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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453화 (453/500)

453화. 익명의 순기능 (2)

“지금 뭐라고 했어?”

오낙현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으면 사람이 굳는다.

지금 오낙현이 딱 그랬다.

내가 말한 정보량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량을 초과한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차분하게 다시 말해주었다.

“오늘 대통령님께서 방문하실 겁니다.”

오낙현은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소파 위의 장식처럼 변해 버린 오낙현을 보며 나는 끈질기게 기다려주었다.

아무래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오낙현은 한참 후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이건 이해가 안 돼서 그런 게 아니다.

알면서도 믿기지가 않아서 되묻는 것이다.

따라서 대답을 요구한 질문이 아니었다.

청장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답지 못한 태도였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데 갑자기 국가수반이 방문하는 일이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가.

군대에서도 몇 번 겪어본 일이다.

하다못해 사단장이 방문한다고 연락이 오면 전 병력이 동원되어 왁싱질을 한다.

제초도 빼놓을 순 없지.

대통령이 온다고 그냥 가만히 나가서 인사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통령 혼자만 오겠는가.

군대에서도 흔히 하는 말 중에, 별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별 여러 개 달린 놈이 오면 별이 덜 달린 놈도 따라온다.

명색이 청장이니 청와대 사람들 정도에 벌벌 떨 리는 없지만 골치가 아프긴 마찬가지다.

의전이라는 것이 있고 준비할 것이 있다.

몇 주 전부터 미리 말해줘도 부족할 판국에 오늘 당장 온단다.

그가 느낄 혼돈의 감정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깍깍! 까까깍!

귀한 손님 오는 걸 어떻게 알고 까치가 우네.

창문 너머에서 요란하게 우는 소리가 나자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오낙현이 손을 흠칫 떨었다.

“왜 하필 오늘이지? 왜 이렇게 갑자기야? 그리고…….”

멍한 와중에도 머리는 돌아간 모양이다.

오낙현은 나를 노려봤다.

“왜 그 소식을 네가 알려주는 거야?”

이제 거기에도 생각이 미쳤구나.

머리가 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공문이 내려오든가 비서실에서 전화가 와야 하는 일이니까.

이제야 물어보는 게 늦은 거지.

그래서인지 오낙현이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네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만 이게 보통 있을 법한 일은 아니잖아. 무슨 사고를 쳤어? 국세청과 관련된 뭔가 있는 거면 지금 말해. 나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오낙현이 평소부터 신신당부하곤 했다.

뭔가 일을 벌일 거면 미리 말해달라고.

오낙현의 마음이 경계에서 삐짐으로 변하기 전에 나는 얼른 맞장구를 쳤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사정인지 말씀드려야죠. 제가 요청드렸습니다. 시간 되실 때 빠른 시일 내에 와주시라구요.”

“네가, 요청드렸다고……?”

오낙현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흔들렸다.

“네. 어차피 오실 거, 우리 쪽에도 도움이 되면 좋잖아요.”

“도움?”

“공기업 조사하기 전에 시너지 좀 내볼까 하구요. 아무래도 대통령님 오시면 기사도 뜰 테고 여론 눈에 띄긴 참 좋잖아요.”

“겨, 겨우 그런 이유로 대통령님을 오라 가라 불러? 야, 신재현. 너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어디 동네 통장 같은 건 줄 알아?”

오낙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고함에 청장실 창문 밖에서 구욱구욱, 하고 울던 멧비둘기가 놀라서 홰를 쳤다.

“공기업이야, 공기업! 지금 너희가 무슨 국회의장이랑 싸우는 거 아니잖아! 이미 공기업 상대해 봤잖아. 그렇게 힘든 상대 아니라는 거 알잖아! 적어도 의전 챙길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야, 인마. 너도 알 거 다 아는 위치면서 지금 나더러…….”

청장이 말을 잇지 못하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나는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대통령님도 아실 겁니다. 갑자기 오는데 뭘 어떻게 준비하겠습니까. 다 이해하실 거예요.”

“인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1시간 후에 온다고 연락해도 준비해야 되는 게 이쪽 일이야! 아오, 진짜. 너 꼭 청장직 앉아라. 꼭 청장 해서 너 같은 부하 직원이랑 일해라. 알았지?”

내 위로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청장은 뒷목을 잡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눈의 흰자위가 빨개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진지하게 생각했다.

나 같은 부하가 오면?

