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62화 (462/500)

462화. 은밀한 다음 타깃 (2)

대낮의 도심.

대한주택개발공사의 사장이 탄 차가 부드럽게 도로 위를 달렸다.

꽉 막히는 도심을 빠져나가 외곽을 돌던 차는 서울 근교의 어느 거대한 저택에 도착했다.

이 좁은 땅에 이런 집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정원도 있고 연못과 조경수도 있는 2층짜리 저택이었다.

자동차는 저택 내부에 깔린 길을 따라 뒤편 차고로 들어갔다.

구조가 좀 복잡해 보였는데도 많이 와본 것인지 운전기사는 조금도 헤매는 일 없이 곧장 정해진 자리에 차를 세웠다.

뒷좌석에서 내린 주택공사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구의 안내도 없이 복잡한 집안 내부를 이리저리 누비며 나아갔다.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그렇게 별관까지 도달한 사장은 내실로 보이는 문을 열었다.

-끼익.

응접실이라 보기에는 초라했고 창고라 보기에는 아늑했다.

안에는 벽을 따라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지만 가운데에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소파도 있었다.

여러모로 용도를 알 수 없는 방이었지만 사장은 왜 이 방이 이런 형태가 되었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사장은 익숙한 태도로 가운데 소파에 앉았다.

“문에 기름칠 좀 해야겠어.”

사장은 먼저 와 앉아 있던 건너편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주름이 깊어 사장보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그보다 3살이 어린 남자, 전 대통령 담기욱이었다.

담기욱은 흘끗 문을 보더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자주 올 것도 아닌데 기름칠을 왜 해.”

사장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은 이래서 동생을 싫어했다.

둘 다 여기에 자주 온다.

특히 저택의 주인인 담기욱은 주마다 들르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왜 저런 거짓말을 했는가.

‘다른 사람에게 자주 오는 것처럼 보이기 싫으니 시치미 떼자’는 말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 단둘이 있으면서 말을 왜 가린단 말인가.

심지어 담기욱 본인은 거짓말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둘이 대화하다 보면 자꾸 핀트가 어긋나는 이유다.

이럴 때의 대처는 하나였다.

무시.

사장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조사단이 바로 턱밑까지 붙었어. 이대로라면 큰일 난다고.”

전 대통령 담기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창고 같은 방 안에 금세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찼다.

그의 여유 있는 태도에 사장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기욱아,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신재현이 타깃으로 잡았다고!”

“형만 타깃으로 잡았겠지. 쯧쯧, 그러게 적당히 하지. 왜 욕심을 부려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담기욱이 현직에 있을 때 그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너무 티가 나니까.

그래서 가족과 형제의 이름으로 이리저리 해먹은 게 좀 된다.

때문에 사장이 비자금 좀 만들었다고 해서 그게 다 사장의 돈인 건 아니었다.

거기에는 담기욱의 몫이 반 정도 끼어 있었다.

그때도 그렇고 최근까지도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형제고, 함께 돈 벌어서 나쁠 게 없으니까.

대통령인 동생 덕으로 눈먼 돈을 모았으니 반을 가져간다고 해도 마냥 좋았다.

남은 반만 해도 100억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질수록 더욱 남의 것을 탐한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둘은 형제애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 동생의 여유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 혼자 뒤집어쓰라는 건 아니지?”

정치인들의 나쁜 버릇은 익히 알고 있었다.

동생을 봐왔으니까.

당장 눈앞의 동생만 해도 흔히 그런 방법을 써먹었다.

어느 부처에서 어떤 사건이 터졌는데 장관이 옷을 벗었다.

일반 국민들이야 ‘장관 놈이 멋대로 행동했구나’ 하겠지만 실상은 대통령이 명령을 내린 걸 그저 수행하기만 했을 뿐이다.

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무슨 힘이 있겠는가.

들키니까 그냥 꼬리 자르기다.

어쩐지 그때의 느낌이 지금도 슬슬 풍겨왔다.

담기욱이 아무 말 없이 담배만 뻑뻑 피고 있자 의심이 자꾸만 강해져갔다.

