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그 시간 그들은 (3)
휴가에는 뭘 하고 쉬어야 잘 쉬었다고 소문이 날까.
회식 후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던 나는 방바닥에 등을 딱 붙이고 하루 종일 굴러다녔다.
휴가 첫날은 내가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항상 그랬다.
에어컨을 틀고 이불을 덮고 TV를 보며 과자나 과일을 까먹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는 건 덤이었다.
“이불 위에서 먹지 좀 마!”
조금 쌀쌀하다 싶을 정도로 에어컨을 켜둔지라 어머니가 이불을 홱 걷자 단숨에 냉기가 밀려들었다.
“으이구, 집에서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너 집에서 이러는 거 회사 사람들이 알아?”
나는 단숨에 온몸을 오그린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알면 엄청 놀릴걸.”
“그럼 내가 소문내야겠네! 아주 집에선 굴러다닌다고!”
“아니야아. 일어날 거야. 머리가 아파서 그래.”
“머리 아프다는 놈이 TV 보면서 과자 먹고 있어?”
내가 평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걸 아는 어머니는 그래도 밖으로 나가란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불 위에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게 못마땅했을 뿐이다.
어머니가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고 환기 겸 창문을 열더니 이불을 터는 걸 지켜보던 나는 멍하니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회식 때, 정확히는 소주 1병 정도 들어갔을 때였다.
‘팀장님은 휴가 때 뭐 하실 거예요?’
‘글쎄요. 쉰다고 해서 어디 놀러 가는 성격은 아니라서요.’
나에게 휴가란 그동안의 피로를 푸는 날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자고 드러눕는 소 같은 생활을 보낸다는 뜻이다.
그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기도 했고.
그때 누군가가 소맥을 말아 시원하게 원샷하더니 반쯤 혀가 풀린 발음으로 말했다.
‘공무원 리조트 있자나아! 거기 함 가봐! 좋아! 엄청 조아! 왜 지금까지 안 가봤나 싶을 정도라니까아!’
반말이었던 걸로 봐서 장세훈이 분명하다.
나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 옆에서 채유림이 뭐라고 했더라.
‘아, 가보셨어요? 꽤 괜찮아요. 가격도 싸고. 차가 있어야 되긴 하는데 렌트하면 되죠, 뭐. 아, 근데 요즘에는 슬슬 성수기라 예약 다 차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벌써 7월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쌀쌀하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지금은 더워서 긴팔도 입기 힘들었다.
지금도 어머니가 연 창문으로 더운 바람이 훅훅 들어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털어낸 이불을 툭 던졌다.
“이불 뺏긴 게 그렇게 서러워? 왜 그러고 있어?”
“아니, 엄마. 갑자기 생각났는데.”
“왜?”
창문이 닫히고 다시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내게 쏟아졌다.
“리조트 갈래?”
“뭐어?”
그리하여 지금 우리는 공무원 리조트에 와 있는 것이다.
공무원 리조트라고 해서 공무원만 이용 가능한 것은 아니고, 숙박비나 부대시설 이용권을 할인해 주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니진 않지만 이곳저곳으로 발령을 다닌 덕분에 캐리어 하나쯤은 있었다.
무작정 그 캐리어에 갈아입을 옷만 달랑 쑤셔 박고 어머니와 함께 리조트로 왔다.
굉장히 즉흥적인 결정이었는데 어머니도 의외로 흔쾌히 허락했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어머니도 많이 외로웠겠구나.
나야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다녔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따라왔다.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이제 남은 식구는 어머니와 나뿐이다.
혼자 둘 수가 없었다.
문제는 내가 바쁘다 보니 평소에 어머니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쭉 살던 동네에서 떠나 날 따라 왔으니 아는 이웃도 없고 말동무도 없다.
얼마나 적적하셨겠는가.
갑작스러운 여행이었는데도 어머니는 즐거워 보였다.
조수석에 나란히 앉아 내게 졸지 말라며 껌을 건네주기도 하고 창문을 열고 밖의 나무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리조트 주차장에 렌터카를 대고 짐을 내리자 어머니가 한껏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며 말했다.
“근데 용케 빈방이 있었네.”
“나도 그게 신기해. 혹시나 해서 전화했는데 빈방이 있더라구.”
대신 뷰는 안 좋다.
숙박객 리뷰를 보니 산 너머로 커다란 호숫가 있는 방향이 있었는데, 슬프게도 그건 이미 예약 불가였다.
하루 전에 예약을 잡는데 좋은 방이 남아 있을 거란 기대 자체가 욕심이지.
