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37화 (437/500)

437화. 물어보면 해결된다 (2)

신재현의 책상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쯤 되면 관심이 없던 다른 사람들도 궁금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권새호도 마찬가지였다.

신입 취급인지라 문과 가까운 자리에 앉은 권새호는 신재현이 있는 창가 자리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부가세 신고서 때문에 고민하던 직원의 자리와도 좀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법령 해석이라는 말에 권새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전직 법령해석과인데. 해석 하나는 기깔 나게 할 수 있는데.’

법조문을 해석하는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법조문이 어려운 말투성이라서 한 문장이 3~4줄 가는 것도 수두룩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세법 해석에는 어느 정도 통달했겠지만, 권새호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조사단의 멤버 중 세법 해석으로는 상위에 속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었다.

그야 그가 매일 출근해서 하던 일이 세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에게 물어볼 줄 알았다.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고민하다 답을 내지 못했을 때는 이제 곧 자신을 부르겠구나 하며 남몰래 찬물을 마시고 기다렸다.

그런데 떡하니 법령해석과 출신의 직원이 있는데도 팀장에게 물어보는 게 아닌가.

‘어? 보통 팀장한테 물어보나?’

물론 그런 과도 있을 것이다.

팀장이 실무에서 오래 굴렀다거나 온갖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보통은 직원들이 저마다 궁리하고 판례를 찾아서 결재서류를 올린다.

그러면 팀장이 첨부한 법령이 과세 근거로서 올바르게 적용되었는지 확인만 하는 것이다.

수십 명이 올린 결재 서류를 검토해야 하는 팀장이 어떻게 판례를 하나하나 다 찾겠는가.

당연히 직원이 찾아서 올려주면 검토만 하는 거지.

그런데 조사단은 다른 과와 조금 다른 듯했다.

팀장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팀장님이 여러모로 유능하신 건 아는데 이런 드문 판례까지 아시나?’

세무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자주 쓰이는 판례 위주로 보게 마련이다.

좀 폭넓게 잡는다 쳐도 전국에 공공기관이 350개밖에 안 된다.

그중에 철도공사가 몇 개나 되겠는가.

대체 언제 쓰일 줄 알고 그 판례를 읽어뒀던 걸까.

권새호는 아연해졌다.

“일단 부가세 신고서에서 문제가 되는 게 안분 계산이죠? 대한철도공사는 과면세 겸영이니까.”

이건 권새호도 아는 내용이다.

아니, 조사단에 있는 공무원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고속철도는 과세, 지하철 같은 일반 철도는 면세.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 대체 뭐에 막혀서 저렇게 모인 걸까.

궁금해진 권새호는 주춤주춤 일어나 슬그머니 다가갔다.

관심을 가진 것은 권새호만이 아니었나 보다.

조금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들도 슬금슬금 일어나 신재현의 책상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대충 들어도 유익해 보인다.

공기업 관련 판례라 나중에 또 쓸 일은 없다 해도 일단 알아둬서 나쁠 게 없어 보였다.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 창가가 북적해지자 뒤에 선 사람들은 까치발을 들어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보다 못한 채유림이 앉은 채로 뒤를 돌았다.

“팀장님. 앞에 나가서 설명해 주세요. 저도 궁금하네요.”

“이거를요?”

“네. 다들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으니까요.”

신재현은 고개를 들더니 아까보다 훨씬 많아진 관람객에 놀란 얼굴을 했다.

“엇. 철도공사에만 해당되는 얘기긴 한데요.”

“이런 기회에 배워두는 거죠. 나중에 또 비슷한 사례를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런가요. 그럼 잠시 쉬시면서 편하게 들어주세요.”

신재현은 사무실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빔 프로젝터가 스크린을 비추고 있던 벽면에는 어느새 바퀴 달린 화이트보드가 놓였다.

화이트보드 앞면에는 조사 진척 상황이 적혀 있었기에 신재현은 보드를 뒤로 돌렸다.

일어섰던 직원들도 부산하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학원처럼 변해 있었다.

