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8화. 멀리서 보면 희극 (1)
담기욱이 잡혀 온 다음 날 아침, 일간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사진이 하나 실렸다.
커다란 신문용지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그 사진은 굉장히 역동적이었다.
신문을 반으로 접어 가판대에 끼워 놓기만 해도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을 만큼 놀랍고 흥미로운 사진이었다.
사진은 창밖에서 창문 안쪽의 상황을 찍은 것이었는데, 주위 사물로 미루어보아 복도인 것 같았다.
복도 왼쪽에서 한 남자가 기겁하며 뒤로 발을 빼고 있고, 복도 오른쪽에는 또 다른 남자가 짐승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양쪽 다 검찰 측 공무원들이 2명씩 들러붙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인지, 그만 놓친 건지 당황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왼쪽 남자의 얼굴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근 뉴스를 주의 깊게 봤다면 누군지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검찰청에 횡령, 비리 혐의를 자진해서 밝히고 출두한 대한주택개발공사의 사장이었으니까.
사실 전 대통령의 형이라는 사실이 더 유명하긴 했다.
문제는 사진 오른쪽에 찍힌 남자였다.
그는 온 국민이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전 대통령 담기욱이었으니까.
담기욱이 체포된 기사만 해도 나라가 뒤집어질 만한데 그다음 날 이런 사진이 뜬 것이다.
심지어 이 사진은 창문과 창틀, 외벽이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적어도 저들이 1, 2층에서 난리를 피운 건 아닐 테니 사진을 찍은 기자는 건너편 빌딩에서 자리를 잡고 줌을 당겨서 잡은 거라고 봐야 했다.
기자의 특종 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도촬 정신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성능 좋은 카메라의 기술 발전에 감탄해야 하는 건지.
화질에 무척이나 좋아서 담기욱의 얼굴과 당황한 수사관의 표정마저 구분이 가능한 이 사진에는 이런 표제가 달려 있었다.
[조사단 사무실 앞에서 난동 부리는 전 대통령]
-2면에서 계속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란다.
아침 출근길에 가판대를 보고 홀린 듯 다가가 신문을 사 든 사람들은 2면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거기에는 신문의 1페이지의 그것보다는 작지만 더욱 역동적인 사진들이 6장 늘어서 있었다.
시간 순서대로였으며 상황도 비교적 자세했다.
담기욱이 형의 멱살을 잡는 사진, 주먹으로 형의 얼굴을 갈기는 사진, 뒤늦게 정신 차린 수사관들에게 붙잡힌 사진, 끌려가는 사진, 양팔을 붙잡혀 발길질을 하는 사진,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튀어나와 발을 동동 구르는 사진.
거기서 백미는 두 부단장이었다.
처음 사진에는 없었지만 난리가 벌어지고 나자 어느샌가 복도 한쪽 벽에 두 명이 등을 기대고 선 게 보였다.
마지막 사진에서는 두 부단장이 팔짱을 끼고 복도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 극명하게 비교가 되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던가.
지금 이 사진이 딱 그랬다.
서울지검 창문에서 건너편 빌딩까지의 거리 약 300m.
먼 거리에서 찍은 그 사진의 담기욱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괴이하고 품위가 없어서, 사진을 보고 있자면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기사에는 기자가 렌즈 너머로 직접 본 목격담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고층의 복도에서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담기욱 전 대통령은 대한주택개발공사의 사장을 보자마자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광란에 빠지더니 이내 사장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기습 공격을 받은 사장은 바로 담기욱 전 대통령의 친형으로, 갑작스러운 동생의 공격에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다음 사진은 사무실에서 검찰 공무원들이 뛰어나와 이 둘을 말리는 모습이다. 당시 영화 속 한 장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싸움은 치열했으며 전 대통령은 주위의 만류에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4번 사진의 발차기가 그것이다. 전 대통령은 자신의 양팔을 잡은 검찰 공무원에게 체중을 싣고 두 발을 땅에서 떼 발차기를 날렸다. 다행히 사장은 피했지만 그를 데리고 사무실로 피하던 검찰 공무원이 엉덩이를 얻어맞고 말았다.
기사가 아니라 마치 기자의 무용담이나 수기 같았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더 많은 사진은 본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대놓고 홍보였지만 이걸 안 누르고 배길 사람이 있겠는가.
당장 홈페이지가 버벅댈 정도로 접속률이 폭증했다.
