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86화 (486/500)

486화. 폭로전 (2)

나는 원래 이런 작위적이고 화려한 폭로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TV에도 찍히고 기자회견도 하고 세무조사 실시간 라이브도 해봤지만, 그건 필요해서였다.

상대적인 힘이 약한 내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역 주민들은 소문에 휩싸여 우리를 적으로 생각했고, 소문의 진상을 하나하나 해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면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을 한 번에 거꾸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흔히 정치권에서 많이 쓰는 ‘메신저 공격하기’ 방법이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혼자 동네 어귀에 나타나 관심을 끌었다.

옷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비싼 걸 꺼내 입었다.

민치호가 사준 정장에 코트 말이다.

이런 동네는 주민끼리 너무 잘 알았다.

주민들끼리는 어느 집에 신발 개수가 몇 개인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말쑥한 차림새의 낯선 청년이 동네에 나타나면 당연히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동안 내가 던진 돌이 효과를 드러냈다.

내가 장바구니를 들어줬던 할머니, 진창에 빠진 자전거를 꺼내줬던 할아버지, 그리고 지서에서 난리를 쳤던 몇몇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어! 신재현이다! 지서장!”

“뭣이여? 그 썩을놈이 여긴 왜 와?”

동네 주민들은 당장에라도 손에 든 마늘을 던질 것처럼 살벌했지만 다른 주민이 말렸다.

민원실에 와서 배추를 던졌던 할머니였다.

“잠깐만 있어봐 봐요, 형님. 아무리그래도 공무원인데 패서 내쫓으면 쓰나! 일단 뭐 하러 왔는지 들어나 보고 그다음에 쫓아냅시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길을 따라 올라갔다.

“어? 저놈 저거 강 사장님 댁 가는 거 아녀?”

“따라가자, 따라가!”

강 사장에 대한 의리와 나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는 사람, 그냥 구경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

종류는 다양했지만 어찌 되었건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날 따라오는 주민이 서른 명에 달했다.

나는 일부러 느긋하게 걸었다.

걸음이 느린 어르신들이 충분히 쫓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10분이면 올라갈 길이 20분은 족히 걸렸다.

산 아래 언덕 사이에 자리한 단독주택은 작았지만 아름다웠다.

내가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저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떨지는 대충 상상이 갔다.

하지만 나는 주택이 가까워지자 눈살을 찌푸렸다.

목표로 한 강 사장 외에도 예상치 못한 손님이 한 명 더 있었다.

세무서장 심정민.

서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걸까.

서장쯤 되면 일이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처리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남아도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지역 유지와 단둘이 만나?

그것도 그의 집에서?

저번에 만났을 때 나로서는 충분히 경고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먹었겠지.

근데 심정민은 바보였던 모양이다.

그래, 국세청에 똑똑한 사람만 있을 리가 없지.

국세청도 사람 사는 곳인데, 저런 사람이 없을 리가.

그렇다면 본인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일부러 주택 앞에 서서 기다리자 걸음이 느린 주민들도 서서히 언덕 위에 올라서는 것이 보였다.

아직 추운 날이었지만 여기는 햇빛이 따뜻했다.

사고 치기 딱 좋은 날이었다.

강 사장과 심정민도 나왔겠다, 무대가 마련되었으니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첫 번째 이름을 불렀다.

“최덕팔 씨 계십니까, 최덕팔 씨!”

내게 이름을 불린 남자는 ‘사기’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 둘러싸고 있던 주민들의 얼굴도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놈이 간악한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이렇게 이간질할 줄은 몰랐네!”

“젊은이! 마음 곱게 써야 돼! 안 그러면 지옥 가!”

“강 사장님을 모함하려고? 따라오길 잘했네. 이놈아, 너 오늘 잘 만났다. 내가 오늘 걸어서 못 내려가게 해줄 거야!”

주민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들었다.

사실 혼자 오면서 이게 걱정이었다.

필연적으로 증인이 되어줄 관객이 많이 필요한데, 반대로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흥분한 지역 주민들은 내가 찢어 죽일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강 사장이 옆에서 말려줄 리도 없고, 나 혼자 맞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신이 있기도 했다.

용산 세무서에 있을 때는 혼자서 도박장에 쳐들어간 적도 있다.

지금은 당연하게도 주민들에게 손을 댈 수야 없지만, 피해 다니는 건 자신 있었다.

서른 명이라고 해도 그중 대부분이 노인이다.

당장 몇 명이 지팡이를 치켜들고 날 때리려다가 내가 뒤로 물러나자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였다.

