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화. 중부지청 제3지서 (2)
중부지방국세청은 강원도 일대를 담당한다.
그중에서도 제3지서는 여러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신재현이 지서장이라는 것 자체가 국세청을 강타할 뉴스였고 그 자그마한 지서에 집중되는 눈길이 상당했다.
-국세청의 저승사자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일은 편하겠지.
-아냐, 반대야. 일이 더 많을걸? 본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소문 들었는데 일이 없으면 만들어내는 사람이랬어.
-미친!
신재현이 지방으로 가는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전과 상황이 달랐다.
제주도의 연수원을 갈 때는 징계 명목이라 좌천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번엔 누가 봐도 명실상부한 영전이었다.
장차 책임자 자리를 맡기기 위해 작은 지서로 보내 조기 교육 시키는 거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지서를 아예 새로 만들어서 보내준단다.
-와, 청장님 사랑이 넘치시는데요?
-넘칠 만하죠. 예뻐 죽을걸요? 눈치 안 보고 세무조사 해도 되지, 체납액은 줄어들지. 세수도 역대 최대 갱신하고 있지. 그것뿐인가, 여론도 공공기관 신뢰도에서 국세청 1위 뽑고 있지. 매일매일이 행복하실걸요.
정작 오낙현으로서는 신재현과 민치호에게 치여 마냥 행복한 나날은 아니었지만, 그건 일반 직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섣불리 지서에서 작업 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이렇게 생각했다.
막상 첫날부터 대놓고 작업이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뜻이다.
“와, 우리가 얕본 걸까요?”
민원실에서 사업자 발급을 위한 프로그램을 체크하던 직원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동사무소를 떠올리게 하는 자그마한 민원실이라 작게 말해도 금세 모두에게 들렸다.
전 직원이라고 해봤자 현재 있는 사람은 8명뿐이었다.
민원실 5명에, 납세자보호팀 3명 말이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아직은 서먹서먹했지만 대화는 부드럽게 이어졌다.
“이 정도면 양반이죠. 평범한 시골 세무서답네요. 유명인이 지서장으로 와서 혹시나 했는데 어김없어서 참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게요. 오히려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내가 아는 세무서지…….”
직원들은 씁쓸하게 웃었다.
본청이나 수도권 세무서에서 쇄신이니 뭐니 하며 들썩거릴 때도, 지방 세무서는 ‘그게 뭔가’ 하는 반응이 태반이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행정력이 미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중앙청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은근하게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곤 했다.
당연하게도 여기서 이런저런 일이란 좋은 뜻이 아니었다.
방금 있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래도 조용히 나갔네요. 다른 과도 들르실 줄 알았는데.”
“그분은 누구예요? 혹시 아시는 분 계세요?”
“아, 그분 지역 유지세요. 아는 사람은 아는 알짜 부자라고 해야 되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비싼 소나무가 있어 가지고 그거 팔고 부자 되신 분이에요.”
졸린 눈으로 책상을 닦던 직원 하나가 설명했다.
“제가 옆 동네 세무서에 있었거든요. 지서 생기기 전에 여기 관할하던 곳이요.”
“아, 어딘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좀 멀리서 왔는데. 저어 남쪽의 2급지였거든요.”
“여기 계신 분들 거의 비슷하지 않으실까요?”
발령받는다 해도 보통은 본인이 다니던 곳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지방 다니던 사람이 지방 세무서로 오고, 지서 다니던 사람이 지서로 온다.
일반 직원이 승진해서 지방 세무서 팀장으로 가면 몰라도.
수도권 세무서에 있다가 지방 지서로 발령 나면 좌천이라는 뜻이니까.
가끔 T.O가 턱없이 부족한 곳에 넣었던 사람이 뺑뺑이 돌다가 외지까지 오거나, 신입 공무원이 지방으로 발령 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한마디로 지서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경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뭐 그렇겠죠. 어쨌든 그 지역 유지라는 사람 얘기 좀 해주세요. 아무래도 얼굴 자주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네네. 그분이 좀 벼락부자예요. 나무 중에서도 귀하고 비싼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문화재 복원할 때 쓰는 오래되고 곧은 나무 있잖아요. 선대께서 그런 나무를 주로 심으신 조림업자였는데, 그때는 막상 쓸데가 없어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가 지금 그 유지분, 그러니까 강 사장님 대에 와서 갑자기 수요가 확 늘어난 거예요.”
“문화재 복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서요?”
“그런 거죠. 문화재청 쪽엔 연이 없어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는데 십몇 년 전에 나무를 엄청나게 비싸게 사 갔대요. 그때 확 부자 되시고 마을 잔치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 그래요?”
