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화. 중부지청 제3지서 (4)
개서식은 짧았다.
신재현이 한 말이라고 해봤자 30초도 안 되고, 그 후엔 유지들과의 대화가 끽해야 10분이었으니.
그러나 겨우 10분이 될까 말까 한 그 짧은 시간은 지서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래도 되는 거예요?”
점심시간, 작은 지서라 구내식당이 없었기에 직원들은 도시락을 먹거나 근처 식당으로 나갔다.
여유롭게 밥을 먹고 시간이 남자 직원들 몇이 지서 뒤에 모였다.
지서 건물 주변을 감싼 울타리와 지서 건물 사이의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경차 하나가 지나갈 정도의 너비이기도 하고, 울타리와 건물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추워서 직원들은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처음엔 약 대여섯 명 정도였다.
“저도 모르겠어요. 지서면 낮에 졸 정도로 일이 없어야 정상인데. 이건 내가 알던 지서가 아닌데…….”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니에요? 정말 건드려도 되나?”
“그야 지서장님은 저런 사람들 건드려도 상관없는 분이겠지만 저희는 괜찮을까요?”
“아, 진짜 무섭다. 그만두고 싶다…….”
건물 뒤라 밥 먹고 들어오는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도 시간이 지나자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고 오나 했더니, 답답해서였다.
“아이고, 여기들 다 계셨네.”
그중에는 소득세팀장도 껴 있었다.
“팀장님! 헉, 죄송합니다. 금방 들어가겠습니다.”
“아니에요, 다들 무슨 생각일지 뻔히 아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 업무 시간 되면 들어갑시다.”
소득세팀장은 말없이 건물 벽에 등을 기댄 후 담배를 빼어 물었다.
다른 직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여기서 모이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었다.
오전에는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지만 막상 밥을 먹고 나니 사무실 들어가기가 무서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얘기를 어디 식당이나 카페에서 할 수도 없고, 갈 곳 없는 직원들이 어딜 가겠는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건물 뒤로 오게 된 것이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한 개비씩 물자 금세 연기가 자욱해졌다.
흡연자들이 한쪽으로 뭉치자 비흡연자들이 바람을 등지고 섰다.
담배 연기를 맡으면서도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다들 쉽사리 입을 떼지 못 했다.
팀장이 하나 껴 있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얘기를 편하게 못하는 것 같네요. 이것만 피우고 들어가겠습니다.”
팀장이 깊게 연기를 빨았다가 훅, 하고 내뱉었다.
꽁초가 빠르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바람 부는 방향에 서 있던 비흡연자 직원 하나가 못 참고 물었다.
“팀장님, 정말 이거 괜찮아요? 지서장님이야 그렇다 쳐도 저희는 힘없잖아요.”
곳곳에서 수긍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서 팀장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부분을 우려했다.
‘잘못하면 지서가 시작도 하기 전에 안에서 무너지겠네. 지서장님이 너무 극약처방을 하셨구만.’
직원들이 상사 없는 곳에서 뒷담하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때문에 적당히 담배만 피우고 들어가려 했던 팀장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높이 있을수록 그림자에서 피어난 공포를 눈치채기 어렵다.
그리고 공포는 빨리 퍼지게 마련이다.
팀장은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함을 느꼈다.
“뭘 그렇게 걱정이 많습니까. 우리야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건데.”
“그걸 저 사람들이 알겠어요? 현장에서 마주치는 건 저희잖아요. 적당히 하면 분명히 지서장님한테 혼날 테고, 그렇다고 세게 나갔다간 저 사장님들이 저희한테 뭐라 하실 거고. 중간에 껴서 얻어터지는 건 결국 저희잖아요. 이건 너무해요.”
팀장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일이 많고 복잡해서 불평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비록 지서지만 글러먹은 놈들이 온 건 아니었다.
진짜 되다 만 놈들 같으면 여기서 고민하고 있을 게 아니라, 저녁에 지역 유지들 만나서 자기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빌붙을 생각으로 가득 찼을 테니까.
“음, 지서장님도 현장 출신입니다. 실무는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고. 그걸 모르고 일을 벌이셨을까요?”
“지서장님은 원체 강한 분이시잖아요. 국회에서도 눈 하나 깜박 안 하는 분인데 이런 지서가 눈에 차시겠어요? 저희는 소시민이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침울한 분위기 속에 팀장이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들었다.
하나로는 부족했다.
“으음, 지서장님도 처음부터 그랬을까요?”
“네?”
“지서장님이 이례적으로 승진이 빠르다지만 처음부터 눈에 띈 건 아니었잖습니까. 우리랑 뭐가 달랐을까요. 시작할 때 7급이었다는 거? 여기도 7급은 있는데요.”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직원들의 얼굴이 가라앉자 팀장은 피식 웃으며 라이터를 켰다.
