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94화 (494/500)

외전 2화. 도원결의 side.민치호 (2)

공무원과 인수합병 본부 합동 회식 자리에서 불과 100미터 떨어진 옆 골목의 치킨집에서는 두 명의 세무서 공무원이 치킨을 뜯고 있었다.

회식에 참가한 공무원들이 1차를 끝내고 일부는 헤어지고 일부는 양주를 마시러 갈 때, 민치호와 이선균은 신나게 자신의 직장을 헐뜯고 있었다.

바로 국세청을 말이다.

“국세청이라는 게 원래 이래요? 세금이라는 건 말입니다,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자원 중 하나에요. 나라가 뭘로 돌아가느냐? 돈이 있어야죠. 그 돈은 어디서 나오냐? 세금이죠. 근데 세금을 부과하는 기관이 개판이다? 이 개 같은 놈들!”

“그래그래.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더니 참 파릇파릇하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민치호는 재밌다는 얼굴로 이선균을 관찰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표정이 다양했다.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조사관님은 그런 생각 안 하셨어요? 아니, 저번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저한테 신고서 딱 던지면서 그러는 거예요.”

이미 술이 반쯤 올라와 있던 이선균이다.

거기에 소주가 반병 더 들어가니 혀가 풀려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니까 납세자가 실수로 신고서를 안 냈대요. 안 내면 가산세지! 신고불성실 가산세가 괜히 있나?”

“세무서 내부에서 실수로 누락된 것처럼 하고 전산 입력하라고 했지?”

“잘 아시네! 역시 경력자다워. 몇 년 다녀봐서 잘 아신다 이거죠? 민치호 조사관님도 이런 짓거리 많이 해봤죠?”

“이놈 술버릇이 얼마나 나쁜 거야. 내가 그래도 너보다 선배고 나이도 많은데 그렇게 말 막 해도 되냐?”

“전 나이만 많다고 윗사람 취급 안 하거든요?”

“술 깨고 그 말 과장한테 해봐라.”

“헹! 과장 그까이 꺼! 별것도 아닌 놈이 국세대 이름값하고 직위만 믿고 나대는 거 꼴 뵈기 싫거든요. 아니, 조사관님한테 반말하면서 부려먹는 거 화 안나요?”

민치호는 씁쓸하게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

“화나는데 뭐 어쩔 거야. 가서 줘패?”

“줘패면 정신 차리겠죠.”

“아니지. 내가 잘리지. 그놈은 피해자가 되는 거고. 내가 확실하게 그놈 쳐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하책이야.”

이선균이 오오,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보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시는 분이었군요.”

“뭐? 너는 날 어떻게 본 거야?”

“사실대로 말해도 돼요?”

이선균이 쓸데없이 눈치를 보자 민치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할 말, 못 할 말 다 해놓고 이제 와서? 그냥 말해.”

“과장님은 이 자리에 없고 민치호 조사관님은 이 자리에 계시잖아요. 원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아예 한 대 맞고 말할래?”

“그냥 말할게요.”

이선균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에라 모르겠다, 질러 버렸다.

“조사관님 건달 출신이라는 게 사실입니까?”

“아, 난 또 뭐라고.”

민치호가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기자 오히려 이선균이 당황했다.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네요. 아, 역시 헛소문이라 그렇구나. 하긴 그런 놈들은 상대해 봤자 피곤하기만 해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거든.”

“그렇죠? 헛소리는…… 예? 뭐라고요?”

“건달이라기보다는 좀 놀았지. 막노동도 하고.”

“예에?”

이선균이 입을 턱 다물더니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그리고 눈알을 데구루루 굴렸다.

“때리실 건 아니죠?”

“안 때린다고 인마! 너 때릴 것 같았으면 과장부터 아작 냈어. 그리고 내가 좀 막 살긴 했어도 사람 패고 그런 짓은 안 했다.”

“근데 왜, 아니, 어떻게 공무원을 할 생각을 하셨어요?”

“너 몇 살이지?”

“28살입니다.”

“내가 너보다 좀 어릴 때쯤 공장에서 새끼 반장을 했거든. 작업반장 같은 뭐 거창한 건 아니고 내가 어리고 머리 좀 돌아가니까 귀찮은 점검 작업, 서류 작업 맡긴 거야. 근데 구청에서 무슨 점검차 나왔는데 사람을 겁나 무시하잖아.”

“구청 공무원이요?”

“바빠 죽겠는데 사람 불러다가 꼬치꼬치 캐묻길래 아, 알아서 보고 가라고 했더니 ‘네가 그러니까 여기서 기름때나 만지고 있지’ 이러잖아. 열받아서 공부 좀 했다. 시간은 좀 걸렸어. 3년 공부하고 아슬아슬하게 붙었다. 잘못하면 나이 제한에 걸릴 뻔했어.”

“와…….”

이선균은 다른 의미로 감탄을 터뜨렸다.

솔직히 늦은 나이에 합격하고 들리는 소문도 영 좋지 않아서 조금 무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술김에라고는 해도 좋은 소리가 안 나온 건 그래서였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다른 일 하기 싫어서 어영부영 공무원 시험을 봐서 들어온 자신보다도 훨씬 나았다.

