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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476화 (476/500)

476화. 중부지청 제3지서 (1)

추운 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발령 전 근무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은 국세청 앞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공무원은 원래 1년마다 이동하는데, 다 아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유난이냐 싶을 정도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처음에는 물론 무미건조하게 헤어지려 했다.

인사도 다 끝났고 서로 할 얘기도 다 했다.

하루 종일 일도 잘했고 웃으며 잡담도 했다.

정작 일이 터진 건 퇴근하면서였다.

개인 물건을 다 챙겨가서 텅 빈 사무실의 불을 끄고, 1층 개찰구를 빠져나와 건물 유리문을 열었을 때였다.

찬바람이 훅 로비로 들어오며 눈송이가 따라서 춤을 췄다.

직원 하나가 이마에 붙은 눈을 떼어내려고 만지작거렸다.

당연히 눈은 금방 녹아 없어져서 떼어낼 수가 없었다.

직원은 무심코 말했다.

“와, 내일까지 펑펑 온다던데 출근할 수 있으려나? 이거 길 막히는 거 아닐까요?”

그걸 누군가가 받았다.

“우리 내일 출근 안 해요. 다음 주엔 다른 데로 가잖아요. 내일은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서 따뜻한 커피나 마시면서 눈 구경이나 해야죠.”

“집 앞에 눈 쓸어야 안 얼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됩니다.”

“으으, 하늘에서 내리는 1억 개의 예쁜 쓰레기.”

시답잖은 잡담이었고 평소와 같았다.

그런데 그게 신호가 되었다.

어느 순간 직원 하나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날이 추워서 코를 훌쩍이는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어! 임 조사관님 울어요!”

“아, 아니에요!”

“눈물 그렁그렁한데요?”

“그게 아니라…… 어흑!”

누가 아는 척하면 더 눈물이 나는 법이다.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자 점점 전염되기 시작했다.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제 다음 주에 눈 쌓인 거 보면 이런 대화 한 게 떠오를 거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슬퍼서…….”

“우리 임 조사관님 눈물이 많아서 어쩔까.”

“박 조사관님도 우시는데요.”

“흐어어엉!”

떨어지는 눈을 펑펑 맞으며 때아닌 통곡의 벽이 생겨났다.

본청의 다른 과 직원들도 퇴근하다 말고 난데없이 생긴 눈물바다를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그들은 지나가다 말고 사정을 묻고서 납득하고는 우는 직원의 등을 두드려 주고 떠나갔다.

다음에 보자는 말과 함께.

그게 또 눈물을 키웠다.

해가 빨리 져서 사방이 어두운 와중 본청에서 나온 빛에 함박눈이 비치고, 주차장에 서서 그 눈을 맞으며 직원들은 울고.

나 역시 눈물을 삼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내가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부르고 안아준 후에야 조금 소강상태가 되었다.

끝까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연신 뒤돌아가며 직원들이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반장 채유림과 서울청 시절의 팀원 네 명이었다.

한바탕 울고 난 후 우리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봅시다. 건강하게 잘 지내요.”

내가 씨익 웃으며 손을 들자 그들도 마주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해줬다.

웬만하면 이런 거 오글거려서 안 하는데, 오늘은 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사실 하고 싶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하겠어.

팀원들도 다행히 받아주었고.

“팀장님도 건강하게 지내세요.”

“간간이 놀러 갈 테니까 저희 없다고 외로워서 우시면 안 돼요.”

“황민우 따라가니까 얘 잘 부려먹어라. 지서장씩이나 돼서 윗사람이 직접 일하고 그러는 거 아냐.”

“나중에 봬요. 연락 자주 할 테니까 바쁘다고 읽씹 하지 마시고!”

순서대로 안길진과 강혜원, 장세훈, 채유림이 한마디씩 건넸다.

이제는 진짜로 헤어질 시간이었다.

벌써 그 많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국세청 앞에는 우리뿐이었다.

드문드문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이 나가면서 인사를 해왔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그들을 보냈다.

아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저들이라면 잘할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이 팀 그대로 계속 가고 싶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몇 년간을 같은 멤버 구성으로 쭉 온 것도 윗선의 배려 덕분이었고.

나도 안다.

그냥 일 잘하는 직원으로 만족할 거라면 상관없지만 그 위로 올라가려면 여러 가지 경험해 봐야 한다는 걸.

지서장은 좀 이른 것 같긴 하지만 나 같아도 관리직으로 보냈을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사람과 손발도 맞춰볼 줄 알아야지.

지금까지는 내가 맞췄다기보다 팀원들이 날 맞춰준 거나 다름없으니까.

살다 보면 별 이상한 놈들도 만나게 된다.

국세청이 얼마나 큰 조직인데 거기에 또라이가 없겠는가.

거르고 거른다고 해도 또라이 불변의 법칙은 유지되는 법.

오낙현이야 나 같은 직원 만나라는 악담 같은 덕담을 해줬지만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설마 있으려고.