나는 연신 뒤로 물러나며 강 사장 쪽으로 다가갔다.

둘러싸이지만 않으면 된다.

강 사장 뒤에 숨은 나는 그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말했다.

“떼거리로 한 명을 때리면 집단 폭행입니다. 집단 폭행은 대장 처벌이 제일 엄한 거 아시죠?”

내가 집단 폭행으로 실려 나가면 난리가 날 게 분명했다.

아무리 CCTV가 없다고 해도 분노한 국세청과 검찰청에서 어떻게든 원인을 밝혀낼 거고.

게다가 장소가 강 사장의 집 앞이라면?

이건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강 사장은 덜컥 겁이 난 얼굴로 주민들을 막아섰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폭력은 안 됩니다. 일단 들어보고 따지면 될 것 아닙니까.”

“어허, 강 사장을 모함하는 놈이에요! 강 사장이 사기를 쳤다는데 왜 편을 들어요?”

강 사장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차라리 신재현이 흠씬 얻어맞고 쫓겨났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로 안 될 일이었다.

분노한 중앙 정부는 무서웠으니까.

“저도 헛소리에 화가 납니다. 제가 잘 타이를 테니 걱정 마세요. 여기 세무서장님도 계시잖습니까.”

“어어, 정말 서장님이네. 서장님이면 안심이지.”

심정민은 소란에 끼고 싶지 않다는 듯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주민들이 아는 척을 하자 끔찍한 걸 본 것처럼 기괴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슬금슬금 목초지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도망가려고? 어림도 없지.

나는 서장님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서장님, 마침 잘됐네요. 제가 가져온 증거가 진품이라는 증명 좀 해주세요. 이분들이 서장님이라면 믿을 테니까.”

쉽게 믿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들고 온 서류가방을 열었다.

거기엔 견출지로 세세하게 분류된 증거 자료들이 있었다.

“저희 국세청에서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해 책정한 땅의 정당한 가격입니다. 확인해 보세요.”

먼저 감정서를 당사자인 최덕팔에게 넘겼다.

노안인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서를 이리저리 보다가 심정민에게 넘겼다.

“제가 눈이 안 좋아서 작은 글씨는 잘 안 보이네요. 서장님이 좀 봐주십쇼. 세금에 대해서는 잘 아실 테니까.”

심정민은 떨리는 손으로 감정서를 받아 들었다.

내가 일부러 눈에 잘 띄도록 지번과 가격 등에 형광펜을 쳐둔 상태였다.

감정서 뒤에는 최덕팔의 양도세 신고서도 첨부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 신고서를 훑어보더니 손을 덜덜 떨었다.

그야 떨릴 만하지.

양도세를 신고할 때는 가격이 적당하게 책정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서류가 붙는다.

공시지가든 감정평가서든 시가 조사 자료든 뭔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신고서에는 그런 뒷받침 자료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으면 공시지가라도 첨부되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공시지가는 보통 시세보다 싸게 마련이다.

투기 지역이 아닌 이런 산지는 살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시지가 가격대로 거래하긴 하지만, 신고서에 쓰여 있는 매매가는 그것보다도 훨씬 낮았다.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그리고 심정민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세무서에서도 가담했다는 뜻이니까.

나는 딱딱하게 굳은 심정민의 주의를 일깨웠다.

“서장님, 어디가 이상하신가요?”

“아, 아니. 그게…….”

심정민은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대신 설명하기로 했다.

“신고서에 공시지가가 첨부 안 되어 있죠? 그래서 제가 따로 공시지가를 적어뒀는데, 그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라는 걸 아실 겁니다.”

“산지라는 특성상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고, 특수관계인이 아닌 이상 아무 문제도 없……!”

나는 손을 들어 심정민의 해명을 막았다.

납세자 대신 서장이 해명하는 것도 이상한데 미리 준비한 것처럼 능숙하다.

“아뇨.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세무서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잘 모르실 테니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양도세 신고서가 들어오면 담당 직원이 배정됩니다. 다른 건 안 그러는데 양도세나 상속세, 증여세 같은 건 직원이 무조건 신고서를 열어보고 검토를 해봐야 해요. 금액도 크고 탈세도 많으니까요. 자, 그런데 공시지가는 필수 자료입니다.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들어가면 다 나오는 거라서 신고할 때 굳이 첨부 안 해도 되긴 해요. 직원은 공시지가를 열어봤을 겁니다. 그리고 의아해했겠죠. 시가가 이렇게 현저하게 낮다고?”

