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선한 영향력 (2)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오자마자 지역사회를 발칵 뒤엎어놔서인지 그 후에는 별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
하긴, 원래는 조용해야 정상이다.
여기에 터질 일이 뭐가 있겠나.
그렇다고 어려운 건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간혹 이런 건이 들어오기도 했다.
-서울에 거주 중인 사람이 농지를 팔고 자경농지 감면을 신청.
어림도 없는 소리다.
자경농지 감면이라는 건 농사짓던 사람이 농지를 팔았을 때 해주는 우대인데 서울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강원도 농지에서 농사를 지어.
그러나 세무사가 무슨 약을 팔았는지 납세자는 이 토지가 감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니면 납세자 본인이 어디선가 들은 정보로 우기고 있는 걸 수도 있고.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어쨌거나 반박 자료는 착실하게 왔다.
토지가 있는 동네에서 쓴 신용카드 내역으로 생활 기반은 강원도라고 증명한다거나 농지에서 야채를 키우는 사진을 첨부한다거나.
농사짓는 사람들을 등록한 장부인 농지원부에 자경민 이름이 없다는 것과 주소지가 서울인 것만으로도 이미 아웃이었지만 하도 우기길래 내가 직접 나갔다.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그 땅에서 농사짓는 거 못 봤는데?’라는 말까지 듣고 오자 감면해 달라는 말은 쏙 들어갔다.
이런 자질구레한 건수야 좀 있었지만 이 정도면 정말로 별거 아닌 축에 속한다.
적어도 세법만 가지고도 대응할 수 있고, 증거를 가져오면 조용해지니까.
그리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기 직전, 옛 팀원들이 놀러왔다.
서울청 TF팀 시절의 세 명과 채유림이었다.
“팀장님!”
저 멀리 실루엣만 보이는데도 강혜원이 양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소리쳤다.
모내기가 끝난 논과 밭에 강혜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바로 옆에 있던 장세훈이 강혜원의 팔꿈치께를 찌르며 뭐라 뭐라 하는 게 보였고 강혜원이 다시 소리쳤다.
“지서장님!!!”
호칭을 지적한 모양이다.
하도 오래 팀장이라고 불러서 저들에겐 아직 지서장이라는 호칭이 익숙지 않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 호칭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또 있었다.
양옆으로 펼쳐진 밭에서 허리를 숙이고 일하던 농민들이 고개를 들었다가 날 보고는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좌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가며 종종걸음으로 뛰었다.
더 놔뒀다간 강혜원이 더 큰 소리로 부를 것 같아서다.
“그만 불러요! 동네 사람들 다 쳐다보겠네!”
“반가워서 그렇죠! 지서장님은 안 반가워요?”
“당연히 반갑죠. 이게 몇 달 만인데.”
강혜원은 환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덥석 안겨들었다.
나는 당황했다.
“엇? 강혜원 조사관님? 으악! 이러시면 안 돼요!”
“안 되긴 뭐가 안 돼요. 우리 지서장님이 이렇게 잘 크셨는데. 제가 뉴스 보고 얼마나 날뛰었는지 아세요?”
강혜원이 날 껴안은 건 몇 초도 안 되었지만 여자 손도 잡아본 적 없는 내게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만 데구루루 굴리고 있자 강혜원이 꺄르르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뭐예요? 왜 이렇게 당황해? 지서장님 저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요.”
“당연히 그냥 동료고 누나죠…… 근데 전 엄마 손밖에 못 잡아봤거든요?”
“아이고, 우리 지서장님은 대체 누가 데려가려나. 고생깨나 하겠네. 마음에 가는 여자는 있어요?”
“어…… 어음…….”
내가 다시 입을 다물고 눈알을 굴리자 이번엔 채유림이 소리 내어 웃었다.
옆에 있던 장세훈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강혜원의 팔꿈치를 쳤다.
“얘 데려가는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지, 뭘 고생이야?”
강혜원이 되받아쳤다.
“그거랑은 다르거든요? 연예도 해본 사람이 잘하는 거예요. 옆에서 손 잡아도 되나? 이런 거 갖고 고민하고 있으면 여자가 얼마나 속 터지겠어.”
“에이, 그런 걸 뭐 신경 써. 알아서 잘하겠지. 그런 것도 풋풋하고 좋잖아.”
채유림도 입을 열었다.
“근데 저런 유형이 오히려 한 명한테 푹 빠지면 난리 나요. 한 사람만 본다니까? 여자한텐 좋을 수도 있어요.”
“그것도 문제예요, 언니. 그러다 안 좋은 사람 꼬이면 어떡해. 과연 저 숙맥이 그걸 구분할 수 있을까?”
그새 꽤 친해졌는데 강혜원은 채유림에게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공무원끼리 일하면서 말을 터놓는 것도 꽤 흔한 일이다.
