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화. 익명의 순기능 (4)
대통령이 국세청을 깜짝 방문해서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독려했다는 기사는 바로 다음 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신재현과 대통령이 원하던 대로였다.
그리고 신재현이 생각했던 대로 정확히, 기사는 공기업 사장들의 손에도 들어갔다.
가뜩이나 국세청 동향에 신경 쓰고 있던 사람들이다.
조그만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들이 대통령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왜 이 타이밍에 대통령이 국세청을 찾아가! 이거 미친 거 아니야? 공공기관을 이렇게 멋대로 오가는 대통령이 어디 있어! 임기 얼마 안 남았다고 제멋대로 하는 거 아니야? 이 미친놈들아!”
어느 공사 사장실에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비명이 흘러나왔고.
“미, 미친!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어느 공사 사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안절부절못하며 책을 뒤엎었다.
이 사태를 수습할 거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대한주택개발공사의 사장 역시 과민하게 반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로 정치와 가장 가까웠으며, 때문에 정치적 감각과 인맥이 가장 두텁다는 사람.
그마저도 이 상황이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선빵을 맞았어.”
여론은 원래부터 신재현에게 우호적이었다.
그 상황에서 대통령의 방문은 단숨에 모든 주목을 신재현 쪽으로 끌어놓았다.
여기서 파업을 한다?
여건이 안 좋았다.
“원래라면 조용한 시점에서 우리가 기습적으로 동맹 휴업을 했어야 하는데.”
사장은 이를 으득 갈았다.
왜 국회의원들이 두 손 놓고 멍청하게 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미래라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말도 안 되지.”
당연히 상황이 답답하니 나온 헛소리다.
정말 미래를 봤다면 이런 애매한 판 깔기보다는 더 확실한 방법을 취했을 테니까.
그래서 더욱 신재현이 무서운 것이다.
일단 유리한 판을 깔기 위해 먼저 수를 뒀으니까.
공기업의 사장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왔지?”
실제로 대해 보니 알 수 있었다.
직접 맞상대해 본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판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포석만으로도 사장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건 겨우 몇 년 말단으로 구른 공무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다.
그것도 대통령을 이용해서 판을 깔다니.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괴물 같은 놈…….”
신재현이 한 수를 두었건만, 이쪽은 아직도 돌을 잡지도 못했다.
원래 계획대로 동맹 휴업을 해도 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조용할 때 터뜨려야 이쪽이 확 주목을 받는다.
온갖 뉴스와 신문에 공기업의 휴업이 도배되었어야 했다.
신재현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의 사자가 아니고, 공기업은 피해자라고.
정상 업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도록 과하게 칼을 휘두르고 있다고.
신재현은 스스로의 권력에 취해 괴물이 되어가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이 제어해 주셔야 한다고.
그렇게 눈물 어린 호소가 무대에 올라왔어야 했다.
[대통령의 국세청 깜짝 방문]
-어제 오후 2시 30분경, 대통령은 일정에도 없던 국세청 깜짝 방문을 단행했다. 여기서 대통령은 직접 세무 공무원의 손을 부여잡으며 응원했다. 국세청은 대통령의 방문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있을 대규모 공기업 세무조사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청와대는 조사단의 청렴함과 강직함을 강조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신재현의 미담이 아니라!
“아니야, 그 외의 방법은 없어. 우리는 철저히 피해자가 되어야 해.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
원래부터 궁지에 몰려 있던 처지다.
지금 와서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는다.
사장은 손에 든 유리잔을 내던졌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유리조각이 튀고, 바닥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새겼다.
그 참혹함이 마치 지금의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신재현의 그림자에 짓눌려, 그의 흔적을 지워낼 수 없는 자신 말이다.
어떻게 발버둥 쳐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절대 쉽게 죽어주진 않을 거야.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국회의원 전수조사에서 몇 명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알아서 조사에 협력했다고 들었다.
사장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국가기반시설의 기능을 모조리 멈춰 서라도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아남고 말겠다.
그는 굳게 다짐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응? 잠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살겠다 결심을 하고 나니, 무언가 이상한 점이 보였다.
신재현이 왜 시작도 하기 전에 이런 판을 깔았는가, 하는 것 말이다.
“먼저 모가지가 잘린 공기업 3사를 치기 전에 신재현이 이런 수를 뒀던가?”
사장은 곰곰이 그동안 신재현이 했던 조사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상대의 역량을 가늠하고 사전에 판을 까는 전법을 즐겨 썼다.
국회의원 때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항상 신재현이 무대를 만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사자는 토끼에게도 최선을 다한다지만, 모든 상대에게 선빵을 쳐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건 아니다.
