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92화 (에필로그) (492/500)

492화. 에필로그

대전의 어느 산업단지에서는 간담회가 한창이었다.

단상의 현수막에는 큼직하게 오늘의 행사가 무엇인지 쓰여 있었다.

[대전 산업단지 현장소통 간담회]

-국세청장 & 천억벤처기업

-2030년 7월 8일

여기서 천억벤처기업이란 벤처 기업 중에서도 일 년 매출액이 천억을 넘는 기업을 말했다.

벤처기업도 회사 마음대로 이름을 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정 조건을 갖추고 기술성과 사업성, 그리고 성장 가능성을 정부에서 판단해 인증서를 줬다.

대출이나 보증 같은 면에서 많은 혜택이 있기 때문에 처음 제도가 생겼을 때는 악용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원래 악용하기 시작하다 보면 그 규모도 커지는 법이다.

그렇게 벤처 인증을 해주는 기관마저 잠식되기 시작했을 때, 한 청년이 벤처기업을 깡그리 엎어버렸다.

그 후로는 벤처기업 선정이 나름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었다.

따라서 이 자리에 있는 천억벤처기업들은 그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진짜배기였다.

기업들은 전수조사의 장본인이 여기에 앉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바로 그 장본인이 이번 간담회의 주역인 국세청장이었기 때문이다.

“……어, 연구개발유형 벤처기업입니다. 고용증대세액 공제의 경우 계산도 어렵고 5년간 관리도 어렵습니다. 구조상 근로자가 한 명이라도 줄면 세액 공제를 뱉어내야 하잖아요. 그리고 이 세액 공제를 받으면 무조건 세무조사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경영 부담이 너무 큽니다.”

벤처기업의 승인을 받는 데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그중 연구개발유형은 따로 회사 내에 연구개발 전담 부서를 두고, 비용의 5% 이상을 연구비로 쓰는 회사를 말했다.

그리고 대표가 말한 세액 공제는 수많은 세금 공제 중에서도 꽤 복잡하고 귀찮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작년 근로자 숫자와 올해 근로자 숫자를 비교해서 늘어나면 한 사람당 얼마씩 공제를 해주는 건데, 문제는 근로자의 나이를 따져서 공제액을 달리 했다.

한마디로 생일을 따져야 한다는 소리였다.

상대방이 우는 회사도 눈물을 뚝 그치게 만든다는 ‘그’ 국세청장이었지만 대표는 꿋꿋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남자가 조사에 착수하는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나름 깔끔하게 경영했다고 자부하는 대표는 꿀리지 않고 청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청장과 눈을 마주하고도 떠느냐, 떨지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청장은 무심한 듯 가볍게 마이크를 잡았으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고용증대 세액 공제의 경우 세법 개정은 국회의 영역이라 제가 고쳐드리겠다 말씀은 어렵습니다. 이건 대표님께서도 알고 질문하셨을 테니 아마 진짜 말씀하고 싶었던 건 세액 공제 사후 관리와 세무조사 얘기겠죠? 대표님, 자체적으로 내부 재무팀 굴립니까? 아니면 세무사 씁니까?”

“둘 다입니다.”

“그럼 사후 관리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고용증대 세액 공제의 귀찮은 점은 상시 근로자 숫자 계산인데 이거 엑셀로 표 하나 만들어두면 복사해서 거기다 사원 생일이랑 입사일 입력만 하면 되거든요.”

“끄응…….”

실제로 해본 사람의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도 어렵다고 하면 직접 시연해서 보여줄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장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근데 아직도 세무회계 프로그램에서 고용증대 세액 공제 계산하는 과정 안 짜놨습니까? 프로그램에 입사일, 생일 다 넣는 칸 있는데 그걸 못 불러오나?”

“네…… 아직도 저희가 손으로 계산하든 엑셀로 계산하든 해야 합니다.”

“그건 내가 그쪽 회사에 한번 문의해 볼게요. 프로그램 쪽은 잘 몰라서 얼마나 어려운 건지는 모르겠는데 납세자분들이 곤란하다고 하면 협력 요청을 드려야죠.”

“아, 감사합니다.”

당초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쪽으로 흘러갔지만 이것도 꽤 이득이었다.

