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66화 (466/500)

466화. 은밀한 다음 타깃 (6)

“그 소식 들었어요? 조사단이 오늘 또 나갔다네.”

나른한 오후.

서울중앙지검의 사무관들은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들이켜고 있었다.

사무실에 비치된 믹스 커피는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한 잔씩 돌렸다.

그래도 오후 3시가 지나자 끔찍한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사무관들은 다시 종이컵에 커피와 물을 붓고 오후를 보낼 카페인을 제조하는 중이었다.

이럴 때면 잠도 깰 겸 항상 하는 잡담이 있었다.

화제는 매번 동일했다.

그러면서도 말할 때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그만큼 조사단은 핫한 주제였다.

“경찰까지 동원해서 스타렉스 타고 나간 것 같던데.”

“어, 아침에 저도 봤어요. 어디로 간 걸까요?”

“자기들도 모르는 것 같던데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들었는데 가면서 브리핑한다고 일단 타라고 하더라고요.”

“어! 그거…….”

사무관들은 서로 은밀한 눈빛을 교환했다.

비록 사무직이라고는 하지만 검찰에서 구른 지 몇 년이다.

보통 어떤 경우에 이런 말이 나오는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무관들은 목소리를 낮췄다.

“이거 은밀하고 긴급을 요하는 거대 사건일 경우에 자기 팀한테도 비밀로 하고 일단 나가는 경우 있잖아요. 그거죠?”

“네. 내부에서 누가 들을지 모르니까 무작정 차 타고 나가서 가는 길에 목적지 말해주는 그거요. 어딜 가서 뭘 가져와야 하는지는 딱 한두 명만 알고 나가잖아요.”

이런 경우 베테랑 수사관들은 어딜 가냐고 캐묻거나 추측하지 않는다.

그만한 사안이라는 뜻이니까.

사무관끼리의 대화에 서류를 검토 중이던 검사가 끼어들었다.

“파란이 불겠네요. 오늘 퇴근할 수는 있으려나.”

사무관들이 흠칫 놀랐다.

야근을 자주 하는 이들에게 퇴근은 중대 사항이었다.

“예? 난리 나는 건 조사단인데 왜 우리가 퇴근을 못 해요?”

“기자들 깔릴 테니까요. 앞문에만 모이면 다행인데 옆문까지 몰리기 시작하면, 하…….”

“아.”

깊은 탄식이 흘렀다.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냥 검사실에서 비밀리에 조사를 나가도 큰 걸 물어오곤 한다.

그런데 조사단이 저러고 나갔다면 얼마나 큰 먹잇감을 갖고 올까.

“저, 검사님. 저번에 국회의원 대규모 조사할 때 검사님도 참여하셨죠?”

검사는 여전히 서류를 넘기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배당받은 사건 개수를 생각하면 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국회의원 조사 때 중앙지검 각 검사실에서 소매를 걷고 나선 여파가 조금 남아 있었다.

300명에 친인척까지 조사하다 보니 급하지 않은 사건은 다 뒤로 밀린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정말 바쁜 기간은 지났고, 벅찰 정도로 일이 몰린 건 아니라서 검사는 대화하는 내내 쉬지 않고 손을 놀렸다.

국회의원 조사에 참여한 검사들에게 있어 이건 훈장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검사 생활을 하며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겠는가.

“네. 참 재밌었죠. 검사 생활 처음으로 기자 인터뷰도 했었고.”

“이번에 조사단이 가져오는 건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 건도 엄밀히 말하면 조사단 내부에서도 좀 벅차서 검사님들이 손 걷고 나서신 거잖아요.”

검사는 잠시 손을 멈추고 골무 낀 손가락으로 형광펜을 만지작거렸다.

“뭐, 벅차다고 말할 것까진 아니었어요. 조사단이 각 부처에서 파견 나와 가지고 수사권 주고 묶은 거잖아요. 지휘를 검찰이랑 국세청 쪽에서 하는 거지. 가보니까 각 부처에 건수 할당해 가지고 거기서 조사해오면 법 적용만 검찰 쪽에서 마무리하더라고요. 거의 공장식 분업이었는데. 우리가 도와준 게 그 자료 취합이랑 법리 적용이었거든요.”

사무관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로만 들어서는 잘 와 닿지 않는 듯했다.