신문에 있는 것은 미친 듯이 찍은 수백 수천 장의 사진 중에서 엄선한 것들이고, 홈페이지에 있는 것은 그중에서도 쓸 만한 것을 추린 B급이었지만 이것도 반향은 엄청났다.
어떤 사진을 누르든 댓글이 수천 개 달려 있었다.
특종을 바라는 기자의 목적을 생각해 봤을 때 이 정도는 지극히 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신문사도 지금쯤 쾌재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일 테고.
사진에 달린 댓글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사진] 양발이 공중에 떠오른 담기욱 전 대통령
└각하 축지법 쓰신다~
└이 사진이 제일 맘에 든다. 발 뻗은 각도가 예사롭지 않다. 발끝에 채인 직후에 울컥하는 공무원의 표정도 리얼해서 생동감을 준다. 어디서 무공 좀 배워온 거 같다. 알고 보면 어디 문파의 후계자 아닐까?
└금고에 쌓인 돈 보니까 후계자 아니고 속가제자. 돈 주고 무공 배운 삼류인데 저잣거리에서 시비 걸고 다니는 거임. 클리셰 나왔다.
└아니, 공무원은 무슨 죄임? 이러니까 범죄자들이 공권력을 무서워하지 않는 거임. 그냥 엎어뜨려서 제압해야지. 공무원 산재 처리 해야겠는데.
└댓글 수준 보니 알 만하다.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저렇게 희화화해서 비웃고 떠들고. 나라 망신이다!
└나라 망신은 그 잘난 전 대통령께서 하고 계시구요.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까는데 뭐가 문제신지?
└담기욱이 지지율 40퍼로 당선이었어! 대한민국 국민 반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어쩌라고. 나도 담기욱 뽑았어. 내가 뽑았으니까 욕할 권리 있는 거 아님? 저런 십색기인지 알았으면 안 뽑았지. 이건 국민을 기만한 거고 쌍욕 처먹어도 할 말 없음.
└우리 친구들 중립 기어는 다 뽑아서 어디다 팔아먹었나요?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고 금고 사진이랑 복도에서 싸움 좀 한 거밖에 없잖아요? 설마 조사단이 잡아온 거 자체가 증거라고 할 건 아니죠? 우리 친구들 고물상에 팔아먹은 중립 기어 다시 찾아와서 잘 끼도록 해요~
└야. 사람 빡치는데 중립이니 나발이니 깝싸고 있어. 중립은 객관적으로 누구 잘못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 박는 거고요, 지금 네가 그 증거 잘 말했잖아. 금고! 드잡이질! 얼마나 해먹었길래 금고에 시발, 와. 빡쳐서 말이 안 나온다. 대충 눈대중으로 얼만지 계산해 본 사람 없냐? 글고 복도에서 지 형을 왜 팸? 둘이 나란히 해처먹다가 뭔가 틀어졌으니까 팬 거 아냐! 백 번 양보해서 형 때린 건 그냥 사적인 일이고 형제 싸움이라고 치자. 그래서 때린 건 폭행 아님? 넌 지나가다 처맞으면 경찰 부르지 마라.
└저 형님 진정 좀 하시고요. 물론 자세한 건 밝혀져야 알겠지만 금고에 있는 게 아무 문제 없는 자기 재산이면 이렇게 검찰이 나서서 난리쳤을까요? 당당하게 나서면 될 걸 왜 담기욱이 저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됐고 금고 사진 좀 더 올려줘! 안에 얼마 들어 있었는지 너무 궁금한데 왜 안 올려주는 거야!
└현장 사진이고 증거라 함부로 못 올리지. 조사하고 나서 발표할 때 나올걸?
그다음으로 화제인 것은 신재현의 사진이었다.
└둘이 여유로운 거 보소. 이제 다 잡은 먹잇감이라 이거지.
└대통령이 싸우는데 안 말리고 뭐함? 앞에선 그 난리 나는데 왜 저렇게 여유로운 표정이야? 싸가지 없는 거 아님?
└여기가 조선시대인가요. 윗분은 담기욱 지나가면 무릎 꿇고 큰절 올리실 건가 봅니다. 전 대통령이 발차기 하고 날아다니는데 웃기지 안 웃기냐? 사진으로 봐도 존나 웃기는데 그걸 직관하니 얼마나 재밌겠어.
└와씨. 존나 멋있지 않냐? 전 대통령이랑 공기업 사장이 시트콤 찍고 있는데 그 뒤에서 여유롭게 등 기대서 구경하고. 내가 딱히 팬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진짜 멋있다.
