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반가운 얼굴 (2)
국장 취임식은 간소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한창 업무 중인 7월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거창하게 강당에다 직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연설도 좀 한 다음에, 신임 국장님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도 걸어뒀을 텐데.
본인이 기념식은 생략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본청에 오는 국장님을 허술하게 맞이할 순 없지.
저번에 대통령 때처럼 청장과 국장들만 모여서 맞이하기로 했다.
거기에 내가 끼었다.
당연히 6급 팀장인 내가 낄 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요즘 취급이 그랬다.
국장 회의에 너무 자주 나가서 그런가?
국장들이 모일 일이 생기면 으레 나를 부르곤 했다.
지금처럼.
“오늘 국장만 오는 게 아니고 팀장급도 하나 올 거야. 아직 7급인데 같이 징세법무국에서 일하기로 했어.”
미리 청장실에 와서 대기하고 있는 나를 보며 오낙현이 설명했다.
청장이 국장을 마중하러 나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신임 국장이 여기 청장실로 와서 인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국장들도 청장실로 모여들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급수가 낮은 나는 직접 로비로 신임 국장을 마중 나가기로 했다.
그 전에 오낙현에게 들르자마자 나온 얘기가 이거였다.
“서울청의 민 청장한테 추천받은 사람이야. 이력도 꽤 나쁘지 않고. 팀장이 같이 딸려오는 게 좀 의아하긴 한데. 민 청장이 두고 써먹어 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오케이했지.”
오낙현은 말하면서 결재 서류에 서명을 마치고 일어섰다.
나는 얼른 옷걸이에서 재킷을 들어 그의 팔에 소매를 끼워주었다.
나름 국장이 오는 것이라 이 더운 날씨에도 모두 넥타이에 재킷까지 갖춰입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민치호 청장님이 보낸 거면 어디서 오는 겁니까?”
“서울청. 국장, 팀장 둘 다 서울청이야. 조사 2국에 있었댔나.”
아, 내가 작년에 날려 버린 조사 2국의 빈자리에 들어간 사람이구나.
조사 2국은 참 수난이다.
작년에도 중간에 국장이 사라졌는데 올해도 국장 자리가 공석이 되어 버리네.
게다가 팀장까지 한 명 데리고 오는 거면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통탄하고 있을까.
“조사국에서 오시는 거면 제가 모르는 분일 수도 있겠군요.”
작년 서울청에 있던 사람들이라면야 알지만 해가 바뀌었으니 다들 직함도 바뀌었을 것이다.
같은 청에 잔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예 다른 청으로 가기도 하니까.
오낙현은 오묘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글쎄. 나야 네 인간관계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모르니까.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해 봐.”
시간이 되었으니 마중 나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나가려고 보니 머뭇거려졌다.
“청장님. 국장님께서 오시는데 6급인 저 혼자 나가도 되는 겁니까? 적어도 과장님 몇 분이 가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괜찮아. 그쪽에서 요란한 거 싫다고 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신임 국장님이십니다. 저 혼자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오낙현은 뭔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가 가니까 의전이 되는 거지. 과장 세네 명 나가는 것보다 조사단 부단장 하나 나가는 게 더 나을걸? 그쪽도 대우받는다고 생각할 테고. 대통령이 왔다 간 지 며칠 안 됐어. 그때 의전이 어땠냐. 나, 국장, 너. 이렇게였잖아. 국장 한 명이니까 너 혼자 나가도 이미 충분한 의전이야.”
아, 하필 며칠 전에 대통령이 왔다갔구나.
신임 국장에게 사람을 더 보내서 맞이하자니 족보가 꼬이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한 거면 정말 혼자여도 괜찮겠지.
“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청장실을 떠나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1층 로비에 도착해 한가운데 우뚝 지켜서고 있자니 데자뷔가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조금 의아했다.
민치호가 보냈다면 어떤 사람인지 미리 연락이 올 법한데.
나야 민치호의 깊고 넓은 인맥을 잘 모른다.
그와 이선균은 서울청뿐 아니라 아마 전국의 세무공무원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신입은 잘 모른다 쳐도.