“네. 그 후에는 읍사무소나 동네 세무서에도 자주 들락거리시고. 그런 거 있잖아요. 마을 주민하고 친해지는 거. 강 사장님이 친화력은 좋거든요. 서장님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그때마다 금방 친해져서 같이 술 먹으러 다녔대요.”
“그건 뭐 흔히 있는 일이죠. 처음 서장 부임하면 막 우르르 몰려와서 밥 산다고 데려가잖아요. 제가 바닷가 쪽에 있었는데, 거기는 검찰 지청도 정말 작아서 검사가 3명밖에 없었거든요? 검사 1명 오면 동네 사람들 몰려가서 술 사고 그랬다니까요.”
“다들 그렇구나. 이게 뭐 전통인지 관례인지 그렇다면서요?”
“옛날부터 그랬대요. 좋은 게 좋다고.”
문득 선배 직원들끼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젊은 직원 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연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9급 공무원이었다.
딱 봐도 앳된 티가 흐르는 직원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좋은 게 좋다고요? 뭔가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거 지역 유착이잖아요.”
직원들이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어찌 되었건 선배들이 말하는 데 끼어서 타박한 거니 쓴 소리가 날아올 줄 알았는데 직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심지어 ‘원래 그렇게 해요’라는 해명조차 없었다.
신입이 당황하고 있자, 직원들은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도로 원래 화제로 돌아갔다.
깔끔한 무시였다.
‘내가 괜히 말했나?’
아예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여서 신입은 주눅이 들었다.
그사이에도 직원들 간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강 사장님이 사람 자체는 좋아요. 나쁜 사람은 아닌데, 이제 여유가 생기다 보니까 과시하길 좋아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마을 회관 같은 데서 잔치도 자주 열고 읍사무소에도 자주 오시고. 하다못해 군청에도 가끔 가시고. 마당발이에요, 그냥.”
“친화력 대단하신가 보네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서장님이 어떤 분인지 전 국민이 뻔히 아는데 첫날부터 이럴 줄은 몰랐어요.”
신입 직원은 귀를 쫑긋 세웠다.
드디어 지서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에휴. 평생 그렇게 살아온 분인데 어쩌겠어요. 그게 정상인 줄 아는 거죠. 그게 뇌물이라거나 잘못됐다고 생각을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분위기가 다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한테 잘못 배우신 거죠. 첫 단추를 잘못 꿴 거예요. 다들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니까 이게 맞구나, 하고 계속하는 거예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에이, 그렇게 바뀐 건 아니에요. 저 있던 데서는 세무조사 나가면 아직도 밥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고 그, 아시죠?”
“아. 좀 먼 곳은 그렇죠. 근데 어쩌겠어요. 우리야 윗분 분위기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데.”
“제 친구가 읍사무소 다녔는데, 거기 공무원 중에서 유일하게 트럭 있었거든요? 동네 배달부나 다름없었어요. 원래 동네 어르신들은 그런 구분이 없어요. 옛날부터 끼리끼리 돕고 지내셔서 그런가.”
“어쩔 수 없죠. 저희가 맞춰야지.”
신입 직원은 또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고 말았다.
“그걸 맞춰야 된다고요? 공무원 업무가 아니잖아요.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이번에는 직원들이 돌아보았다.
그리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또 무시하려나 했는데 다행히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이라 잘 모를 것 같아서 말해두는데, 수도권이랑 똑같이 생각하면 안 돼요.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하고. 여기까지가 딱 공무원 업무다, 그런 경계선이 없어요.”
신입의 생각은 이상한 곳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과 가깝게 지내고,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대가를 받고.
이게 뇌물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제가 아무리 멋모르는 신입이라지만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그거는 공무원으로서 잘못된 태도 아닌가요? 대가를 받고 사정 봐주고 편의 봐주고!”
직원들은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아까 설명 안 하고 넘어간 거였는데. 일단 겪어보면 알아요. 상상하는 뇌물성, 대가성 이런 거랑 다르거든요. 공무원 중에 물론 뇌물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느 공무원이 다 그렇겠어요? 우리도 다 평범하게 시험 봐서 직장이라 생각하고 들어온 건데, 굳이 뇌물 받아서 인생 망치고 싶겠냐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뭘 설명하고 앉았습니까.”
조곤조곤 말하는 직원과 달리, 저 멀리 납보팀 자리에 앉아 있던 30대 중반의 직원 하나가 귀를 후비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이, 신입.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어.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우리 같은 공무원은 그냥 위에서 까라는 대로 하는 거야. 서장이 그 사람 일 좀 잘 봐달라면 봐주는 거고, 뺀찌 놓으라고 하면 뺀찌 놓고. 우리한테 무슨 힘이 있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신입이 욱하자 조곤조곤 말하던 직원이 중간에서 둘을 말렸다.