매번 그런 수를 쓸 수도 없을 뿐더러, 굳이 만만한 상대에게 판을 까는 건 시간 낭비다.
그렇다면 지금 33개의 공기업이 신재현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는가?
아니다, 겉으로는 조용히 현 상태를 유지했다.
회의를 한 것도 사장단뿐이었고.
그렇다면 대체 왜 신재현이 공기업 조사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가?
국회의원에 유력 대선후보라는 권력자까지 깔끔하게 쳐낸 그가, 왜 공기업 따위를 상대하며 판을 까는가?
“뭔가 있구나!”
사장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신재현이 33개 공기업을 위험한 적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우위를 점하려고 먼저 수를 쓴 것이다.
신재현이 위험하다 느낀 이유는 뭘까.
“설마 새어 나갔나?”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만약 정말이라면 신재현은 대체 얼마나 많은 눈과 귀를 곳곳에 숨겨두고 있다는 말인가.
몸을 떨던 사장은 자신이 너무 멀리 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렴 국정원도 아니고 신재현이 공기업에 사람을 심어두었겠는가.
이건 누가 가서 귀띔해 줬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렇다면 범인은 사장단 중 하나다.
일반 직원에게는 ‘세무조사 대비를 철저히 해라’는 지시만 내려놨기 때문이다.
다른 공기업 사장들에게도 신신당부를 해뒀다.
약속한 날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휴업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그들도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을 테니 이런 데서 실수하진 않을 것이다.
세무조사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건 당연한 지시사항이다.
신재현이 이걸 알았다고 공기업을 위험시 할 리가 없다.
즉, 휴업한다는 정보가 신재현에게 들어갔다는 뜻이고 그걸 아는 건 열댓 명 정도뿐이었다.
“오호라, 그놈이구만!”
내부 승진으로 올라왔다는 그 신임 사장.
중간에 못해먹겠다며 박차고 나간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장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신재현은 못 이겨도 그놈은 반드시 죽인다.”
솔직히 화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건드릴 수 없는 상대와 만만한 놈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쉬운 쪽에 시선에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재현에 대한 분노까지 신임 사장에게 쏟아내는 것이다.
절대 이 바닥에 들어올 수 없게 해주마, 사장은 단단히 별렀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 그날이 왔다.
***
“자, 공문 보내고 2주 지났으니까 이제 갑시다! 현장 조사 가자~”
첫 번째 조사 대상은 총 여덟 군데.
한꺼번에 하기엔 조금 많긴 하지만, 조금 요령이 생겼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리 급하게 할 필요도 없고.
각자 차에 나누어 타고 맡은 공기업 본사로 출발했다.
한 반에서 2조로 나뉘어 2개씩 맡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느냐.
예전부터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대한주택개발공사로 갑니다.”
예전에 고송철을 찾으려고 한창 술래잡기를 할 때 지현석과 단둘이 간 적이 있다.
전 대통령의 형이 사장으로 있다던가.
그래서 다른 공기업 사장단들도 그를 따른다고 들었다.
은퇴한 정치인과도 연관점이 있고.
지금은 국회에 부는 피바람 때문에 조용히 있지만 ,그건 나중을 위해서다.
맹수가 인내심을 갖고 수풀 안에 엎드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를 직접 만났을 때, 기업체 말고도 사장에게도 따로 탈세액이 보였다.
탈세액을 보지 못하는 지현석조차 여긴 다시 와야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다른 직원들에게 맡겼다간 밀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게 지휘권자인 내 역할이라면, 여기엔 내가 가는 게 맞다.
괜히 다른 직원들에게 난감한 상황을 맡길 필요가 없지.
“어서 오십시오, 안내드리겠습니다.”
역시나 저번에 왔을 때와 상황이 똑같았다.
가뜩이나 공문을 보냈으니 만반의 준비를 갖췄을 거라 생각은 했다.
브라인드에서도 각 공기업마다 세무조사 준비를 한다고 했으니까.
그게 나쁜 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방어할 기회를 줘야 할 뿐더러, 나름 기업에서 일차적으로 정리를 해서 주면 우리도 일이 편해지니까.
조금 악의가 섞인다면 문제지만.
“그 전에, 혹시 사장님 뵐 수 있을까요?”
“네. 부단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모셔오라고 지시받았습니다. 사장실에 계시니 바로 가시면 됩니다. 조사관님들은 따로 대기하실 회의실을 드릴까요?”
나는 뒤에 따라온 다섯 명의 직원들을 보았다.
괜히 시간 낭비할 필요가 있나.
“아뇨. 우리 팀원들은 실물 자료 수집하게 안내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 팀원들에게 눈을 찡긋했다.
