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은밀한 다음 타깃 (1)
종로의 조사단 사무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초기에는 기자들이 차를 갖다 두고 잠복하며 우리가 들고 나는 것까지 체크하기도 했으니까.
그걸로 뭘 하나 싶었는데 다음 날 뜨는 기사를 보고 납득했다.
[지난 한 달간 두 부단장이 드나든 횟수와 시간대로 보는 이번 조사의 중요성]
우리뿐 아니라 다른 부처 팀장들의 횟수까지 체크해서 중요도를 따지고 앉았다.
예를 들어 어떤 조사에서는 주2회 아침 일찍 모든 팀장이 모였으니 많은 역량을 할당하고 있다는 식의 분석이었다.
이게 또 틀린 말은 아닌 데다 이걸 갖고 반박하기도 난감해서 그냥 내버려 두긴 했는데 참 기사 쓰는 방향도 다양하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기자들에게 알려진 건 종로의 사무실만이 아니다.
서초동의 중앙지검, 즉 지현석의 사무실도 호시탐탐 기삿거리를 노리는 기자들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들어가면 바로 소문이 난다.
사실 지금 공기업 조사하는 건 다들 알고 있는 일이니 내가 중앙지검에 들락거려도 이상할 게 없긴 한데, 오늘은 지현석의 요청으로 따로 보기로 했다.
바로 룸이 따로 있는 식당에서.
“둘이 먹으니까 간단하게 먹죠. 2만 원짜리 콜?”
“네.”
메뉴판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은 제일 싼 게 만오천 원짜리다.
그다음으로 싼 게 2만 원.
단둘이서 널찍한 룸에 들어왔는데 제일 싼 거 시키기엔 미안해서 고른 게 이거였다.
생선구이 모둠 정식.
“근데 갑자기 불렀는데 서울까지 오셔도 되는 거예요? 오늘 월요일인데 내일 출근 어떻게 하시려고.”
지현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계를 보았다.
내가 좀 일찍 나왔는데도 벌써 7시다.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오늘 신임 국장님 오셔서 청장님이랑 국장님들 모시고 환영회 있거든요.”
지현석이 질색했다.
“청장님하고 국장님이요? 다른 분들은?”
“안 끼죠. 제가 제일 낮습니다.”
“저런…… 오시길 잘했네요.”
“그렇죠? 검사님이 문자 보내주셨을 때 일부러 알고 보내신 건가 했습니다.”
“제가 타이밍을 잘 맞췄네요. 키워주시는 건 고마운데 어떻게 국장급 회식에 6급을 부른대요? 청장님 너무하시네.”
“그런 의미에서 검사님이 제 천사예요. 진짜 감사합니다.”
나도 청장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민치호가 두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고, 지금 청장인 오낙현도 심심하면 날 끼고 다닌다.
누군가는 날 보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청의 수장이 옆에 끼고 데리고 다닌다는 건 그만큼 뒤를 봐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장 저번에 회계사와 세무사협회간 업무 협약식 때도 나와 단둘이 갔고.
“제가 일이라면 군소리 없이 다 따라다녔거든요. 회식은 좀 빠져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도자기 잔에 물을 따랐다.
주문하자마자 밑반찬은 이미 세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도토리묵과 골뱅이무침을 집어 먹었다.
예의 갖출 자리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 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지현석도 나를 따라서 밑반찬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잡은 것은 연근조림이다.
“근데 신임 국장님 환영회잖아요. 빠져도 되는 겁니까? 밉보이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아는 분이거든요. 오늘 가면 분명히 이리저리 치일 거예요. 나중에 따로 모시고 술 마시면 돼요. 개인적인 얘기할 거면 차라리 그게 낫기도 하고.”
절대 국장이 싫어서 빠진 게 아니다.
나도 아는 얼굴 보고 나서 얼마나 놀랐는데.
서울청에서 민치호와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듣고 여기 왔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부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등등 물어볼 게 많았다.
오늘 회식 자리에서는 오히려 이런 사적인 얘기는 하기 힘들겠지.
나중에 자리를 잡는 수밖에.
“민치호 청장님이 보내셨다고 했나요. 슬슬 국세청에 사람 심어두시나 보네.”
검사라 그런지 보는 방향이 남달랐다.
“이게 그렇게 되나요? 민치호 청장님이 국세청장님 잡아먹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던데.”
국세청장의 임기는 2년에서 3년이다.
다음 청장은 민치호라고 결정된 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민치호는 딱 한 가지는 지켰다.
현 청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국세청에 과한 영향력은 행사하지 않았다.