“부가세 과세와 면세 사업을 동시에 운영할 때 매입세액공제를 안분하는 게 가장 문제인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다 어느 정도 세법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신재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말해서, 부가세 과세사업이면 매입세액공제를 받는다.

부가세 면세사업이면 매입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과면세 겸영이면?

대체 얼마의 금액만큼만 매입세액공제를 받아야 하는가.

그 기준은 첫째로 공급가액, 즉 매출액이었다.

예를 들어 1년간 5억의 매출을 올렸다 치자.

여기에 원재료와 임차료, 기타 부대비용 등으로 3억이 나갔다.

이 3억에 대해서는 매입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았을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부가세 과세사업자라면 계산은 간단하다.

5억의 10%인 5천만 원이 매출세액이 되고 3억의 10%인 3천만 원이 매입세액이 된다.

5천만 원에서 3천만 원을 빼면 결국 부가세는 2천만 원이다.

여기서 예를 조금 바꿔보자.

5억의 매출 중에서 4억은 과세, 1억은 면세다.

그렇다면 매입 3억의 10%인 3천만 원 전체를 매입세액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

총매출액 5억 중에서 과세분 4억은 80%니 3천만 원 중에서도 80%인 2,400만 원만 공제받게 되는 것이다.

웬만한 회사라면 이런 방식으로 계산이 가능했다.

그러나 매출액이 없다면 계산이 불가능하다.

그런 경우에는 ‘매출액 얼마 중에서 과세는 얼마가 될 것 같아요’라는 예상치로 계산을 했다.

예상조차 불가능하다면 과세와 면세 사업에 각각 사용한 면적을 기준으로 안분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실무는 이론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여기 조사관님께서 고민하신 부분은 이겁니다. 고속철도는 과세, 일반철도는 면세죠? 근데 이거 각각 구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고요.”

맨 앞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신고서 검토 담당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그가 처리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장 열심히 듣고 있었다.

“네. 솔직히 고속철로는 KTX만 쓰고 일반 선로는 화물차나 일반 열차만 쓰잖아요. 거기 들어간 비용 다 구분할 수 있지 않나요? 그러면 면세 비율이 확 올라가요.”

한마디로 면세 비율이 높을수록 내야 할 부가세가 높아진다.

신재현은 화이트보드에 간단한 조직도를 그렸다.

맨 위에 공사의 본사가 있고 그 밑에 강원 본부나 서울 본부, 광역 본부 등의 여러 지부들이 적혔다.

차량정비단 같은 공사 소속의 유관 기관도 있었다.

“지금 부가세 신고서에는 공사 전체의 면세 비율로 계산이 되어 있어요. 그게 약 40%입니다. 그런데 지부나 정비단 위치에 따라 면세 비율이 높은 곳이 있어요. 여기 조사관님께서 생각하신 대로 고속철도 유지비나 경유 비용 등 확실한 걸 제외하면 면세 비율이 확 올라가거든요. 그러면 5년치 대충 계산했을 때 부가세가 최대 700억까지 차이가 납니다.”

“네. 그겁니다! 부가세법 보면 귀속이 확실한 건 먼저 따지고, 과세인지 면세인지 애매한 것만 면세 비율로 안분하라고 되어 있잖습니까. 원칙대로라면 구분 가능한 것들은 따로 다 제외하고 남은 것들만으로 면세 비율을 따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원칙을 따져도 그게 맞을 법하고 실제로 다른 사업체는 그렇게 한다.

우리가 평소 조사할 때도 부가세에서 유심히 보는 게 과세, 면세 잘 구분했느냐니까.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몇 조 몇 항인지는 까먹었는데, 구 부가세법 시행령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을 거예요. 공통매입세액의 안분 대상을 ‘전 사업장’이라는 단어로 칭하고 있어요.”

여기서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아,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권새호도 그중 하나였다.

“여기서 말하는 ‘전 사업장’이라는 단어를 뭐라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과세금액이 달라집니다. 각 사업부문별로 ‘전 사업장’을 따진다면 조사관님이 말씀하신 대로 과면세 귀속을 따져야겠죠. 그러면 면세 비율이 높아져서 부가세가 많이 나올 거고.”