그러니 내가 그의 사람을 모두 파악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나와 협업할 사람인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테니 어떤 사람인지 대략적인 프로필은 읊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게다가 오낙현의 태도도 조금 미묘했다.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저건 분명히 날 놀릴 때 짓는 표정이었다.
설마 악연 깊은 사람이 오는 건 아니겠지.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서 있자니 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예고한 대로 차에서 내린 것은 두 명의 남자였다.
멀찍이 있어서 역광까지 비치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잠시 멈춰 서서 본청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본청에 발령 오는 사람은 다들 저렇다.
감회가 새롭거든.
물론 나도 처음 왔을 땐 저랬다.
잠시 기다리자 두 남자가 1층 입구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중 나온 사람을 찾는 것이다.
나는 긴장하며 얼른 뛰어가 유리문을 열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곧장 고개부터 숙였다.
혼자 나왔으니 각이라도 잘 맞춰야지.
“어서 오십시오, 국장님. 그리고 팀장님. 본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조사단 부단장 신재현이라고 합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청장님이과 다른 국장님들은 청장실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인사는 거기서 나누시면 됩니다.”
연 문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을 펼쳐 문 쪽을 가리키면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혼자 나왔다고 혹시라도 고까워할까 봐 최대한 예의를 지킨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왜 안 들어가지?
이상한 느낌에 슬쩍 고개를 들려는 순간 푸흡,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흡! 이야, 신재현 팀장 본청 가더니 많이 컸네. 의전을 혼자 책임지는 겁니까?”
예상치 못한 반응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중년의 남자가 떠나갈 듯 웃어젖히고 그 뒤에는 키가 작은 청년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간소하게 해달래서 누가 나오나 궁금했는데 부단장 정도면 나올 만하지! 각이 딱 잡혀 있는 걸 보니 그동안 청장님이 좋은 자리에 많이 데리고 다녔나 봅니다.”
둘의 얼굴을 보고 나는 잡고 있던 문을 놓치고 말았다.
로비 문이 부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 서장님? 그리고 윤지성 조사관님 아니세요?”
삼성 세무서에 있을 적에 서장이었던 사람이 국장으로 오다니!
게다가 뒤에 있는 서른을 훌쩍 넘긴 청년 역시 삼성 세무서에서 함께 일했던 조사관이었다.
처음엔 재산세과에서 같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새로 만들어진 체납징세과의 징세팀에 있었던 사람이다.
나는 체납추적1팀이라 비록 팀은 달랐지만 어려운 건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고.
서울청에 온 후엔 헤어져서 소식을 몰랐는데 이렇게 본청에서 만나게 되다니.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국장님, 팀장님이라구요?”
“그래요. 신 팀장의 출세 속도에 비하면 우리는 거북이나 다름없지만 우리도 나름 열심히 했거든요.”
이제는 국장이 된 한대윤은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처음 삼성 세무서의 서장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역광이 비쳤었는데.
“신 팀장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는 전해 들었습니다. 뉴스만 봐도 몸이 하나 갖고는 부족해 보이던데. 함께 간 팀원들은 수족처럼 잘 부리고 있습니까?”
삼성 시절부터 함께해 온 장세훈 같은 원조 팀원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한 번에 직원들 다 빼 가서 죄송했는데 그만큼 손발이 잘 맞습니다. 서울청을 거쳐 여기까지 함께 왔으니까요.”
“중간에 제주도 간다고 했을 땐 철렁했는데, 청장님이 다 생각이 있으신 분들이더라고요. 이렇게 또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워요.”
“저도…… 국장님을 다시 뵙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윤지성 조사관님, 아니, 팀장님도요. 두 분 다 승진 축하드립니다.”
“아, 그렇게 말하면 우리도 할 말 있지. 많이 늦었지만 승진 축하합니다. 축하를 몇 번이나 건너뛴 것 같지만 한 번으로 받아줘요.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뭐랄까.”
한대윤은 어딘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아련한 표정을 했다.
