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87화 (487/500)

487화. 폭로전 (3)

강 사장의 집 앞에서 있었던 일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지역사회는 좁고 깊다.

어느 집의 아들이 뭘 하고, 어느 집에 손님 누가 들렀는지 다 아는 것이 시골 동네다.

강 사장은 이걸 이용하여 신재현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신재현이 그 특성을 역이용한 것이다.

“얘기 들었어요? 어제 강 사장님 댁 앞에서 난리 난 거!”

“으응? 무슨 일인데 그래?”

“아이고, 할마씨 소식이 이렇게 느려서 어디에 써먹어! 잘 들어봐요. 저어기 세무서 쬐그맣게 하나 생긴 거 알죠? 거기 서장이 테레비에서 유명한 사람이거든요. 젊은데 일 잘한다고.”

“나쁜 놈이라는 건 들었는데. 강 사장님 핍박한다고.”

동네마다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곳이 있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친화력 좋은 어느 아주머니의 집 안방일 수도 있고, 뜨끈한 온실일 수도 있다.

동네 노인정일 수도 있고 동사무소일 수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강 사장과 신재현의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에헤이! 할마씨가 큰일날 소리를 하시네. 그거 옛말 된 지 오래예요. 어제 저 윗동네 사람들이 따라갔는데, 다 있는 데서 증거 팍팍 들이밀면서 강 사장이 그동안 해온 일들을 다 까발렸는데! 글쎄, 윗동네 사람들한테 사기 친 거 다 들통났다니까!”

“그게 정말이여?”

“네! 옆에 그놈 말고 저짝 산 너머 세무서장도 있었다는데 찍소리도 못했다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강 사장이 동네 사람들한테 사기를 쳤다고?”

사기? 사기를 쳐?

메아리가 울리듯 모여 있던 여러 명이 같은 단어를 반복했다.

“강 사장님이 그럴 리가 없어!”

누군가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바로 반박이 나왔다.

“그럴 리가 없긴 무슨! 내가 거기서 직접 봤는데! 윗동네 할머니 이름 빌려 가지고 땅 사놓고 보상금 나오니까 입 싹 닫았다니까! 그 할머니 기초수급자 떨어졌다고 요즘 힘들어하더니 그게 다 그거 때문이었어!”

“그게 진짜예요?”

“그뿐인가? 저번에 목장 늘린다고 동네 땅 샀잖아요. 땅 주인 속여가지고 시세 반의반도 안 되게 샀다네? 그뿐인가? 은근슬쩍 옆집 땅 침범해 가지고 땅 늘려놓고.”

누군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증거는 있고?”

“그럼요! 그 젊은 지서장 양반이 꼼꼼하게 체크해서 증거를 다 갖고 왔더만. 옆에서 강 사장이랑 서장이 못 믿겠다고 다 확인했어요.”

“그 둘은 뭐라고 했는데요.”

“뭐라고 하긴! 빼도 박도 못할 증거까지 들고 왔는데 입을 열면 쳐 죽일 놈이지! 둘이 짜고 친 것도 있드만!”

“젊은 양반이 준비를 많이 했네…….”

이제 강 사장의 배신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지역의 수호자 취급을 받던 강 사장은 천하에 둘도 없는 매국노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 믿을 놈이 하나도 없구만. 강 사장이 뒷구멍으로는 호박씨나 까고 있었다 이거지. 그래놓고 우리한테는 잘해주는 척한 거였어? 왜? 양심에 찔려서?”

“얼마나 웃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아무도 눈치를 못 채서 아이고, 우리 강 사장님~ 하고 살살거렸는데. 에라, 떡이나 먹어라! 하고 잘해준 거지.”

“악랄한 놈이야, 악랄한 놈!”

점점 욕의 수위가 세졌다.

수십 년간이나 속여왔으니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모자라지 않았다.

처음에는 부인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설마? 정말인가?’ 하며 긴가민가하고 있었다.