골치 아프긴 하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직접 마중 나갈 겁니다. 대통령님도 상황의 특수성을 생각해서 소규모로 오신다고 했으니 사람만 나가서 맞이해도 충분할 겁니다.”

“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하겠냐. 너랑 나랑 국장들 모아서 나가야지. 너 진짜, 제발 사고 치기 전에 말해달라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지? 대통령님도 그래. 6급 공무원이 부른다고 당일 오후에 바로 온다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대통령인데 부른다고 재깍 와?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내 나름대로는 화해의 뜻이었으나 더욱 청장의 화를 돋운 것 같았다.

청장은 잔뜩 흥분해서 속마음을 쏟아냈다.

반은 내 욕이었고 반은 대통령 욕이었다.

나도 전화하고 나서 좀 의외긴 했다.

바로 대통령과 통화할 수 있는 권한 같은 건 없었기에 경제수석이자 우리 단장인 임현승을 통하긴 했지만, 꽤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청장의 말대로 대통령은 바쁜 자리니까.

그런데 30분도 지나지 않아 도로 전화가 왔다.

오후에 가겠다고.

내 입으로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해 달라고 하긴 했지만 오늘 바로 온다니 좀 놀랐다.

청장은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서 문제지만.

“청장님, 그래도 생각해 보면 잘된 일 아닙니까. 공기업 쪽에서 어떤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먼저 여론전에서 선수를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방문하신다는 건 점심 드시고 오신다는 뜻이에요. 저녁을 여기서 드실 리는 없으니까 우리 의전 부담도 줄어듭니다. 그걸 알고 일부러 오후 2시 반라는 애매한 시간에 잡으신 걸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구요.”

오낙현은 어이가 없는지 가만히 날 보더니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손을 이마에 얹었다.

“아이고, 내가 이 자리를 잘못 앉았어. 민치호는 한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안부전화를 빙자해서 닦달해대지, 같은 청에는 골칫덩이가 있지. 부하인데도 내가 모시고 사는 것 같아.”

“그래도 사고 치기 전에 직접 보고드리러 온 거니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오낙현이 소리를 쳤다.

“됐어, 인마! 나가! 나가서 일하다가 이따 시간 되면 늦지 말고 내려와! 나는 국장들한테 이 슬픈 소식을 알려야 하니까. 국장들이 기절이나 안 했으면 좋겠네. 아니다, 신 팀장. 네가 갈래?”

“예, 예? 저는 일하다 온 참인데요. 지금 업무 분장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는 놈이 다짜고짜 대통령을 불러? 팀원들도 다 경력직이잖아. 자기들끼리 의견 교환해서 임시 분장 해놓을 거야. 신 팀장은 지휘권자잖아. 나중에 가서 확인해도 안 늦어.”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두 반장에게 가장 먼저 조사할 자원개발 계열 공기업들의 명단을 추리라고 해뒀으니.

내가 늦어지면 아마 2차, 3차 명단도 뽑고 있을 것이다.

“설마 신 팀장이 사고 쳐놓고 국장들한테 나더러 알리라는 건 아니지? 그렇게 책임 없는 사람 아니잖아.”

이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네.

“다른 국장들한테 가서 오늘 오후 2시 15분까지 로비에 나와 도열하라고 공지해. 문자나 전화로 하지 말고, 부하 직원 보내지 말고 직접 가! 그게 예의야!”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내가 수습할 기회를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엄연히 상하 관계를 다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폭탄을 투하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직접 찾아가서 사과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통령님 마중 나갈 때 국장님들만 모시면 될까요? 어디까지 돌아야 할까요?”

“마음 같아서는 과장급도 다 나오라고 하고 싶은데. 신 팀장 생각은 어때?”

국장만 부르면 열 명 남짓이다.

국 하나에 과가 3개에서 5개까지 있으니 과장까지 부르면 40명 안팎은 된다.

이럴 때는 사람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

“국장님들만 모시는 걸로 하시죠. 과장님까지 불러내면 과하다는 얘기 들을 것 같아서요.”

“의전은 원래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하는 건데.”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부른다고 당장 와주는 사람이 과장들 안 나왔다고 화낼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마중 나온 사람 숫자 적다고 화낼 것 같으면 존중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오낙현이 보기 드물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그답지 않은 모습을 꽤 많이 보게 되네.

이다음에 어떤 잔소리가 날아올지 모르겠다.

나는 재빨리 일어섰다.

“그럼 들러야 할 곳이 많으니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2시 10분까지 1층 로비죠! 오전 중으로 전달하겠습니다!”