그들은 엄지를 들어 보이며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싹 긁어모으고 있을 테니까 엎어버리고 오세요.’
그냥 상황만 보러 가는 건데 무슨.
나는 피식 웃으며 사장실로 향했다.
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혹시라도 누군가 눈빛을 보내지 않는지 유심히 살폈다.
브라인드에서 언급된 ‘어메이징한 계획’이 뭔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 글을 올린 내부 고발자가 누군지도 궁금했고.
혹시라도 여기 대한주택개발공사에 다니는 사원이라면 내가 지나갈 때 슬쩍 표시라도 해주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있었다.
브라인드에만 올라온 거면 또 모르겠는데, 이미 커뮤에도 많이 퍼져서 내부 고발자가 무사할까 걱정이었다.
공기업 사장이나 임원들이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야 할 텐데.
그가 말하지 못한 ‘사장들의 어떤 계획’을 마저 듣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거야 내가 대처하면 될 일이고 내부 고발자는 이미 충분히 용기를 냈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의 신변이었다.
접선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가 홀로 들어가자 사장은 의외라는 눈빛을 했다.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네.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저번과는 다르게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무슨 말을 할지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
어떤 수를 쓸지 모르니 흔들기부터.
“사장님,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세요?”
사장은 일어나서 소파 쪽으로 걸어오다 말고 멈칫하더니 눈동자를 굴렸다.
역시 찔리나 보네.
저건 내가 뭘 말하는지 몰라서 섣불리 반응하지 않으려다 굳은 것이다.
하도 저지른 게 많으니까.
내가 가만히 웃으며 쳐다보자 사장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사장님, 제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뉴튜브 말입니다. 신종 고수익 업종으로 각광을 받았죠?”
“네? 네에.”
갑자기 무슨 말을 꺼내나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대꾸하다 꼬투리를 잡힐 수 있으니 조심스럽겠지.
긴장으로 굳은 얼굴에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 보였다.
들어오자마자 이 사무실은 내가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게 휘말리는 걸 깨달았다 해도 이미 여기서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내 의도를 파악할 때까지 듣고 있는 수밖에.
나는 내가 만든 무대 위에서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사업자든 근로자든 수익이 생기면 국세청에 고스란히 신고가 되잖아요. 사업자는 세금계산서나 현금영수증, 카드영수증을 끊어주고 그게 금융기관을 통해서 국세청에 집계되고, 근로자는 회사에서 돈을 주면서 원천징수를 하고, 국세청에 신고를 하죠. 그런데 뉴튜버는 그런 게 없었어요. 초창기에는 제대로 수익을 신고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죠. 글로벌 기업인 뉴튜브에서 한국 정부를 위해 국세청에 ‘어떤 사람이 얼마를 벌었습니다’ 일일이 알려주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매출 누락으로 인한 탈세가 많았습니다.”
사장은 가만히 앞에 놓인 냉수로 입을 적시며 내 말을 들었다.
“몇 년이 지났을 때, 뉴튜버들은 그랬죠. ‘세금 왜 내? 재수 없으면 잡히는 거야. 어차피 국세청은 몰라. 나 3년 동안 세금 안 냈는데도 안 잡던데?’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질문을 던지자 사장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날 마주 보았다.
이제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한 것 같았다.
“국세청은 몰라서 못 잡는 게 아니에요.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주민등록 하나로 모든 개인 정보가 관리되죠. 카드 사용 내역과 부동산 등기, 통장 입출금 내역 모두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치면 다 나옵니다. 그 모든 금융자료를 까보면 수입도 추정할 수 있어요. 안 잡는다고 방심했던 뉴튜버 모두 한꺼번에 과세했습니다. 국세청이 과연 몰라서 내버려 뒀을까요?”
국세청은 모르는 게 아니다.
알고서 묵히는 거다.
좀 더 탈세 규모가 커질 때까지.
내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이해했을까.
사장의 관자놀이에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사장님, 괜히 힘 빼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쉽게쉽게 가죠. 예를 들어 사장님께서 가진 다른 주머니 말입니다…….”
사장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이 정도 되면 떠보기는 효과가 있으려나.
나는 사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국회의원님들께서 괜히 어려운 길 돌아가시려다 호된 꼴을 보신 적이 있습니다. 부디 그런 경우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동상처럼 굳은 사장을 남겨두고 사무실을 나온 나는 문을 닫고 후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제인데.
내 으름장에 겁먹고 순순히 조사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건 그냥 내 희망사항일 뿐이다.
아마 세게 나오지 않을까.
거기서 감정적 동요를 보인다면 딱 좋다.
틈이 생기니까.
“그럼 사장님, 원래 계획이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서 움직이시죠.”
나는 흥얼거리며 복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