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화. 멀리서 보면 희극 (3)
담기욱이 잡혀간 이후로 첫 며칠은 조용했다.
[속보] 전 청와대 행정관 참고인 조사
어느 순간 관련자를 찾아 조사한다는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아, 요즘 조용하더니 바쁘게 움직였구나.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흘리듯 그런 감상을 말할 즈음이었다.
[속보] 전직 청와대 비서관 유 모 씨 구속
[속보] 전 수석비서관 채 모 씨 구속
[속보] 현 국무총리 공보실장 김 모 씨 소환조사
[속보] 산업통상자원부 전 차관보 구속 기소
[속보] 전…….
둑이 터지듯 누군가를 잡아들인다는 기사가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벼르고 있었던 것 아닐까, 아니면 적어도 기자들이 소식을 뒤늦게 알고 속보를 한꺼번에 띄운 것 아닐까.
그 정도로 조사받거나 잡혀가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에는 ‘이야, 이 집 일 잘하네~’ 하고 흐뭇하게 지켜보는 시민들도 나중에는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렇게 많이 잡아가?’
‘대한민국에 얽힌 놈이 이렇게 많았나?’
‘나라 망하는 거 아냐?’
‘전직’이라는 이름을 단 고위 공무원의 참고인 조사만 20명이 족히 넘었고 구속 기소도 10명을 넘어섰다.
뉴스의 속보가 조사단의 ‘XX 조사’로 도배가 될 정도였다.
보는 사람마저 질리게 만드는 대규모 갈아엎기였다.
물론 이번 속보에 대해서는 조사단도 할 말이 많았다.
원래 거물 하나 조사하려면 그 주변을 샅샅이 뒤진다.
얽힌 사람도 많고 규모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차명을 쓰는 경우도 수두룩했으므로,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으면 수백 명까지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진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는 얽힌 고위 인사가 너무 많았다.
누굴 하나 콕 집어서 부르려고 하면 ‘전 차관’이라는 직함이 달려 있고, 손 가는 대로 아무나 한 명 잡으면 ‘전 행정관’이었다.
거의 고위직 골라잡기 수준이었다.
때문에 평소에는 참고인 조사나 소환 같은 걸로는 내부적으로 보고서만 쓰고 끝낼 일이 하나하나 다 속보감이 되고 있었다.
누굴 부르기만 하면 속보가 터지고, 구속되었다 싶으면 바로 상세 기사가 나갔다.
폭풍의 연속이었다.
***
4개월이 흘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건물은 독특했다.
아래는 평범하게 직사각형의 건물인데 7층부터가 동관, 서관 두 개의 동으로 나뉘었다.
7층부터 19층까지는 동서로 나뉜 두 건물을 오갈 수 없었고, 대신 맨 꼭대기인 20층에 동서 두 동을 잇는 통로가 있었다.
덕분에 멀리서 보면 가운데가 뚫린 모양새였다.
서울중앙지검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나는 정문으로 들어와 커다란 법원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봐도 무슨 랜드마크인가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더욱 웅장하다.
검찰청 사무실에 들렀던 내가 법원까지 걸어서 온 이유는 간단했다.
길이 막힌다!
원래 강남 쪽은 다 길이 막힌다지만 대낮인 지금 서초동 근처 차도는 한산했다.
문제는 오늘 법원에 담기욱이 온다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차 타고 10분 정도면 왔을 길도 지지자와 시위대, 그리고 기자들에게 막혀 저녁 퇴근 시간을 방불케 했다.
그럼 어쩌겠는가. 걸어서 와야지.
다행히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쪽 길은 잘 모르기에 큰길을 따라 쭉 걸었는데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산책 삼아 걷기엔 딱 좋은 날씨였고.
-짹짹!
법원의 정문으로 들어가니 곱게 깔아놓은 잔디에 참새들이 뛰어다녔다.
참 평화로운 광경이다.
저 웅장한 법원 계단 앞에 늘어선 기자들만 없다면 말이다.
“신재현이다! 신재현!”
이제는 익숙한 광경이다.
계단 아래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던 기자들은 정문에서 나타난 나를 가리켰다.
나는 손을 흔들어주고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했다.
우르르 달려오려던 기자들이 얌전히 멈춰 섰다.
이럴 때 보면 말은 참 잘 듣는다.
