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화. 사자 앞에서 춤을 (2)
모두 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몇 년을 알아온 시장이 이렇게 흥분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구십니까, 대체 왜! 그놈 손에 날아간 거물 숫자가 몇인지 세어보기나 했어요? 아니, 셀 수가 없지, 너무 많아서! 당신들이 국회의원보다 세요? 서울시장보다 잘났어? 왜, 뉴스에서만 보니까 시장이고 나발이고 만만해 보입니까? 신재현이 우리는 잔챙이라고 봐줄 것 같았어요?”
“시, 시장님. 왜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저희는 그냥 가볍게 밥 한 끼 같이하면서 얘기나 하자고 했을 뿐이에요. 신재현 그놈도 깨끗한 척은 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대통령이랑 밥도 먹고 그러잖습니까. 대기업이랑 사돈 맺은 친척도 있고. 저희도 무작정 생각 없이 간 건 아닙니다. 밥이 그게 무에 대수라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얼마나 멍청한 겁니까, 당신들은! 그냥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숨소리도 내지 말고 살면 됐을 것을. 신재현이 천리안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랬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데! 당신들의 그 알량한 허영심과 자만심 때문에 다 죽게 생겼어!”
시장이 말하면서도 울화가 치미는지 다시 손에 잡힌 그릇을 던졌다.
불행히도 물컵과 달리 앞접시는 살아남지 못했다.
이번엔 장식장에 맞고 와장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시장님, 고정하세요!”
“진정하시죠.”
동석한 경찰서장과 검찰 지청장이 말리자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시장도 더는 물건을 집어 던지지 않았다.
요즘에야 투표로 뽑힌 민선에 좀 더 힘이 실린다지만 검찰은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옛날에는 군수 정도면 부장 검사에게 허리를 굽히며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함께 동석한 사람이 비록 지검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청장이었다.
지방인지라 지청에 있는 검사 숫자가 세 명밖에 안 된다 해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시장은 술병을 들어 던지려다가 지청장의 강렬한 눈빛 덕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시장은 화가 안 풀리는 듯 술을 병째로 마시더니 이 일의 원흉이 된 여섯 명을 흘겼다.
경멸이 포함된 눈빛이었다.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럽니까. 이러면 나더러 뭘 어쩌라고!”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닙니까. 솔직히 시장님이 왜 이렇게 흥분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시장이 좀 가라앉은 것 같자 강 사장이 대표로 물었다.
시장의 얼굴에 다시 분노가 서렸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몰라요? 모른다고? 모른다는 말이 나와?”
다시 시장이 흥분하기 시작하자 결국 지청장이 나섰다.
“시장님이 화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그 입 다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여러분이 한 실수는 너무도 큽니다. 지금까지의 우정을 한순간에 파탄 내버릴 정도로.”
“그러니까 그게 이해가 안 간다는 겁니다. 겨우 밥 한 끼에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강 사장은 흘끔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이들이 먹고 있는 것도 밥 한 끼였다.
겨우 밥 한 끼 말이다.
자기들도 하면서 이게 뭐가 나쁘다는 건지, 이게 당연한 것 아니었던가.
시장은 입을 다물었다.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아서다.
상식이 다르다.
비록 자신들도 유지들과 엮여서 이것저것 받아먹긴 했지만 이건 알면서도 선택한 거다.
잘못인 걸 아니 당당하게 떠벌리지 않는다.
위험을 피해 간다.
뭘 하면 안 될지 각을 아주 잘 잰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유지들은 그것조차 못해서 자신들이 뭘 했는지 파악도 못하는가?
검찰의 지청장은 빠르게 파악을 끝냈다.
‘오래 사귈 부류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군. 우물 안 개구리야. 지방에 내려온 공무원들이 하나같이 저들과 놀아나니까 다들 그런 줄 아는 거야. 쯧, 선배들이 버릇을 잘못 들였군.’