“옛날에 난 서장이고 신 팀장은 일반과 직원이라 만날 기회도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일을 같이 하게 되겠네요.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윤 팀장은 어때요.”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윤지성은 멋쩍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다시 함께 일할 날을 위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저도 이제 6급이거든요.”
자랑이었지만 밉지 않았다.
그만큼 노력했다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햇빛 때문인지 굉장히 눈부셔 보였다.
“환영합니다. 윤 팀장님.”
그에게 하는 인사는 짧았다.
하지만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길게 마주쳤다.
한대윤이 우리의 양어깨에 손을 얹더니 터벅터벅 본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일단 갑시다. 분명히 청장님 기다리고 계실 텐데.”
“넵.”
우리가 청장실로 올라가자 이미 안은 국장들로 꽉 차 있었다.
한대윤과 윤지성이 나란히 서서 청장에게 인사를 하고, 이어서 국장들의 환영 인사가 이어졌다.
확실히 국장 취임치고는 조촐했지만 오고 가는 대화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우리 환대는 어떠셨나. 신경 좀 썼는데요.”
부드럽게 악수를 나눈 오낙현이 묻자 한대윤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중간에 들어오는 거라 간소하게 해달라고 요청드렸는데 환대에 놀랐습니다. 세상에 누가 조사단 부단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본청에 입성하겠습니까.”
“일부러 보냈는데 알아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중간에 오셨다고 해도 우리는 다 한식구입니다. 오히려 인수인계 때문에 힘드실 것 같은데 그럴 땐 저 친구 데려다 편히 쓰시면 됩니다.”
오낙현이 가리킨 손끝에는 내가 있었다.
나 역시 내 손가락을 들어 날 가리켜 보였다.
“청장님. 저요?”
“그래, 인마. 어차피 징세법무국에 빚진 거 있어서 갚아야 하잖아. 안면도 있겠다, 국장님 힘드시면 옆에서 잘 보좌해 드려라.”
나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국장들이 쿡쿡 웃는 걸 보니 역시 놀리는 거다.
“청장님, 거기 과장님들 멀쩡히 계시는데요.”
“그래서 국장 모가지 날리고 사람 1명 추가로 빼 가서 과장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바쁘잖아. 빼 간 친구 지금 어디 있지?”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사무실에요…….”
“그치? 그럼 징세법무국은 눈 뜨고 코 베인 거잖아. 네가 도와줘야지?”
“그렇습니다…….”
청장과 얘기하다 보면 항상 내가 지는 기분이다.
징세법무국에 내가 책임이 있는 건 맞지만 그걸로 이렇게 한마디도 따지지 못하게 입을 막는 걸 보면 역시 괜히 청장이 아니다.
과연 민치호와 물밑에서 싸워오던 세 파벌의 한 사람!
그러나 그냥 물러나면 서운하지.
나는 최소한의 반항을 해보기로 했다.
“저희 공기업 30군데 조사하고 있는 거 아시죠? 오늘도 사장이 조사받으러 왔다 갔는데요.”
“대통령 기자회견도 했겠다, 뭐가 문제야? 걸리는 거라도 있어?”
걸리는 거라면, 없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말했다.
“그럼 사장들 다 날려 버려도 되죠? 아, 저번에 미리 말하라고 하셔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오낙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콧김을 뿜었다.
“거참, 징세법무국 일 좀 도우랬다고 이렇게 대놓고 협박을 하니 무서워서 살겠나.”
“헤헤…….”
내가 최대한 밝게 웃자 오낙현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 뭔가 또 잡은 모양인데 가서 사장들 깔끔하게 다 조져. 엮인 놈 있으면 그놈들도 알아서 다 처리하고. 미리 말해줘서 참 고맙다.”
“넵. 감사합니다. 그럼 한 국장님은 제가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말이라도 못하면…… 진짜 민치호는 저놈을 어떻게 다루는 거야? 얼른 국장님한테 본청 소개나 해드려. 새로 온 팀장도 네가 잘 챙기고.”
“네. 청장님.”
인사가 끝난 한대윤과 윤지성을 복도로 데리고 나온 나는 징세법무국부터 소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아까 오낙현이 반쯤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둘을 내게 맡긴 거나 다름없었다.
