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화. 중부지청 제3지서 (5)
지서장실은 작았다.
내가 아는 용산 세무서 서장실이 딱 이런 식이었는데.
지서는 새로 만들었지만 안의 가구는 새것이 아니었다.
어디 청이나 세무서에서 창고에 남는 가구들 가져다가 구색을 맞춰 놓은 모양새다.
사실 가구와 집기 관련해서 중부지청에서 요청사항 없냐고 질문이 들어오긴 했다.
정확히는 중부지청의 운영지원과다.
중부지청 산하에 새로 세우는 지서니 거기서 예산 배부를 맡은 듯했다.
-요구사항 있으시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책상이나 의자는 원하시는 브랜드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아뇨. 그냥 딱 평범한 지서처럼만 맞춰주세요.
-평범한 지서처럼요……?
-네. 그 특유의 세무서 분위기 있잖아요. 익숙한 그 느낌.
-어……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분명히 처음 생긴 지서인데 어딘가의 세무서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그래서 ‘어? 원래 여기에 세무서가 있었던 건가?’ 싶은 느낌을 말씀하시는 거죠?
-……음? 개떡같이 말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네요.
-구매 집행 담당이니까요.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거였다.
평소 얼마나 기상천외한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살길래 이렇게 잘 알아듣는지 내가 봐도 신기하다.
운영지원과 직원이 말했던 대로, 정말 어디 세무서를 떼 온 것처럼 익숙한 냄새가 났다.
지역 세무서 특유의 낡고 친근한 냄새.
가구에 사용감이 있는 걸 보니 새로 산 건 아닌 것 같고, 어디 지청이나 세무서 창고에 있던 걸 빼온 거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대단했다.
딱 내가 원하던 식이었다.
앉으면 움푹 들어가는 소파와 잔 상처가 남아 있는 책상을 보니 옛날 용산 세무서가 생각났다.
거기 소파도 오래되어서 가죽 곳곳이 갈라졌는데.
책꽂이에는 실무서 몇 권과 세법전이 꽂혀 있었다.
세법전이래 봤자 두꺼운 법전 하나면 끝인데 왜 저렇게 많은가 했더니 2023년 작년 것부터 근 10년 어치가 꽂혀 있었다.
이것도 어디 창고에서 가져왔는지 책 윗부분이 누렇게 바래 있었다.
올해 것은 아직 발매되지 않았으니 아마 한 달 정도 지나면 2024년 개정판 세법전 사라고 연락이 올 것이다.
실무서도 마찬가지로 작년 것들이 꽂혀 있었고.
나와 가장 가까운 책장에 내가 가져온 실무서를 꽂아 넣었다.
그러고도 빈자리가 많이 남았다.
다른 서장실은 어땠더라?
간혹 상패나 표창장, 그리고 단체 사진 같은 것들이 꽂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빈 책장 앞에 서서 잠시 고민하다가 뭘 넣을지 결정하지 못한 채 책상으로 다가왔다.
결재 도장과 결재판, 내선 연결된 전화기와 필기구 약간.
책상 앞에 앉자마자 어색함이 확 밀려들었다.
어쩐지 여기 의자가 아니라 책상 앞에 서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래의 내 자리라면 당연 책상 앞인데 이제는 내가 여기에 앉아 있다.
지서 총책임자의 방, 그리고 그 방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어쩐지 적막했다.
항상 귀에 들리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직원들의 잡담이 없었다.
이젠 정말 나 혼자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외로워졌다.
“와, 큰일 났네.”
안 하던 혼잣말까지 나왔다.
다른 서장이나 청장들은 대체 혼자 방에서 뭐 하고 지내는 거지?
정신없이 일해야 할 것 같은데 한가하니 손이 근질거렸다.
각 팀에 지시한 건 있었지만 나는 총지휘만 할 뿐, 그걸 취합해서 보고서가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금까지는 직원들과 부대끼면서 직접 알아보고 지시했는데, 실무에서 아예 손을 떼고 보고를 기다린다는 게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뭘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크게 작용했다.
아, 이래서 부장이나 대표들이 매일 회의를 여는 건가?
나도 회의를 소집할까 생각해 봤지만 바로 마음을 접었다.
내가 직원일 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이럴 시간에 일하겠다, 왜 쓸데없이 부르고 난리냐.
그렇다. 회의는 능사가 아니다.
그럼 내가 내려가서 살펴보는 수밖에 없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오, 벌써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니.
괜히 반가워졌다.
아니지, 황민우가 보러 왔나?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괜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내 예상과 달리 들어온 사람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우리 지서 식구들은 대충 얼굴을 다 안다.