“그럼 검사님은 이번 건도 별 풍파 없이 잘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야 당연하죠. 뭘 낚으러 갔는지는 모르지만 먹을 만하니 물어뜯으러 갔을 겁니다. 입에 들어오는지 아닌지 그것도 계산 못할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누굴 잡아올지 저도 기대가 되네요.”

조사 내용은 팀원들조차 모르는 기밀이었으므로 검사 역시 추측만 할 뿐이었다.

요즘 공기업을 털고 있다고 했으니 대충 공공기관 사장이나 임원 중에서 전직 차관이라든가, 부동산 재벌 같은 사람들 굴비 엮듯 쭉 데리고 오겠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검사님! 왔어요!”

사무관이 핸드폰을 보며 창문을 가리켰다.

단체 대화방에 목격 정보가 뜬 것이다.

검사는 내내 붙잡고 있던 서류와 형광펜을 책상 위에 내팽개치고 냅다 일어섰다.

창가에 바짝 붙어 내려다보니 정말 여러 대의 차가 줄줄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대체 누구지?”

사무관들도 옆에 와서 창문에 얼굴을 딱 붙였다.

저만한 숫자가 나갔으니 분명 한두 명이 아닐 텐데.

“밑에 내려가서 보고 올까요?”

“아니에요. 괜히 저 사람들 들어가는 데 복잡해집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검사 역시 내려가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체면도 있고, 남의 사건이라 그러진 않았지만.

“어어! 어!”

사무관이 핸드폰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또 뭔가 올라온 듯했다.

“검사님! 저기, 방금 내린 사람이요!”

“여기서는 잘 안 보이는데요. 누구랍니까? 대충 보니까 생각보다 몇 명 안 데려온 것 같은데.”

저만한 인원이 갔으니 사장들 최소 열 명은 묶어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아는 조사단 숫자와 그닥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복 차림의 경찰까지 껴 있는 걸 보니 절대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은데.

“검사님! 대통령이에요! 전 대통령 담기욱! 미쳤나 봐!”

사무관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를 나무랄 수가 없었다.

검사는 참지 못하고 사무실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자신의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만은 아닌지, 다른 사무실 문이 열리며 또 누군가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도 답답했기에 몇 명은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검사 역시 계단으로 향했다.

이렇게 뛴 것은 오랜만이었다.

굳이 떠올려 보자면 공부하던 시절 식당 간다고 달려가던 것과 비견할 만했다.

헉헉거리며 1층으로 내려오자 다행히 아직 조사단 일행은 로비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상층에 묶여 있어서 아직 올라가지 못한 듯했다.

모자를 꾹 눌러쓴 풍채 좋은 남자가 양손에 수갑을 차고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그 양옆에는 중앙지검에서 자주 본 익숙한 얼굴의 수사관이 떡하니 팔을 붙잡고 있었다.

딱 봐도 현행범을 체포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취급이었다.

그 바로 뒤에는 지현석과 신재현이 나란히 서서 손에 든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걸 보면 오늘 이들이 행선지를 숨겨가면서까지 데려온 사람이 바로 수갑 찬 저놈이렸다.

전 대통령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었다.

이미 로비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뛰어 내려온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다들 공무원증을 휘날리며 기겁한 표정을 하고서는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문자를 하고 있었다.

각자 아는 사람에게 이 엄청난 사태를 전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다.

검사는 슬금슬금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섰다.

처음 잡혀 오는 범죄자가 으레 그렇듯 옷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미친놈. 이 날씨에 탈수 오겠네.’

얼굴 가리겠답시고 모자에 재킷까지 둘러쓸 게 아니라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말았어야지.

앞서 엘리베이터 쪽에 접근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숨을 들이켜며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검사는 고개를 쑥 빼고 재킷에 채 가려지지 않은 맨 얼굴을 훑었다.

땀에 절어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절대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의 수반이었으며, 그들이 모시는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진짜네!”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검사 역시 주춤거리며 얼어붙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와서 얼굴을 확인하고 얼어붙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이 진풍경은 계속되었다.

조사단 일행이 담기욱을 태우고 올라가자, 드디어 굳어 있던 사람들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말도 안 돼. 담기욱, 담기욱 전 대통령 맞죠?”

“세상에. 손에 수갑 찬 거 봤어요? 아니, 전 대통령을 잡아왔단 말이야?”

비상구에서는 지금도 문이 열리며 간헐적으로 검사나 사무관들을 뱉어냈다.