“자자, 서로 흥분들 가라앉히시고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지서장님 경력을 생각해 보면 이번 지서는 그렇게 개판 나진 않을 것 같으니까. 아까 솔직히 ‘다 같은 국민’이라고 하셨을 때 좀 반할 뻔했거든요. 저는 이번 지서장님 믿어볼 거니까요. 천천히 지켜보고 얘기해요. 네?”
“신재현이라고 별수 있을까 싶긴 합니다. 대단한 건 이해하는데 민원 무서워하지 않는 공무원은 없거든요. 민원 100개쯤 맞으면 저 젊은 지서장님이 버틸 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특히 출세를 바라는 사람은 민원 겁내던데.”
“조사관님…….”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하겠습니다. 개서식 갑시다.”
아침의 사건이 겨우 일단락되었다.
민원실을 책임지게 된 실장은 조용히 시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신입 공무원들은 저랬다.
신재현을 보고 꿈과 희망을 품은 채 공무원이 된 사람이 많아서 현실을 보여주면 실망하는 것이다.
그들이 아는 법과 질서, 정의는 아직 멀었는데도.
그야 공무원들 의식이 바뀌는 건 환영할 만하지만, 이렇게 현장에서 다툼이 빈번해지는 건 좋지 않았다.
‘과도기라고 생각해야겠지.’
또 하나 걱정은 저렇게 꿈과 희망만 갖고 들어온 공무원이 부러지기 쉽다는 것이다.
모조리 물갈이하지 않는 한 접대받는 공무원은 여전히 어딘가에 있을 텐데.
괜히 공무원이 철밥통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저런 놈들도 멀쩡하게 살아남아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놈들을 보면 신입들은 절망할까, 아니면 국세청을 원망할까.
너무 절망한 나머지 더 지독한 놈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겨우 9시 반인데 벌써부터 삐그덕거리다니.
앞으로 꽤 평탄치 않을 것 같았다.
***
개서식은 주차장에서 진행되었다.
조그만 지서다 보니 그렇게 큰 행사랄 것도 없었다.
전 직원이 모일 강당조차 없어 주차장에 팀별로 나란히 서서 지서장의 취임 인사를 듣는 것뿐이었다.
신재현은 주차장에 나와 슥 둘러보고는 첫 운을 뗐다.
“날씨가 춥네요. 이런 데서 제 취임사나 들으라고 월급 드리는 거 아니니까 짧게 말하고 들어갑시다. 일해야죠.”
그나마 다행이었다.
보통 서장 취임식 한번 한다 하면 아예 회관을 빌리거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할 말 다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식순 다 챙기면 30분은 족히 잡아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은 지서장이 젊은 것에 감사했다.
“첫째, 외부인에게서 그 무엇도 받지 마세요. 바카스나 음료수는 물론이고 귤 같은 농산물도 안 됩니다. 둘째, 업무 시간 외에 지서 밖에서 납세자를 따로 만나지 마세요. 셋째,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저한테 보고하세요. 이거 세 가지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끝.”
그 말만 끝내고 정말로 신재현은 야트막한 돌멩이 위에서 내려왔다.
어, 정말 끝이야? 이게 끝이라고? 하는 웅성거림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신재현과 함께 왔다는 법인세팀장이 박수를 치며 이목을 끌었다.
“네, 진짜 끝입니다! 짧은 만큼 지서장님이 말씀 꼭 유념하시고 절대 어기는 일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얼른 들어가세요!”
직원들이 엉거주춤 발을 떼었다.
혹시 시험하는 건 아닐까.
정말로 들어가면 나중에 불호령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까지 들었다.
꼭 지켜달라는 규칙 세 가지도 다른 곳의 서장들이 부임하며 흔히 하는 말을 압축한 것뿐이었다.
‘말 자체는 다른 서장님하고 비슷한데? 관례대로 하겠다는 건가?’
‘진짜 들어가?’
직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주차장에 웬 사람들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처음엔 민원인인가 했더니, 그 무리에 아까 쫓겨난 강 사장이 끼어 있었다.
“큰일날 뻔했네! 우리가 늦었구만! 서장님, 취임 축하 인사 왔습니다.”
건물로 들어가려는 신재현을 붙잡은 것은 취임 소식을 듣고 온 지역 유지들이었다.
신재현이 멀뚱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유지들이 싹싹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서장님 오늘 선약 있으신감? 시간 있으시면 저희랑 점심 어떠십니까?”
일부러 그러는 건지, 국세청의 자세한 직급 체계를 몰라서 그러는 건지.
그들은 신재현을 서장이라 불렀다.
순간, 신재현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아하, 첫날부터 점심 함께 먹자고 오신 거군요?”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황민우는 오싹함을 느꼈다.
그는 기겁해서 신재현을 바라보았다.
‘안 돼! 빡쳤다!’
신재현에게서 폭발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