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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463화 (463/500)

463화. 은밀한 다음 타깃 (3)

전 대통령을 조사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로 나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우리 팀원들을 못 믿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 알려져도 상관은 없지만 원래 비밀이라는 것이 그렇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흘러나가게 된다.

사람은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다고 전 대통령을 못 칠까 봐, 조사단이 밀릴까 봐 두려운 건 아니었다.

까짓것 권력의 정점이라는 차기 대선후보도 지금 재판 중이시고 서울 시장님도 골로 가셨는걸.

내가 걱정하는 건 저쪽이 준비 태세를 갖출까 봐다.

장부든 재무제표든 은행 계좌 기록처럼 이미 다 마감이 되어버린 공공 문서를 손댈 수가 없다.

문제는 원장이다.

일반 사람들이 원 장부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것은 안타깝게도 국세청에 제출하지 않는다.

최종적인 재무제표만 들어올 뿐.

하다못해 법인이라면 결산서도 있고 세무조정부속서류가 있어서 그 서류에까지 맞춰 조작하기가 꽤 어렵다.

개인 사업자는 상대적으로 제출 서류가 느슨했다.

전 대통령 담기욱의 경우 개인 사업자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은퇴 후 소일거리구나’ 싶을 정도로 가벼운 자문과 부동산 임대 정도다.

뭐랄까, 딱 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조용한 삶을 추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충 훑어봐서는 잔잔해서 물밑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타깃으로 정했다는 게 알려지면 관련 자료를 다 어디로 빼돌릴까 봐 걱정이었다.

지난번에 회계사를 쫓아 동분서주했던 것처럼 여기 뒤지고, 저기 뒤지고.

인력도 낭비될 뿐더러 여론에도 안 좋다.

미리 최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했다.

덕분에 나는 서울로 자주 올라가게 되었다.

어떻게 조사할지 회의하고 계획을 짜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지현석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가 다음에는 민치호를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댔다.

내가 지현석을 만나러 가면 뭔가 꾸미는 것 같지만 민치호한테 간다고 하면 다들 이해해준다.

뭔가 바뀐 것 같긴 한데.

그렇게 한 번은 중앙지검으로, 한 번은 식당으로.

카페 같은 곳에서는 사진 찍혀서 SNS에 올라가기 일쑤라 제외했다.

‘부단장 둘의 밀회! 이번 조사는 역대 최대?’

이런 기사가 뜨기 십상이지.

사실은 어떤지 모르면서 일단 쓰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 최대까지는 아니지만 들으면 기겁할 규모가 될 예정이고 밀회인 것도 맞지만.

뒷발질 치다 쥐 잡는 경우라고 할까.

때문에 오늘은 정말로 민치호의 집에 들렀다.

‘청장님, 지현석 검사님과 만날 건데 청장님 성함 좀 팔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민치호는 흔쾌히 허락했다.

아니, 허락한 정도가 아니었다.

‘이름 팔 거면 와서 저녁이나 먹고 가지?’

오늘 저녁을 민치호의 집에서 먹게 된 이유였다.

나는 익숙하게 민치호의 집에 들어섰지만 지현석은 쭈뼛거리며 90도 각도로 민치호에게 인사했다.

“어서 와요. 얼굴은 자주 봤는데 우리끼리 이렇게 밥 먹는 건 처음인가?”

“옙, 청장님.”

“편안히 얘기 나누면 돼요. 우리 집에서 말 새어 나갈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개별실 있는 식당 찾아다니는 것보다 이게 낫지 않겠어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치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지현석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왔다.

인사만 다섯 번은 한 것 같다.

나는 얼른 식탁으로 다가갔다.

안쪽 자리에는 이선균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니, 사모님은 어디 가시고 과장님이 그 자리에 계세요? 혹시 저 없을 때도 과장님이 청장님하고 매일 저녁 드시는 건 아니죠? 청장님 고생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선균은 푸허허, 하고 웃었다.

“무슨 말씀을. 제가 청장님을 괴롭히는 게 아니고 청장님이 절 괴롭히시는 겁니다. 사모님이 친구분하고 놀러 나가시면 꼭 날 부른다니까요. 요리도 내가 해야 돼요, 나참.”

지현석이 조심스럽게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다가 기겁했다.

“과장님께서 하셨다고요?”