강혜원 정도의 친화력이라면 금방 친해질 법하고.
나야 할 말이 없었고 강혜원과 채유림이 진지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언니, 안 되겠어요. 나중에 지서장님 여자 친구 생기면 우리가 보러 가요.”
“아, 그건 괜찮네요. 지서장님, 나중에 좋은 분 생기면 꼭 인사시켜 주세요.”
같은 내용을 말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더니.
강혜원이 말할 땐 반발심이 솟구쳤는데 채유림이 말하니 그럴듯해 보였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그야 인사는 당연히 하셔야죠.”
채유림이 강혜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됐죠?”
“훌륭해요!”
둘만 아는 모종의 계획이 성립되었다.
나와 장세훈을 비롯한 남자 넷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쯤 되면 아무도 못 막는다.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털레털레 걸었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어디 구경이라도 갈 거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구경이라뇨. 이제부터가 시작인데요.”
“……예? 대체 뭐가 시작이죠?”
장세훈이 손을 꺾는 포즈를 했다.
한마디로 술판이다.
“방금 전에 밥 먹었는데 벌써부터 술을 먹겠다구요?”
“노가리 까러 왔는데 구경 다니면서 체력 빼면 뭐 해. 달려!”
“끼야앗!”
강혜원이 맞장구를 치며 장세훈과 함께 시장으로 달렸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동네 시장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채유림과 안길진에게 물었다.
“술 먹으러 온 거래요?”
“지서장님 먹이러 온 거죠.”
아, 그렇구나.
그런데 막상 시장으로 들어가니 둘의 태도가 굉장히 얌전해졌다.
신나서 날뛰던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래도 공무원 이미지를 생각해서 알아서 조심하는구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지서장님, 혹시 미운 털 박히지는 않았어요? 지역 사회하고 한판 뜨고 나면 보통 왕따당하기 십상이거든요.”
나는 불안한 눈빛을 한 강혜원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물벼락 맞을까 봐 그래요?”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지서장님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 입으실까 봐.”
“그럼 시장 들어오기 전에 말씀하시지.”
“억! 정말 왕따당해요? 저 들어올 때는 별생각 없이 왔거든요.”
강혜원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기에 나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엇, 지서장님!”
강혜원이 놀라며 말렸지만 나는 가장 가까운 곳의 횟집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6명이 먹을 건데 얼마 드리면 될까요?”
“응? 이게 누구야! 지서장님이네!”
점심때라 그런지 포장 배달용 횟감을 썰던 사장님이 칼을 내려놓고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못 보던 분들인데 지서장님 친구분?”
“아, 같이 일하던 팀원들이에요. 예전에 저 국세청 조사단에 있었잖아요. 저기 저분이 반장님이고 다른 분들은 저랑 3년 일한 동료구요.”
“어, 그래요? 진짜? 귀하신 분들이 오셨네. 그럼 내가 잘 챙겨 드려야지. 6명이라고?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 봐요.”
사장이 주섬주섬 들어가더니 뜰채를 갖고 나와 수조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서장님이 공무원이라 딱 가격만큼만 받아갈 테고, 서비스 이런 건 안 줄게요. 대신에 실하고 신선한 놈으로다가 꽉꽉 채워 드릴게.”
“네, 감사합니다.”
사장은 수조 안을 헤집으며 중얼거렸다.
“이놈은 눈알이 조금 뿌옇네. 얜 안 되겠구만. 이놈은 지느러미가 뜯겼어. 얘도 아니야.”
잠시 후 내 손에는 사장이 꼼꼼하게 따져 고른 싱싱한 회와 매운탕 거리가 들렸다.
사장은 한술 더 떠서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물고기만 먹나? 고기는 안 먹어요? 오늘 소 새로 잡은 거 저쪽 정육점 들어왔으니까 다른 데 말고 저기로 가봐요. 돼지는 저 안쪽에 삼겹살 실한 거 파는 집이 있어. 우리 집도 그 집에서 사다 먹거든요. 파채가 공짜니까 거기도 한번 가봐요.”
꿀팁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열심히 일해요!”
횟집을 나오고 나서 멍하니 날 쳐다보는 팀원들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봤죠?”
“와아…….”
-짝짝짝.
안길진이 입을 딱 벌린 채 박수를 쳤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그럼 그렇지. 혼자서 왕따를 시켰으면 시켰지 당할 사람이 아니지.”
“걱정한 게 손해 본 기분인데요.”
팀원들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
술판은 3시부터 시작했다.
어머니가 무슨 술을 대낮부터 마시냐고 등짝을 때렸지만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나중에는 어머니도 포기하더니 아예 매운탕을 끓여주셨다.
“어머니! 이거 저번에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여러 종류로 사 와봤어요.”
강혜원은 요령 좋게 들고 온 선물을 내밀었다.