방을 잡은 게 어딘가.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리조트 입구로 걸었다.
“요즘 리조트는 밖에 수영장도 있네. 신기하다.”
어머니는 저 멀리 야외에 차려진 수영장을 보며 감탄했다.
“수영장 정도가 아니야. 요즘엔 안에 헬스장이랑 식당도 다 있어.”
“그래? 세상 참 좋네…….”
“여기는 리조트라 시설이 좀 별론데 호텔은 진짜 깨끗하고 좋아. 나중에 호텔도 한번 가보자.”
어머니와 두런두런 잡담을 하며 나란히 손을 잡고 로비로 들어가자, 공손하면서도 귀에 쏙쏙 꽂히는 인사가 바로 날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꽉 잡은 손으로 어머니가 잠시 움찔한 것이 느껴졌다.
나도 출장 다니느라 호텔 안 가봤으면 주눅 들었겠지.
나는 부드럽게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리셉션으로 다가가 익숙하게 예약 정보를 말했다.
이름과 전화번호 말이다.
“네,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익숙한 영업용 미소를 띠고 전산을 확인하던 직원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확인했다.
“성함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신재현 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직원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의 생각은 짧았고 일 처리는 더욱 빨랐다.
직원은 깔끔한 디자인의 검푸른 카드가 2장 꽂힌 종이를 내밀었다.
“패밀리스위트, 506호입니다.”
“네, 감사합니…….”
별생각 없이 카드를 받아 든 나는 말을 멈추고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부드러운 필기체로 적힌 글씨는 명백히 패밀리스위트, 506호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제가 예약한 건 일반 객실인데요.”
내 말에 어머니가 손을 꾹 쥐는 게 느껴졌다.
처음 와 보는 리조트에서 잘못되었다고 하니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리셉션의 직원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신재현 님 앞으로 예약된 객실 맞습니다. 정확히는 업그레이드되신 겁니다.”
업그레이드, 말로만 들어봤다.
하지만 그건 단골고객한테나 해준다고 들었는데.
“저는 여기 처음인데요. 갑자기 업그레이드라니…… 그럼 정상 가격 내겠습니다.”
일반 객실 가격은 성수기 기준으로 14만 원, 공무원 할인가는 7만 원이다.
스위트룸은 내 기억에 26만 원이었다.
이것 역시 할인하면 반값이라 13만 원이다.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지만 업그레이드는 부담스러웠다.
내가 호텔 같은 곳은 자주 다녀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제값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직원은 잠시 곤란한 얼굴을 했다.
“제가 설명을 잘못한 것 같군요. 저희 리조트에 신재현 조사관님께서 방문해 주신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저희는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며 좋은 기억을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뉴스를 보며 기뻐한 시민 중 한 명이니까요.”
직원은 눈을 반짝거렸다.
아주 조금 더 부담스러워졌다.
그러자 직원은 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너무 부담스러우시면 오히려 역효과니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해당 스위트룸은 공실입니다. 고객님께서 묵지 않으신다 해도 남아도는 객실이 될 뿐이죠. 그렇다면 고객님께서 일반 객실값에 머무르셔도 저희는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즐겁고 편안한 여행 되신다면 다음에 또 찾아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종종 고객님들께 남는 방을 업그레이드해 드리곤 합니다.”
그렇다면 조금 이해가 간다.
같은 공무원 동료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고.
부담이 꽤 줄었다.
나는 흔쾌히 그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아, 혹시 주변 식당이나 관광지가 궁금하시면 프런트로 연락 주십시오. 내지인만 아는 맛집이 있거든요.”
조금의 호의를 더 얹어준 직원이 씨익 웃었다.
나는 마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조금 들뜬 목소리였다.
“이거 드라마에서 봤어. 대기업 막내가 자회사 호텔에 갔는데 못 알아본 거야. 그래서 지배인 뺨을 쳤더니 바로 스위트룸을 주더라고.”
“어, 엄마?”
요즘 막장 드라마에 재미를 붙이더니 예시가 상상 외였다.
“엄마, 요즘엔 그런 사람 없…… 있나?”
없다고 단언하기에는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주차장에서 직원 무릎을 꿇리는 사람, 대낮에 회사에서 직원을 주먹으로 때리는 사람 등 공개적으로 뉴스에 오른 것만 해도 꽤 된다.
당장 내가 본 것만 해도 사례집을 만들 수 있지.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자 어머니가 오히려 놀랐다.
“드라마 아니고 진짜로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이 있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야.”
