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43화 (443/500)

443화. 국세청에서 만나요

-치이익.

담배에 불이 붙었다.

불꽃 너머에 있는 것은 김기훈이었다.

그와 마주 선 채유림은 어처구니없어서 중얼거렸다.

“주차장 금연인데.”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김기훈은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 담배를 비벼 껐다.

아직 한 모금밖에 빨지 않아 새거나 다름없는 담배였다.

아까운지 쓰읍, 입맛을 다시던 김기훈은 이내 재떨이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하릴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채유림에게 물었다.

“여기서 얘기하기엔 좀 그런가? 근데 또 공무원이랑 세무사가 카페 가긴 그렇죠?”

“네. 차라리 다 보이는 곳에서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채유림의 태도는 조금 매몰찼다.

김기훈이 괜히 차인 사람처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둘이 있는 곳은 국세청 주차장의 한구석.

김기훈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오늘 오후의 일이었다.

-지금 찾아뵈려 하는데 잠시 만날 수 있을까요?

문구만 빼면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어제 그 난리를 쳐놓고도 또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 어떤 의미로는 대단했다.

‘아무리 회사를 위해서 어떤 방법이든 다 써야 한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닌데. 하루만에 찾아올 용기가 있어?’

처음엔 거절할까 했다가 결국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또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기훈은 사무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국세청에 도착했다며 연락이 와서 한다는 말이 ‘들어가긴 그렇고 내려와서 잠시 둘만 얘기 좀 하실래요?’였다.

‘아, 수상하네.’

내려오라는 데서 껄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왔다는데 돌려보내기도 난감했다.

나중에 따로 보자고 하는 것도 적절한 처사가 아니었다.

둘의 입장이 예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인 회사의 직원인 세무사, 그리고 조사 책임자인 반장.

둘이 따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주차장도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거긴 여러 사람이 오고 간다.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만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만나자마자 담배를 꺼내 들 줄은 몰랐지만.

“담배 못 끊으셨나 보네요.”

쉬는 시간마다 답답한 얼굴로 학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던 얼굴은 지금도 기억난다.

김기훈은 멋쩍게 웃었다.

“아, 네. 도저히 끊을 수가 없네요. 요즘 들어 더 많이 피우게 됩니다.”

“건강에 안 좋아요. 끊지는 못해도 줄여봐요.”

“감사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채유림은 괜히 하릴없이 바닥을 툭툭 찼다.

이럴 거면 그냥 전화로 용건만 말하라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심정이었다.

혹시 공사의 이사들이 말했던 것처럼 이상한 생각을 품고 있나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틀 연속으로 찾아온 뻔뻔함에 감탄스럽기도 했지만, 이제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식으로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2번이나 갑작스럽게 만났으면 친분 값은 다 한 거다.

오늘도 실없는 소리를 할 거라면 아예 연을 끊어 버리는 것도 생각 중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채유림이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김기훈이 알지는 몰라도.

“얘기가 길어지나요?”

“아닙니다.”

주차장에서 보자고 한 것이니 얘기 자체는 별것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다만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김기훈을 재촉한 것뿐이었다.

채유림도 사무실에 쌓여 있는 일이 많았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김기훈은 구름에 가린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혼잣말을 좀 해볼까 합니다. 옆에 계시니 듣든지 말든지는 채유림 씨 자유예요.”

무언가 말이 이상했다.

채유림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우뚝 자세를 바로 했다.

불러놓고 혼잣말이라니, 뭔가 있다!

김기훈은 그 후로 채유림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재무제표를 건드리는 일입니다. 실무 직원들이 함부로 할 만한 일은 아니죠. 그러니 회계사가 개입했다는 건 누가 보든 다 아는 얘길 겁니다. 그러면 회계사가 어떻게 개입했을까.”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던 때에 비하면 미리 대본이라도 써온 것처럼 한 번도 쉬지 않고 말했다.