예쁜 쿠키와 수제 간식거리가 오밀조밀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채유림 역시 무언가를 내밀었다.
“건강에 좋은 차예요. 저희 부모님도 자주 우려 드시거든요. 돼지감자차랑 검은콩차 같은 걸로 종류별로 넣어봤어요.”
“아유, 뭘 이런 걸 다…… 우리 아들 잘 좀 부탁합니다.”
낮술의 설득은 그걸로 끝이었다.
어머니는 신나서 과자 몇 개와 차 몇 개를 싸 들고 옆집으로 건너갔다.
편하게 놀라는 배려였다.
이제 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없겠다 다들 편안히 앉아서 주섬주섬 먹기 시작했다.
말을 조심할 필요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국세청 쪽 화제가 흘러나왔다.
“지서장님, 국세청 지금 난리 난 거 아시죠?”
“무슨 난리요?”
“어? 청장님한테 말씀 못 들으셨어요? 전국 세무서 감사 들어갔잖아요.”
“아, 그거…….”
“아, 그거가 아니라고요! 국세청 뒤엎어놓은 장본인이 저렇게 말하니까 좀 얄밉네요.”
강혜원이 눈을 흘기자 장세훈이 콧방귀를 뀌었다.
“쟤한테는 별거 아닌 거 맞지, 뭐. 아마 쟤 속으로는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싶을걸? 맞지?”
나는 상추 위에 하나라도 더 올리기 위해서 삼겹살과 마늘, 버섯으로 돌탑 쌓기를 하다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 앞이었다면 어쩜 그런 생각을 하겠냐고 겸양을 떨었겠지만 이들은 나를 너무 잘 아니까.
“네. 솔직히 지방 세무서들 개판인 거 아시잖아요. 한 번쯤은 엎어야죠.”
그릇에 매운탕 국물을 떠서 나눠주던 채유림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동감이에요. 기회 있을 때 싹 갈고 아예 새 출발 해야 해요.”
올~ 하고 강혜원이 따봉을 날렸다.
양 볼 가득 회를 집어넣어서 다람쥐 같은 모습이었다.
“강원도에 계셔서 국세청 소식 잘 모르실까 봐 알려 드리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다 알고 계시겠네. 청장님이랑은 통화 자주 하시죠?”
“일이 주에 한 번은 합니다.”
“그럼 신임 대통령이 국세청 방문하고 간 건 알고 계시겠네요.”
“네. 저번에 들었어요.”
대선은 전 청장인 정상훈이 이끄는 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 당의 대선 주자로 뽑힌 황인영은 이변 없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예상대로였다.
뜨기 전에 불러서 미리 경고해 둔 게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너무 정치에 개입한 건 아닌가 걱정도 들던 참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 후에는 아예 정치 쪽은 쳐다도 안 봤고.
황인영도 지나치게 공공기관에 간섭한다는 의혹은 싫었는지 당선되고 나서도 딱히 국세청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신 전 대통령이 그랬듯 국세청 본청에 격려차 방문했다.
오낙현은 의전이 귀찮다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기쁨의 비명인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낙현을 통해서 하나의 전언이 왔다.
-지서장님이 했던 말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 임기의 후반을 세무조사와 압수수색으로 보내고 싶진 않네요. 마음 깊숙이 새기고 청렴하게 살겠습니다.
돈과 권력 앞에서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라지만 아직은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상훈의 신당이 여당이 되었고, 전 대통령과 그의 옛 정치 파벌까지 우수수 썰려 나가는 걸 보면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지서장님이 검찰이랑 경찰도 건든 바람에 공공기관들도 눈치 살살 보고 있어요.”
“검찰하고 경찰도 보니까 안에서 뭔가 칼바람 불고 있는 것 같던데요.”
그야 국세청에만 라인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다.
민치호는 국세청에만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않았으니까.
그는 전국의 모든 공공기관을 바꾸길 원하고 전 대통령을 찾아간 사람이다.
검찰에도 민치호의 친구인 지검장이 내내 지현석을 지원하고 있었다.
민치호와 내 경우처럼.
그리고 나와 직접적인 접점은 없지만 경찰도 그렇다고 들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마 언론에서는 적당히 보여주기로 몇 명만 자르고 끝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실제로는 우리랑 비슷하게 갈아엎을 거예요. 그쪽도 벼르고 있었거든요.”
“거기도 아는 사람 있어요?”
자세히 아는 건 아니라서 짧게 대답했다.
“민치호 청장님이 아시죠.”
“오……!”
“역시!”
깊게 묻지는 않았지만 눈치는 빠른 사람들이다.
윗분들이 뭔가 거대한 물갈이를 계획하고 있다는 건 짐작한 듯했다.
“잘됐네요. 한번 갈아엎고 난 후엔 빡세게 관리해서 이상한 놈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잘라내면 되잖아요.”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안 되니까 뇌물 받는 놈들이 수시로 나오는 거지.”