나는 혼자서 헛웃음을 지었다가 정색했다.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했겠지만 다행히도 옆에는 황민우밖에 없었다.

***

-뽀득뽀득.

강원도 춘천의 모 마을.

아직 여기는 함박눈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큰길은 눈이 녹았지만 질척질척했고 인도와 주위 길은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한쪽은 산이 보이고 반대쪽은 밭이 보인다.

고개를 돌리면 밭이라니 생경했다.

아니, 저건 또 뭐야.

거대한 독수리가 밭 위를 뒤지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군대에서도 못 본 독수리가 여기에 있네.

커다란 새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눈밭을 파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행정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필요성을 못 느낀 건지.

눈이 그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기는 여전히 설원이어서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길옆에 산이 펼쳐진 것도 평소엔 볼 수 없는 풍경인데 거기에 숲이 하얗게 물들어 있다니.

“지서장님. 저 건물이네요.”

황민우가 날 부르는 호칭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낯간지러웠다.

그래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팀장이라 불릴 때도 처음엔 어색했으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도 곧 이름만 지서장이 아니라 행동도 좀 위엄 있게 할 수 있겠지.

딱 봐도 지서장처럼.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의 지서를 책임진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와 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단순히 민치호나 오낙현 같은 내게 익숙한 청장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황민우가 가리키는 3층짜리 아담하고 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전부 세무서가 아니었다.

1층의 반은 제2금융권 은행이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반이 민원실이었다.

원래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차 열 대가 들어갈 정도의 주차장이 있고 그 주위는 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부근은 동네라기보다는 나름 3층에서 5층짜리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지서 건물은 특히나 컸다.

서울의 다른 세무서에 비하면 작았지만, 직원 수에 비하면 꽤 크다는 뜻이다.

주차장과 인도를 구분하는 담장에는 ‘2024년 강원 제3지서 신설’이라고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멀리서도 볼 수 있게 글씨는 아주 큼지막했다.

만지면 녹이 묻어날 것 같은 철문을 지나 주차장을 휘휘 둘러보았다.

아침 일찍이라 차는 딱 한 대만 있었다.

지서가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민원인은 아닐 것 같고.

직원이 타고 온 차인가 보다.

그런 것치고는 좀 값이 나가 보였다.

직원이 비싼 차 탈 수도 있지.

민원인들이 차 댈 데는 있어야 할 텐데.

혹시 직원들이 다 자차 끌고 다니려나?

세무서나 본청에 있을 때는 해본 적 없는 고민을 하며 지서로 다가갔다.

황민우가 유리문을 당겨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비었던 건물 특유의 냉랭한 기운이 느껴졌다.

국세청이 지서를 만들면서 건물을 통째로 샀을 리는 없고 이것도 분명히 월세일 것이다.

그건 나중에 서류를 보면 알겠지.

나는 로비로 들어서서 양옆을 보았다.

오른쪽엔 은행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24시간 입출금 기계가 2개 세워져 있었다.

중앙에는 계단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기둥에 작은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1층은 반만 쓰니까 민원실과 납세자보호팀이 있고, 2층은 소득팀과 부가팀, 운영지원팀이 있었다.

3층에는 법인팀, 재산팀, 그리고 내가 있을 지서장실이 쓰여 있었다.

조사과와 체납징세과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갖췄다.

말 그대로 미니 세무서라고 봐도 될 만했다.

부가소득팀으로 합친 게 아니라 둘이 따로 있는 것도 특이점이었다.

제주세무서 서귀포지서는 법인팀은 아예 없을 뿐더러 부가와 소득은 합쳐서 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여기 강원 제3지서도 한 팀에 3~5명밖에 없긴 하지만 구색은 다 갖췄다.

그리고 또 하나 특징은, 과가 아니라 다 팀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지서에 과장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서장 밑에 바로 팀장이라니 그닥 어렵진 않겠는데?

나는 긴장하면서도 나름의 희망을 가졌다.

그래, 조사단 100명도 데리고 일해봤는데 팀 규모의 일반 과만 있는 지서 30명이면 할 만하지!

나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정식으로 인사하기 전에 건물 좀 둘러볼까요?”

“물론입니다, 지서장님. 가시죠.”

평소와 같은 담백한 얼굴에 꼬박꼬박 지서장을 붙이길래 나는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슬쩍 웃음기가 비치는 걸 보니 놀리는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민원실로 다가갔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첫날부터 출근 시간 되기도 전에 지서장이 민원실 들어오면 기겁하겠지.

나도 나름의 생각은 있다.

불투명한 시트지가 절반을 가린 유리문 위로 고개를 들어 안을 건너다보자, 다들 한참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는 게 보였다.

그렇지, 첫날이라 확인할 게 많지.

컴퓨터가 되나 확인도 해보고 인터넷이 되는지 들어가 보기도 하고.

프린트 인쇄도 해보고 A4용지 뜯어서 복합기에 채우고.

사무용품이나 개인 사물 확인도 하고.

방해하지 말아야겠다.