실제로 세액 공제 계산과 사후 관리는 실무적으로 귀찮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세액 공제 뱉어내는 거랑 세무조사 문제네요. 아시겠지만 굉장히 많은 금액을 공제해 줍니다. 기업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올해 고용한 근로자 한 명당 거의 천만 원씩 세액 공제해 주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말이 사후 관리 5년이지, 근로자는 계속 늘었다 줄었다 하니까 계속 사후 관리가 이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사후 관리 기간 동안 세무조사를 면제해 드리게 되면 평생 면제라는 소리가 됩니다.”

“하지만 공제 받으면 무조건 세무조사라는 건 너무 심한 처사입니다.”

“세액 공제 금액이 너무 크고 악용이 쉽기 때문입니다.”

“저희 회사는 세무조사를 5년간 2번 받았습니다. 물론 저는 깨끗하게 경영을 했지만 세무조사 한 번에 드는 인력 낭비가 너무 심합니다.”

청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말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5년에 1번만 나오겠다고 못을 박아 버리면 세무조사 나온 직후 4년간은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겠습니다.”

청장의 입에서 술술 장단점이 흘러나왔다.

전부 실무를 해봐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5년 내 세무조사 한 번 들어간 경우에는 전체 조사가 아니라 세액 공제 관련 필요 자료 제출만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간이조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담당자가 요청하는 자료를 그때그때 보내주시는데, 세액 공제 관련해서는 무조건 자료 제출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카드 내역이라든가 원장 같은 기초 자료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서 이상한 점이 나오면 조사과로 넘기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5년에 세무조사는 1번만 하겠다, 대신 단편적인 기초자료 들여다보면서 뭔가 이상하면 바로 조사 들어갈 테니 이상한 생각은 품지 말라는 뜻이었다.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할 수 있는 선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하나가 해결되자 또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저는 억울함을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올해 초에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너무 과하게 세금이 나왔어요.”

“회사 이름이?”

“삼화AFK입니다.”

청장 바로 옆에는 그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얼른 앞에 놓여 있던 휴대용 기기를 조작해서 청장에게 보여주었다.

청장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황 차장이었다.

청장은 그가 띄워준 신고서와 재무제표를 잠시 훑어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이상 없습니다.”

“말도 안 돼요! 세금이 100억이 넘는데 뭐가 이상이 없다는 겁니까! 청장님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금 몇 분 훑어본 걸로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답니까? 제대로 좀 봐주세요!”

청장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항의하던 대표가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연구비 명목으로 들어간 금액 중에 적절하지 않은 게 있었습니다. 대표님의 처남이 하는 회사로 나간 돈이죠. 더 말씀드릴까요?”

한마디로 회사 돈을 인척 회사로 부당하게 빼돌려놓고 그걸 연구비로 넣어서 연구개발 세액 공제까지 받아먹었다는 뜻이었다.

청장이야 실무에서 손 뗐으니까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재조사’를 노린 항의였는데 어림도 없었다.

청장은 직접 조사 과정을 본 것처럼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저 연구개발 세액 공제 해당되는 금액이 뭔지 구분이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고 맞다고 판단해서 넣었는데 나중에 틀리면 빼박 세무조사잖아요.”

이건 청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마다 연구하는 기술의 종류도 다른 데다, 기술마다 어떤 게 연구비고 개발비인지 세법에 그걸 전부 세세하게 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일선에서도 모르는 게 생기면 그때그때 기술 쪽 전문가 자문을 받아가며 해결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오랜 시간 데이터가 쌓여 국세청에 질문하면 ‘이건 연구비 해당됩니다’라고 답할 정도까지는 되었지만 전국에 회사가 몇 개인가.

국세청에 일일이 질문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R&D 세액 공제 사전심사 전담팀 운영하겠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지방청 단위로 세액 공제 교육을 열게요. 시범 삼아 한 달 안에 한 번 열어보고 개선점 찾아서 1년에 2~3번으로 확대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장님!”

대표는 뛸 듯이 기뻐했다.

“청장님, 저는 세법 얘기는 아니고 좀 다른 안건인데요.”

“말씀하세요.”

“원재료 값이 이상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저희 전략실 분석으로는 원자재 상승이 최소 반년은 더 지속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잘못하면 원자재 위기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래요?”