잡담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내려 506호 앞에 섰다.
문 앞에 카드를 대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은 방이 나왔다.
방은 2개였지만 거실이 꽤 넓었다.
굴러다녀도 되겠다.
우리 집보다 커서 잠시 주춤했지만 어머니는 감상을 숨기지 않았다.
“어머! 이것도 TV에서 본 거야!”
사실 스위트치고는 좀 작고 리조트 자체도 낡았다.
그야 공무원 제휴 리조트니까.
그래도 어머니한테는 꽤 좋아 보였나 보다.
들어가자마자 구석구석을 돌아보더니 화장실 앞에서 날 돌아보았다.
“세상에, 여기서 살고 싶다. 드라마 속에 온 것 같아.”
어머니는 소파에 앉더니 연신 ‘와’ 하는 감탄사를 흘렸다.
거실 한쪽을 차지하는 창문 너머로는 산 능선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몰래 어머니의 뒷모습을 찍었다.
초록색의 산이 액자 속 그림처럼 커다란 창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역광으로 어머니의 실루엣이 보였다.
오, 내가 봐도 잘 찍었다.
“일단 먹을 거 찾으러 나갈까?”
놀러왔으면 먹을 게 우선이다.
친구랑 왔다면 산이나 어디 관광지라도 갔겠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산행은 좀 무리였다.
대신에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곳을 안다.
바로 시장이다.
역시나 어머니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서 가판대를 들여다보았다.
“이거 엄마가 어렸을 때는 삶아가지고 데쳐서 먹었어. 참기름 넣고. 어, 갈치가 실하네! 조림 해서 먹으면 맛있겠다. 밑에 무 깔고. 오늘 저녁에 갈치조림 먹을까?”
관광지보다 더 좋아한다.
“에이, 여행 와서까지 음식 하면 귀찮지. 오늘은 사 먹자.”
“갈치가 때깔이 참 고운데.”
“3일은 있을 거니까 나중에 생각나면 또 올까?”
“그러자.”
어머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 통로를 걸었다.
꽤 길었는데도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저녁엔 이거랑, 어머, 이것도 맛있겠다.”
어머니는 고르고 골라 회 한 접시와 닭강정, 새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떡과 유과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세상에세상에. 이게 누구야! 국세청 저승사자님 아니야!”
이걸 간과했구나.
시장엔 사람이 많을 테니, 그중 유난스럽게 날 알아보는 사람도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편히 다닐 수 없어서 어머니가 불편해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돌아보니 어머니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네, 맞아요! 우리 아들이랍니다. 열심히 일했다고 휴가 받아서 놀러왔어요.”
“어머, 그래요? 이런 아드님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시겠어요. 우리 아들놈은 글쎄, 공부한다고 노량진 올라가더니 감감무소식이야! 국세청 저승사자까지는 안 바라도 붙어서 왔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이렇게 아드님 걱정하고 있으니까 철썩 붙어가지고 금의환향할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 혹시 아드님 손 좀 잡아도 돼요? 기 좀 받아가게.”
나는 멍하니 되물었다.
“예? 예에.”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떡집 아주머니의 손에 꽉 잡힌 뒤였다.
주인아주머니는 떡을 만지듯 손을 이리저리 주무르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떡이 여럿 들려 있었다.
“어머니, 떡 어떤 거 좋아하세요? 방금 뽑은 거니까 골라보셔. 고르는 대로 바로 내가 포장해서 드릴 테니까.”
“김 나는 거 봐. 맛있겠네!”
떡을 좋아하는 어머니는 꿀떡, 팥떡, 백설기 등등 종류별로 담았다.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워낙에 즐거워 보여서 말릴 수가 있어야지.
“감사합니다, 많이 파세요!”
“나중에 또 놀러 와요! 재밌게 놀다 가시고!”
한번 쇼핑의 즐거움을 맛본 어머니는 한층 걸음이 빨라졌다.
모양이 예쁘다는 이유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과일 타르트도 골랐고, 색이 곱다는 이유로 비싼 참외도 들었다.
어느새 내가 든 장바구니는 양손이 묵직했다.
“제주도랑 또 느낌이 다르네. 너무 좋다, 아들.”
얼굴 가득 뿌듯하고 즐거운 미소가 감도는 걸 본 나는 내심 생각했다.
자주 와야겠다.
그리고 오늘 저녁엔 배가 터지겠구나.
굳이 유명한 관광지를 가지 않더라도 이런 것도 꽤 나쁘지 않네.
어머니와 지금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