“야! 내가 나 혼자만 잘살자고 했냐? 네가 알려주는 대로 다 했잖냐. 너는 겉으로 나설 수 없대서 내가 온갖 시궁창 같은 놈들 다 만나가면서 여기까지 왔어. 이 집도 내가 세워준 거나 마찬가지고!”

금수저도 아니고 특출난 능력이 있어서 사업을 성공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만한 대저택을 짓고 유지를 하겠는가.

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 이런저런 방법으로 쌓은 부와 권력 덕이다.

문제가 있다면 담기욱은 대통령이라는 입장상 나서지 못해 형인 사장이 모든 걸 처리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의 특성상 사람이 많이 꼬이면 위험하기 때문에, 해외 현지 법인을 만들 때도 사장이 직접 나가서 현지인과 부대껴 가며 일을 처리했다.

아이디어는 동생이 줬을지 모르지만 행동한 건 사장이다.

그는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너는 단물만 쏙 빼먹겠다는 거야? 절대 안 되지. 내가 어떤 개고생을 했는데. 네가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자 사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컷 일만 하고 팽당하던 수많은 청와대 식구들이 떠올랐다.

비서관, 행정관, 그리고 알게 모르게 버려진 공무원들.

같은 핏줄을 타고난 혈육인데도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눈앞의 동생이 충분히 자신을 잘라내고도 남을 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담기욱이 재떨이를 들어 올리더니 동그란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았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형. 왜 그렇게 흥분했어. 내가 어떻게 형을 버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전 대통령이 뱉은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일단 형, 앉아봐.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야 방법을 마련하는 거니까.”

그 말에 사장은 금세 화를 가라앉혔다.

의심하니 뭐니 해도 지금 그가 매달릴 수 있는 구멍은 동생뿐이었다.

그가 이렇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자 비빌 언덕.

나이는 어리다지만 동생은 서열로 치면 사장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어. 조사단이 공기업 전수조사를 했고, 거기에 형 기업체가 껴 있었다는 거잖아. 거기서도 형이 제 버릇 남 못 주고 자잘하게 해먹다가 걸릴 것 같아서 불안하다는 거지? 그리고 그걸 빌미로 쭉쭉 타고 들어와서 우리한테까지 도달할까 봐 걱정인 거고.”

명색이 전 대통령인 만큼 상황 정리는 빨랐다.

사장의 어수선한 보고를 듣고도 금방 그 핵심을 짚어냈으니까.

그러나 사장은 그 말투에서 어쩐지 불쾌함을 느꼈다.

제 버릇 남 못 주고 자잘하게 해먹다니.

그것도 다 동생한테 배운 건데.

마치 자기는 깨끗한 것처럼 자신을 비난하고 있지 않은가.

“자잘하게라니. 공기업도 꽤 짭짤해. 올해만 10억 정도 먹었는데.”

“그러니까 형 그릇이 작다는 거야. 10억 해먹고 이렇게 걸려서 우리 다 위험하게 만드는 거야?”

사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1년에 10억이면 큰돈인가?

당연히 큰돈이다.

그러나 전 대통령의 스케일 앞에서 당당하게 큰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할 말이 없어진 사장은 화풀이를 하듯 거친 손놀림으로 구석에 있던 위스키를 꺼냈다.

술기운이라도 빌려야 동생에게 막말이 가능했다.

잔을 하나만 갖고 오자 담기욱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사장은 조용히 돌아서서 다시 잔 하나를 더 챙겼다.

이미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형이 그럴듯한 직함 갖고 싶다고 해서 공기업 사장 추천에 형 넣어줬잖아. 그러면 남한테 피해는 끼치지 말고 알아서 처신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네가 주택공사 사장 하라고 했잖아. 그래야 우리한테 이득이라고.”

“형이 사장 자리 앉은 게 누구한테 더 이득이겠어. 형 좋은 일이잖아. 그럼 어떻게 행동해야겠어? 겨우 10억 갖고 줄줄이 타고 올라온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시작은 작은 금액이다.

그러나 조사단은 바보가 아니다.

계좌든 재산이든 들여다보면 이상함을 느낄 테고 공기업 횡령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무언가가 뒤에 있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눈앞의 자잘한 푼돈에 신경 쓰다 큰 걸 놓치게 생긴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 사태를 만든 가장 큰 책임은 사장에게 있었다.