정말 세법과 아무 관련 없는 얘기였지만 청장은 진지하게 고심했다.

“그럼 뭐가 있다는 얘기네요. 통상부에 얘기해 보겠습니다.”

슬프게도 각 정부 부처의 수장 중에서 가장 기업의 일선과 닿아 있는 것이 국세청장이었다.

그는 간담회나 공청회, 교육, 협약식 등을 자주 열었기 때문이다.

건의한 기업 대표가 굳이 관련 없는 국세청장에게 말을 꺼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른 부처에는 아무리 건의를 해도 묵살당하기 일쑤인데 국세청장은 적어도 고민을 해준다.

정부 부처 중에서 가장 열려 있는 곳이 바로 국세청이었다.

이후로도 질문과 답변이 몇 차례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빠른 조처 부탁드립니다.”

보통 간담회라 하면 정책 성과를 은연중에 자랑하고 질답이 서로 겉돌게 마련이었는데 오늘 간담회는 다들 만족한 얼굴이었다.

청장은 단 한 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담당자에게 물어보겠습니다’라는 면피성 발언은 하지 않았다.

조사해 보겠습니다, 라는 말도 없었다.

웬만한 질문은 즉석에서 전부 해결되었다.

시간이 초과되고서도 질문이 쏟아지자 차장이 시계를 보았다.

“청장님, 다음 일정이 좀 빡빡합니다. 지금 가셔야 합니다.”

“아, 그래요? 어쩔 수 없네.”

청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정리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남은 질문은 서면 정리해서 국세청에 보내주시면 제가 전부 답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의가 기각당한 몇 명 빼고는 모두 흡족한 얼굴이었다.

“이야, 간담회 깔끔하네. 다른 기관도 이런 식으로 해주면 좋겠는데.”

“되는 거랑 안 되는 걸 딱 구분해주니까 편하단 말이에요. 안 되면 좀 슬프긴 한데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청장님이 실무를 잘 아시니까 답변이 바로바로 나와요. 결론도 탁상공론이 아니라 딱 좋아.”

간담회에 참석한 대표들이 저마다 만족감을 표시하며 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소문의 장본인인 청장은 차장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빠르게 세종시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기관의 청장답지 않게 그는 매우 바빴다.

“이제 인터뷰만 하시면 오늘 일정은 끝입니다.”

“그럼 가는 동안에 잠시만 잘게요.”

“네, 도착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청장과 차장은 꽤 오래 손발을 맞춰본 듯 서로 편안한 분위기였고 배려가 있었다.

청장 전용의 관용차는 빠르고 부드럽게 세종시로 향했다.

***

국세청의 한 회의실에는 인터뷰 준비가 한창이었다.

바쁜 청장과 국세청 직원들을 위해 인터뷰 관계자는 최소로 제한되었다.

카메라 한 명과 진행자 한 명, 그리고 피디와 작가가 함께 있었다.

중요한 특집 방송 인터뷰다 보니 피디에 작가가 직접 행차한 것이다.

그들은 시간이 초과된 걸 알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당장 뉴스에 뜨는 기사만 봐도 청장이 일하느라 늦는다는 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 속물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청장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송계의 갑질?

그것도 사람을 봐 가면서 하는 것이다.

청장 앞에서라면 몇 시간이고 군말 없이 기다릴 수 있었다.

다행히 청장은 그리 늦지 않았다.

10분쯤 지나자 깔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단추를 잠그고 넥타이를 손보며 회의실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청장이라면 보통 50대의 중년이 하게 마련인데, 남자는 청장이라기엔 너무나도 젊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러 온 일행은 남자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꼿꼿한 방송가의 인물들의 태도치고는 꽤 공손했지만 상대는 그런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대통령보다 더 위상이 높으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일컬어지는 국세청의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차가 좀 막혔네요.”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은 다들 알았다.

그는 변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장님.”

“별말씀을요. 여러분도 바쁘실 텐데 얼른 합시다.”

청장은 익히 알려진 대로 미사여구나 서론이 없었다.

그리고 거창한 아부나 인사말이 없다고 못마땅해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기에 이들은 곧바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시간 낭비를 일체 허용하지 않는 일처리였다.

“먼저, 공무원 근속 10년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청장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아련해졌다.