다른 과도 들러볼 겸 계단을 오르려는데, 문득 안에서 이질적인 한 남자가 보였다.

처음에는 팀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미리 받아본 정보와 좀 달랐다.

조사단 때처럼 아예 상세 보고서를 받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구성원 정도는 익히고 왔다.

부가세팀장 황민우를 제외하고 팀장은 5명이었다.

여자가 셋, 남자가 둘.

남자는 둘 다 40대였다.

민원실에 서 있는 남자는 딱 봐도 50대는 넘어 보였고.

“형, 아니, 황 팀장님.”

외롭지 않게 황민우도 꼬박꼬박 팀장이라고 불러줘야지.

“편하게 부르셔도 됩니다, 지서장님.”

“말끝마다 지서장 붙이면서 그렇게 말하면 설득력이 없어요. 저도 놀릴 거거든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지금 저 사람 누구 같아요?”

황민우가 민원실 안에 서서 잡담을 하고 있는 풍채 좋은 남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느낌이 안 좋습니다, 지서장님.”

“그렇죠? 제가 보기에도 우리 식구는 아닌 것 같아요, 팀장님.”

우리는 꼬박꼬박 호칭을 붙여가며 민원실 안을 관찰했다.

남자가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직원들도 딱히 귀담아듣거나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혹시나 개서 첫날이라 근처 읍면사무소나 구청 같은 데서 온 공무원인가 했다.

개서식에 근처 공무원이 인사차 오는 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고.

그런데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나도 이제 사람 보는 눈은 좀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꾸밀 때 보이는 그 모략의 눈빛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더군다나 직원들의 표정도 좋지 않고.

그때 남자가 민원실 한쪽 구석에 놓았던 상자를 뜯었다.

생각보다 꽤 커서 우리 지서 물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저런 걸 구매 결재한 적이 없으니까 잘 안다.

상자 안에서는 손바닥보다 큰 길쭉한 상자가 수십 개 들어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대충 녹즙이나 과일즙 같아 보였다.

직원들이 난색을 표하는 게 보였다.

설마 싶어서 나는 냅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누구십니까? 누구신데 개시도 안 한 세무서에 들어와 계십니까?”

남자는 양손 가득 선물용 상자를 들고 나눠주려다가 날 보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이고, 새로 오신 지서장님 맞으시죠? TV에서 많이 봤습니다.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요. 앞으로 우리 같은 동네 식구 될 사람들 아니십니까. 그래서 선물 좀 드리러 왔지요. 이게 바로 시골 인심 아니겠습니까.”

남자가 내게도 상자를 내밀었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느 분이신지를 물었습니다.”

내가 정색하자 남자가 무안해했다.

“거 되게 빡빡한 분이시네. 서울 있다 오셔서 그런가. 원래 이렇게 정도 나누고 하는 겁니다. 별거 아니니까 그냥 받아요. 나 저기 저어쯤 보이는 산기슭에서 목장 하는 사람인데 그 근처가 다 내 땅이거든.”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그래서 흑염소 액기스 좀 가져와 봤습니다. 이게 남자한테는 밤에 아주 끝내주고 여자도 피부 미용에 아주 좋아.”

어느샌가 말이 짧아져 가는 남자를 보며 나는 차갑게 말했다.

“됐습니다. 저희 지서에서는 외부 선물은 절대 받지 않습니다.”

“에이, 그렇게 말할 거 있나. 이런 건 받아도 되는 거예요. 자자, 쭉 들이켜 보셔.”

“누구든 외부인에게서 음료수 한 병이라도 받았다간 제재할 겁니다. 이게 지서장으로서 제가 우리 지서에 첫 번째로 내리는 방침입니다. 황 팀장님, 손님 모셔다 드리세요.”

“네, 지서장님.”

이번엔 놀리는 게 아니라 일부러 붙인 호칭이었다.

황민우가 남자의 팔을 붙잡고 지서 밖으로 안내했다.

“허, 거참. 딱딱한 분이시네. 서울에선 어땠는지 몰라도 여기선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지역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해야지!”

남자는 의외로 순순히 나갔다.

그래도 나가기 싫다고 버틴다거나 끝까지 억지로 쥐여 주려는 건 없었다.

대신 입은 순순히가 아니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남자의 목소리를 흘리며 민원실 직원들을 보았다.

첫날부터 이상 사태를 마주친 직원들은 저마다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저들 입장이라도 그렇다.

좋은 인상 남겨도 시원찮을 판국에 인사도 하기 전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터졌으니까.

“아침부터 액땜하셨네요. 아니면 아니라고 딱 말씀하세요. 우리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지만 여러분도 국민 아닙니까. 그럼 이따 개서식 때 뵙겠습니다.”

긴말은 더 부담스럽지.

나는 별일 없었던 것처럼 짧게 말하고 민원실을 나왔다.

“후…….”

계단을 오르면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직원 30명짜리 지서라고 얕볼 일이 아니었구나.

앞으로 꽤 파란만장한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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