겨울바람이 아까보다 거셌다.
어렵사리 불을 붙인 팀장은 차분하게 말했다.
“지서장님이 하늘 위의 존재인 건 아닙니다. 실무 뛰어본 분이고, 100명이나 되는 조사단을 맡아서 굴린 분이에요. 충분히 계산하셨을 겁니다. 아니면 뭐, 지서장님이 직원들은 모른 척할까 봐 걱정인 겁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나빠 보이잖아요.
직원들은 뒷말을 꿀꺽 삼켰다.
본질을 말하자면 저 말이 맞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이익이 무서웠으니까.
그들이 지금까지 봐온 건 항거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모조리 한통속이 되어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는 판이다.
대단한 직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무서 공무원이 뭘 하겠는가.
날이 추워서인지 아니면 이 대화 때문인지 어쩐지 다들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지서장님은 이미 나중에 청장 자리 가실 거라고 내정된 분이고, 적어도 지금 대한민국에 지서장님을 건드릴 사람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뀐다 해도 마찬가지예요. 지서장님이 정신이 나가서 술 먹고 명동 한복판에서 음주운전이라도 하면 모를까, 웬만한 사건으로는 명성에 흠집조차 안 갈 겁니다.”
“그러니까 그건 지서장님 얘기고…….”
“마찬가지예요. 지서장님이 지금까지 자기 사람 버리신 거 봤습니까? 조사단은 아예 사직서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조사단 만들어질 때 우리들은 거기 묫자리라고 불렀어요. 미친놈들이 죽을 자리 찾아서 들어간다고. 근데 지금 그 사람들이 다 어떻게 됐나요? 과장 달고 팀장 달고. 다 좋은 자리로 승진했습니다. 이제 와서는 아무도 묫자리라고 안 불러요.”
“그건 일이 잘 끝나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아니요. 착각하시는군요.”
팀장은 딱 잘라 말하며 신발 바닥에 꽁초를 비벼 껐다.
“지서장님은 자기 사람은 안 버린다는 겁니다. 이상한 짓 하면 가차 없이 잘라 버리고 내쫓으시지만 억울하게 내친 적은 없어요. 평범한 공무원이라도 잘 따라가면 살길은 마련해 줍니다. 아니, 아예 못 건드리게 하죠.”
“그걸 어떻게 장담하십니까? 원래 일반 직원일 때와 책임직일 때는 다른 법 아닌가요?”
아직도 불안해하는 직원들을 향해 팀장이 뭘 그런 걸 묻냐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까지 행적 보면 알잖습니까. 상상보다 그게 훨씬 더 정확한 증거 아닙니까?”
“어…….”
“지서장님과 청장님 모두 이런 사태는 짐작하셨을 겁니다.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지. 지방이 어떤지 모를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어쩌면 일부러 그걸 노리고 발령 내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팀장은 입맛을 다시고는 뚜벅뚜벅 걸어가 쓰레기통에 꽁초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뒤꼍을 떠나며 흘리듯 말했다.
“어쩌면 잘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놈들을 엎어버릴 최고의 기회일 테니까.”
팀장이 떠나고 나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열댓 명 정도의 직원이 남아서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누군가 입을 열었다.
“팀장님이 저러시는 거 보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죠?”
왠지 다들 아까와 다르게 침착해져 있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은 있었지만 이유 모를 막연한 두려움은 많이 떨어져 나갔다.
“우리가 그냥 설레발 친 거라고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정말 큰일이라면 팀장님들부터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요? 그야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지서장님이 실무자들 버릴 분이 아니시라면…….”
“그래 봤자 윗대가리들은 다 똑같아요.”
“아까 사장님들한테 하는 거 보셨잖아요. 그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경우던가요?”
다시 침묵이 깔렸다.
이번에는 다들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국회까지 날리고 전 대통령도 조사하는 사람인데 뭔가 달라도 다르겠죠. 저는 지서장님 믿겠습니다.”
“그렇죠? 괜히 걱정할 필요 없겠죠?”
직원들이 나름 마음을 정리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 혼자서 분위기가 다른 직원이 하나 있었다.
연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9급의 민원실 신입 직원이었다.
그는 눈을 반짝거리며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까 팀장님도 그러셨잖아요. 이건 오히려 엄청난 기회라고요!”
“예? 그,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좋아해야죠! 직원들끼리는 힘이 없어서 뭘 못한다면서요. 그걸 지서장님이 몸소 앞장서시겠다는 거잖아요. 지서장님이 절대 실패하실 리도 없고. 지서장님 밑에서 조사하는 걸 겪어볼 수 있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어요!”
두 눈을 빛내며 흥분하는 신입을 보며 직원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혹시 신재현 추종 세대…….”