“저도 체감상으로는 청장님께서 국세청에 한 20년은 계신 것 같은데 10년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청장님께서 그만큼 많은 일을 하셔서 그런 거겠죠?”

“아마 옛날부터 뉴스에 자주 나와서 익숙해지신 것도 있을 겁니다. 뉴스 틀면 쟤 또 나와? 하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 지겨워도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국세청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네요.”

청장은 부드럽게 인터뷰를 풀어 나갔다.

보통 공공기관의 장을 인터뷰하게 되면 분위기가 경직되고 권위적인 태도 때문에 인터뷰어가 고생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저희는 솔직히 취재할 게 많아서 행복한데요? 청장님이야말로 너무 바쁘게 일하고 계신데 건강은 챙기고 계시는 거죠?”

질문이 대본에서 벗어났지만 피디는 오히려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제가 옛날부터 초과근무 체질이더라구요. 일을 끝내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게 바로 워커홀릭이라고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장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국세청에 계시길 바라고 있어요. 꼭 건강 신경 좀 써주세요.”

“하핫. 네, 알겠습니다. 앓아누우면 일을 못 하니 안 아프도록 잘 관리하겠습니다.”

“어휴, 정말 일 중독이시네요. 그럼 다음 질문 드리겠습니다. 청장님께서는 올해 초, 역대 최연소로 국세청의 수장이 되셨는데요. 놀랍게도 국민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90%를 넘었습니다. 8년 연속 국세청 청렴도 1위의, 국가기관 신뢰도 1위의 신화, 국가 경제발전의 기틀을 끌어 올린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청장은 굉장히 낯부끄러워했다.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한참이나 헛웃음을 지었다.

탈세의 천적, 국세청의 염라대왕이라 불리는 화제의 인물답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었다.

피디가 화색을 띠며 카메라맨의 옆구리를 찔렀다.

한순간도 놓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청장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잖아요. 어차피 도둑놈들이 다 떼 가는데 세금 내기 싫다, 사업하기 참 힘들다. 그 소리를 안 듣는 게 제 목표였습니다. 현장에서 불필요한 세법 적용 기준 때문에 경영 낭비되는 일을 줄여서 편안히 사업하실 수 있도록, 그러나 탈세하는 사람은 반드시 잡아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으시도록. 그리고 나라의 도둑놈들을 없애서 세금 낼 맛 나게 하는 게 청장으로서의 제 목표입니다. 앞으로도 횡령, 비리, 탈세 조사는 제게 맡겨주세요.”

자그마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비록 4명밖에 없긴 하지만 피디와 작가는 기립박수까지 쳤다.

청장이 다시 수줍어하는 얼굴로 돌아갔다.

피디 입장에서는 최고의 인터뷰였다.

***

인터뷰는 길었다.

지친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연 청장은 잠시 당황하며 옆에 달린 명패를 보았다.

명패에는 분명히 ‘국세청장실’이라고 쓰여 있었다.

청장은 문을 닫고 들어와 누군지 모를 불청객을 보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성별의 어린아이가 흑백이 또렷한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길을 잃었니? 어떻게 들어왔어?”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청장을 뚫어져라 보더니 중성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에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이상하게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청장은 홀린 것처럼 진지하게 대답했다.

“돌아가지 않을 거야.”

아이가 재차 물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아?”

“응. 정말이야. 나는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어. 매 순간 충실했고 만족해.”

청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웃으며 자신의 말을 마무리했다.

“후회하지 않아. 나는 지금 행복해.”

아이는 그제야 씨익 웃었다.

“축하해. 이번에는 성공했구나.”

이상한 말이었다.

청장이 너는 누구냐고 되물으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청장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덜컥.

“어? 청장님. 거기 서서 뭐 하세요?”

“아, 황 차장님. 웬 아이가…… 응? 으응?”

다시 고개를 돌려 보니 청장실 한가운데에 서 있던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청장이 미간을 좁히고 눈을 비볐다.

“요즘 잠을 너무 못 잤나?”

“그러게 청장님 일 좀 적당히 하시라니까요. 그건 그렇고, 애들이 저녁에 한잔하자는데요?”

“또요? 저번 주에 먹었는데?”

