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화. 폭로전 (5)
-강원도 모 지역의 세무서장 심 모 씨가 배임 및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심 씨는 해당 지역의 사장들과 개인적 친분을 유지하며 편의를 봐주고 뒷돈을 챙기는 등의 유착관계에 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시장의 집무실에는 커다란 소파와 커다란 TV가 있었다.
소파는 푹신했고 앉으면 가죽이 몸을 받쳐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시장은 말없이 소파에 앉아 TV 화면을 보았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일어난 고위 공무원들의 뇌물수수 혐의와 그들이 잡혀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지역 유착 고리에는 현직 세무서장뿐 아니라 경찰서장과 검찰의 지장까지 포함되어 있어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바로 신종 공무원 카르텔 아니냐는 의견도 있어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뉴스는 사정을 꽤 상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어서 현장 사진과 자료 영상도 나왔다.
세무서장 심정민이 붙잡혀 세무서를 떠나는 모습이었다.
-잠깐만, 잠깐만요! 내가 내 발로 조사받으러 간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서장인데 이런 배려도 없어요? 이렇게 눈에 띄게 가면 어떡하냐고 진짜! 어, 뭐야. 카메라는 또 어디서 나왔어. 찍지 마! 찍지 말라고! 어딜 만져!
손으로 카메라를 들었는지 인파에 떠밀려 화면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장판인 상황은 충분히 잘 보였다.
바닥에는 배추가 굴러다니고, 벽을 따라 쭉 직원들이 서서 침울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몰려들어 좁은 건물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수사관들은 파란 증거 박스에 뭔가를 가득 실어 날랐다.
수사관에게 끌려나온 서장은 초반에는 계단 위에서 목소리만 들렸다.
사람은 많았지만 로비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기에, 계단 중간에 서 있는 서장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서장은 이렇게 대놓고 나갈 수 없다느니, 나중에 따로 출석하겠다느니 고집을 부리고 있었지만 수사관들은 이런 사람들을 많이 다뤄본 베테랑이었다.
서장이 반쯤 주저앉았지만 수사관은 양쪽에서 그 팔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서장의 발이 허공에 둥둥 떠서 대롱대롱 매달린 형태가 되었다.
그녀는 내려가기 싫어서 떼를 쓰다가 건물 입구에 모인 인파와 카메라를 보자마자 자신의 다리로 똑바로 섰다.
그리고 얌전한 척을 했다.
이 화면은 입구 쪽에서 찍은 거지만 사실 나는 저 당시에 계단 위에 있었다.
이미 소리 지를 건 다 질러놓고 얌전을 떠는 모습을 바로 뒤에서 지켜보면서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뻔뻔했다.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 것 같은데.
심정민은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다 바닥에 널린 배추를 밟고 말았다.
-아이쿠!
심정민이 미끄러졌다.
다행히도 양옆에 있던 수사관이 부축해서 넘어지는 것만은 막았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후였다.
심정민의 발길이 빨라지고, 밖으로 나오자 구름같이 모여든 사람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저X이 X 사장이랑 손잡고 등쳐먹은 X이다! 잡아라!
-야, 이X아! 네가 그러고도 발 뻗고 잘 줄 알았냐!
적나라한 욕설에는 삐- 소리로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뭐라 했는지 아주 생생하게 들렸다.
언제나 그렇듯 흥분한 시민을 막는 게 가장 힘들다.
수사관들이 최대한 막으려고 했지만 사람으로 장벽을 만들지 않는 이상 완벽히 차단하긴 무리였다.
심정민의 묶은 머리가 금방 산발이 되었다.
그래도 뭘 던지는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다.
저런 경우 수사관들이 얻어맞거나 다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발밑에는 배추가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아무도 집어 들 생각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배추 할머니에게 했던 내 당부가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심정민이 우여곡절 끝에 차에 올라타고 나자 이번에는 다른 자료화면이 나왔다.
상황은 비슷했다.
장소가 경찰서와 지청이라는 것만 달랐다.
경찰서도 세무서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농산물이 구르고 있었고,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장이 검찰 측 사람들과 함께 서를 나섰다.
지청은 더더욱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나마 지청은 조용하게 수사가 진행되었다.
몰려온 주민들도 없었다.
내가 돌아다니면서 폭로할 때 세무서장과 경찰서장만 언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러 시장과 지청장을 빼놓은 건 아니었다.
이 둘은 직접적으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진 않았고 사장들과 밥 먹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거기도 하고.
-사건의 조사를 맡은 춘천지방검찰청은 엄정하고 투명한 조사를 약속하며…….
-이제 전문가분들 모시고 이번 지역 유착 사건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스가 패널 간의 대화로 넘어가자 시장은 소리를 줄였다.
이젠 우리도 대화를 나눌 때였다.
나는 조금 다른 화제로 말문을 열었다.
“지역 기자들도 대단하네요. 저걸 다 찍다니.”
작은 지역이라고 해도 사실 있을 건 다 있었다.