오랜 기간 기자들 앞에 서면서 쌓은 신뢰관계라고나 할까.
이 상황에서 억지로 카메라를 들이밀면 그 기자는 다음 기자회견 때 국세청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리고 나 역시 기자들이 기다려 주는 만큼 그 앞에 서서 기삿거리를 제공한다.
협박과 믿음이 섞인 신뢰 관계였다.
나는 고개를 빙글 돌리고 목을 풀었다.
푸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높았다.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기자 하나가 다가와 있었다.
저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말을 걸러 올 수 있는 사람, 나학진이다.
다른 기자들은 부러움에 가득 찬 눈길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일은 다 마무리하신 겁니까?”
나학진이 손을 앞에 모으고 물었다.
카메라는 얌전하게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나와 사적인 대화를 할 때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는 건 그의 배려이기도 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자질구레한 주변인 조사도 다 끝났습니다. 이 자리가 최종 기자회견이 될 거예요.”
“지현석 검사님과는 함께 안 오셨습니까?”
“곧 오실 겁니다. 차 타고 온댔거든요.”
“신 팀장님은 걸어오신 거예요?”
“지도에서 봤을 땐 멀어 보였는데 의외로 걸을 만하더라구요. 지현석 검사님도 그냥 걸어가자고 하니까 귀찮아서 싫다네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 몸이 피곤하실 만도 하죠. 근데 이 상황에서 제때 오실 수 있으시답니까?”
우리는 슬쩍 대로를 내다보았다.
난장판이었다.
담기욱 지지와 반대 시위자들이 몰려들어 군집을 이루고 있고, 경찰이 법원과 대로 사이에 사람의 벽을 세웠다.
지금도 그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담기욱 사형!!!
-정부의 음모다! 담기욱 죽이기를 멈춰라!
지난 3달 내내 그랬다.
자신이 믿던 담기욱의 실체를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은 아직도 있었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증거로 보답할 뿐이지.
그럼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자 원흉인 전 대통령 담기욱은 어떻게 됐느냐.
그는 우리 손에 잡혀 온 후 결코 그 드넓은 사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신재현과 지현석의 빠른 업무 처리로 곧장 구속 처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치소와 검찰청을 오가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단 한 번도 자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류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 했다.
파면 팔수록 증거가 속속들이 나왔으니까.
국세청 쪽에서는 공기업 조사의 마무리를 짓자마자 바로 담기욱 주변 조사에 착수했고, 다른 조사단 팀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오늘은 담기욱의 첫 공판이었다.
시끄러울 만도 했다.
“신 팀장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정치라는 게 한번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집니다. 똑똑한 사람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게 바로 정치예요.”
나학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요즘 부쩍 나에 대한 협박과 욕이 늘긴 했다.
말하자면 어그로가 많이 끌린 상황이었다.
“곧 조사단 해체할 거니 괜찮습니다.”
나학진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하게 놀라지 않는 것도 그의 배려다.
조사단은 사실 발족한 지 1년도 안 되었다.
그럼에도 국회를 갈아엎고 전 대통령까지 손댔다.
너무 많은 이목과 힘이 집중된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해도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생길 수밖에 없다.
슬슬 물러날 때였다.
“아쉽지만 좋은 타이밍입니다. 아직은 언론, 여론 모두 조사단에 우호적이지만 과하면 역효과가 나게 마련이니까요.”
“네. 좀 더 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하네요. 뭐 어쩔 수 없죠.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
“다음 발령도 본청이십니까?”
“글쎄요. 아직 아무 말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청장님도 고심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일반 직원으로는 못 간다.
관리직 올리기에도 경력이나 나이가 부족하다.
급수는 6급, 어디의 팀장으로 갈 위치였다.
내가 청장이어도 적절한 인선을 찾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것이다.
“그래도 안심했습니다. 여기서 조사단이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좀 잠잠해지면 또 치실 거죠?”
“네. 그래서 사실 담기욱 지지자분들이 저렇게 제가 편든다면서 흥분하실 필요가 없어요. 담기욱만 죽을 거 아닌데. 언젠가는 역대 대통령 다 손볼 건데.”
나학진의 눈가에 주름이 곱게 접혔다.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계속 기사 쓸 맛 나겠네요. 멋지게 돌아오실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럼요. 기삿거리 떨어질 날은 없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누가 들으면 또 나라 뒤집을 생각이냐며 기겁할 소리를 심심찮게 해 가면서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지현석 검사다! 지현석 검사도 왔다!”