채유림 역시 끼어들 생각 없이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실무진이 멍청해서 자기가 책임질 수도 없는 일을 벌였을까요? 아니죠. 회계사가 멍청해서 자기 자격증까지 걸어가면서 남의 회사 장부를 손댔을까요? 절대 아니죠. 그 말은 뭐냐, 내부에서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게 누굴까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죠. 사장이 자기 임기 동안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손을 댔을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사장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사장이 오기 전부터 장부에 손대는 짓거리는 계속되고 있었죠. 그럼 누군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계속 공사에 있었던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유는 뭘까요, 솔직히 모르겠네요. 실적을 내기 위해서인지 자신들이 한 짓을 숨기 위해서인지. 저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했습니다만 그건 조사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실 일이죠. 그럼 누구냐? 제 생각에는 이렇습니다.”

채유림은 홀린 듯이 멍하니 김기훈의 말을 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진작 알아들었다.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사에서 일하는 세무사가 왜?

의문 속에서도 채유림은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력을 총동원했다.

녹음할 수도 없고 두 번 말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이상, 지금 믿을 것은 채유림의 기억력과 집중력뿐이었다.

“일단 장부 조작이 있었던 해부터 지금까지 내내 근무하는 사람들을 찾으면 되겠죠? 그리고 회계사와 커넥션도 있을 겁니다. 누군지 정확한 이름은 입 밖에 낼 수 없지만 이건 압니다. 한 명은 자녀학자금을 허위로 타 갔고, 한 명은 일용직 근로자를 허위로 등록해서 돈을 빼돌렸어요. 또 한 명은 회식비를 제멋대로 집행해서 횡령했습니다.”

채유림은 눈을 빛내며 입속으로 말을 굴렸다.

자녀학자금, 일용직 근로자, 회식비 허위 집행…….

다행히도 듣자마자 어떤 식으로 빼돌렸을지 감이 확 잡혔다.

어떻게 접근해서 조사해야 할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관련자가 최소 3명이라는 것이다.

지금 김기훈이 하는 말 모두 중요한 말이었지만 방금 한 말은 매우 중요한 힌트였다.

“그리고 조사단이 알아서 다 파악하겠지만 국세청 관할이 아닌 불법적인 일들도 꽤 있습니다. 이를테면 채용 청탁이나 낙하산 같은 것들 말이죠. 국세청이 손댄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동안 허가나 부지 이전, 사업 선정 등으로 여러 가지 일이 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돈도 꽤 뿌렸습니다. 위에도 뿌리고 아래에도 뿌리고.”

위는 뭐고 아래는 뭘까, 채유림은 자신이 정치적 수사에 밝지 않은 것을 한탄했다.

지금 이 자리에 신재현이 있었다면 금세 속뜻을 파악했을 텐데.

김기훈이 말한 위는 시청 같은 허가 주관 공무원이었고 아래는 사업 관련 업자들 얘기였지만, 채유림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열심히 외웠다.

나중에 돌아가서 신재현에게 물어보기 위해.

세무사 시험 이후로 이렇게 열심히 외워본 것은 처음이었다.

공부할 적에 익혔던 암기 방법을 총동원해야 했다.

“조사단은 국세청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런 사실을 알면 검찰이든 경찰이든 알아서 다 해결하겠지.”

김기훈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자마자 기지개를 쭉 켜고 스트레칭을 했다.

마치 정말로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던 사람처럼.

김기훈은 말을 끝내고 나서야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열심히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외우고 있는 채유림을 보며 피식 웃었다.

“캔 커피라도 사 올 걸 그랬네요. 말을 많이 하니까 목마르네.”

“잠시만요, 사 올게요.”

채유림이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뗐지만 김기훈이 막았다.

“아니에요. 지금 갈 건데요.”

“……간다고요?”

“네. 할 말은 다 했으니까요. 제 혼잣말 들으시느라 힘드셨죠. 멀리 와서 푸념이나 하고 가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바쁘신데 불러내서 죄송해요. 얼른 들어가 보세요.”

용건이 끝난 것처럼 김기훈이 휘적휘적 걸어 나가자 채유림이 당황했다.