“와, 진짜…… 멋있네요.”

술 때문에 머리가 마비된 탓인지 그럴듯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선균은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을 그대로 뱉었다.

그게 의외였나 보다.

민치호는 당황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아까 왜 뛰쳐나온 건데?”

“조사관님 칭찬에는 약하시구나?”

“왜 나왔냐고.”

“크흠, 돈 주길래요. 그거 딱 봐도 뇌물이잖아요.”

“아.”

“애초에 오늘 회식도 그래요. 조사과 회식인데 지들이 왜 와요? 아니지, 계속 그랬어요. 세무서에 원래 공무원만 있는 거 아니에요? 외부인들 왜 이렇게 많아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화제를 조금만 돌려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푸념이 쏟아져 나왔다.

“냉장고 열어보니까 진짜 별게 다 있더라고요. 저번 주엔가? 여자 세무사 한 명 와 가지고 비싸 보이는 과자 돌리고 조각 케이크 주고 갔잖아요. 대체 왜? 왜 그런 짓을 하지?”

“너 그거 모르는구나? 그 세무사 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들르는 사람이야. 과장하고 친하거든. 서장님도 좋게 봐서 한 달에 한 번은 차 마시고 가더라.”

“와……!”

“근데 그 세무사만 오는 것도 아냐. 작년에 뭐 했는지 아냐? 남자 세무사들 모여 가지고 옆에 재산세과였나, 법인세과였나? 주말에 축구하더라.”

“주말에요? 미쳤나? 축구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축구가 좋아서 했겠냐?”

“그럼요?”

“일부러 세무사 애들이 져주는 거야. 졌다는 빌미로 밥 사 주고 술 사 주고 하는 거지.”

“미쳤네…….”

이선균이 입을 떡 벌렸다.

왠지 목이 탔다.

민치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2년 전엔가는 강북 쪽에 어떤 세무서에서 서장이 부동산 받아 가지고 걸렸어.”

“부동산은 등기라 딱 보면 알잖아요.”

“계약서 써놓고 통장에 돈 좀 왔다 갔다 한 티 내주면 되니까. 근데 걸린 거 보니까 누가 내부 고발한 것 같더라.”

“안 들키고 무사히 공무원 생활 했으면 좋겠네요.”

“공무원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찔렀을 수도 있지. 어쨌든, 3년 전에는 세무사랑 공무원이 짜고 자료상 하다가 걸린 적도 있고.”

“자료상이 뭡니까?”

이선균이 묻자 민치호가 흠, 하고 어깨에 힘을 넣었다.

“그것도 모르냐? 하긴 공무원 된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봐봐, 네가 사장이야. 근데 부가세 신고하려고 보니까 매출이 너무 많아.”

“세금 많이 낸다는 말씀이시죠?”

“아니, 그것 말고도 부가율이 너무 높거나 너무 낮으면 세무조사가 나올 수 있잖아.”

부가율이란 부가세액이 매출세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 것이었다.

보통 업종마다 여건이 다르다고는 해도 평균치는 있는 법이다.

원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업종이라면 매출에 비해 부가세는 적게 낼 것이고, 원재료가 없는 서비스직이라면 매입세액이 없으니 부가세를 많이 낼 것이다.

그런데 가끔 부가율이 이상하게 튀는 업체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본 것 중에 업종 평균보다 부가율이 10%정도 차이난 걸 봤어요. 하지만 그건 조사 안 들어갔는데요?”

“아니,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건 평균치니까 회사마다 부가율이 좀 다르게 나올 수도 있지. 꾸준히 비슷하게 나오면 괜찮아. 그 업체가 그렇게 영업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예를 들어서 작년에 부가율 30%였는데 올해는 32%다? 이상할 게 없잖아.”

“뭐, 그렇네요. 그럼 뭐가 문젠데요?”

“작년에 15%였는데 올해 40%면 문제가 있지.”

“어…….”

이선균은 고개를 갸웃했다.

“작년에 물건을 많이 샀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기계처럼 비싼 걸 샀다든가.”

“그래. 머리는 그럭저럭 돌아가네. 너 그렇게 멍청한 놈은 아니구나.”

“……조사관님. 샐러드 하나 시켜도 됩니까?”

“너 그거 먹고 싶어서 시키는 거 아니지? 나 거덜 내려고 그러는 거지?”

“네. 잘 아시네요.”

“네 눈높이에 맞춰서 친절하게 설명해 줄 테니까 닭다리나 뜯으면서 들어라.”

“자꾸 그러시면 정말로 시킵니다. 샐러드 순살에 감자튀김으로. 다 못 먹으니까 포장해 갈 거예요.”

“이거 만만치 않은 놈이네. 됐고 일단 들어봐.”

“들어보고 결정하죠.”

이선균이 팔짱을 끼고 민치호는 목소리를 낮춰 진지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니까 부가세 때마다 부가세과가 바쁜 거야. 일순위로 부가세 환급받으면 무조건 해명을 요청해. 이걸 환급조사라고 하고.”