“네! 지서장님이 멋있어서 세무직 시험 봤습니다!”
“아…….”
요즘 들어 이런 신입은 흔했다.
신재현이 두각을 드러낸 후 몇 년이 흐른 지금, 세무직 공무원 지원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했다.
그 말인 즉슨, TV에서 신재현의 활약을 보고 동경해서 ‘나도 정의 구현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검사물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비슷한 사회 현상이었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어차피 실무 뛰어보면 적응하게 되어 있으니 양질의 응시생들이 늘어나는 건 국세청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이상과 현실이 달라서 적응하지 못해 사직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졌지만, 원래 세무직은 면직율이 높았다.
1년 내에 그만두는 사람이 매년 20~30%는 넘나드니까.
직원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국세청을 운영하는 윗선들은 이런 현상을 기꺼워했다.
업무 강도와 높은 면직율 때문에 한때 응시생 숫자가 줄어들어 걱정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고르고 걸러진 사람들이 남는다.
물론 이건 윗선의 생각이고, 현장에서는 혼돈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 신입 직원처럼 말이다.
“대체 뭘 걱정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다 갖춰졌는데.”
팀장의 말도 있었고 대부분은 희망회로를 돌렸지만 아직도 차가운 태도인 사람이 몇 있었다.
그들은 특히나 신재현 추종자 세대를 싫어했다.
현실 감각 없이 의욕만 앞서서 주위에 폐를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대변하듯 무시하는 말투가 찌르듯 날아왔다.
“지서장님이 잘났지 우리가 잘났습니까. 이래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나온 거예요. 당신은 정말로 지역 유착의 무서움을 몰라. 단순히 사장 한두 명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전체와 싸우는 거라고요. 꼭 당해봐야 아픈 줄 알지. 다른 분들은 이번 싸움 승률을 높게 치시나 본데, 전 아닙니다. 그냥 외압은 버틸지 몰라도 피 말려 죽이는 건 정신적인 의지로 안 되는 일이에요.”
직원의 차가운 말에 신입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욱하는 게 얼굴에 뻔히 보였다.
아침에도 비슷한 소리를 들은지라 신입은 이미 임계점을 넘은 상태였다.
“아까 지서장님이 하신 말씀 못 들으셨죠? 다 조져 버릴 거라고. 저는 지서장님을 제 롤모델로 삼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추종이든 신앙이든 뭐라 부르셔도 상관없어요. 지금 지서장님이 하는 일이 나쁩니까? 해야 하는 일이고 세무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이죠? 그럼 고민할 게 뭐가 있나요? 우리더러 직접 총대 메고 싸우라고 한 거 아니잖아요. 지서장님이 직접 싸우는 거잖아요!”
신입의 말에는 울분이 섞여 있었다.
처음엔 그나마 소리만 치던 것이 나중에는 물기가 서렸다.
목소리가 컸기 때문인지 머리 위쪽에서 드르륵 소리가 나며 창문이 열렸다.
소득세팀과 재산팀 쪽에서 얼굴을 내밀어 구경하고 있었다.
“오, 말 잘하는데! 신입인가? 어느 팀?”
“민원실입니다.”
“민원실장님 속 좀 썩이시겠네. 그래도 난 그런 마음가짐 싫어하지 않아서. 열심히 해봐요.”
창문 위로 빼꼼 튀어나온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사무실 안쪽에서 ‘추워요! 문 좀 닫아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이것만 말하고 닫을게요. 그 밑에 계신 분들! 고민 많은 건 이해하는데 슬슬 점심시간 끝나가거든요. 일단 들어와요. 손님 오셨거든. 자리 비운 거 남한테 보이면 안 좋잖아요. 그리고 목소리가 커서 지서장실까지 다 들리겠어.”
“손님이요? 누구요?”
이들이 뒤에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방문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개서 첫날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손님이 생각보다 거물이었다.
“원래 여기 관할하시던 옆 동네 세무서장님이요.”
여자는 정말 자기 할 말만 끝내고 창문을 닫았다.
어리둥절한 신입에게 찌르듯 내뱉은 직원이 눈을 흘겼다.
“거 봐요. 벌써 압박하려고 왔잖아.”
“그게 왜 압박인가요?”
“여기 관할이었던 서장님이면 지역 유착 고리 중 하나니까.”
툭 내뱉은 시니컬한 직원이 뚜벅뚜벅 건물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신입이 질세라 뒤를 쫓았고 남은 직원들은 한숨을 내쉬며 저마다 들고 있던 음료수와 꽁초를 정리했다.
“진짜 하루가 기네.”
지금까지 숱한 세무서를 돌았지만 이만한 난리통은 없었다.
이제 겨우 개서식 첫날의 반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