지역 신문도 있었고 숫자는 적지만 기자도 있었다.
그들이 평소에 찍는 거라곤 어느 밭에 흉년이 들었다거나 산에 예쁜 구름이 걸렸다는 식의 소소한 뉴스거리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들도 나름 기자라고 난리가 난 세무서나 경찰서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전국 공중파 뉴스에 아주 생생한 자료화면이 뜨게 되었다.
이 영상을 찍은 기자는 모르긴 몰라도 영상 값으로 꽤 많은 돈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 기자들도 찍을 건 다 찍습니다. 주로 지역신문이나 지역방송에 내는 게 주류지만 큰 건 터지면 공중파에 넘기곤 하죠. 기자들도 아주 오랜만에 찍어보는 특종이었을 겁니다. 원래 조용한 동네라서요.”
시장이 점잖은 어투로 대답했다.
그는 내가 온 이유를 알고 있을 텐데도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다.
보통 내가 찾아가면 사람들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아니라고 잡아떼고 감히 누굴 건드리냐며 큰소리를 치거나, 한 번만 봐달라며 붙잡고 매달리거나.
시장은 그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내가 시장실에 들어왔을 때도 담담한 얼굴로 뉴스를 보고 있었고, 내게 소파를 가리켜 보였을 뿐이다.
뭐 하자는 건가 궁금하기도 하고, 시장의 옆얼굴이 굉장히 진지해 보여서 나는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함께 뉴스를 보게 된 것이다.
시간을 끄는 것 같지는 않았다.
뉴스를 보는 동안 그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지하게 TV를 보고 있었으니까.
시장은 일어서서 한쪽 벽면으로 가더니 유리장을 열고 술을 꺼내왔다.
갈색인 걸 보니 브랜디였다.
잔은 두 개였지만 나는 사양했고 그는 한쪽에만 따랐다.
예의나 가식을 차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물을 마시듯 단숨에 한 잔을 들이켠 후 다시 잔을 채웠다.
정말 알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빠져나갈 자신이 있는 건지.
어떤 종류인지 궁금했다.
“시장님, 제가 왜 왔는지는 알고 계시죠?”
시장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예, 압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심정민 서장처럼 머리털 쥐어뜯기면서 출두하진 않을 것 같아서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전 악질은 아니거든요.”
시장의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꽤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처럼 사무실을 뒤엎고 있다거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지도 않았다.
오늘은 나 혼자 왔다.
“잘못한 걸 알고는 계십니까?”
“네. 그러니 이렇게 사람들 다 물려놓고 술이나 퍼 마시는 거죠.”
나는 그의 머리 위를 재차 훑었다.
탈세액은 5백만 원 안팎.
시장이 저들 모임 일원이었다는 걸 알게 된 직후 신고서부터 봤다.
장부나 신고서를 보면 탈세액이 보이니까.
그런데 5백만 원이라는 숫자를 보자마자 의문은 깊어졌다.
지역 유지들과 한패인 것치고는 꽤 적었다.
그래서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럼 다 인정하시는 겁니까?”
“저한테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가 걸려 있는지, 어디까지 밝혀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 인정합니다. 뭣하면 여기서 다 읊어볼까요? 녹음하셔도 좋고요.”
의외의 반응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대화할수록 더욱 알 수가 없었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솔직, 청렴 그 자체인데 탈세액은 왜 5백만 원이나 된단 말인가.
탈세액이 애매한 게 제일 문제다.
뒷돈 챙길 만큼 물든 놈이었으면 탈세액이 억 단위는 찍힐 정도로 받아야 정상이고, 깨끗한 놈이면 아예 탈세액이 없어야 정상이다.
이건 뭐, 깨끗하던 사람이 이제 막 정치 시작해서 뒷돈에 눈을 뜬 시점에 내가 찾아온 건 아닐까 의심이 가던 차였다.
내가 미심쩍은 눈으로 보자 시장이 담담하게 고백을 시작했다.
“강 사장네 패거리가 5명 되죠? 각각 천만 원씩 받았습니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이니까요.”
내 눈에 보인 탈세액은 5백이 약간 넘었지만 가산세나 그 외 자잘한 실수로 일어난 탈세 같은 걸 합치면 대충 저 금액이 맞다.
모두 인정한다길래 설마 했는데 이렇게 처음부터 다 까발릴 줄은 몰랐다.
“시장님, 민선으로 오신 거잖아요. 해명 한마디 안 하셔도 됩니까?”
“어떤 이유든 돈 받은 건 사실이고 그건 뇌물입니다. 제가 지난 국회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저 멍청한 놈들, 발악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데. 차라리 순순히 협조하는 게 낫죠.”
“어…… 현명하십니다.”
나도 항상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겠는가.
자기가 가진 걸 다 잃을 수도 있다고 하면 발악하는 게 정상이지.
그런데 이렇게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또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한마디로, 내가 생각한 반응이 아니었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면서 비벼야 하는 겁니다. 당연히 속이 쓰리지만 상대가 신재현 지서장님인데 어쩌겠습니까. 괜히 눈 밖에 나긴 싫습니다. 깔끔하게 세금 내고 재판받죠, 뭐.”