이름까지는 못 외웠지만 보면 어느 팀인지 정도는 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눈앞의 중년 여자는 지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습관적으로 그 머리 위의 숫자부터 훑은 뒤였다.
아침에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사람이 있다는 건가.
저 사람도 어지간히 해먹었네.
누군지 이름은 들어야겠기에 나는 일단 가만히 자기소개를 기다렸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선 50대 여자는 가만히 안을 둘러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어디서 이런 골동품들을 갖고 왔대요? 차단스 이거 완전 옛날 디자인이네.”
유리문 달린 장식장과 책장을 보고 한 말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저런 말을 자주 쓰긴 했는데.
“지서장님이 젊은 분이라 신식 가구로 맞춰서 넣었을 줄 알았더니 어디 세무서 통째로 뜯어온 거 같네요. 내 사무실에도 이거 하나 있는데. 책꽂이는 전부 흰색으로 바꿨지만.”
그녀는 책장 안을 들여다보더니 생각났다는 것처럼 자기소개를 했다.
“미안해요. 너무 궁금했거든. 저는 이 옆에 있는 세무서 서장입니다. 심정민이에요. 부임을 축하드립니다, 신재현 지서장님.”
나는 얼른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심정민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경계의 눈빛은 잽싸게 넣어둔 후였다.
상대는 서장, 그렇다면 최소 5급이다.
1급지 세무서라면 4급일 테고.
일이 흥미진진해지네.
“신재현입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심정민을 소파로 안내했다.
“아, 식사라도 같이할까 해서 왔는데. 혹시 점심 먹었어요? 식당도 알려 드릴 겸 같이 나가실래요?”
“먼저 먹었습니다.”
나도 지리 익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일찌감치 나가서 근처 한 바퀴를 돌았고 적당히 한 군데 들어가서 먹고 온 참이었다.
내가 이미 먹었다고 하니 심정민은 아쉬워하며 소파에 앉았다.
“연락 주셨으면 기다렸을 텐데요.”
“원래 오늘 올 생각이 아니었거든요. 지서장님한테 와야겠다 마음먹은 게 12시였습니다. 그때 전화하려고 보니 연락처를 몰라서요. 같이 먹으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 싶어서 왔는데 늦었네.”
문득 나는 심정민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올 예정이 아니셨다는 말은 갑작스럽게 일이 생겼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갑작스럽게 방문할 일이 뭐가 있을까.
국세청에서 뭔가 지시가 내려온 것도 없는데.
오전에 있었던 일이라면 딱 하나, 개서식 때 지역 유지들과 싸운 것뿐이다.
그 직후에 찾아온 옆 동네 서장이 머리 위에 숫자를 달고 있다라.
나는 진하게 미소를 띠었다.
-표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웃으세요.
이선균이 가르쳐 준 것이다.
입가의 근육이 씰룩일 정도로 강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음, 뭐라 말해야 할까요.”
급하게 온 거라 딱히 말을 준비해온 건 아닌 듯했다.
그래서 나는 기습 공격을 던져 보기로 했다.
“오전에 저한테 선전포고 받고 돌아가신 분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이르던가요? 새로 온 지서장이 세상 물정을 모르니 어른인 서장님이 가서 좀 달래보라고?”
심정민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가 이내 가늘게 접혔다.
웃는 낯은 아니었다.
기분이 확 나빠진 얼굴이었다.
“말씀이 심하시네요. 원래 그렇게 공격적인가요?”
“그럴 리가요. 윗분들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청장님을 따라다니면서 직접 배웠거든요.”
“그런 것치곤 만나자마자 죽자 사자 달려드시네요.”
심정민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탈세하고 다닌 서장님이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뭘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것 같던 정신이 바짝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적과 아군이 뚜렷하게 보이는 이 순간이 가장 상쾌하다.
“서장님께서 왜 오셨는지 알 것 같아서요. 이렇게 부랴부랴 오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그 사장님들과 꽤 친하신가 봅니다.”
탈세액만 5억이 넘어가는 사람이 아침 그 사건 이후 선약도 일정도 잡지 않고 갑작스레 찾아왔다.
의심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만약 지역 유지들과 연관이 없다 해도 미안하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세무서장이라면 탈세액 5억이 뜰 리가 없으니까.
“이보세요, 신재현 지서장. 좋게 좋게 말하려 했더니. 사람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겁니다. 적당히 하세요.”
“그러니까 용건을 말씀하시라는 겁니다. 왜 오셨는지요. 12시쯤 여기 올 마음을 먹었다고 하셨죠? 그럼 같이 밥 먹자고 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걸 서장님도 아셨을 겁니다. 제게 연락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요. 지서 대표번호로 전화해서 절 바꿔달라고 하든 말 전달을 시키면 되는 일 아닙니까. 결국 밥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거죠. 자, 얼른 말씀하세요. 왜 오셨습니까?”