민치호의 힘이라면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국세청을 장악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나는 지현석의 말에 반대 의견이었다.
“전에 파벌 싸움하던 손경진 원장님 같은 분이면 사람 보내서 물밑에서 알음알음 영향력 키우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우리 청장님은 뭐랄까, 선을 딱 그어놓으신 느낌이거든요. 당장 절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게 많을 텐데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아마 현재 청장님 물러나실 때까지 그 자리 존중해 드릴걸요.”
지현석이 오히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손만 뻗으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는데 그걸 자제하시다니 대단하네요. 권력의 맛을 아는 사람이 그러기 쉽지 않은데.”
지현석은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별생각 없던 나도 저걸 보니 생각이 기울었다.
어, 그런가?
민치호가 엄청 봐주고 있는 건가?
사과 샐러드를 반쯤 해치울 때쯤 문이 열리고 드디어 밥이 들어왔다.
국물은 뜨끈한 조개탕, 그리고 생선 구이 4종이다.
솥밥 뚜껑을 열고 밥을 덜어냈다.
그리고 대화는 잠시 멈추고 생선 살부터 발라냈다.
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밥 위에 가자미 살을 뚝 떼어 올리고, 그 위에 갓 담근 듯한 배추 겉절이를 쭉 찢어 돌돌 말아 올렸다.
한입에 안 들어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욱여넣었다.
청장이나 국장들과 먹었으면 절대 이렇게 못 먹었지.
“많이 배고프셨나 봅니다.”
지현석이 조용히 내 빈 국그릇을 가져가서 조개탕을 한가득 퍼주었다.
숟가락을 넣으면 자그락 소리가 날 정도로 모시조개가 잔뜩이었다.
젓가락으로 조개를 꽉 잡고 튼실한 조갯살을 남김없이 이로 긁어냈다.
옆에 놓인 통에 빈 조개껍데기가 수북이 쌓였다.
지현석은 갈치의 양옆에 붙은 가시를 발라내고 있었다.
젓가락을 눕혀서 가시만 발라내는 솜씨를 보니 예술적이었다.
그는 갈치 중앙의 뼈를 사이에 두고 정확히 반으로 가르더니 그걸 내 앞접시에 두었다.
갈치에는 파김치를 얹었다.
포슬포슬한 속살이 매콤한 파김치와 잘 어울렸다.
-후룩.
조개탕 국물도 훌륭했다.
“크어어. 술을 먹었어야 하는데.”
지현석이 매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월요일이라 술은 일부러 시키지 않았는데 국물을 들이켜는 순간 자제심이 흔들릴 정도였다.
“지금이라도 한 병 시키고 싶네요. 국물만 있어도 뚝딱이겠는데.”
“안 됩니다. 내일도 일찍 출근하셔야 하잖아요.”
“쓰읍.”
날 말리는 지현석도 국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우리는 초인적인 자제력으로 참아냈다.
“그럼 슬슬 우리 얘기를 해볼까요. 주택공사 사장 어떻습니까?”
어제는 국세청에 왔다 갔고, 검찰에서도 따로 주시하고 있는 그 사장은 우리 조사 대상 중에서도 아주 독보적이었다.
대통령의 형이라는 위치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자세한 내용을 알려준 내부 고발자, 보증공사 사장의 말에 의하면 저 사람은 마치 사장들 가운데서 윗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했다.
파업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주택공사 사장이고 다른 사장들은 그에게 끽소리도 못한다고.
그렇다면 주택공사 사장을 확실하게 쳐야 다른 공기업 조사도 비교적 수월해진다는 말이 된다.
물론 그것 때문에 주택공사 사장을 콕 집어서 검찰 조사를 맡긴 건 아니다.
독보적으로 눈에 띈 이유.
그것은 탈세액이었다.
대체 뭘 했는지 탈세액만 수십억 단위였다.
세금이 수십억이라는 소리는, 그가 빼돌린 비자금이든 횡령이든 그 금액이 백억은 넘어간다는 소리였다.
지현석은 슬쩍 솥밥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아까 밥을 긁어내고 찬물을 부어둔 터라 뚜껑을 열자마자 김이 쑤욱 올라왔다.
지현석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뚜껑을 닫았다.
남은 밥에 양념장을 넣어 싹싹 비비더니 테이블 밑에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냈다.
“대한주택공사 사장의 자산 목록입니다.”
나는 구운 김에 간장을 찍어 간식처럼 먹으며 봉투를 받아 들었다.
빈 조개껍데기가 담긴 통을 옆으로 치우고 종이를 꺼내 늘어놓았다.
