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멀리서 보면 희극 (2)
다행히도 담기욱에 대한 사후 영장은 바로 나왔다.
그동안 정황만 있었을 뿐이지 물증이 없었는데 떡하니 물증이 나타나 주시니 영장을 받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영장도 있겠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시 찾아가서 사저를 뒤엎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신원 파악하고.
사저에 설치된 CCTV 수거하고 드나든 사람 명단 작성 시작하고.
검찰과 경찰이 연신 왔다 갔다 하며 구석구석을 훑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현장은 그들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고,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요즘 뉴스에서 눈먼 자금을 만들 수 있는 이유라든가 방법으로 주구장창 토론하던데.
특히 자금 추적이 쉽지 않을 거라고.
그 말이 맞다.
검찰이야 이런 일 많이 해봤으니 노하우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자료를 기반으로 본다.
우리나라가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모든 자료가 관리되고 검찰은 볼 수 있는 것이 많으니, 그걸 바탕으로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다.
그러나 빠진 조각이 많으면 전체적인 그림이 뭔지 파악하기도 힘든 것이다.
보통은 인력을 총동원해서 이 잡듯이 뒤지는 게 보통이지만 이럴 때가 바로 내 눈을 써먹기 가장 좋은 지점이다.
담기욱의 주변 인물, 그가 거쳐온 과정을 다 훑어보려면 꽤 길고 지리멸렬한 작업이다.
특히 그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열람할 수 없는 기록도 상당했다.
그 직위상 업무에 기밀이 포함된 것도 많을 테고, 이미 봉인되어 대통령 기록관으로 간 기록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건 누굴 만나고 어딜 갔는지조차 국익에 연관이 되는 자리니까.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다짜고짜 지금의 청와대에 쳐들어가서 ‘몇 년도부터 몇 년도까지 전직 대통령 방문한 손님 목록 다 주세요’라고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 일단 한정된 자료를 보고 빠진 퍼즐 조각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핀 포인트로 요청하는 게 빠르다.
‘몇 월에 전직 대통령을 방문한 사업가 누구의 동행자가 누군지, 몇 번 방문했는지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내는가.
“다음 자료 주세요!”
나는 아예 검찰청 조사단 사무실에 눌러앉았다.
여기에 가장 많은 자료가 모인다.
수사관과 사무관들이 정신없이 발품을 팔고 자료를 분류하면 내가 가져가서 읽었다.
내 분야가 아닌 것들도 당연히 많았다.
복잡한 법률 용어는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걸 다 알아들을 필요가 없었다.
[138,416,650]
보고, 분류한다.
내용을 다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탈세액이 보이면 따로 구분해 빼놓으면 되니까.
덕분에 내 옆에는 상자가 쌓여 가고 있었다.
속독하듯이 빠르게 서류를 넘기고 눈에 밟히면 이름과 소속을 확인한다.
그렇다고 탈세액 보이는 사람을 무조건 빼둔 것은 아니었다.
나만 구분할 수 있는 조건으로 무작정 빼서 쌓아두면 뒷사람들이 보고 난감해진다.
그들도 나름 기준이 있었을 테니, 잘못하면 내 마음대로 흐트러뜨린 거나 다름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것은 그동안 내가 해온 실적이 있으니 뭔가 생각이 있겠거니, 하는 거겠지.
나 혼자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나와 손발을 맞춰본 사람들도 아니다.
나중에 검찰 사람들, 특히 여기서 수사 지휘할 지현석이 파악할 수 있게 분류해 줘야 했다.
나는 그 기준을 ‘조사해야 할 것’으로 잡았다.
일단 벽을 등지고 앉아서 내 왼쪽에 쌓은 상자는 개개인에게 탈세가 보이는 것.
오른쪽은 사업체에 탈세가 보이는 것으로 자금 흐름을 중점적으로 파야 하는 것이다.
돈이라는 게 이름표는 없어도 흐름은 있다.
세금도 내지 않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이 어디에서 어디로 흘렀다면 내 눈에는 그 탈세액이 보이겠지.
누가 어디로 흘렸는지 정확히는 모르더라도 ‘점’을 뽑아낼 수는 있다.
탈세한 놈들은 이를테면 징검다리다.
내가 본 사람들이 전부 다 담기욱의 탈세와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중 분명히 담기욱의 자금 세탁을 도운 사람이 있다.
강에 뿌린 수많은 돌덩어리.
그중 담기욱과 관련 없는 것은 들어내고 관련 있는 것을 남긴다.
그 돌을 쭉 선으로 이으면 강 건너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채석장에서 돌덩어리를 찾아내 강 위에 뿌리는 것까지.
그중에 담기욱과 관련된 게 어떤 돌인지 찾아내는 것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 몫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빈 퍼즐을 채우고 강 건너까지의 선을 잇는 것은 조사단 모두가 함께할 일이다.
