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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474화 (474/500)

474화. 장밋빛 미래 (2)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의외의 소식을 들은 나는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내 망을 켰다.

팀원들은 내가 공고를 볼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있었다.

다만 눈빛이 반짝반짝하며 이쪽을 향하는 걸 보면 축하인지 놀리는 건지 모를 반응을 해주려고 대기하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놀라는 걸 보고 싶어 했던가.

그러나 나는 당황하는 한편으로는 발령을 보자마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어지간히 고민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난감했다.

내가 조사단까지는 어찌저찌 했는데 지서장이라니.

조금, 아니, 많이 파격적인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예상한 내년의 일터는 다른 국의 팀장 정도였으니까.

남들은 축하한다고 하지만 당장 나는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아. 진짜 어떡하지. 이제 겨우 팀장 해본 사람한테 지서를 통째로 맡기면 어쩌자는 거야.’

지서. 세무서 밑에 딸린 작은 세무서다.

맨 위에 국세청 본청이 있고 그 밑에는 지방청이 있다.

지방청은 밑에 또 각 지역의 세무서들을 거느리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이 용산 세무서나 강남 세무서 같은 서울 지역의 28개 세무서를 관리하는 것처럼.

그러면 지서란 무엇이냐.

시골은 인구가 적다.

한 동네에 세무서 하나를 세우자니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나마 인구가 많은 읍내에 세무서를 하나 세우고 거기서 인구수가 적은 동네까지 맡는다.

그러다 보니 시골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세무서까지 나가는 데 차를 타고 20분이나 걸리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아무리 세무서 세우기에는 행정 낭비라고 해도, 주민들이 불편하면 서로가 난감하다.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세무서 직원들이 관할 구역 파악을 못해서 공백 지역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꽤 먼 곳까지 관할하는 경우엔 어느 특정 지역에 인구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골의 세무서 하나가 커버하는 동네가 여러 개라고 했을 때, 가장 일이 많은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다른 동네마저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인구수도 비등할 수도 있고.

세무서 하나가 커버할 여력을 넘어서면 어떻게 하느냐, 멀리 떨어진 저 동네에 지서를 세우는 것이다.

대신에 모든 과를 다 갖추는 건 아니고 소득세과나 법인세과 정도만 만든다.

양도세나 상증세가 많은 동네라면 때에 따라 재산세과를 넣기도 하고.

그 동네의 특징에 따라 과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조사과는 턱도 없다.

조사할 일이 생기면 상급 세무서에서 하면 되니까.

그러다 보니 지서의 전 직원을 합쳐도 20명이 될까 말까.

소득세과 하나에 5명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 규모가 작다고 편한 것 아니냐.

절대 아니다.

사람이 적고 동네라고 해서 일이 안 생기는 건 아니다.

세무서의 축소판을 작은 동네에 가져다 둔 것뿐이라 세무서에서 생길 일은 웬만하면 다 생긴다고 보면 된다.

조사단에서는 분야가 여러 가지라고 해봤자 결국 탈세 조사로 귀결된다.

상대는 탈세범이고 불법적인 면을 찾아내 과세하면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세무서에서는 온갖 종류별로 일이 다 터진다.

소득세, 재산세, 민원…….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여러모로 좋은 경험은 되겠지만 빡센 건 마찬가지다.

왜 조사국으로 안 보내고 다짜고짜 지서장으로 발령 낸 건지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도 생각해야지.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복수인가?

내가 사고를 많이 쳐서 청장이 복수한 건가?

안 되겠다. 가서 물어봐야지.

“저 청장실 좀 갔다 올게요!”

내가 벗어두었던 재킷을 챙겨 입자 박수 치려고 손을 들었던 팀원들이 그대로 주춤했다.

“어, 갑자기요?”

“지서장 발령이 갑작스럽긴 하죠.”

“아니, 그렇다고 청장실에 따지러 가시는 건 아니죠? 예? 팀장님!”

축하할 일은 맞지만 일단 청장실에 다녀와서다.

나는 사무실 문고리를 잡고 뒤를 돌았다.

“갔다 와서 축하 파티 해요. 회식합시다, 회식!”

“아싸! 고기!”

“술 먹자!”

환호하는 팀원들 가운데 무언가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팀장님! 청장실에 손님 계시…… 어, 진짜로 가셨다.”

응? 손님?

일단 가보면 비서실에서 뭐라고 말이 나오겠지.

정 안 되면 기다리면 되고.

그렇게 쳐들어온 청장실이었다.

비서실에서 딱히 막지 않길래 설마 했는데 손님이란 바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청장님! 청장님! 저 방금 출근했는데 대체 무슨…… 아, 안녕하십니까. 민치호 청장님도 와 계셨네요.”

기세 좋게 따지러 온 나는 급히 두 손 모아 인사했다.