그들은 이미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보며 탄식했다.

내려올 때는 계단으로 뛰었지만 올라갈 자신은 없었던 검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엘리베이터 앞은 조사단 단원들과 검사, 사무관들이 섞여 인산인해였다.

검사는 멍하니 아까 자신의 사무관이 했던 얘기를 떠올렸다.

‘소화할 수 있을까요?’

조사단의 두 부단장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도 ‘소화할 수 있으니 잡아왔을 거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한 가지는 분명했다.

조사단이 전임 대통령에게 손을 댈 정도로 강력해졌다는 것.

그들은 충분히 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전 대통령을 냅다 잡아 왔다는 것이다.

상상 그 이상의 행동력이었다.

“와, 오늘 기자 몇 명이나 오려나…….”

오늘 퇴근은 굉장히 어렵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

전 대통령 담기욱이 검찰에 잡혀갔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대한민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속보] 담기욱 전 대통령, 사저에서 긴급 체포

정확한 상황을 취재하기 전의 단 한 줄짜리 속보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왜? 대체 왜???

└담기욱이라고? 갑자기? 공기업 조사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멍청이들아. 공기업은 겉으로 보여주기인 거지. 보안 유지 모르냐? 원래 조사하는 건 결과 나오기 전까지 겉으로 안 밝히는 거야. 수사물 드라마에서 봤어.

└근데 뭘로 걸린 거임? 빨리 후속 기사 뜨라고!

└나 서초동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창밖에 기자들 겁나 많다ㅋㅋㅋ 대통령 잡힌 게 진짠가 봐ㅋㅋㅋㅋㅋ 야, 이 시간에 길이 막혀!

└큰일 났다. 나 그쪽 길로 퇴근하는데 집에 어케 감?

└지금 전 대통령이 체포됐는데 퇴근이 문제냐? 지하철 타고 가!

└대통령이고 나발이고 횡령 아니면 뇌물이겠지! 조사단이 알아서 조사해 갖고 발표할 거고 지금은 내 퇴근이 더 중요해!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터라 어김없이 음모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담기욱 대통령님이 그러실 리가 없다! 간악한 조사단이 누명을 씌우는 거야! 전 대통령 죽이기다! 정권 잡으려고!

└담기욱이랑 현 대통령이랑 둘 다 같은 당인데요.

└나는 안 믿어! 우리 담기욱 대통령님만 믿어!

└아, 예…….

상대가 상대인 탓인지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전에 잡으려는 건지, 조사단은 재빨리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속보] 담기욱 전 대통령 사저 금고 사진

제목부터가 안 누르고는 못 배길 만큼 유혹적이었다.

실제로 내용은 딱 한 장의 사진과 한 줄의 짧은 설명뿐이었는데도, 조회 수는 순식간에 랭킹을 뚫고 올라갔다.

속보가 랭킹에 든 것은 의외인 일이었다.

-조사단이 공개한 사저 현장 조사 사진

간혹 국세청에서 고액 체납자의 집을 덮치고 곳곳에서 돈과 귀금속을 찾아내는 사진을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

탈세해도 찾아냅니다, 라는 경고의 메시지와 함께 국세청이 열심히 일한다는 보여주기 식의 공개였다.

오늘의 이 사진은 그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허름한 벽면에 낡은 선반은 거칠게 뜯겨 나가 있고, 그 안의 금고 철문 역시 도구로 뜯겨 있었다.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을 술병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사진 가장자리에 찍힌 누군가의 팔꿈치가 현장감을 더했다.

그러나 사진 정중앙의 그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감정이 들게 했다.

사진으로도 느껴지는 금빛 광채.

거기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고 다시 사진에 찍힌 잡동사니를 살펴보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까는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허름한 느낌이었다면, 금괴를 보고 난 후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현장의 공무원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사진 가장자리에 찍힌 흐릿한 팔꿈치마저도 그랬다.

└씨바, 저게 얼마냐

└빼박이네.

└대통령 죽이기라는 사람들 빨리 튀어나와서 해명해라. 저게 뭔지.

└아니야, 아직 몰라! 자기 재산일 수도 있잖아! 왜 대통령이 가진 재산은 다 부정축재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라르 드 풍자크

빼도 박도 못할 증거 사진 하나가 온갖 반향을 휩쓸며 인터넷에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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