다만 내가 하고 있는 이 1단계는 남에게 설명할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부단장님, 요청하신 주변인 자료 5박스 더 왔어요.”
“넵. 감사합니다.”
결국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나는 손을 빠르게 놀렸다.
***
조사단의 국세청 사무실이 그렇듯이 검찰청 사무실도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 층의 반 정도를 썼는데, 수사관이나 사무관들의 책상이 있는 일상적인 사무 공간 외에도 응접실, 창고 용도로 쓰는 자그마한 방, 그리고 중간 크기의 회의실이 있었다.
담기욱의 조사에는 그 모든 방이 다 쓰였다.
회의실의 책상과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위아래 할 것 없이 상자가 가득 들어찼다.
담기욱 혼자만이 아니라 그와 얽힌 사람이나 사업체 전부를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 시절부터 치면 그가 만난 사람 명단만 뽑아도 한 트럭은 될 정도였으니 자료는 쌓이고 또 쌓였다.
이쯤 되면 현장을 뛰는 사람, 사무실에서 정리하는 사람, 자료를 검토하는 사람 등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있어 가장 어색하고 이질적인 존재는 신재현이었다.
같은 팀이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크게 놓고 보면 신재현 역시 부단장이었고, 모셔야 할 상사였으니까.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그의 기행이었다.
나름 검찰 공무원들은 이런 대규모 조사에서 자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신재현의 행동은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는 딱히 검토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국세청 부단장님 저거 읽긴 읽으시는 거죠?”
손에 빨갛고 하얀 면장갑을 끼고 상자를 들어다 나르던 사무관이 동료에게 물었다.
부단장이 두 명이다 보니 지현석은 ‘우리 부단장님’, 신재현은 ‘국세청 부단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지현석은 자리를 비우고 현장을 지휘했다.
지금도 계속해서 현장 팀이 여러 곳을 다니며 자료를 파밍하고 있었고, 사무실의 직원들은 수레를 동원해 날라가며 체크에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작성해 보내준 압수 목록과 사무실에 도착한 자료를 대조해 확인하는 것도 일이었다.
사무실 입구에서 상자를 까던 동료 사무관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글쎄요. 검찰 들어와서 별의별 검사님에 수사관을 다 뵙긴 했지만 저렇게 일하시는 분은 또 처음이라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들의 눈에 비치는 신재현은 읽는 둥 마는 둥 손에 든 것을 촤르륵 넘기고 있었다.
명부든 단체 사진이든 팸플릿이든 손에 잡히면 일단 후룩 넘겨보고 빈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하다못해 그가 관심을 가질 만한 재무제표나 장부를 봐도 마찬가지였다.
숫자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파악이 되는 걸 텐데, 그림책 읽듯 페이지만 넘기더니 도로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내심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자에 체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체크된 상자는 어김없이 그의 왼쪽이나 오른쪽 뒤에 탑이 되어 쌓였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체 뭘 하시는 걸까요?”
“뭔가를 찾으시는 게 아닐까요?”
수사 좀 해본 이들이기에 신재현이 지금 나름의 분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저런 방식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몇 날 며칠을 장부 하나만 파고들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저런다고 뭐가 보이겠는가.
제목만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게 국세청 부단장님 스타일이신가? 부단장님 경력도 짱짱하신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요.”
사무관들은 입구에 모여 박스를 까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 지루한 서류 작업 틈에서 기행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신재현은 주목의 대상 그 자체였다.
“지현석 검사님이 신신당부하고 가셨잖아요. 국세청 부단장님이 뭘 하시든 다 제공해 드리라고.”
“우리 부단장님이랑 함께 일하신 지 꽤 됐으니 다 알고 하신 말씀이겠죠?”
“그럼요. 국세청 부단장님이 다 깊은 뜻이 있으신 거예요.”
일반인이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면 몇 푼의 가치가 되지만, 장인은 한가운데 점만 찍어도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처럼.
신재현이 헛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뭔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쓴다, 근데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사이에도 신재현은 잔뜩 쌓인 자료들을 뒤로 넘기고 있었다.
사무관 여러 명이 매달려 입구에서 자료 확인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신재현 한 명이 훑어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신재현은 자료가 아니라 거기에 떠오른 탈세액을 보지만 직원들은 목록을 일일이 체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상황이 역전되었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자료 정리에 신재현이 끼어들어 훑어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신재현에게 갖다 주는 형국이 된 것이다.
“어, 우리는 우리 일 하던 거였는데 어째 부단장님 팀이 된 것 같네요.”
“부단장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톱니바퀴 하나가 된 것 같아요. 국세청은 원래 이렇게 일하나?”