정말 이렇게 간다고?

“잠시만요! 잠깐 대화만 좀 가능할까요?”

멈춰 선 김기훈이 뒤를 돌더니 난감한 얼굴을 했다.

“저야 상관없는데 채유림 씨가 난감하지 않으실까요? 보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세무사랑 담당 조사관이 있는 거 이상하잖아요.”

“그런 생각 할 거였으면 아예 내려오지도 않았겠죠.”

“그건 그렇네요.”

도로 김기훈이 건물 벽으로 다가왔다.

습관적으로 담배갑에 손을 댔다가 떼고는 손을 어찌할 바 몰라 하더니,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둘은 다시 아까 만났던 위치로 돌아왔다.

그러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아까는 채유림이 못마땅한 얼굴로 김기훈이 얼른 용건을 말하고 돌아가길 기다렸지만, 지금은 김기훈이 용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채유림은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세무사시잖아요. 회사 소속이시고. 위험하지 않겠어요?”

세무사에게는 비밀 유지 의무가 있다.

그리고 굳이 그런 게 없더라도 회사에서 알아낸 사실을 조사관에게 일러바치는 게 업계에서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비록 탈세와 횡령 같은 불법적인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회사 내부의 일을 조사관에게 흘리는 세무사를 누가 믿고 맡기겠는가.

이 일이 업계에 소문나면 김기훈은 재취직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채유림이 아는 김기훈은 악인이 아니지만 선인도 아니다.

자기 앞길 망쳐가면서까지 이렇게 폭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김기훈은 흘끔 채유림을 보더니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저는 혼잣말을 한 것뿐인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채유림 씨가 들었다면 그건 멋대로 와서 엿들으신 거죠. 제가 말한 게 아니라.”

그렇게 포석을 깐 김기훈은 이어서 본심을 말했다.

“어차피 그만뒀어요. 사직서 내고 나왔거든요. 원래라면 한 달은 더 일해줘야 하는데 그쪽에서도 기분 나쁘다고 후딱 나가라네요. 그래서 인수인계만 대충 해주고 왔습니다.”

“그만뒀다고요? 공기업을요? 아니, 왜요!”

“그냥 뭐라고 할까, 다 짜증 나서요. 옛날에 공부할 때 멋있는 세무사 되자고 했던 것도 생각나고.”

여느 직업이 그렇듯 공부할 때는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면 현실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짓을 해서까지 돈을 벌어야 되나 싶기도 하고요.”

“그럼 다시 세무사 업계로 돌아가시는 거예요?”

“글쎄요. 그건 고민 중인데.”

김기훈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혼자 웃기 시작했다.

“크흐흡, 제가 이런 말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요. 저 7급 시험 볼까 해요.”

“네에?”

놀라는 채유림을 두고 김기훈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인사도 없었고 그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그저 채유림을 놀라게 한 것에 만족한다는 듯이 김기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채유림이 어안이 벙벙한 채로 우뚝 서 있는 동안, 멀어진 김기훈이 오른손을 들어 흔드는 것이 보였다.

“뭐야, 정말…… 영문을 모르겠네.”

훌쩍 떠나간 김기훈은 이제 국세청 정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채유림은 국세청 로비로 들어오며 생각했다.

‘나중에 편하게 밥 한 번 먹어야겠네.’

사직서를 썼으면 직원도 아니고 관계자도 아니다.

다 내려놓고 편히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7급 시험을 보겠다는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교재 어디서 사고 강의는 뭐 들어야 하는지 알려줘야지.’

채유림은 왠지 모를 홀가분함을 느끼며 사무실 문을 열었다.

나갈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신재현이 보였다.

“팀장님! 흥미로운 얘깃거리 듣고 왔어요!”

“음? 뭔데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여요? 저도 궁금하네요.”

채유림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짧은 시간 동안 있었던 얘기를 풀어놓았다.

신재현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추임새를 넣기도 하면서 진지하게 들었다.

“그분도 참…… 회사를 잘못 만났네요.”