그러나 이 지역에 발령 왔던 선배 공무원들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지역 유지들은 적당한 거리감만 두면 이용해 먹기가 참 좋았고 소소한 용돈벌이도 되었다.
이 심심한 곳에서 놀다 간다고 생각하면 지역 유지들과 사귀는 건 나쁘지 않았다.
‘오래 사귈 생각이 아니어서 깊은 얘기를 안 한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아마 그 전에 이들과 ‘밥 한 끼’ 함께한 다른 고위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본인들도 떳떳하지 못한데 뭐라고 알려주겠는가.
‘이건 원래 잘못된 거다, 지역 유착이다’라고?
이들에게 있어 이미 고위공무원은 이미 밥 사 주면 편의 봐주는 자판기나 다름없다.
나쁘게 말하자면 얕잡아 보였다는 뜻이다.
결국 지역 유착한 이들 탓이었고 그걸 지적할 생각도, 고칠 생각도 없었다.
적어도 시장과 지청장, 그리고 경찰서장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어떻게 탈출할까.’
저 하룻강아지 같은 놈들과 계속 한배를 타면 굴비 두름처럼 엮여서 끝장날 게 분명했다.
애초에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겠다, 이쯤에서 손절하는 게 이득이었다.
어차피 이들에게 받아먹은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밥 먹을 때마다 푼돈 조금 받은 것뿐.
결심을 내린 지청장은 상황을 정리했다.
“이야기가 계속 평행선을 달리는군요. 저희는 분명 사장님들을 생각해 경고를 해드렸는데 알아듣지 못하시니. 별일 아니라 생각하시면 알아서들 해결하세요. 저희는 신재현의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군요.”
차분한 어조였지만 뜻은 명백했다.
너희들이 싼 똥은 알아서 치워라.
“지청장님, 말씀을 너무 서운하게 하십니다. 그동안 저희가 해드린 게 얼만데.”
평소 기름칠을 하는 건 어려울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별것도 아닌 일에 꼬리를 말면 나중에 정말 중요한 시점에서는 도움을 얻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청장은 단호했다.
자기 자리가 걸린 일인데 당연했다.
이들이 뭘 어떻게 협박하든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글쎄요. 뭘 했죠?”
“지청장님!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모르는 척하시면 저희도 할 말이 많습니다.”
지청장은 피식 웃었다.
그에게 있어 이런 지역 유지들은 그야말로 쓰다 버리는 말이었다.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항상 하는 착각이 있어요.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 비슷한 급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죠. 겸상 좀 해줬더니 뭐라도 되는 것 같습니까?”
사장들의 얼굴이 파리하게 굳어졌다.
설마 면전에서 이런 모욕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여러분 같은 사람이 없었을 것 같습니까? 같이 밥 먹은 걸로 문제가 될 수는 있겠죠. 그래서요? 조금 질책은 받겠지만 나는 그걸로 끝입니다. 당신들은? 검찰의 지청장을 적으로 돌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검찰청 조사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고 싶어요?”
“아, 아니. 그렇게 받아먹었으면서…….”
“뭘 받았다는 겁니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만. 어디 지청장을 함부로 모함합니까? 제가 여러분에게서 뭘 받았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죠?”
단순한 사장들이어도 이 말은 알아들었다.
그동안 현금으로 줬으니 증거도 남지 않는다.
일반 검사도 아니고 지청장인데 함부로 건드렸다가 완전히 죽이지 못하면 사장들은 끝장난다.
이 지역에서야 위세가 등등하지만 그뿐이다.
만약 지청장이 옷을 벗는다 해도 검찰 내부에 영향력이 남아 있으면?
사장들이 잃는 것이 너무 많았다.
행정 쪽에는 무지하더라도 이해득실의 계산은 빨랐다.
사장들은 지청장에게 대꾸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권력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이번 일을 무사히 해결하시면 우리가 또 술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무사히, 잘 해결하시고 오길 바라겠습니다.”