그만 아니었다면 전 대통령은 물밑에서 아주 조용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을 테니까.

“형이 감옥 갔다 와. 그 방법밖에 없어.”

전 대통령은 아주 차갑게 말했다.

사장이 울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야! 형한테 그게 할 소리야? 내가 어떻게…….”

“그만. 누가 더 공로를 세웠는가 하는 얘기는 이제 와선 소용없어. 형이 혼자서 망쳐놓고 있으니까.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지.”

“너……!”

“참 답답한 인사구만.”

전 대통령 담기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벽으로 다가갔다.

선반에 위스키 병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술 창고구나 싶을 정도로.

가운데 소파가 놓여 있는 것도 그저 여기서 술을 먹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담기욱은 그중 술병 하나를 치우고 선반 위와 아랫부분에 동시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지문이 인식되자 딸칵 소리를 내며 선반이 열렸다.

이것 자체가 하나의 금고였던 것이다.

문처럼 열린 선반 뒤에는 금괴와 5만 원권, 그리고 유가증권이 쌓여 있었다.

모두 무기명으로 몇 명의 사람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깨끗한 것들이다.

돈세탁이 끝난 것이다.

“그깟 횡령으로 몇 년 들어가 있을 것 같아? 아니면 벌금으로 끝날 수도 있지. 반응하면 괘씸죄 먹일 수도 있으니 변호 포기하고 징역을 산다 치자. 3년에서 5년이야. 그것만 살고 나오면 이거 반절이 형 거잖아. 안 그래?”

황금의 휘황찬란한 광채에 넋 나간 사장이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는 ‘한 번에 갖다 쓰면 티가 난다’는 동생의 성화에 쌓아두기만 했던 것이다.

“3년이라는 세월은 금방이야. 괜히 사기꾼 놈들이 징역 사는 줄 알아? 일사부재리, 몇 년 살고 나오면 그 후에는 아무도 못 건드리거든. 형, 살고 나와.”

사장은 멍하니 그동안 품고 있던 불안을 내뱉었다.

“만약에 이것까지 들켜서 뺏기면?”

“절대 그럴 수가 없지. 형 집을 압수수색하고 마당에 지하실까지 포클레인으로 판다 해도 아무런 힌트가 없을 테고. 여기는 감히 누가 찾아오겠어? 내가 바로 전직 대통령인데.”

과연 수사기관들이 다 몰랐을까?

딱 봐도 소득만으로 저택 유지가 힘든 건 뻔히 보이는데, 다들 몰라서 내버려 뒀을까?

아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전임 대통령을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힘이 되어줄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물갈이되어서 요즘엔 조용히 지내는 중이긴 하지. 그래서 형이 매우 큰 실수를 했다는 거야. 하지만 다행히도 대선이 얼마 안 남았어.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면 조사단도 곧 공중분해 되겠지. 턱밑에 칼날을 세워두고 일할 대통령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형이 징역 살고 나올 때쯤엔 모든 게 다 평온해져 있을 거야. 몇 년 지나면 여론도 잠잠할 테고.”

사장은 자기도 모르게 맞장구를 쳤다.

“국민은 냄비와도 같으니까. 금방 까먹겠지.”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잘 알겠지?”

사장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 보았다.

마음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머리는 이미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사장이 깔끔하게 횡령, 비리 혐의를 인정하고 스스로 도마뱀 꼬리가 되어 몸통을 자르는 것.

적어도 지금 있는 현금 다발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신재현과 협상하겠다’며 파업을 주도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었다.

그때가 1층인 줄 알았더니 바닥이 꺼지며 지하실까지 추락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떨어질 일이 없겠지.

횡령 인정하고 징역 가는 것보다 밑바닥이 어디 있겠는가.

사장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하나만 도와줘라, 동생아. 내가 다 끌어안고 신재현한테 다 자백할 테니까, 한 놈만 조져줘라.”

“신재현은 나도 손 못 대. 나중에 대통령 바뀌면 몰라도 지금은.”

“염치가 있지, 신재현은 아냐. 대한보증공사의 사장. 그놈이 폭로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거든.”

“입이 싼 놈이군. 그런 놈은 쓴맛을 보여줘야지. 알겠어, 내가 처리하지.”

형제간의 밀약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증인은,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는 금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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