무엇보다 세무공무원의 품격을 떨어뜨려.”
“……예?”
민치호가 멍하니 되물었다.
차라리 파벌 싸움이라면 이해가 가겠지만, 마지막에 붙인 이유는 너무 번지르르했기에 신뢰를 깎아먹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과장은 당당하게 말했다.
“국세대 출신이라 끝까지 올라갈 텐데, 그런 놈이 청장이 된다고 생각해 봐요.”
민치호와 이선균의 얼굴이 흐려졌다.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어떻게 될지 잘 알겠죠? 지금 거꾸러뜨려야 합니다.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둘째 치고 여기서 국세청을 더 개판으로 만들 순 없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왜 과장님이 나서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쉽게 경계를 풀진 않는구나. 차라리 그게 낫죠. 그럼 이렇게 생각하세요. 둘은 날 이용하고 난 둘을 이용하는 겁니다. 민 조사관하고 이 조사관 둘이서는 과장을 이길 수 없고, 외부자인 나는 그 과장의 실태를 조사할 수 없습니다.”
옆 과 과장은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을 잡으면 법인세과 과장을 무너뜨릴 때까지 한배를 타게 된다.
어쩌면 다 함께 침몰할 수도 있었지만 셋은 망설이지 않았다.
한국대 출신의 야망 넘치는 조사과장 정상훈.
잔뜩 몸을 낮추고 있지만 언제든 물어뜯으려고 벼르고 있는 민치호.
아직 경력은 부족하지만 직속 과장까지 들이받을 정도로 정의감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 이선균.
이선균은 이후 아무도 표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한 미소를 갖게 되지만, 그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
의기투합한 세 명이 과장을 끝장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민치호와 이선균은 같은 과이기에 아는 과장의 부당한 지시와 비리의 증거를 수집해서 정상훈에게 보냈다.
그리고 정상훈은 그것으로 뒤를 움직였다.
과장은 단순히 비리 폭로만으로 끝장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세대 출신자들은 국세청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금의 흠만으로는 기별도 가지 않는다.
적당히 무마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 낼 것이 분명했다.
증거는 수두룩했지만 더 확실한 쐐기가 필요했다.
그 역할은 정상훈이 맡았다.
과장에게는 안 됐지만 정상훈 또한 한국대 출신에 행정고시를 통과한 엘리트였다.
한국대 출신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들은 국세청의 윗자리도 장악하고 싶어 했고, 따라서 이미 청장이나 국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세대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 상황에서 국세대 출신 과장의 비리가 발견된 것이다.
한국대 라인에게는 기회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보면 파벌 간의 싸움이라 볼 수 있었지만 정상훈이 말했듯 서로가 서로를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민치호와 이선균은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조사 끝나가지? 적당히 마무리하고 결재 올려.”
과장이 지시를 내렸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또다시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과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민치호! 내 말 안 들려? 내가 시킨 게 있었을 텐데? 이선균! 넌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세무조사 결과 문제없는 보고서를 올려라, 큰 건 놔두고 자질구레한 것만 몇 가지 잡아라.
그것이 과장의 지시였다.
그러나 둘은 빤히 과장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선균은 몇 주 사이에 눈에 띄게 부드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웃지 않았다.
이선균은 갈고닦은 미소를 띠었다.
그것이 과장에게는 굉장히 기괴하게 느껴졌다.
민치호 역시 보기 드물게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과장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감사과 인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민치호와 이선균이 조사해 넘긴 증거를 담은 보고서를 손에 들고 나타났다.
“뭐, 뭐야. 당신들!”
“감사과에서 나왔습니다. 법인세과 김택진 과장님 맞으시죠?”
당황한 과장이 주춤하는 동안 이선균은 엄지를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해 보였다.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는 그 기괴한 표정으로.
비록 하극상을 이유로 둘은 지방으로 가게 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훈은 잊지 않고 둘을 불러 올렸다.
국세청의 파벌을 부수기 위해 손을 잡은 세 명의 첫 사건이었다.
정상훈은 이후 한국대 라인을 대표하는 수장이 되고 민치호는 자기만의 라인을 만들어 각자의 길로 갈라지게 되지만, 국세청은 세 파벌의 존재로 균형을 찾게 되었다.
어느 한 파벌도 득세하지 않는 평화의 도래였다.
그 파벌마저 완전히 와해되는 것은 최연소 청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의 일이다.
그러나 그가 활약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준 조용한 변화는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