└여러분 신재현 팬카페 가입하러 오세요~ 출근하는 신재현, 넥타이 푸는 신재현, 창밖을 내다보는 신재현, 멋진 신재현 사진 수천 장 있습니다~
└@#$팬카페^%%가입 즉시 등업 보장%!#@$탈세하지 않는 법 공유%[email protected]납부 세금 인증 시 정회원 등업@#
신재현 팬카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틈새 활동을 개시했다.
‘과하지 않게 행동하라. 신재현 욕먹이지 마라’는 활동 강령이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억눌려 있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이렇게 기회만 타면 귀신같이 나타나곤 했다.
이젠 없으면 서운한 풍경 같은 존재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딱 한 장뿐인 금고 사진에 대한 예측도 흘러나왔다.
이건 주로 뉴스나 사설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첨부한 게 많았다.
아침에도, 정오 뉴스에도 내내 전문가를 초빙해 놓고 사진을 분석하는 데만 시간을 다 쓸 정도였다.
-오늘은 가장 핫한 뉴스인 담기욱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현장 사진을 볼까요. 딱 보면 아시겠지만 금고입니다.
-지금 사진상으로 살짝 위쪽에서 찍었기 때문에 금괴의 갯수는 얼추 추론이 가능해요. 가로로 몇 개, 세로로 몇 개 이런 식으로요. 정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정확한 건 모르니 유추입니다.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골드바가 100개는 안 되는 걸로 보이거든요. 90개라고 쳤을 때, 한국금거래소 기준으로 80억입니다.
-세상에 80억이요.
-네. 눈에 보이는 금괴만 그렇다는 뜻입니다. 지금 플래티늄바도 있고 유가증권도 얼핏 보이는데 이것들은 정확한 금액을 추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것들 역시 보이는 것보다 금액이 상당할 겁니다. 특히나 골프 회원권 저런 거는 하나에 20억씩 하는 것도 있거든요. 그래서 감히 제가 금액을 추측하긴 어렵지만 저 금고 안에만 200억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님, 제가 지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하나 있는데요. 금거래는 기록이 남지 않습니까? 저만한 금괴를 흔적이 안 남게 마련한다는 게 가능한가요?
-아, 그게 말입니다. 금 거래를 할 때 개인정보를 적지 않습니까. 그게 조폐공사에서 5년간 보관하고 그 후에는 폐기를 합니다. 국세청이나 검찰청 같은 다른 기관에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 아니라요.
-하다못해 금융기관은 입출금이나 계좌 생성 기록, 카드 내역, 대출 담보 전부 정부에 제공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금거래 쪽이 상대적으로 허술합니다. 특히나 요즘엔 인터넷으로 거래를 많이 하잖습니까. 그 경우에는 기록이 남지를 않아요. 예를 들어서 제가 지금 자료를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한국조폐공사의 골드바 전체 매출 금액 중에서 작년 1년간 38%인 약 250억가량이 무기명 현금거래로 이루어졌다는 발표가 있습니다. 누가 사서 누가 팔았는지 추적이 불가능해진다는 뜻이죠.
-1년에 250억이요.
-네. 요즘엔 금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에 거래가 더욱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미 5년 이전의 자료는 다 파기되었을 거라 전 대통령의 저 자금 출처를 파악하는 데 검찰과 국세청이 큰 난항을 겪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일반인은 모르고 있던, 아는 사람만 아는 정보가 뉴스를 통해 퍼지자 이것 또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 금융실명제 아냐? 금거래에서 무기명 거래하면 대놓고 검은 돈 만들라는 얘기 아닌가?
└님들ㅋㅋ 골프회원권도 무기명 거래 됩니다~ 모르는 사람 많으셨구나!
└알음알음 다 해처먹고 있었던 거임. 국민만 몰라.
└저거 싹 밝혀서 엮인 놈들 있으면 줄줄이 다 털어야 함. 저거 형성하는 과정 투명하게 밝혀야 함.
└무기명 거래 가능하다잖아. 전문가 말대로 추적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우려와 걱정이 섞인 여론이 집중된 가운데 조사단은 착실히 증거를 수집해 나가고 있었다.
지현석은 담기욱과 그 형인 사장의 주변을 쌍끌이 어선으로 치어까지 긁듯 빠짐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신재현은 뭘 하고 있었는가 하면.
“다음 자료 주세요!”
걷어 온 자료들을 속독하다시피 읽어내며 해치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