땅, 건물은 기본이고 골프 회원권, 주식, 해외 법인의 지분, 선박 등등 재산 종류도 굉장히 다양했다.
내가 국세청에서 대략적으로 훑어본 것보다 훨씬 자세했다.
“이야, 자산 엄청나네요. 태생이 금수저인가?”
“아니요. 사장이 자기 대에서 번 겁니다.”
나는 눈썹을 꿈틀했다.
왜 사장이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왜 금수저냐고 물어봤는가.
그건 내가 국세청에서 간단하게 사장의 소득 신고 자료를 봤을 때, 사장의 소득이 저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사람은 버는 만큼 쓴다.
덜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경우는 있어도 번 것 이상의 돈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빚을 내면 가능하지.
그건 또 금융기관의 기록에 남는다.
결국 이만한 자산을 가졌다는 건 그만큼 돈이 있었다는 뜻인데.
“증여받은 것도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어요.”
증여세와 양도세 신고서는 이미 훑고 왔다.
지난 10년간 형에게서 받은 20억이 전부였다.
그걸로는 리스트에 있는 건물 하나만 사면 끝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입니다. 일단은 이 사람이 손댄 땅이 족족 개발됐어요.”
뻔한 얘기다.
국회의원 때도 몇 번 들통 났던 수법이고.
개발되기 전에 미리 정보를 듣고 땅을 사둔다.
그리고 개발되면 땅값이 폭등하니 그때 팔면 열 배, 스무 배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개발된 게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인가요?”
“당연하죠. 안 그랬으면 어떻게 개발 정보를 미리 알고 샀겠습니까.”
우리 둘 다 알고 있는 수법이다 보니 이야기가 빨랐다.
“다음으로 해외 자원을 개발한답시고 광산을 산 것도 있네요.”
“주택공사 사장이 어떻게 해외 자원 개발을 명목으로 광산을 삽니까?”
“여기 보시면 대한해외자원개발공사 사장과 같은 학교 출신입니다.”
“얼씨구. 이 새끼들 하는 짓들 참 노골적이네.”
입에서 쌍욕이 추임새처럼 튀어나왔다.
이것도 뻔한 얘기다.
외국에 광산을 산다고 하고 중간에서 매매나 협상 등 귀찮은 일을 대행해줄 현지 법인 하나를 섭외한다.
광산 매매 예산으로 천억이 책정되었다 치면 현지 법인에 백억이 흘러들어간다.
물론 그 천억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예산이고, 현지 법인에는 ‘누군가’의 차명으로 지분이 들어가 있다.
광산을 산다 치면 제3세계 같은 개발도상국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부의 감시도 닿지 않는다.
한마디로 눈먼 돈 백억이 어딘가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고 보니 그 광산은 사실 채산성이 거의 없는 속 빈 강정이었다는 말은 이제 와선 흔하다.
천억을 주고 샀던 광산을 눈물을 머금고 십억에 되파는 경우도 허다하고.
대통령이 작정하고 끼어들었을 경우에 가능한 방법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남은 고등어 살을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솥밥 뚜껑을 열고 바닥을 긁었다.
잘 우러난 숭늉이 고소한 향기를 풍겼다.
마찬가지로 냄새가 날 리 없는 종이에서도 아주 진한 무언가가 풍겨왔다.
손에 잡힐 것처럼 형체가 뚜렷한 구린내가.
“이거 딱 봐도 전 대통령이 여러모로 얽혀 있겠네요.”
누룽지에 상추 겉절이를 얹어 먹으면서 나는 손끝으로 서류를 주욱 넘겼다.
내가 본 탈세액과 사장의 자산 목록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엮어보았다.
아무리 해도 아귀가 맞지 않았다.
나는 젓가락 끝으로 서류를 가리켰다.
“비자금 형성 규모가 꽤 되겠는데요.”
“그렇죠? 국세청에 신고된 소득과 금융기관 입출 내역을 비교해 봤을 때 이 정도 자산은 안 맞아요.”
“지금도 자산화하지 않은 비자금을 많이 갖고 있겠죠? 뭘로 숨겨놨을까요. 현금? 대포통장? 금괴?”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 가짜 통장이 많이 사라졌다지만, 그래도 차명계좌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금괴와 유가증권, 골프 회원권 등은 무기명으로도 거래가 가능하다.
수표는 뒷면에 주민등록번호라도 적으니 추적이 가능하지만, 금괴를 무기명으로 거래해 버리면 찾을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이 둘을 한꺼번에 조사해야 합니다. 아주 조용히.”
지현석은 손가락으로 가장 뒷장의 인물을 쿡 찍었다.
이제는 퇴임한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