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그 시간 그들은 (1)
“공기업 조사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분간은 휴식입니다. 무조건 쉬셔야 해요.”
나는 국세청 사무실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짐짓 심각한 말투로 공지했다.
공항, 철도, 농어촌 공사의 과세가 끝났다.
내 도장이 찍힌 보고서와 과세결정서는 이미 국세청장의 승인도 받았다.
형식적이라고는 해도 국세청 최종결재까지 끝났으니 우리 일은 끝이었다.
남은 자료도 모두 모아 검찰로 넘겼으니 또 그쪽은 야근하겠지.
국세청 관용차 중에 트럭을 빌려서 박스를 바리바리 실어다 보냈다.
지현석이 트럭을 보고 한숨을 쉬는 광경이 절로 떠올라서 흐뭇해졌다.
그리고 남은 공기업 모두에 세무조사 예고통지서를 보낸 것은 바로 오늘.
33개 공기업에 전부 보내다 보니 절차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아직 4시밖에 안 되었으니 퇴근시간은 멀었다.
거기서 내가 나선 것이다.
“열심히 일하셨으니 쉴 때는 쉬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니까요. 이제 또 서른세 군데나 들여다보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릅니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사전 조사 들어갈 텐데 쉬지도 못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죠. 그러니까 복잡한 숫자나 계산은 다 잊어버리고 편히 놀다 오세요. 여행을 가셔도 좋고 집에서 쉬다 오셔도 좋고.”
쉬는 것도 중요하다.
숫자로 보면 공기업 겨우 세 군데였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조사단의 이 멤버로 처음 공기업 탈세조사에 손발을 맞춰봤고, 2반의 새로운 반장 체제에서 조사단을 굴려봤다.
처음에는 겉돌며 삐그덕거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익숙하게 서로 자료를 주고받고 있었다.
새로운 반장에 적응한 것이다.
그리고 굳이 그런 사연을 붙이지 않더라도 쉬는 건 당연하다.
우리는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
미리 전속력으로 달렸다가 지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거기에 동기부여도 되고.
당장 날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사할 때도 간혹 뭔가 큼직한 걸 발견하면 저런 눈빛으로 내 의견을 물어보러 오곤 하는데 지금은 모든 직원의 눈빛이 그랬다.
여기서 더 잡아둘 수는 없지.
어차피 할 일도 없겠다, 멍하니 앉아서 시간 때우다 6시 퇴근하는 것보다 2시간이라도 일찍 들어가는 게 낫지.
조사단에 관한 세부 운영 지침은 나와 지현석에게 일임되어 있다.
국세청장에게는 짧은 보고 한 번으로 일주일에 달하는 휴가와 오늘의 조기퇴근 허락을 받았다.
남은 건 집에 가는 것뿐이다.
나는 가볍게 손뼉을 한 차례 쳤다.
“이상! 모두 퇴근하세요!”
“우와아아아아아!!!”
“사랑해요, 팀장님!”
“집에 가자!”
직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큰지 사무실 문을 뚫고 복도에도 들리겠다 싶었다.
옆 과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오면 어쩌나 싶어 말리려다가 뭐 어때, 하고 그만뒀다.
일도 깔끔하게 끝냈겠다.
다들 후련한 얼굴이었다.
각자 가방과 소지품을 챙기고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사무실은 쓸데없는 눈치 주기가 없었다.
예를 들어 팀장이나 반장이 먼저 퇴근해야 직원들도 퇴근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직원보다 팀장인 내가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건 흔했고 직원들도 먼저 퇴근하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다.
내가 만든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먼저 일어나 사무실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내게 인사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팀장님도 푹 쉬시고 다음 주에 봬요!”
“저희도 출근 안 할 테니까 팀장님도 절대 출근하시면 안 돼요. 제가 나중에 와서 출근 기록 확인해 달라고 할 거예요.”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직원도 있었고.
“제가 열렬하게 팀장님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앞에 나란히 서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커다란 하트 모양을 만드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거 연수원에서 장기자랑이나 단합대회 같은 거 할 때 연습하던 거다.
그걸 즉석에서 포즈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조기퇴근에 휴가가 그렇게 좋은가 보다.