“그래도 앞으로는 쉽게 못 할 거예요. 지금까지는 재수 없으면 걸린다, 안 걸리면 장땡이라는 생각으로 한 거지만, 거의 걸린다 싶으면 안 하게 되잖아요. 뇌물 받고 인생 끝장날 텐데?”
“아, 그런 의미라면 가능하죠. 지서장님, 그거 아세요? 요즘 체납액이 반으로 뚝 줄었어요. 청장님 싱글벙글이시던데.”
이쪽은 관심이 없어서 몰랐다.
“반이면 역대 최저 아니에요?”
“그렇죠. 저번에는 저희 서울청에 고액체납자가 와서 자진납부하고 가더라니까요? 조만간 털릴 거라 생각했나 봐요.”
강혜원은 벌써 취기가 올라오는지 불그스레한 얼굴로 무릎을 쳐가며 웃었다.
술은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다들 알코올보다는 분위기에 취한 느낌이었다.
“박원형 조사관님이랑 권새호 조사관님도 요즘 아주 날아다녀요. 따로 연락하거든요. 저번에는 단독으로 준 대기업 하나 털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어휴, 대기업 계열사는 나도 털어봤는데.”
“얘 좀 봐. 또 자랑하네. 우리 중에서 제일 빨리 큰 건수 맡았다고 기세가 등등해. 인마, 그래 봤자 새 발의 피거든?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거거든? 사건 규모로 따지면 신재현 이길 놈 없거든?”
“왜 거기서 지서장님 얘기가 나와요? 지서장님 실적을 누가 따라가! 지서장님, 장세훈 조사관님이 왜 이러는지 아세요? 저희 중에서 누가 제일 빨리 큰 건 맡는지 내기했는데 제가 제일 빨랐거든요. 두 번째가 유림 언니고 세 번째가 무려!”
장세훈과 강혜원은 티격태격하면서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강혜원은 손으로 두구두구 소리를 내며 안길진을 가리켰다.
“안길진 조사관님이 세 번째로 대기업 계열사 맡았어요!”
“헉!”
나는 맥주잔에 소맥을 한 잔 말아서 안길진에게 내밀었다.
“축하주입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안길진은 보기 드물게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냥 팀에 담당 떨어진 거라 저도 같이 한 것뿐이에요.”
“에이, 무슨 소리를. 안길진 조사관님이 그쪽 과장님한테 세무조사 계획 포트폴리오까지 준비해서 어필한 거 제가 들었는데요?”
강혜원의 폭로에 안길진의 귀가 빨개졌다.
나는 의외의 행동력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일할 때는 황민우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조용하고 수동적인 이미지였는데.
게다가 팀 합류한 초반에는 불안불안하기도 했고.
그랬던 사람이 직접 계획서까지 꾸밀 정도라니 괜히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들 걱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해 나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꽃을 피우는 느낌이 들었다.
“와…… 제가 재능을 가리고 있었나 봐요.”
순간 술자리가 조용해지며 모두의 눈빛이 내게 쏠렸다.
뭔가 말실수라도 했나 싶어서 당황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너 농담도 참 잘한다. 야, 우리가 누굴 보고 이렇게 됐을 것 같냐?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신재현 사단이래. 다 널 보고 배운 거야, 인마.”
“그런 의미에서 진짜 그때 지서장님 팀에 들어간 게 신의 한 수였어요.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선택이라고 할까요. 그 왜, 우리 삼성 세무서에 있을 때요. 지서장님이 같이 누구 털러 가자고 했을 때 다들 모르는 척했잖아요. 그때는 다들 우리한테 바보라고 욕했는데 지금은 땅을 치면서 부러워할걸요.”
“지서장님한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전 단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지서장님이랑 팀 할 거예요.”
장세훈을 시작으로 강혜원과 안길진이 순서대로 입을 열었다.
질세라 채유림과 황민우도 거들었다.
“저도 팀에 늦게 합류하긴 했지만 지서장님 밑에서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저야 뭐…… 지서장님이 제 인생 구해주신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무리 술이 들어갔다고 해도 이렇게 고백해도 되나?
나는 눈을 깜빡이며 팀원들을 바라보다가 잔을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떨리는 손으로 잔을 집어 들었다.
빈 잔에 반사적으로 술을 따르려다가 그 안에 물방울이 툭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어느샌가 나는 울고 있었다.
나는 눈물 섞인 잔을 들어 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저도…… 제 팀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함께해 주세요.”
“오케이! 너 청장 될 때까지 우리가 뒷바라지 해준다!”
“건배사 나왔네! 신재현을 청장으로!”
신재현을 청장으로.
다섯 명은 재창과 함께 각자 술잔을 높이 들었다.
나 역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오늘은 소주가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