“잠깐만. 그러면 그 젊은 양반 소문은 사실이 맞대?”

자동으로 신재현에 대한 화제로 넘어갔다.

강 사장이 신재현 욕을 하고 다녔다는 건 은근히 퍼진 사실이었다.

대놓고 강 사장이 소문을 퍼뜨려 달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동네 주민들을 만나는 족족 신재현 험담을 하고 다녔다.

퍼뜨리고 다니라고 은근히 눈치를 줬으니 강 사장에게 뭔가 떳떳하지 못한 계획이 있다는 건 뻔했다.

아직도 강 사장에게 호감이 남아 있던 몇몇 주민이 기다렸다는 듯이 신재현을 욕하기 시작했다.

“강 사장이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젊은 지서장은 관계가 없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그놈도 행실이 착실한 놈은 아냐.”

“옳소! 강 사장 말고 임 사장도 저놈이 얼마나 악질인지 말하고 다녔거든. 원래 입을 모아 말할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그러자 발끈하며 반박하는 이들이 있었다.

“뭐야, 이놈아?”

“지서장이랑 직접 만나서 얘기해 봤어? 새로 생긴 지서 가봤냐고. 높으신 분인데도 민원실 내려와서 우리한테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친절한지 봤어?”

“젊은이가 말이여,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 앉았는데도 직원들도 무시하지 않고 손님한테도 친절했단 말이여! 어디 인사도 해본 적 없는 놈이 무당도 아니고 싸가지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고 씨부려 싸!”

입에서 침을 튀기며 따지는 사람들은 지서에서 한바탕 난리를 쳐본 사람들이었다.

민원실에서 배추를 던진 할머니, 지서장실에 쳐들어가 말싸움을 하고 나온 할아버지, 지나가다 신재현을 발견하고 꾸지람을 하다가 오히려 친해진 할아버지 등.

그들은 언제 진상을 부렸나는 듯 신재현 편을 들기에 바빴다.

강 사장을 옹호하던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왜 이런대? 장 씨, 낮술 먹었어? 저번에 젊은 놈이 싸가지 없다고 그렇게 욕한 게 장 씨 아니었어?”

“그땐 뭘 모르고 했지! 우리 다 강 사장한테 속은 거라니까?”

“강 사장이 사실을 말했을지 어떻게 알고?”

“어허, 이 사람이 뭘 모르는구만. 딱 보면 알잖아. 강 사장이 지금까지 우리를 속이고 착한 척을 했잖아. 젊은 지서장 양반이 자기 비리를 캐내려고 하니까 우리한테 들킬까 봐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린 거야.”

“강 사장 혼자만 말한 게 아니고 임 사장도 그렇고, 김 사장도 안 좋게 말했잖아요.”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자 배추를 던졌던 할머니가 손뼉을 쳤다.

“다 한통속이네! 맞아, 어제 지서장 양반이 그러더라고. 내일은 임 사장님 댁에 갈 겁니다. 기대하세요.”

모여 있던 사람들이 뒤집어질 듯 놀랐다.

“임 사자앙?”

“오늘은 임 사장네 집 앞에서 어제처럼 비리를 까발리겠다, 이 말이여?”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해요!”

배추를 던졌던 할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일찍 말하면 뭐 하게?”

“당연히 구경 가야지! 다들 뭐 해요? 얼른 일어나서 임 사장님 댁으로 갑시다!”

한쪽에서 담요를 깔아두고 고스톱을 치던 할머니들도 잽싸게 패를 던지고 일어섰다.

재밌는 구경을 놓칠세라 허둥지둥한 모습이었다.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또 누구는 트럭을 타고.

그 트럭의 짐칸에 타기도 하며 옆 동네로 향했다.

임 사장의 집이 어딘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오늘도 신재현은 수많은 관객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미 젊은 지서장의 손에 두 세 개의 서류가 들려 있는 걸 보아하니 시작한 지 좀 된 것 같았다.