민치호는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손도 까딱였고.

내가 항의하려고 입을 열자 오낙현이 선수를 쳤다.

“지서장? 그거는 내가 아니고 이쪽 민 청장 의견이니까 따지려면 여기다 따져.”

날 지서장으로 임명한 건 자신이 아니라며 쏙 빠져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민치호인데.

사실 청장실 들어오자마자 민치호 얼굴을 보고 짐작하긴 했다.

좀 적응했다 싶으면 바로 어려운 과제를 내려주는 게 딱 민치호식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키울 때 감당한다 싶으면 좀 더 많은 걸 쥐여 주고 버티도록 한다.

민치호는 예전부터 그런 식으로 내게 어려운 과제를 내줬다.

삼성 세무서에서 일할 때 체납징세과에 들어가라고 했던 것도, 서울청에 오자마자 일반 과가 아닌 특수 팀을 맡게 된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조사단이라는 자리를 깔아준 것도 민치호였다.

이번에도 그의 개입이 강하게 느껴졌다.

본청 팀장으로 만족하지 말고 다른 것도 다뤄보라는 배려 아닌 배려가 말이다.

“민 청장님이셨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 맞은편 자리에 앉자 오낙현이 눈 끝을 씰룩였다.

“뭐야, 왜 안 따져? 따지려고 온 거 아니었어?”

나와 민치호가 다투는 걸 구경할 생각이었나 보다.

재밌는 그림이 안 나오자 실망한 표정이었다.

“따지러 온 건 맞는데요, 미리 말씀도 안 하고 깜짝 발표 하셔서 저는 완전히 청장님께서 저 골탕 먹이려고 하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민 청장님은 상습범이셔서…… 예전에도 꼭 벅찬 과제를 내주셨단 말이죠.”

“신 팀장 골탕 먹일 생각도 있었던 건 맞는데.”

오낙현이 스치듯 한 말에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죠. 청장님도 이 발령에 한 손 거드신 게 분명했어요. 총 결정권자인 청장님께서 결재하셨을 텐데! 오자마자 깜짝 놀랐잖습니까.”

“아니, 민 청장한테는 안 따지고 내가 했다고 하니까 나한테는 따지는 거야? 이러면 서운하지!”

“지서장 가는 건 불만이 아닌데 발표 타이밍이 불만이라 그렇죠!”

“미리 말 안 한 건 민 청장도 마찬가지잖아! 민 청장한테도 따져!”

오낙현이 턱에 주름이 생겼다.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실 양반이 입을 삐죽이시다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민치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낙현의 의도와는 반대로 정작 내가 그와 투닥대고 있자 민치호는 숨넘어갈 듯 웃고 있었다.

오낙현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민치호를 타박했다.

“저거 봐. 원흉 제공은 민 청장이 했는데 자기는 쏙 빠져가지고. 민 청장이 아까 무슨 소리 했는 줄 알아? 그거 들으면 지서장 갖고는 말도 못할 거야. 글쎄, 지서장 끝나고 나면……!”

“아이쿠, 청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시면 안 돼요!”

내가 오기 전에 둘이 뭔가 일을 꾸민 것 같은데.

그것도 날 두고.

내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민치호를 쳐다보았다.

“뭔가 불안한데요. 두 분께서 힘을 합치면 전 대통령보다 무섭거든요. 힌트라도 주시면 안 됩니까.”

민치호가 한 차례 오낙현을 흘겼다.

괜히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관심을 끌었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미 들어 버렸는데.

화제를 민치호에게 넘긴 오낙현은 잘됐다는 얼굴로 히죽거렸다.

이제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이다.

오낙현은 다시 찻잔을 들었지만 이미 초반의 고상한 분위기는 깨진 후였다.

그는 연신 눈동자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기대를 저버리고 싶었지만 우리 둘 다 이 대화를 수습해야 했다.

나는 저 둘이 나눈 얘기가 궁금했고 민치호는 피하고 싶어 했으니까.

“미리 말하면 기대감과 부담감이 드니까 말 안 하려고 했지.”

“기대감과 부담감이요? 또 뭘 시키시려고…….”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민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언제 감당 못할 일을 시킨 적이 있나?”

“없죠. 상상 외의 판을 벌려주셔서 깜짝 놀란 적은 많지만.”

힘 좀 달랬더니 아예 다른 파벌과 딜을 해서 서울청에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TF 팀을 만들어주질 않나.

청와대에서 권한 받아와서 기관 직원들 모아다가 단을 조직해 주질 않나.

적어도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은 없었다.

민치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믿을 만하다.

나와 민치호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 신뢰의 눈빛을 보내고 있자 오낙현이 재미없다는 듯 찻잔을 딱 내려놓았다.