소개부터 적응까지, 나더러 보좌하라는 뜻이다.
“먼저 국장님 집무실부터 가시죠. 팀장님도 징세법무국 사무실 보셔야 하니까요. 그쪽으로 가실까요?”
다시 앞장서서 걸으려는데 두 사람이 굉장히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대윤이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본청 분위기가 내 생각이랑 많이 다른데, 원래 이렇습니까?”
“원래 이렇…… 아.”
윤지성이 격렬하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가 청장님을 너무 괴롭혀서 그렇습니다. 언제부턴가 청장님이 저만 보면 어떻게든 괴롭히려고 하시더라구요.”
“청장님? 그 오낙현 청장님이?”
한대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방금 나온 청장실을 뒤돌아보았다.
“세상에…… 내가 오낙현 청장님을 먼발치에서 뵌 적 있는데 많이 유해지셨네.”
한대윤은 연신 허어, 하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내 뒤를 따라왔다.
벌써부터 저러면 나중에 국장회의에서 만났을 땐 기겁하겠는데.
“자, 여기가 징세법무국입니다. 직원들도 국장님과 팀장님 오시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법령해석과 과장이 벌떡 일어나며 반색했다.
“드디어 국장님 오신 겁니까! 환영합니다, 국장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초췌한 모습의 과장을 본 한대윤이 주춤했다.
과장이 너무나도 신나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도 따지자면 내 탓이긴 하다.
국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법령해석과 과장이 그 대리를 맡아왔는데, 거기에 내가 권새호까지 데려갔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과에서 신임 국장을 보고 과장이 저런 반응을 보인다면 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과장에게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국장에 새 팀장까지 왔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이쪽이 법령해석과 사무실, 가벽을 사이에 두고 저쪽이 법무과, 순서대로 세정홍보과와 징세과입니다.”
둘에게 사무실을 보여주는 동안 법령해석과장이 찰싹 달라붙어 날 견제했다.
정확히는 경고였다.
“신 팀장님. 사람 충원됐다고 또 빼 가시는 건 아니죠? 우리 과에 한 명이 신 팀장님 밑에 가겠다고 엄청 열심히 하는데 제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 안 됩니다. 두 번은 안 돼요.”
나중에 실적 보고 데려온다고 약속했던 김선희가 눈에 띄게 열심이라는 소문은 들었다.
그게 과장에게 걱정이었나 보다.
“적어도 올해엔 안 데려갑니다. 걱정 마세요.”
“약속하신 겁니다. 올해는 절대 사람 빼 가기 안 돼요.”
“네. 약속드릴게요.”
나와 과장이 속닥거리는 동안 앞서가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던 한대윤이 희한한 표정으로 뒤를 돌았다.
“신 팀장, 대체 본청에 있는 동안 뭘 어떻게 하고 다닌 겁니까?”
과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제가 할 말이 아주 많습니다. 오늘 회식 때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정말 꼭 들어야겠네요. 궁금해졌습니다.”
한대윤과 윤지성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멍하니 끄덕이더니 날 보았다.
“신 팀장도 회식 가죠? 꼭 우리 테이블 앉아야 합니다.”
신임 국장님이니만큼 환영회 겸 회식도 여럿 예정되어 있었다.
이번 주 금요일이 아마 징세법무국 전체 회식이고, 오늘은 청장과 국장끼리의 회식이었다.
나야 6급 팀장이지만 부단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세청 얼굴 취급이라 종종 저런 자리에도 불려나가곤 했다.
내가 승진이 빠르다 보니 가르치려는 목적도 있고, 순수하게 놀려먹으려는 목적도 있고.
오늘도 아마 불려 나갈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빠질 방법이 없을까.
내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도 핸드폰이 울렸다.
지현석이었다.
[말씀하신 주택공사 사장 파봤는데 좀 의심스러운 게 나왔어요.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이거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오늘 회식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서울에 가봐야겠네요.”
“아…….”
아쉬움 가득한 한대윤과 반대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늘 저녁에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