“국세청에서는 뭐 알고 하는 건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어리둥절하면서도 이들은 자연스럽게 신재현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의 팀이었던 것처럼 직원들이 손발이 되어 움직였다.
신재현과 여러 번 합을 맞춰본 국세청 팀원들이었다면 처음부터 일 분배가 빨랐겠지만.
그나마 몇 번 헤매지 않고 손발이 맞추는 것은 사무관들이 자료 정리에 도가 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부단장님! 방금 들어온 따끈따끈한 자료 여기 두고 갈게요!”
“네, 감사합니다.”
이제 얼추 양쪽의 속도가 맞아 떨어졌다.
사무관들이 현장 자료를 확인해 신재현에게 밀어주는 것과 신재현이 읽고 뒤로 넘기는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날이 어둑해지고 사무관들이 허리를 펼 때쯤, 신재현 역시 마지막 상자 뚜껑을 닫았다.
“어, 벌써 다 보셨어요?”
“네. 속도 내주신 덕분에 빨리 끝났네요.”
사무관들은 말없이 벽 쪽에 쌓인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나중에는 사무관들도 손이 꽤 빨라졌다.
일하면서도 ‘와, 벌써 다 끝나가네. 신기록 아냐?’라며 떠들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속도가 올라가는 건 신재현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에는 직원들 일하는데 페이스를 맞춰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될까요?”
신재현이 무슨 기준으로 자료를 분류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니 그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사무관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지휘를 기다렸다.
“이쪽은 개인, 이쪽은 법인입니다. 그중에서도 앞쪽의 이것들은 저희 국세청에서 가져가서 일차적으로 탈세랑 횡령, 비자금 여부 조사해서 정리해 가지고 드릴 거예요. 그리고 이 뒤에 있는 것들은 자금 흐름 추적이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것도 개인 법인 구분해 놨으니까 나중에 지현석 검사님 오시면 알려주세요. 뭐, 힌트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검사님이 보시면 어디서부터 파헤쳐야 할지 감이 잡히실 거예요.”
신재현은 그렇게 말하더니 기지개를 켰다.
계속 앉아 있다 보니 팔을 뻗을 때마다 뚜둑거리며 뼈마디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한바탕 시원하게 스트레칭을 한 신재현은 자신이 따로 체크한 목록을 넘겼다.
“앞에 제가 쌓아놓은 상자 번호입니다. 국세청으로 이관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조만간 현장 뛰시면 자료 분류하러 또 올게요.”
속이 시원한 얼굴로 양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신재현의 뒷모습을 직원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체 뭐였지?”
사무관 한 명이 헐레벌떡 벽으로 달려가 상자를 까보기 시작했다.
대충 스윽 훑어본 신재현과는 달리 사무관은 공을 들여 꼼꼼하게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자금 흐름에서 이상한 부분이 좀 보여요. 갑자기 얼마가 뚝 사라졌거나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그런 거요.”
“어디, 나도 나도!”
할 일도 끝났겠다, 사무관들이 너도나도 달라붙어 각자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았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평소 조사할 때 하던 것처럼.
“그러네요. 이것도 카드 명의가 좀 이상하고 계약서도 자세히 봐야 할 것 같아요.”
“여긴 일단 부동산을 봐야겠네요. 법인 명의인데 무슨 대출하고 부동산이 이렇게 많아.”
각자 자료를 살펴보던 직원들은 순간 숨을 삼키며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다 알고 골라내신 거네?”
“그러게요. 정확히 뭘 조사해라, 명령하신 건 아니지만 어딜 어떻게 손대야 할지는 알겠는데요.”
“뭐야, 혼자서 그게 가능해요?”
“실제로 우리가 그 결과물을 보고 있잖아요.”
“아니, 그건 그렇지만…….”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자신들이 며칠간 사무실에 눌러앉아 고생할 일을 신재현은 가볍게 해치우고 떠나간 것이다.
심지어 다음에 또 오겠다고 했다.
“뭐야, 뭐 하는 사람이야…….”
“괜히 청와대에서 부단장 임명한 게 아니구나.”
“국세청 대표 소리 듣는 이유가 있다니까요.”
도로 자료를 상자에 넣고 신재현이 시킨 대로 얌전히 자료 이관을 준비하면서, 내심 사무관들은 기대감을 품었다.
“꼭 오셨으면 좋겠네요. 일 빨리 끝나게.”
“국세청 팀 쪽은 좋겠다. 일 팍팍 끝나서.”
사무관 한 명의 말실수에 동료 직원이 쓰읍, 하는 소리를 냈다.
“아, 죄송합니다. 우리 검사님 방식이 싫다는 게 아니라요…….”
말끝을 흐리는 사무관에게 동료 직원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 정도 효율성이면 국세청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겠어요? 일 지옥일걸요?”
“아…….”
검찰 공무원들은 국세청을 향해 애도의 탄식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