지청장은 말을 끝내자마자 일어섰다.
시장 역시 먹던 술을 던져 버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이미 분노가 가득 차오른 데다 병나발까지 불었으니 말이 곱게 나오질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한테 책임져 달라고 연락하지 마세요. 자업자득이니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란 말입니다.”
시장이 다음으로 자리를 박차며 나가 버렸다.
분위기는 나락으로 치달은 지 오래였다.
경찰서장은 돈이 아깝다며 아직도 푸짐하게 끓고 있는 해물탕에서 급히 비싼 재료만 골라 먹었다.
그러고 나서 입가심으로 술 한 잔을 비우고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박해 보이는 몸동작이었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정리되면 또 만납시다.”
경찰서장까지 떠나가자 남은 유일한 공무원인 세무서장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심정민 역시 별생각 없이 괜찮겠지, 싶어서 사장들 편을 든 거였는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미 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퍼뜩 정신이 들자 몰려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뭐야, 반응이 왜들 저래? 인사만 간 거잖아. 다들 밥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처먹으면서 왜?’
이 모임에서 가장 실세라 할 수 있는 두 명이 정색했고, 경찰서장마저 떠났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참, 너무하십니다! 겨우 인사한 것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깔아뭉개도 되는 겁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잖아요.”
“지청장님도, 시장님도 다 그렇게 하셨으면서 저러는 건 우리를 무시한 처사입니다. 김영란 법인가 뭔가 무서운 건 알겠는데, 그래서 밥 먹는 게 불법이에요? 친구 사귀는 게 불법이야? 앞으로 같은 동네에서 오며가며 만나도 아는 척하면 안 되겠네!”
지청장과 시장의 언사에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사람들이었다.
사장들은 심정민이 듣고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만을 토해냈다.
지청장이 있을 때는 끽소리도 못했지만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는 않았다.
“이건 서장님께도 예의가 아니지! 서장님도 안 좋은 소리 듣고 오셨는데 나서서 따끔하게 혼을 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우리더러 잘못했다니. 그렇지 않습니까, 서장님?”
아직까지 남아 있던 심정민을 끌어들이기 위해 슬쩍 떠보는 대화였다.
심정민은 솔직한 심정으로 이들과 동감이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는 냄새는 잘 맡았다.
심정민은 피하듯 일어섰다.
“아, 저도 급한 일이 생각나서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제가 연락드리죠.”
겉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대충 손에 들고 도망치듯 나가는 심정민을 보고는 남은 다섯 명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젠 서장까지 우릴 무시해!”
그들은 남은 술병을 가져와 물컵에 부어 마시고는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내던졌다.
“받아먹을 땐 좋다고 처먹어 놓고 겨우 이런 걸로 본색을 드러낸다 이거지?”
“공무원 놈들이 겁이 많아. 저러니까 서울 못 가고 촌구석에서 돈이나 받아먹고 있지.”
사장들은 지금 자신들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한참이나 어린 지서장에게 면박당하고 술친구인 줄 알았던 지청장에게는 분수를 알라는 말이나 듣고.
신재현이나 지청장 앞에서 느꼈던 정체 모를 공포는 분노로 바뀌었다.
그들은 그 분노의 방향을 모조리 신재현 탓으로 향했다.
“어디, 우리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두고 보라고. 서울 촌놈한테 지역사회의 힘을 보여줄 테니까.”
저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신재현을 끽소리도 못하게 밟아서 다시는 자신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해주겠다.
사장들은 그 일념으로 불타고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각자 한자리씩 꿰차고 있는 네 명의 공무원이 겁을 먹은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이들은 거기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고려할 생각조차 없었다.
“전면 전쟁이야!”
술기운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이들 중에서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스스로 사자 굴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가만히 있던 사자 앞에서 나 잡아 잡수시라고 춤추고 있다는 것도.
아직은 깨닫지 못한 시점의 의기양양한 도원결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