“허, 허어…… 이걸 칭찬해야 돼, 혼내야 돼?”

오낙현이 갈피를 잡기 전에 나는 도망치듯 청장실을 나섰다.

* * *

“갑자기 뛰쳐나가시더니 안 들어오시네…….”

업무 분장을 하다 말고 지휘권자가 사라지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차려주기만 기다릴 사람들이 아니다.

신재현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직원들은 회의를 시작했다.

“아까 팀장님이 비슷한 계열로 나누신댔죠? 라인업부터 합시다. 1차는 자원개발이라고 결정하셨고, 2차부터는 뭘 할지 모르니까 일단 쭉 나눠봐요. 각자 기업체 재무제표랑 신고서 하나씩 맡아서 검토 시작합시다.”

“전기 제가 볼게요~.”

“항만 제가 봅니다!”

“방송 저요!”

순식간에 리스트 옆에 직원들 이름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제 이 담당 그대로 사전 조사 담당자가 될 것이다.

각자 하나씩 업체를 맡고 나니 공기업 3개가 남았는데, 아무도 2개를 맡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진해서 가져가지 않는 걸 보니 아마 팀장이 와서 억지로 안겨줘야 해결이 될 것이다.

그렇게 오전이 다 가도록 신재현이 돌아오지 않자 채유림이 연신 문을 흘끗거렸다.

“근데 아까 대통령 얘기는 뭐였을까요?”

채유림이 집중하지 못하는 게 보였는지 2반 반장 정청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대통령이 만나자고 만나주는 사람도 아니고. 왜 우리한테 대통령 볼 거냐고 물어보셨을까.”

함께 일한 지 몇 달 됐지만 팀장의 행동은 아직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혹시 자신이 아직도 팀장에게 적응을 못한 건가 싶어 삼성 세무서 시절부터 함께해 왔다는 4명의 원래 팀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전혀 모르겠어요. 근데 팀장님 성격에 대통령 만나자고 말 꺼냈으면 진짜 만나겠다는 건데. 우리가 또 청와대로 가든가, 대통령이 국세청으로 오든가……?”

강혜원이 애매한 어조로 말끝을 흐렸다.

수십 쌍의 눈이 경악을 담은 채 강혜원을 향하고 있었다.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니까 각오해두시는 게 좋아요.”

“너무 겁주지 마세요…….”

“그동안 지켜보셨잖아요. 어땠어요?”

채유림을 포함한 직원들은 시선을 돌렸다.

단시간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자서전 써도 될 정도로 뭔가 많이 알차게 보냈네요.”

“그렇죠? 돌아보면 뭔가 엄청났지만 막상 닥쳤을 때는 그렇게 힘들진 않았잖아요. 다 헤쳐 나갈 수 있는 만큼만 사고를 치셨죠. 이번에도 그럴 거예요. 팀장님이 생각 없이 일 벌이는 것 같아도 사실 세심하게 계산하는 분이시잖아요. 판 까는 것도 능숙하시고.”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믿자.

그런 분위기가 퍼져 나갈 때였다.

“허억, 허억! 아이고, 늦었네.”

신재현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숨을 몰아쉬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한참 뛰어다닌 모양이다.

그는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몰아쉬더니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식사하러 가시면 돼요. 허억, 그리고 오늘 오후 2시 10분까지 1층 로비로 내려오세요! 대통령님 오실 거예요!”

“네에? 팀장님! 팀장님!”

“나중에 봐요! 저는 또 갈 데가 있어서!”

신재현은 청천벽력 같은 공지를 남겨두고 복도를 달려 나갔다.

어안이 벙벙한 직원들이 우수수 따라 나갔지만 이미 복도 저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직원들은 멍하니 서울청 시절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헤쳐 나갈 수 있는 만큼만 일을 치신다고요?”

강혜원과 안길진은 딴청을 부렸고 황민우는 아예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파티션 너머로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다.

제일 뻔뻔한 장세훈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소리쳤다.

“밥이나 든든하게 먹으러 갑시다! 대통령 앞에서 긴장 안 하려면 배를 든든하게 채워야지!”

장세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무렇게나 한 말이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기도 했다.

누군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대통령 얼굴 보고 체하게 생겼는데…….”

※안내 말씀

작중 공사명은 '대한공항공사, 대한농어촌공사, 대한철도공사'로 모두 픽션이며, 현실의 공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또한 작중에 나오는 모든 사건은 창작입니다.

작품 감상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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