흥분했던 주민들이 어느새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무대 위의 배우가 된 것처럼 과장되게 설명을 이어갔다.

“직원은 강 사장님과 최덕팔 씨 사이에 특수관계가 있는지부터 조사했을 겁니다. 자, 주민등록을 뒤져봤더니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러니 더 의문이 생깁니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이 가격에 팔았을까? 이건 거저나 다름없는데?”

내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면서 설명하자, 주민들의 눈길도 손끝을 따라다녔다.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보통 이런 경우엔 좀 더 조사를 해봅니다. 혹시라도 뒷사정이 있었던 걸 놓친 거면 그 직원은 징계감이거든요. 정말 순수하게 싼값에 급처한 건지, 아니면 뭔가 계획이 있었던 건지 직원은 알아봤을 겁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조사는 중간에 멈춥니다. 왜냐? 서장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죠.”

내가 손을 펼친 후 그 끝으로 심정민을 가리켜 보였다.

장난감을 쫓는 고양이의 눈처럼 서른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심정민에게 꽂혔다.

이런 적의가 담긴 수많은 눈빛에는 익숙하지가 않나 보다.

심정민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서장님이 강 사장님과 친하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당장 지금도 업무 시간에 일부러 만나러 와서 단둘이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눌 정도니까요. 두 분이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모릅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자 서른 쌍의 눈빛이 내게 꽂혔다.

내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자연히 저런 눈빛 정도로 말문이 막히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추측은 배제하고 여러분이 아는 사실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최덕팔 씨는 터무니없이 싼 값에 강 사장님에게 땅을 팔았다. 강 사장님은 심정민 서장님과 돈독한 관계다. 심정민 서장님은 이상하다는 세무서 직원의 말에 조사하지 말고 결재 올리라고 했다.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 직원의 증언은 저희 지서로 찾아오시면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본 직원이 바로 저희 지서에 다니거든요. 자, 여기서 어떤 뒷사정이 있었는지는 주민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최덕팔이 심정민의 손에서 냅다 종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의 돋보기안경을 벗겨 형광펜이 그어진 숫자 위에 올렸다.

“아니, 시팔! 진짜잖아!”

최덕팔이 냅다 종이를 바닥에 내던졌다.

자신의 안경이 부서질까 봐 두려워한 할아버지가 얼른 그의 손에서 안경을 가져갔다.

최덕팔이 성큼성큼 걸어오자 강 사장이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왜 그런 말을 믿으십니까! 실제로 사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요! 그리고 직원의 증언이요? 같은 지서에서 일한다잖습니까. 지서장이 그렇게 증언하라고 시켰을 수도 있지!”

최덕팔이 멈칫했다.

역시 수십 년을 쌓아온 신뢰를 단번에 무너뜨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최덕팔의 시선이 다시 내게 꽂히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하실 수도 있죠. 지금 제가 속을 보여 드리면서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최덕팔 씨께서 지서로 오시면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다음이 있어……?”

위기를 넘겼다 생각했는지 식은땀을 훔치던 강 사장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를 보며 웃고는 서류 가방을 열었다.

견출지가 붙은 자료가 족히 20개는 되었다.

방금 내가 던진 돌멩이는 겨우 하나.

준비한 건 많았다.

나는 하루에 한 명씩 방문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까발릴 게 많아서.

굳이 조사관이나 검찰을 대동하지 않고 혼자 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와봤자 내 업무가 끝날 때까지 병풍이 될 테니까.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들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다음으로 김계녀 씨! 계십니까!”

“으잉? 난데, 나도 있어?”

이름이 불리자마자 70대 할머니 한 분이 부리나케 걸어 나왔다.

예쁜 꽃무늬 점퍼를 입은 분이었다.

이런 분까지 이용해 먹다니 참 개새끼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흘깃 강 사장과 심정민 서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설명했다.

“할머님, 강 사장님이 빈 통장 하나 빌려달라고 한 적 있죠?”

“응. 그랬지. 어차피 안 쓰고 쳐박아 둔 통장이라 빌려줬지.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어르신들을 등쳐먹은 저 일당들에 대한 분노를 참으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오늘은 강 사장, 내일은 옆 동네의 부동산 부자 임 사장.

매일 한 명씩, 이런 식으로 그들의 신망을 무너뜨릴 것이다.

“강 사장님이 할머님 통장 갖고 뭘 했냐면요. 강 사장이 몰래 할머님 명의로 사둔 땅이 있는데 그게 개발이 되어가지구, 국가에서 사기로 했어요. 그걸 수용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긴 일주일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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