소문이 났는지 어제보다 많은 주민들이 임 사장 집 앞에 장사진을 이뤘다.

거기에 새로 열 명이 추가되자 북적북적했다.

몇 명이 모여들든 신재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익숙하게 하던 말을 계속했다.

중간중간 임 사장이 분노하며 그의 입을 막아보려고 시도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신재현은 혼자인데도 능숙하게 임 사장의 반격을 피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임 사장은 신재현의 손에서 서류가방을 빼앗으려 들거나 소리를 질러 말을 막으려고 했다.

그때마다 주위에 모여든 주민들이 임 사장을 막았다.

방법은 다소 거칠었다.

“어허, 임 사장님! 뭐 얼마나 찔리길래 이렇게 난리를 치시나. 우리 일단 지서장님 얘기 들어보자고요. 얼마나 당당하면 혼자서 찾아와서 이러고 있겠어.”

임 사장이 괴성을 지르자 주민들이 팔을 붙잡고 옆구리를 꼬집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 돼! 다 꺼져, 꺼지라고!”

“임 사장님이야말로 닥치고 꺼져요! 지금 월세 얘기 듣고 있잖아!”

신재현은 지역 주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폭로를 계속했다.

그가 서류 가방에서 증거를 꺼낼 때마다 추임새가 날아왔다.

“그랬구만!”

“임 사장이 가게 새로 낸다고 할 때 돈이 어디서 났나 했더니 그거였어!”

“얼씨구! 이놈도 나쁜 놈이였구만!”

임 사장은 주민들에게 붙잡혀 머리카락을 뜯기고 있었다.

“크아악! 머리는 안 돼!”

“안 되긴 뭘 안 돼!”

그런데 강 사장과 임 사장으로 끝이 아니었다.

신재현은 증거 자료를 곱게 모아 가방에 집어넣고는 예고했다.

“내일은 최 사장님 댁으로 갈 겁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최 사장도 개새끼여?”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캐물었지만 신재현은 입을 꾹 다물고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신재현은 뭔지 모를 웃음만 남기고 총총 떠나갔다.

남은 자리에는 분노한 주민들이 임 사장을 추궁하고 있었다.

“방금 지서장 양반이 한 말이 무슨 말이에요? 그 뭐냐, 월세? 월세 세금 떼먹었다고? 나한테 부가세 내야한다고 20퍼센트인가 더 가져가지 않았어요?”

부동산 부자 임 사장은 상가도 몇 채 갖고 있었다.

자연히 세입자는 지역 주민이었고.

그들에게 세금 명목으로 월세를 더 받았다가 신재현의 레이더에 걸린 것이다.

“다들 진정해 봐요, 제가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무지렁이가 세금을 어떻게 알아요. 모르고 안 낸 거지.”

“아예 처음부터 부가세라고 딱 잘라서 말하면서 월세 가져갔잖아! 내 돈 내놔, 이놈아!”

“크억, 숨 막혀. 이거 놔요, 아줌마!”

그 외에도 다운계약서 작성 같은 자잘한 혐의가 많았지만 주민들의 관심은 하나였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월세 말이다.

주민들에게 멱살을 잡힌 임 사장은 옆구리를 쥐어뜯기면서 후회했다.

‘시발, 신재현 저놈은 그냥 공무원하고 달라! 일 주면 꾸역꾸역 그것만 붙잡고 있는 놈이 아니라고! 손에 칼을 들고 어떻게 써야 할지 아는 부류야!’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신재현이 예고했듯이 강 사장과 임 사장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매일 1명씩.

신재현은 지역 유지들의 집에 방문해 그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신망을 무너뜨렸다.

너무 어처구니없게 무너져서 믿기지가 않았다.

혼자 쳐들어와서 꼬박꼬박 1명씩 나락으로 보내다니.

자신들은 한 달 동안 신재현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고생했는데.

너무도 쉽게, 순식간에 뒤집힌 것이다.