“아니, 오늘은 퇴근하면서 사 왔죠. 우리 집 밥상 차리는 것도 귀찮은데 어떻게 청장님 저녁을 매번 차려 드려요. 쭈꾸미는 청장님 카드로 긁었으니까 편하게 마음껏 들어요. 밑반찬은 청장님 냉장고 털었습니다.”

체할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지현석이 조금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민치호도 자리를 잡으며 타박을 했다.

“어허, 이 사람아. 누가 들으면 맨날 불러다 밥 시키는 줄 알겠네. 격주로 오면서 무슨.”

“격주도 많아요. 사모님 놀러 나가실 때마다 부르시잖아요.”

“그럼 안사람 나갈 때 부르지, 있을 때 왜 불러? 뭘 생각한 거야?”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오해받기 딱 좋게.”

“이 과장도 심심해서 오는 거면서 뭘. 오늘 뭐 먹을까 제일 신나던 게 이 과장 아냐? 제수씨는 알려나 몰라. 우리 집 오면 술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하던…….”

“아이고! 알겠습니다. 재깍 올 테니까 좀 봐주세요.”

이럴 때 보면 둘이 참 사이가 좋다.

공무원 되기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부장이 거의 매일같이 밥 먹고 가자고 직원들을 붙잡았는데.

그걸 생각하면 격주에 둘이 만나 술 한 잔씩 하는 정도면 양반이지.

“그럼 들면서 편하게 얘기 나눠요. 얼른 먹읍시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우렁차게 대답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숟가락을 들었다.

지현석 역시 머뭇거리며 밥을 한 술 뜨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눈치고 뭐고 없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원래 검사는 이렇게 빨리 먹나?

거의 둘러 마시는 수준이다.

민치호와 이선균이 자리까지 깔아줬으니 사양할 필요가 없다.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 대통령 담기욱, 사저 한번 털고 싶은데 영장 안 나오겠죠?”

“어렵죠. 지금 명확한 혐의가 없잖습니까.”

이게 문제였다.

정황 증거뿐이다.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사저를 쳐들어가야 하는데 영장을 받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니.

나는 투덜거렸다.

“분명히 비자금 빼돌린 거 맞는데.”

“그 빼돌린 비자금을 찾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죠. 다른 걸로 끄집어내야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선균이 끼어들었다.

“선전포고는 아직 안 했죠? 상대방은 이쪽에서 조사한다는 걸 모르는 상태고?”

“네. 저희 쪽에서 준비를 하고 조사 공문 보내야 할 것 같아서요.”

“잘했습니다. 증거 인멸의 위험이 있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서 무언가가 생각났다.

“증거 인멸의 위험이 있는 경우엔 다짜고짜 들어가도 되잖아요.”

지현석은 음, 하고 소맷자락을 습관처럼 걷었다.

“흔히 쳐들어가서 싹 쓸어오는 걸 압수수색이라고 생각하죠. 틀린 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압수와 수색은 분리가 돼요. 수색은 말 그대로 찾는 거고, 발견한 증거물은 가져와야 하니까 압수로 이어지는 거죠. 그래서 편의상 압수수색영장이라는 하나로 발부되긴 합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범죄 혐의가 소명되어야 해요. 개연성에 대해서는 낮은 수준이어도 되지만 혐의에 관해서만은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압수수색은 안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

“국세기본법에서 말입니다. 탈세의 명백한 혐의가 있을 경우, 증거 인멸이 의심될 때는 세무조사 예고통지서 없이 들어가서 조사해도 되잖아요.”

“그 경우에는 탈세에 관한 증거만 수집이 가능하겠죠.”

“탈세와 비리, 횡령은 관계가 있으니 탈세 혐의 명목으로 관련 자료 쓸어온 뒤에 ‘살펴보니 비자금 조성 혐의가 있어 검찰에 넘겼다’ 하고 그 뒤에 법원에서 영장 받으면 되지 않나요?”

숟가락 달그락거리던 소리가 우뚝 멈췄다.

지현석뿐 아니라 민치호와 이선균까지 가만히 날 보고 있었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잖아.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니 민치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잔머리 하나는 기깔 나게 돌아가네. 검찰이랑 일하면서 시야가 좀 넓어졌나 봐.”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내가 헤실 웃자 민치호가 타박하듯 말했다.

“그래, 칭찬이야.”

“감사합니다.”

민치호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히죽 웃었다.