저 건너편에 제1동문으로 들어오는 차가 보였다.
나학진이 내게 눈짓을 해보인 후 달려갔다.
그도 이제 원래 기자의 일을 하러 돌아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어 법원의 계단 중간 즈음에 올라섰다.
내가 자리를 잡자 반대쪽에서 지현석이 헐레벌떡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풀어헤친 소매를 정돈하고 넥타이를 조였다.
정해진 자리인 것처럼 그가 내 옆에 서자 플래시가 쏟아졌다.
이 광경도 이제 당분간은 못 보려나.
법원을 배경으로 선 나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조사단은 지난 4개월간 담기욱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비리를 조사했고, 이제 오늘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정식 발표와 성과 보고는 내일 다시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입니다만 오늘은 간략하게 그 결과를 여러분 앞에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상체를 반만 뒤로 돌려 법원을 가리켰다.
“오늘 여기에 전 대통령님이 설 겁니다. 그리고 저희 역시 판결을 받게 될 겁니다. 그동안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요. 저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며, 전 대통령님의 비리를 밝힐 자신이 있습니다. 저희 조사단의 마지막 성과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마지막 성과라 하시면 조사단은 이제 해체하는 겁니까?”
여기에 대답한 것은 지현석이었다.
“네. 원래부터 상설기관은 아니었으니까요. 이번 건이 조사단의 마지막 사건입니다. 하지만 검찰이든 국세청이든 아니면 다른 기관이든,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조사단이 있기 전에도 저희는 저희 일을 했으니까요. 그러니 아마 또 검찰이나 법원 앞에서 많이 뵙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현석치고는 길고 시원시원한 답변이었다.
조금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다.
“승진이 예정되어 있습니까?”
“아직 모릅니다. 공무원이니 가라는 데로 가야죠.”
기자답게 노골적인 질문도 들어오고.
“신재현 부단장님은 국세청의 직급이 팀장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만약 국세청 일반 체계로 복귀하면 조사국 팀장이 되시는 겁니까?”
“아직 모릅니다.”
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다.
실제로 모르는 내용이라 대답할 수가 없었지만.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동안 또 다른 차 한 대가 법원 앞으로 들어왔다.
법무부 수송차다.
안에서는 넥타이 없이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줄줄이 내렸다.
가장 앞에 선 것이 담기욱이었다.
그는 몰려든 기자들을 보더니 얼굴을 와락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가만히 놔둘 기자들이 아니지.
나와 지현석에게서 얘기도 다 들었겠다, 이제 기자들의 관심은 수송차 쪽에 쏠렸다.
돌돌 말린 굴비 떼처럼 우르르 뭉친 담기욱 관계자들은 기자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법원을 향했다.
내 옆을 지나가던 담기욱이 잔뜩 구겨진 얼굴로 욕을 퍼부었다.
“내가 이대로 끝날 것 같아? 어림도 없어! 이 십새끼들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안 둘 거라고!”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귀를 후볐다.
“네에. 그렇게 말씀하신 분들 많이 봤는데 다 어떻게 되셨게요? 교도소에서 나랏밥 드시고 계시죠. 변호인단을 아주 전관예우로 컬렉션 만드셨더라구요. 그분들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해 놨으니 먼저 가서 계세요. 다른 전임자분들도 뒤따라가실 테니까.”
“야이…… 이, 이 새끼가……! 야아악!”
담기욱이 멈춰 서서 나와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이려 했지만 경찰이 놔둘 리가 있나.
가차 없이 끌고 가는 통에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담기욱의 악다구니가 작아지는 걸 들으며 나는 손을 흔들었다.
국세청에서 열심히 법 따져서 세금 과세하고, 저런 놈이 피 같은 국민 혈세 가져가 챙기는 꼴을 어떻게 두고 보나.
전관예우 컬렉션도 이번 건은 어쩔 수 없을 거다.
“우리도 들어가죠.”
방청권을 추첨해야 할 정도로 신청 인원이 많았지만 나는 증인, 지현석은 검사 자격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우리는 푸른 하늘 아래에 하얗게 펼쳐진 돌계단을 올랐다.
2023년 조사단의 마지막 사건을 향해서.
완연한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