“어…… 포기가 너무 빠르신 거 아닙니까?”
“지서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인 분이.”
시장은 자조하며 다시 한 잔을 들이켰다.
“만약 제 앞에 다른 사람이 왔다면 버텼을 겁니다. 그깟 5천만 원 때문에 이 모든 걸 말아먹긴 싫거든요. 검사? 지검장? 아니, 검찰총장이 왔어도 모르는 척했을 겁니다. 적당히 거래를 하든지. 근데 하필 제 앞에 지서장님이 앉아 계시네요. 이길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
“과대평가십니다.”
“단신으로 국회를 쳐부수고 전 대통령도 감옥에 처넣은 분이 과대평가라고 하시면 안 되죠. 저는 차라리 감옥 갔다 와서 재도약을 노리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교훈삼아서 아무리 푼돈이라도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지서장님은 국세청에 오래오래 계실 것 같거든요. 지서장님을 또다시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살겠습니다. 이런 맹세면 부족할까요?”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자진 납세를 하다못해 깨끗하게 살겠다고 맹세까지 하다니.
너무 순순해서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인지 진심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나쁜 놈들만 봐와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의심부터 들었다.
내가 섣불리 뭐라 답하지 않자 시장이 피식 웃었다.
“5천만 원 받아먹은 놈이 당장 믿어달라고 하는 것도 우습겠죠. 괜찮습니다. 앞으로 보여 드리면 되니까. 나중에 두고 보시면 될 일입니다. 계속 국세청에서 일하실 것 아닙니까.”
“네.”
정말 깨끗하게 살고 있는지 추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신고서 들여다보면 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좋습니다. 끝까지 증명해 주시면 좋겠네요. 그럼 그때는 좋은 대화 상대가 될 것 같아서요.”
“좋게 평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시장이 고개를 숙이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받는 나도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곧 깊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까짓거 나 때문에 깨끗하게 살겠다는데 그거면 됐지.
“그럼 내일 바로 춘천지청으로 출두해 주세요.”
“몇 시까지 가면 되겠습니까?”
“이 번호로 연락 주시고 시간 맞추시면 됩니다.”
나는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이번 사건을 맡게 된 춘천지청의 검사였다.
큰 건을 맡게 돼서 꽤 긴장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열심히 하려다 사고를 쳤으면 쳤지, 적당히 덮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검찰 쪽에서도 이번 일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니까.
“그럼 다음에 뵐 때는 탈세액 없이 뵙길 바라겠습니다.”
“그러죠.”
그의 머리 위 숫자가 0이 될 때 다시 만나길 기약하며, 나는 시장실을 나왔다.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두 청장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오낙현은 현 상황 처리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이번 일은 더 큰 카르텔이 될 수도 있었던 걸 네가 미연에 방지한 걸로 포장해서 나갈 거야. 세무서장이 좀 추태를 부리긴 했지만 그만큼 국세청의 자정 작용이 뛰어나다는 걸로 해서. 국세청 이름값 좀 올리려고.
오낙현은 청장답게 이번 건을 어떻게 잘 이용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듯했다.
반면에 민치호의 문자는 아주 짧았다.
-잘했다.
나는 웃으며 핸드폰을 닫았다.
***
신재현이 나간 직후, 시장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아무리 술이 세다고 해도 안주도 없이 빈속에 넉 잔을 들이부으면 눈앞이 돌게 마련이다.
그러나 쌓아 온 모든 걸 한순간에 잃게 생겨서인지 좀처럼 술이 오르지 않았다.
머리는 또렷한 채로 시장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신재현을 향해서는 아니었다.
감히 그에게 덤빌 수는 없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타깃을 바꿨다.
“내가 그놈들은 가만 안 놔둔다.”
이런 멍청한 짓을 한 다섯 명의 지역 유지가 적당히 세금만 내고 징역 몇 년 살고 나와서 이전처럼 떵떵거리고 사는 꼴은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세금 내고 벌금 낸다고 해도 돌아오면 여전히 재산은 멀쩡하지 않은가.
자신은 민선이라 이 일이 까발려지면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잃게 되는데 말이다.
“그놈들도 똑같이 잃어야지.”
시장은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책상으로 다가갔다.
알코올 때문에 다리는 제멋대로였지만 이성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건 절대 술에 취해서 감정적 판단을 하는 게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이성적이고 차가운 머리로 시장은 두툼한 서류 봉투를 쓸었다.
그 안에는 시장이 그동안 술자리에서 보고 들은 다섯 명의 치부가 들어있었다.
당연히 신재현은 모르는 것들이다.
그들은 멍청하게도 술이 들어가면 ‘제가 왕년에~’로 시작되는 자랑을 늘어놓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자업자득이었다.
“그 다섯 놈은 절대 집행유예 안 나오게 할 거야.”
시장의 눈에 독기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