내가 추궁하자 서장은 어물거렸다.
“어차피 이제 와서 그냥 갈 순 없으시잖아요. 편히 말씀하시죠.”
서장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괜히 왔나, 라는 말을 언뜻 들은 것도 같았다.
서장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차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잘 들어요. 내가 선배로서, 그리고 윗사람으로서 조언하러 온 거니까.”
역시나 그랬군.
예상했던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서장의 말을 들으면서도 입이 근질거렸다.
이래서 차가 필요한 거구나.
환영할 만한 손님이 아니라 차를 안 낸 것도 있지만 애초에 내 방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구석에 작은 테이블과 커피포트는 보인다만.
“……듣고 있죠?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깁니다. 난 신 지서장 좋게 보고 뭐 일이라도 터질까 봐 조언하러 온 건데,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거면 뭐 하러 왔는지 모르겠네. 일단 왔으니까 얘기는 할게요. 사람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여긴 여기의 법이 있어요. 신 지서장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는 나도 아는데 그렇다고 공무원이 국민 없이 존재할 수는 없잖아요. 더불어 사는 겁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하나가 되어야 해요.”
“돌려서 말씀하시니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서장님께서 말씀하셨듯 제가 이런 자리도 처음이고 지역사회에서 뭘 요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하라는 겁니까?”
내가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을 하자 서장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고서 최대한 문제가 없도록 말을 굴렸다.
“아침에 싸운 사장님들과 화해하라는 소리입니다.”
대놓고 말실수를 노린 건 아니었지만 꽤 신중한 사람이네.
이 이상의 유도는 어려울 것 같다.
이젠 내가 적당히 거절하고 돌려보낼 차례인 것 같은데.
뭐라고 할지 고민하고 있자니 밖이 뭔가 시끌시끌했다.
바로 뒤꼍에서 누군가 싸우는 것 같았다.
창문을 닫아놨는데도 3층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꽤 정확하게 들렸다.
뭐라고 하는지는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 지서장님이 하는 일이 나쁩니까? 해야 하는 일이고 세무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이죠? 그럼 고민할 게 뭐가 있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안개가 걷힌 기분이 들었다.
그래, 지서장 됐으니 뭔가 특별히 바꾸자고 생각했던 게 사실 필요 없던 일이었다.
간단한 일이었는데.
아래층에서 창문 열리는 소리가 나고 또 무언가 대화가 오갔다.
이후는 목소리가 작아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그렇다고 하네요.”
“지서장과 일반 직원이 같나요? 판단을 그르치지 마세요.”
“제 판단 기준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세법. 세금 낼 게 있으면 정당하게 법에 따라 계산해서 고지할 거고, 여기에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면 사적인 무언가가 끼어들 여지가 있나요? 애초에 왜 이렇게들 난리신지 모르겠군요. 유착 혐의가 보여서 조사한다고 했을 뿐이고, 탈세 안 했으면 그만입니다.”
“아예 탈세범이라고 낙인찍고 하는 표적 조사 아닙니까!”
“그럼 서장님도 절 조사하세요. 전 언제 털어도 자신 있거든요.”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서장이 입을 딱 벌렸다.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역 주민을 적으로 돌리겠다고요?”
“지역 주민을 욕먹이는 건 오히려 서장님이십니다. 지역 전체가 탈세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저와 이 지역의 싸움으로 몰아가는 겁니까? 선량하게 사는 사람들 무시하지 마세요. 제 목표는 어디까지나 탈세한 사람들뿐이고, 그들은 지역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서장의 말을 끊었다.
“저는 이만 바빠서 일어나겠습니다. 서장님도 괜히 위치를 헷갈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장님은 어디까지나 세무공무원이에요.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무사가 아니라.”
그게 엄청난 모욕이었나 보다.
지금껏 내가 뭐라 해도 불쾌한 기색만 조금 내비치던 서장의 숨이 거칠어졌다.
당장에라도 소리 지를 것처럼 얼굴이 벌게지더니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리고 날 노려보다가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인사조차 없었다.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다.
그래도 조사할 거지만.
-달칵.
나는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
첫날부터 회의 소집하거나 사무실에 찾아가는 게 미안하다면 까짓거 내가 알아보면 되지.
이제까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내가 먼저 확인하고 지시사항을 내리면 되는 거였다.
엔티스 시스템에 들어가 내가 제일 먼저 띄운 것은 방금 돌아간 서장 심정민의 소득세 신고서였다.
재산팀에는 자산 조사를, 소득팀에는 소득 세부사항을.
뭘 어떻게 지시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설계가 잡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