“어때요? 쓸 만한가요?”

“네. 나갔다 오시길 잘했네요. 그분도 꼭 국세청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나중에 만나서 수험 생활 노하우나 알려주려고요.”

“좋은 생각이네요.”

채유림은 빠뜨린 것 없이 전달했다고 자신했다.

김기훈의 의도를 신재현이 전부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신재현의 눈빛이 변했다는 것 말이다.

그의 피곤에 찌든 얼굴이 어느샌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먹잇감을 찾은 것처럼.

***

“그그 싸가지 없는 놈은 인수인계 제대로 하고 갔답니까?”

또다시 이사실에 모인 임원들은 불평을 내뱉었다.

이번 대화의 안줏거리는 바로 김기훈이었다.

“거참, 잘되라고 응원을 해줘도 제 발로 차고 나가니 원.”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에요.”

거둔 적도 없거니와 그들이 진심으로 김기훈을 위한 적도 없었건만, 이들은 뻔뻔했다.

자기들은 이미 할 만큼 했고, 떳떳했으며, 오히려 김기훈에게 감사 인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온갖 무례한 말로 임원들을 힐난한 후 뛰쳐나간 김기훈은 이미 배은망덕한 놈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였다.

“그놈 아무데도 못 가게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어디 취직이나 잘 할 수 있나 보자.”

“제가 고송철 대표한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회계사긴 해도 세무사협회 쪽이랑 연이 있다고 했으니 그쪽 업계에 소문내는 것도 수월할 거예요.”

이들은 김기훈이 채유림에게 그들의 횡령을 고해 바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서도 배신자 취급을 했다.

겨우 쓴소리 좀 하고 사직서를 던졌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 인생을 나락으로 보낼 계획을 짜고 있는 것이다.

“말 나온 김에 고송철 대표와도 슬슬 앞날을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고송철 대표는 아직도 전화를 안 받습니까?”

“어, 네…… 그렇네요. 어제는 시간이 늦었으니 그렇다 쳐도 오늘은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사람 참, 많이 바쁜가?”

“흠. 우리 말고도 조사대상이 두 군데 더 있으니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바쁘겠죠.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어차피 고송철 그 양반은 손을 못 떼요. 연락 오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임원들은 어쩐지 모를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며칠 전 김기훈이 내뱉은 말에 더해 고송철의 이유 모를 연락 두절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시간 내서 제가 회계법인 쪽에 한 번…….”

들러 보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바로 채유림이었다.

평소 그녀의 성격이라면 노크도 없이 문을 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채유림은 요즘 신재현 따라 하기에 맛이 들려 있었다.

지금도 덜컥 문을 열어놓고는 ‘와, 이거 효과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사들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틈을 타 검찰 쪽에서 파견 나온 수사관이 주르륵 들어섰다.

채유림이 대표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셨죠? 오늘은 미리 예고를 드릴 수가 없었어요. 긴급 압수수색이거든요.”

“뭐요?”

횡령과 비리 등에 대한 혐의로 검찰이 함께 나온 것이다.

검찰 수사관이 들이민 수색영장을 본 이사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뭡니까! 이건 말도 안 돼요.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일단 장부 얘기라면 대리인인 고송철 회계사 있는 데서 합시다. 우리도 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어!”

세 명의 이사가 흥분해 침을 튀기며 삿대질을 하자 채유림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고송철 회계사요? 그분은 지금쯤 더 바쁘실 텐데. 여기 생각할 겨를도 없을 거예요. 더한 사람이 갔거든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우리 권리를 찾겠다는데!”

“고송철 회계사님이라면 어차피 곧 만나게 되실 거예요. 그분도 마찬가지로 압수수색당하고 계셔서요. 거기는 저희 신재현 부단장님이 지현석 부단장님과 함께 가셨으니 정신이 없을 거라는 뜻이었습니다.”

세 명의 이사는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사단의 두 명의 부단장이 둘 다 고송철에게 향했단다.

무언가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사들의 머리에 동시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이거 엿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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