“강 국장이랑 장 국장 성격 아시잖아요. 저번 주는 저번 주고 이번 주는 이번 주다, 하겠죠. 가실 거죠?”

“오늘은 가볍게 먹겠습니다.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헛게 다 보이네.”

“오, 드디어 일찍 주무시는구나. 강 국장도 좋아할 겁니다. 술은 말고 저녁만 드시고 가시죠.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럴까요?”

청장과 차장은 사이좋게 웃으며 청장실을 나섰다.

-사락.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커튼이 나부꼈다.

조용한 가운데 햇빛이 청장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꽃잎 하나가 바람을 타고 들어와 축복하듯 명패 위에 내려앉았다.

자개로 만들어진 묵직한 명패는 오후의 햇빛을 받아 그 주인의 미래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명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국세청장 신재현]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국세청 망나니의 작가 동면거북이입니다.

항상 독자님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기회가 왔네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가 무사히 완결 내고 작가 후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독자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적어보자면 많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일단 중요한 얘기부터 적겠습니다.

일주일 쉬고 다다음 주 화요일에 외전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외전은 그동안 본편에 넣기에 타이밍이 안 맞았거나 주인공 위주의 전개 때문에 소외되었던 이야기, 그리고 완결 이후 시점을 위주로 전개될 예정입니다.

화목토 저녁 7시에 뵙겠습니다.

이제 진짜로 후기를 써볼게요.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해서 주저리주저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만 나름 제 스스로 만든 규칙이 두 개 있습니다.

1. 작품보다 작가가 보여선 안 된다. : 독자님들이 궁금하신 건 제가 아닌 주인공의 이야기니까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 본문에 풀지 못한 설정을 댓글로 풀지 말자. : 댓글을 보시는 독자님과 안 보시는 독자님 간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딱 필요한 댓글만 썼습니다.

이젠 완결했으니까 조금만 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국세청 망나니는 제 첫 작으로 2019년 9월, 편집자의 ‘작가님 잘 아시는 분야로 써보죠’라는 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법 관련으로 직업물을 쓰자니 세무사와 세무공무원,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권선징악을 쓰기에는 세무공무원이 딱이더라구요.

저는 권선징악과 자수성가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이왕 하는 거 현실에서 듣도 보도 못한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로 시원시원하게 가자! 해서 주인공이 다 때려잡게 되었습니다.

장르가 현대‘판타지’니까요ㅋㅋㅋ

대신이라기에는 뭐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제 말투를 일부 주었습니다.

작중 보시면 ‘~구요’라는 말투를 쓰는 캐릭터가 신재현밖에 없습니다.

제 말투입니다.

조연에게도 자기만의 이야기를 주고 싶었는데 제 실력 부족으로 본편에 녹여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쉽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200화도 못 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기가 없을 거라 지레짐작한 것도 있고 그만큼 에피소드를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보여 드리고 싶은 장면이 많아졌습니다.

주인공이 야근하는 모습, 동료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 상사에게 인정받는 모습, 뉴스에 나오는 모습 등등.

더 쓰고 싶은 게 안 나올 정도로 원 없이 썼습니다.

모두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저는 처음에 제 스스로 ‘작가’라 칭하지 않았습니다.

작가라 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작가님’이라고 불리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스스로도 ‘나는 작가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자님들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동면거북이라는 작가는 독자님들이 만들어주셨습니다.

때문에 매일 글을 쓰고 나면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독자님 앞에 내놔도 되는가? 더 잘 쓸 수는 없었는가? 이게 최선이었는가?’

그리고 결정합니다.

이게 최선이었다.

그러면 원고를 보내는 것입니다.

항상 독자님께 제 최선의 글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독자님께서는 어떠셨을까요.

즐거우셨을까요?

저는 사실 세상을 이끌어가는 한 명의 천재보다 세상의 일부인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이 힘든 세상을 묵묵히 살아나가는 사람들이요.

그분들에게 잠시라도 시원함과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독자님들께서 재밌게 보셨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차기작은 첫 작 때 못했던 세무사 주인공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작가의 TMI는 이만 줄이겠습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492화 댓글로 남겨주세요.

외전에서 Q&A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신재현의 이야기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독자님들께 작가 동면거북이 올림.

외전 완결시 합본 공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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