물론 막상 하트를 날리던 직원들도 스스로 부끄러운지 후다닥 뛰쳐나갔지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팀장님도 얼른 퇴근하세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 주에 봅시다. 잘 가요.”
맨 앞에 앉아서 직원들 한 명한 명의 인사를 받아주고 있다 보니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 된 기분이었다.
직원들을 다 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얼굴들이었다.
장세훈, 강혜원, 황민우, 안길진.
이 넷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럼 우리도 갈까요?”
미리 약속이 되어 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굉장히 자연스럽게 우리 다섯이 남았다.
아니, 사실 여기에 1명이 더 추가되었다.
1반 반장 채유림.
조사단원 중에서 국세청 부단장 대리라는 말까지 듣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일적으로도 유능했으며 심적으로도 든든했다.
거기에 요즘 들어 서울청 멤버들과 눈에 띄게 친해진 사람이기도 했다.
삼성세무서에서 서울청을 거쳐 국세청으로 온 우리 다섯은 서로 꽤 끈끈했다.
그야 함께 고생하고 한 팀으로 굴렀으니까.
그걸 비집고 채유림이 들어온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 멤버들이 채유림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나 배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없을 때도 종종 친근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반장님도 가실래요?”
“어디로 가실지 정해놨어요?”
“아뇨. 근데 뻔하죠. 고기, 감자탕, 곱창 셋 중 하나 콜?”
“콜!”
나를 뺀 다섯 명은 부산스럽게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채유림과 강혜원은 자신의 책상을 물티슈로 닦고 널려 있던 서류를 하나도 남김없이 치우고 있었다.
나는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책상 위에 서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내 책상과 채유림의 책상을 번갈아보던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빈 상자를 꺼냈다.
나 혼자 책상 위에 잔뜩 쌓아놓고 가자니 왠지 찔렸다.
기초 자료는 대부분 다른 직원들이 상자로 정리해서 창고나 검찰청으로 보냈다.
내 책상에 남은 것은 결재보고서의 원본과 결정문 같은 것들이었다.
즉, 남에게 시킬 수도 없는 내 일인 것이다.
나는 머쓱하게 상자 안에 차곡차곡 서류철을 쌓았다.
겉에 큼지막하게 ‘공항, 철도, 농어촌 공사 보고서’라고 쓴 뒤 뚜껑을 덮자 이미 다른 사람들은 준비를 끝마친 뒤였다.
“가자.”
장세훈이 엄지로 문을 가리켰다.
나는 가만히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혹시 켜져 있는 컴퓨터가 있는지, 사무실 구석 미니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음식은 없는지 확인한 후 문으로 다가가자 강혜원이 스위치를 내렸다.
모든 형광등이 꺼지자 적막이 내려앉았다.
블라인드를 걷은 창문에는 아직 오후의 햇볕이 내리쬐는데 불이 꺼진 사무실이라니, 굉장히 어색한 광경이었다.
모두 그런 생각이었을까.
잠시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밖으로 나갔다.
남들이 일하는데 퇴근한다는 건 기묘한 기분이 든다.
“제일 늦게 나오시네요. 팀 전체가 휴가시라면서요? 즐거운 휴가 보내세요.”
입구를 지키던 시설관리공단의 직원들이 웃으며 배웅해 주었다.
먼저 나간 사람들이 신나서 다 얘기했구나.
이러다 동네방네 소문 다 나게 생겼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국세청을 나선 우리는 일제히 번화가로 걸었다.
식당이 몰려 있는 곳이다.
걸어가기엔 좀 멀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근데 오늘 다 약속 없으세요? 저녁 먹으러 가도 되는 거예요?”
문득 나는 이들의 행동에 의아해졌다.
그야 오늘 일이 끝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내가 며칠 휴가 줄 거라는 것도 미리 언질해 뒀고.
그렇다고 오늘 저녁 먹자는 얘기는 안 했는데.
장세훈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내일부터 휴가니까 당연히 너 밥을 먹여야지. 걱정 마. 1차만, 아니, 2차만 하고 보낼 거니까. 집에 어머니 기다리시잖아.”
“일찍 끝났으니까 3차까지는 해도 되지 않을까요?”
강혜원이 속닥거리길래 내가 소리쳤다.
“이 사람들아! 휴가 첫날부터 술병으로 방에 누워 있을 생각이에요? 1차만 해, 1차만!”