“싸우라고 판 깔아줬더니 아주 하하호호 난리가 났구만. 여기 내 방이에요. 둘이 작당할 거면 나가!”

“분위기 좋은데 왜 그러십니까. 청장님도 함께하시죠.”

웃자고 하는 얘긴데 당연히 청장을 왕따시킬 순 없지.

민치호는 잽싸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낙현은 아닌 척하면서도 내심 기다렸나 보다.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래서 지서장 된 거는 불만 없다고?”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나는 잠시 머뭇했다.

대화가 옮겨가자 작게 한숨을 내쉰 민치호가 일어서서 작은 테이블에서 찻잔 하나를 꺼냈다.

이어서 새로 물을 데우기 시작했다.

그도 몇 번 와봤기 때문인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익숙했다.

작은 테이블 서랍을 뒤적거려 뭐가 있나 보던 민치호를 곁눈질로 보던 오낙현이 타박했다.

“잎차 말고 티백 써요. 귀찮아서 언제 우리고 있어.”

“잎차 귀찮다고 싫어하시는 분이 종류별로 갖추고 계신데요.”

“그야 가끔 티백 내면 안 될 분이 오니까 그렇죠. 내가 제명에 못 죽어.”

“제가 맛있게 우려 드리겠습니다.”

민치호가 본격적으로 다관을 꺼냈다.

“민 청장이 우려준다면야 나도 마다할 수가 없지요.”

원래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차를 제대로 우릴 줄 모른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따뜻한 수증기와 함께 그윽한 차향이 우러나왔다.

나는 홀린 듯 가만히 입을 열었다.

아까 오낙현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지서장 발령 주신 거 보고 놀라긴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면 깊은 뜻이 있으신 거겠죠.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호, 자신감이 대단한데. 마음에 들어.”

오낙현이 턱을 쓰다듬었다.

나는 말해놓고 아차 했다.

“아니, 자신감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못할 일을 시키지는 않으실 거잖아요. 두 분 청장님도 제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으니 그런 갑작스러운 근무지를 주셨겠죠.”

“각기 다른 곳에서 온 100명도 지휘해 봤으니 지서도 괜찮을 거야. 크게 다를 거 없어.”

오낙현이야 국세청의 수장이니 지서쯤이야 별거 아닌 것 같겠지만 사실 나도 걱정은 하고 있다.

민치호가 때마침 찻잔을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그리고 우린 차를 각각 빈 찻잔에 부어 주었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민치호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나직하게 말했다.

“가면 텃세가 있을 거야. 공무원들이야 신 팀장을 얕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서울과는 좀 다를 거고. 그래도 관리직 경험해 보라고 보내는 건데, 처음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곤란하니까 일부러 새로 신설되는 지서로 골라놨어. 수도권과 지방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겪어봐. 어느 기관이든 다 그렇듯이 중앙에서 저 끝까지는 손이 잘 닿지 않는 법이야. 그런 곳도 있다는 건 물론 신 팀장도 잘 알고 있겠지만 직접 겪어보는 건 또 다르니까. 국세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야.”

민치호의 말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무거워서 절로 자세가 반듯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걱정과 배려가 너무도 진하게 느껴졌다.

“남아 있는 팀원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신 팀장 따라다니는 친구 있지? 그 친구는 같은 지서로 넣었어. 둘이 같이 열심히 해봐.”

이어서 오낙현도 덧붙였다.

“다른 팀원들은 조사단에서 배운 거 써먹어야 되니까 조사국으로 돌렸지만,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오히려 돌아오면 더 잘나가고 있을걸. 팀장으로 승진한 친구들도 있고.”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말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두 청장이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내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고민이 오갔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었다.

“작은 지서지만 있을 건 다 있으니 어디 열심히 해봐. 1년 갔다 오면 보는 눈이 또 달라져 있을 테니까. 너랑 똑같은 놈 만나서 고생 좀 하고 오면 더 좋고.”

내가 멋대로 대통령 방문을 요청했을 때 오낙현이 했던 험담 아닌 험담이 또 나왔다.

내가 어이없어서 쳐다보자 오낙현이 시치미를 뚝 떼고 차를 후룩 들이켰다.

“오, 민 청장. 아주 잘 끓이네.”

“입에 맞으시니 다행입니다. 찻잎이 좋아서 덕을 좀 봤습니다. 신 팀장도 들어. 청장님께서 아껴두신 비싼 차니 이럴 때 슬쩍 얻어먹어야지.”

내가 찻잔을 들자 민치호가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저런 눈빛을 어디서 봤었는데.

아, 군대 가기 전에 날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딱 저랬다.

아무 말은 안 하지만 걱정과 대견함이 담겨 있는 눈.

나는 조용히 시선을 찻물로 떨궜다.

차는 청장실 안의 온도처럼 따뜻하면서도, 아주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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