“그건 알아요.”

“아오, 진짜 이걸 때릴 수도 없고. 자, 그다음에 부가율이 이상한 걸 보는 거야. 근데 네가 말한 대로 사업하다 보면 부가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 그건 세금계산서 같은 걸 보고 정당한 건지 이상한지 파악해.”

“네. 그래서 자료상이 뭔데요.”

“너 술 취한 거 맞지? 맨정신에 이러는 거면 가만 안 놔두려고.”

이선균이 입을 다물었고 그제야 민치호는 편안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부가율도 맞출 겸, 부가세도 깎을 겸, 서로 세금계산서를 거래한단 말이야. 부가세법에 보면 세금계산서 인정하지 않는 사례에 위장 세금계산서 있지? 그거야. 예를 들어서 네가 사업하다가 매입이 부족하다? 그럼 매출이 부족한 사람을 찾아서 세금계산서만 주고받는 거야. 돈하고 물건은 없으니까 가짜로 거래한 척만 하는 거지.”

“아! 그걸 중간에서 연결해 주는 브로커가 자료상이겠네요.”

“그래. 대놓고 자료상이네 하는 사람은 없고, 주로 자그마한 사업체가 많이 모여 있는 상가에서 발 넓은 사람이 여기저기 연결해 주다가 자료상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작정하고 중간에서 수수료 받고 연결해 주는 사람도 있지. 세무사나 사무장이 하는 경우도 봤어.”

“근데 공무원이 걸렸다면서요.”

“그니까 개판이지.”

“아, 그렇구나. 개판이구나.”

둘은 가만히 술을 들이켰다.

애초에 회식 자리를 뛰쳐나와 둘만 모이게 된 것도 답답해서였다.

술이 들어갈수록 진정되기는커녕 울화가 솟구쳤다.

“근데 더 웃긴 게 뭔지 아냐? 옛날엔 더 심했어. IMF 전에는 전산 같은 거 없어서 신고서 다 종이로 냈잖아. 신고서 누락하면 돈 받고 창고 열쇠를 줬댄다.”

“무슨 열쇠요?”

“신고서랑 자료 보관하는 자료실 열쇠 말이야. 아예 회사 직원이 대놓고 들어가서 자료 바꿔치기 하고 나왔다고.”

“에이, 거짓말.”

“내가 직접 들었는데.”

“…….”

이선균이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웃다가 민치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점점 정색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어. 진짜로.”

“……미친놈들. 이거 뭐 어떻게 뒤집어엎을 방법이 없어요?”

“너랑 나랑? 어떻게 하려고? 아까 말했지. 그냥 들이받는 건 하수라고.”

“으헝헝헝! 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개새끼들이 너무 많아!”

이젠 하다못해 한탄하기 시작하는 이선균을 보며 민치호는 슬슬 이 자리를 마무리 지을 때라는 것을 느꼈다.

이선균이 꽤 많이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먹였다간 집에 가는 길에 무슨 위험한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민치호는 마지막으로 닭 날개 하나를 뜯은 후 이선균을 일으켜 세웠다.

“여기 아까 말한 순살샐러드하고 감자튀김. 가서 먹어라.”

“엥. 진짜 사 주셨어요?”

“그래. 대신에 너는 성격 좀 고쳐.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나. 얼굴에 표시가 다 나잖아.”

“꼬우면 자르든가!”

“얘 진짜 큰일 나겠네.”

치킨집 밖으로 이선균을 끌어낸 민치호는 큰길까지 부축해서 택시에 태웠다.

“후. 쟤 아까 식당에서 큰소리치면서 나오던데 그거 들었으면 어쩌려고. 진짜 앞길이 걱정이네.”

민치호의 염려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바로 다음 날, 숙취로 끙끙거리던 이선균에게 지나가던 옆 과 과장이 슬쩍 물어본 것이다.

“이선균 씨. 어제 회식 자리에서 사고 쳤다면서요? 소문 쫙 퍼졌던데.”

“예에?”

에휴, 그럼 그렇지.

민치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옆 과 과장의 말이 의아했다.

“걱정 마요. 나도 저 과장 마음에 안 드니까. 은근히 동의하는 사람 많을걸요. 나중에 혹시 어려운 일 생기면 나한테 와요. 그런 걸로 과장이 지랄하면 한 번쯤은 막아줄 테니까.”

이선균은 눈을 깜빡였다.

과장이 지나쳐 가고, 민치호와 이선균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냥 한번 해본 말이라고 여겼다.

무슨 과장이 자기 과도 아닌 직원을 봐준단 말인가.

그리고 옆 과 과장을 찾아갈 날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게 되었다.

“야,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너는 인마, 내가 까라면 그냥 까면 되는 거야.”

“하지만 조사 결과가 이런데 어쩝니까. 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는데요.”

“그게 무슨 문제야. 너는 없는 문제도 만들어내냐?”

“예? 아니…….”

이번에 과장이 내린 지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