“네에.”
강혜원이 못 이긴 척 대답하자 채유림이 옆에서 푸훗, 하고 웃었다.
평범하게 잡담을 하며 걷는 것인데도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는 가볍게 식당가를 걸었다.
지나가다 잠시 구경하며 ‘이거 먹을까요?’물어보고, 누군가는 고개를 젓고.
그러면 또 다음 식당을 찾아 걷고 ‘이건 어때요?’라고 물어보는 것의 반복이었다.
그것마저도 재밌었다.
“결국 돌고 돌아 고기를 먹네요.”
여섯 명이나 되다 보니 각자 취향도 달랐는데 만장일치로 좋다는 의견이 모인 것이 바로 고깃집이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고깃집 앞을 지나가는 순간 안에서 풍겨오는 향기에 발이 묶여 버리고 만 것이다.
“근데 고기가 먹고 싶긴 했어요.”
나는 조사든 뭐든 어느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결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술을 먹지 않는다.
내 습관이자 내가 스스로 지키는 약속이기도 했는데, 늦게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가끔 술이 생각날 때가 있다.
아, 딱 한 잔만 마시고 자면 푹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 가장 든 생각이 돼지고기에 소주였다.
뭐 특별한 걸 원하는 게 아니다.
-치이이익!
불판에 올라가는 돼지고기 소리에 푸짐하게 깔린 밑반찬, 그리고 소주 한 병이 놓이면 그게 행복이지.
“자, 우리 팀장님이 가장 먼저 한 잔 받으셔야지.”
장세훈이 느물거리며 내 잔을 채워 주었다.
“어이쿠, 장세훈 조사관님도 받으시죠.”
얼렁뚱땅 놀리며 다른 직원들의 잔도 쭉 채우고 나자 우리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냅다 잔을 들이켰다.
건배사고 뭐고 없었다.
“이제 편하게 먹죠. 따라주기 금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아예 내 옆에다 한 병을 갖다 놓았다.
내가 알아서 먹겠다는 뜻이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먹고 싶은 걸 자유롭게 시켜 먹고 자기 잔은 자기가 채운다.
처음엔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럽게 고기를 집어 먹던 채유림도 나중엔 알아서 갖다 먹기 시작했다.
우리 회식 자리에 낀 건 처음일 텐데 금방 적응하네.
술도 서너 잔 들어갔겠다, 채유림이 어떻게 끼게 됐는지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 생각은 바로 접었다.
물어봐서 뭐 하겠는가, 다른 팀원들이 채유림을 받아들였고 이젠 우리 식구인데.
팀원들이 맞다고 판단했으면 맞는 거다.
나는 잡생각을 날려 버리고 열심히 고기를 뒤집었다.
그중에서 잘 익은 건 물론 내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 팀은 각자 자기 건 자기가 챙기는 분위기다.
서울청 때부터 그랬다.
상사가 먼저 숟가락 들면 부하 직원이 따라서 숟가락 들고, 상사는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부하들이 구워 주는 고기를 먹기만 하고.
그런 건 내가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잘 익은 마지막 고기는 강혜원이 가져갔다.
내가 불판의 빈자리에 생고기를 올리자 그 옆에 잘 구워진 고기를 안길진이 잘랐다.
가위가 그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 한 점에 양파와 파채를 얹어 정신없이 먹었다.
대화도 없었다.
“사장님! 여기 돼지 모듬 하나 추가요!”
고기 굽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그 침묵을 깬 것은 강혜원의 재빠른 주문이었다.
그게 계기라도 된 것처럼 나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올해는 다들 승진시험 보실 거죠?”
장세훈의 젓가락이 우뚝 멎었다.
아니, 반응이 왜 저러지?
“그, 꼭 올해 봐야 되나? 아니, 봐야 되는 건 아는데…….”
“연차도 찼으니까 승진하셔야죠. 다른 분들도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나는 눈을 깜빡였다.
언제까지 내 밑에 있을 수도 없고 조사단 역시 임시 조직이다.
나는 진작 이들이 독립을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의아해하자 황민우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팀장님이 승진하실 때 3시간 면접 봤잖아요. 혹시라도 그런 거 시킬까 봐 그런 겁니다.”
나는 그만 어처구니없어서 웃고 말았다.