지현석만 진지했다.

“그런 비슷한 방법도 흔히 쓰긴 합니다. 근데 이번엔 좀 위험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기상천외하게 숨겨요. 막상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못 건지면 우리 쪽 타격이 큽니다.”

지현석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명색이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다.

이미지 관리도 잘 해서 아직도 지지자가 있다.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한 국가의 수반이었던 사람인데 우리가 쳐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오면?

또 다른 차명 부동산을 찾아 쳐들어갔는데 거기서도 허탕을 친다면?

지지자는 당연히 쌍욕을 할 테고, 일반 국민들도 실망을 하겠지.

조사단이 이번엔 엄한 사람을 잡았다, 실수를 했다고.

저번 공기업 사장들이 꾸며내던 기사가 바로 그런 식이었다.

조사단이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세상모르고 날뛴다고.

과하게 조사한다고 했던가.

한 방에 증거를 잡지 못하면 그런 기사가 또 나올 수도 있다.

“차라리 사무실이 따로 있는 거면 거길 털겠는데 지금 털 곳이 사저밖에 없잖아요. 거기가 좀 넓어요. 그리고 대통령 재임 시절에 새로 지은 거라서 어디에 어떤 공간이 있을지 알 수가 없고요.”

“건축사한테 도면 제출하라고 못 하나요?”

“제출받으면 되긴 하는데 내부에서 어떻게 리모델링을 했는지는 모르죠. 작정하고 숨기는 사람들은 땅을 다 뒤엎어야 될 수준으로 숨깁니다. 금속탐지기도 들고 가야 하고.”

하긴 대선 후보였던 하동문은 땅에 다이아를 숨겨놨으니.

하지만 그런 거라면 나도 자신이 있다.

땅에서 모락모락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구린 현금 덩어리들.

일단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슬쩍 지현석을 보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집 안에 들여보내만 달라고, 그러면 내가 마약탐지견처럼 온 집 안을 뒤져서 찾아내겠다고?

말도 안 되지.

그리고 나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비자금을 집에 보관해 놨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저번 호텔 주차장에서 돈다발을 파낸 것처럼 아예 다른 곳에 묻어놨다면?

“젊은이들이 고민이 많나 보네.”

민치호가 미역국을 들이켜다 말고 말했다.

참고로 이 미역국 역시 마트에서 기성품을 사온 것이다.

사온 건 이선균이고.

“고견이 있으시면 듣겠습니다.”

지현석은 자세를 바로 하고 민치호의 말을 기다렸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근데 내가 일해보면서 느낀 게 하나 있거든. 종이하고 숫자만 들여다보면 답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차라리 부딪치는 게 나을 수가 있어. 벽이 깨질지 내 머리가 깨질지 한번 박아보고 나면 약한 부분이 보인단 말이지. 내 머리가 깨지더라도 어떻게 박아야 덜 아픈지가 보이고.”

지현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을 직접 치기엔 위험 부담이 큽니다. 혐의점을 찾지 못해서요. 역공이 셀 겁니다.”

나는 문득 전 대통령 담기욱의 거대한 탈세액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던 자그마한 숫자 하나를 떠올렸다.

작다고 해도 억 단위긴 했는데.

“담기욱 막내딸이요. 아직 미혼이고 부모한테 얹혀살지 않았나요?”

“그렇…… 아, 설마.”

지현석은 이해가 빨랐다.

“네. 딸에게 탈세 혐의가 있습니다. 세무조사 한다고 하고 사저 들어가 보죠. 담기욱을 조사하는 게 아니라 막내딸을 조사하는 거니 여론 반응도 그리 거세진 않을 겁니다. 아무것도 못 찾더라도 일단 들어가 보죠. 담기욱을 엮을 수 있는 증거를 찾으면 좋고, 아니어도 내부를 둘러볼 수는 있으니까요.”

지현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민치호를 흘끗 보았다.

그리고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상 위에 앉아 말만 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건 아니니 청장님의 조언대로 한 번 부딪쳐 보죠. 꼬리가 길면 숨기기가 힘드니까. 뭐라도 건져봅시다.”

내부를 둘러보면 내가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적어도 안에 무언가 있다면.

이왕이면 주차장이나 하동문 때처럼 현금화 재산이 좀 쌓여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보석류를 쓸어 담아 압류 내역서를 작성하는 상상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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