그렇게 다섯 명의 사장은 신재현 손에 파렴치한 지역사회의 적으로 추락해 버렸다.

신재현에게 하려고 했던 수법 그대로, 부메랑이 더 커져서 돌아온 것이다.

마지막 날, 가볍게 마지막 사장의 명성을 진창에 박아 버린 신재현은 족히 50명은 모인 앞에서 가볍게 예고했다.

“음, 사실 제가 준비한 지역 유지 분들의 비리는 이게 끝입니다. 이분들이 가면 뒤에 어떤 모습을 감추고 있었는지 여러분께 다 밝혀 드렸으니 이제는 저희와 검찰에서 구체적으로 조사할 차례거든요. 이제부터는 저희 일입니다. 아마 조사 과정을 여러분께 낱낱이 알려 드리지는 못할 거예요.”

잘나가는 사장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구경꾼들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들 비리를 파헤치는 이 폭로전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썩 괜찮은 구경거리였던 건 사실이다.

“중간에 귀띔이라도 해주면 안 됩니까! 이거 뭐 중간에 끊어서 궁금해 미치겠는데.”

“그건 안 됩니다. 조사 내용을 공개할 순 없거든요.”

“에이, 지금까지는 다 알려줬으면서.”

“이건 조사가 아니라 납세자분께 해명을 들으러 방문한 거였구요.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저희 지서에서 조사 들어갈 텐데, 그걸 일반인께 알려 드릴 수는 없어요. 원칙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거참 지서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구만! 궁금해서 잠도 못 자요!”

신재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나중에 세금 얼마 낼지 고지서 보낼 땐 교부송달, 아니, 제가 직접 전달하러 오겠습니다.”

고지서를 우편이 아닌 방문해서 전달한다면 온 사방에 알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신재현이 동네 어귀에 나타나는 순간 주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뛰쳐나올 테니까.

“지서장 양반. 그럼 나쁜 놈은 이제 더 없는 거예요? 끝났어요?”

누군가가 묻자 신재현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들 대상으로는 끝났습니다만 더 중요한 게 남아 있어요.”

“누구? 시러베아들놈이 또 남아 있었다, 이거요?”

주민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신재현에게 꽂혔다.

“제가 첫날 강 사장님 댁에 방문했을 때 거기 누가 있었습니까? 강 사장님이 동네 분들 등쳐먹었을 때 알면서도 봐준 사람 말입니다.”

“그거 세무서장 아녀!”

곳곳에서 세무서장 심정민의 이름이 튀어나왔고, 신재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심정민 세무서장님입니다. 서장씩이나 돼서 지역 유지들과 결탁해 사익을 챙겼으니 이번엔 이렇게 부드럽게 진행하지 않을 거예요.”

주민들이 어리둥절했다.

“이게 부드러운 거였어?”

“그럼 거친 건 대체 뭐야. 주리를 틀어?”

“지금이 조선시대요? 멱살 잡고 마당에 던지는 거겠지.”

“서장을 던져도 돼?”

“안 되나? 화딱지 나서 내가 쳐들어가 가지고 배추 좀 던지고 오려고 했는데.”

웅성거리는 와중, 신재현이 관자놀이에 식은땀 한 방울을 흘리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저 혼자 이렇게 가진 않을 거란 뜻입니다. 공공기관이니까 공식적으로 지서 식구들하고 가서 조사할 거예요.”

누군가가 물었다.

“이렇게 미리 말해줘도 됩니까? 서장이 듣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서장이 도망간다구요? 온몸으로 나 잘못했소, 시인하는 꼴인데.”

신재현은 피식 웃었다.

그 얼굴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뭐, 도망가도 상관없습니다. 그동안 다섯 분의 사장님들을 조사하면서 웬만한 증거는 다 챙겨놨거든요.”

“이야아! 마음에 든다!”

“암, 이래야지! 잘한다, 잘해!”

“가서 확 엎어버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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