“아니요. 설마 저 같은 기준을 적용하겠어요? 그냥 다른 직원분들 승진 시험 보실 때 같이 보시라구요.”
“매년 보던 그 평범한 시험 맞지?”
“네, 그럼요. 문제는 인사고과인데 조사단 책임자는 저, 그리고 그 위에 단장은 경제수석님, 국세청에서 제 위의 상사는 청장님이라서 결국 고과는 저 혼자 적게 될 것 같네요. 그러니까 거기 항정살은 좀 양보해 주시죠.”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마지막 남은 항정살을 가리키자 강혜원이 날름 집어 먹었다.
“어허, 팀장님. 인사고과는 투명해야죠. 이런 뇌물로 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니, 그렇다고 그걸…….”
“아, 저기 고기 한 접시 더 오는데요. 안 드실 거예요?”
“먹습니다, 먹어요…….”
나는 투덜거리며 새로 도착한 고기를 불판에 가득 올렸다.
내가 집게까지 빼앗아서 전투적으로 고기를 뒤집고 있자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쿡쿡…….”
술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유림이었다.
편하게 놀고 계시는구나.
그럼 됐지.
나 혼자 다 먹을 것처럼 구웠으면서도 막상 다 굽고 나니 마음이 약해져서 각자 앞에 밀어주었다.
채유림이 자신의 잔에 맥주를 따르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저는 다음에 조사국 가고 싶어요. 겨우 몇 달이었지만 배운 게 너무 많아서요. 저도 이제 배운 거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물끄러미 채유림을 바라보자 강혜원이 옆에서 거들었다.
“저도 이젠 승진해야죠! 9급 치고는 엄청나게 출세했는데 저 혼자 남아 있을 순 없잖아요. 안길진 조사관님도 요즘 시간 날 때마다 공부하시더라고요.”
나는 내심 놀랐다.
그 업무량에 공부를 했다고?
물론 나도 틈틈이 판례를 찾아보고 세법을 뒤지긴 하지만 내가 해봤기 때문에 어렵다는 걸 안다.
사무실에서는 둘이 공부하는 걸 못 봤는데, 그렇다면 집에서 자는 시간을 쪼개 공부했다는 뜻이 된다.
“저희는 다른 데로 가도 잘 할 수 있어요.”
강혜원이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러니까 팀장님은 기회 되시면 위로 올라가세요. 절대 놓치지 마시고.”
나는 잔을 든 채로 굳고 말았다.
내 승진이 빠른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언제까지고 팀원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공무원은 발령받는 데로 가다 보니, 이렇게 같은 인원 구성으로 몇 년이고 함께한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다.
그러니 이들도 짐작은 하고 있었나 보다.
조사단이 해체되면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괜히 목이 턱 막혔다.
단숨에 술을 들이켜자 화한 느낌과 함께 목구멍이 트이는 느낌이 났다.
“다들 어디 가셔도 잘하실 겁니다. 그건 제가 장담해요. 조사단이 해체되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계신 동안 승진도 하시고 최대한 실적도 쌓으세요. 그렇게 나중에 또 만납시다.”
“그럼요! 그때는 각자 직함 끝자리에 ‘장’ 하나씩은 달고 있기에요. 팀장, 과장, 국장……?”
강혜원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고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장세훈이 괜히 황민우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어쩔 거야?”
황민우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팀장님 따라갈 겁니다.”
“그래. 너는 그럴 것 같더라. 한 명쯤 그렇게 충성스러운 놈이 옆을 지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너는 끝까지 따라가라. 원래 높으신 분 옆에는 따까리 하나쯤 있는 법이야.”
“네.”
황민우가 담담하게 잔을 들어 올렸다.
그치고는 드물게도 먼저 건배를 청한 것이다.
홀린 듯이 우리는 잔을 갖다 댔다.
다들 내가 뭔가 건배사를 외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져 있던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을 그대로 내뱉었다.
“열심히 일했으니 열심히 놉시다. 그리고 또 열심히 해서 싹 털어버립시다! 일단 지금은…….”
나는 세차게 잔을 부딪쳤다.
“적시자!”
팀원들이 재밌다는 듯 후창했다.
“적시자!”
“마셔!”
다들 1차에서 뻗을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