“그게 아니란 말씀이세요?”

“지방의 모 지하철 철도공사와 관련한 판례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서는 ‘전 사업장’을 철도공사로 봤어요. 그러니까 사업부문이나 지사별로 귀속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철도공사를 하나의 사업장으로 보고 계산한 거죠.”

“판례라 하시면 조세심판원에 불복까지 갔단 소리네요. 철도공사 관련이면 꽤 이슈가 됐을 것 같은데 왜 난 몰랐지.”

이건 권새호도 동감이었다.

희귀한 판례가 뜨면 국세청 공무원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진다.

알아둬야 비슷한 상황에서 소송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과세했다가 바로 민원, 불복 콤보가 들어오는 수가 있다.

신재현은 가볍게 대답했다.

“09년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감사원에서 ‘철도공사 부가세가 잘못된 것 같으니 다시 검토하시오’라는 시정 요구가 국세청으로 내려왔다고 해요. 국세청에서는 감사원의 권고를 받아들여서 방금 조사관님이 계산하신 방식대로 면세율을 높여서 부가세 몇백억을 과세했습니다. 그리고 불복이 들어왔죠. 조세심판원에서도 끝나지 않아서 지방법원, 그리고 고등법원 2심까지 갔다가 국패로 끝난 사건입니다.”

“아…….”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신재현은 뒷이야기를 덧붙였다.

“부가세 시행규칙에 ‘해당 과세 기간의 모든 사업장’이라고 쓰여 있어서 각각 계산하는 게 아니라 통틀어서 면세 비율 계산하는 게 타당하다고 해석했거든요. 그리고 일일이 구분하자면 너무 힘들고 공공기관의 특성상 공공적 성격이 강해서 봐준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단어 해석 하나로 수백억이 갈린 사례였다.

게다가 고등법원까지 갔으면 국세청과 공사 사이에 얼마나 다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권새호는 멍하니 설명을 듣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보편적으로 적용되지도 않는 그런 국소적인 판례까지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솔직히 법조문 좀 봤다는 권새호도 모르는 판례였다.

물론 명색이 세무 공무원이므로 키워드를 아는 지금은 국세법령정보시스템에서 해당 판례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신재현은 그 판례를 검색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평소에 대체 얼마나 많은 판례를 보고 공부했단 말인가.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판례는 거의 다 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요즘에도 시간 되는 대로 최신 판례 나오는 건 다 읽고 있어요.”

“말도 안 돼…….”

권새호 자신도 한때는 열심히 한답시고 최신 판례를 찾아 읽은 적이 있다.

일주일 만에 포기했지만.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유명 판례라면 몰라도, 언제 써먹을지도 모르는 구석지에 처박힌 판례까지 찾아다 읽는 사람은 흔치 않다.

꾸준히 공부하다 못해 구석구석 다 찾아본다는 뜻 아닌가.

장세훈이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팀장님한테 물어보길 잘했죠? 책 뒤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팀장님한테 물어보면 웬만한 건 답이 바로 나온다니까.”

직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들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신재현은 별다른 내색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상입니다. 긴 설명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가 되셨으면 하네요.”

“네, 네에…….”

신재현이 뚜벅뚜벅 자리로 돌아가 책상 아래에 내려놓았던 서류철을 도로 올렸다.

원래 업무로 돌아간 것이다.

신재현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듯 후련한 얼굴이었지만, 반대로 직원들은 손을 멈춘 채 서로 눈빛만 주고받고 있었다.

‘저게 말이 돼?’

‘판례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봐?’

‘대체 하루에 몇 시간 자는 거지?’

‘저 정도는 공부해야 조사단 부단장 앉는 거구나. 나도 공부 좀 했다고 자부하는데 저건 진짜 못 이기겠다.’

다른 의미로 분위기가 숙연해진 가운데, 당초 질문했던 직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신재현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네요. 부가세는 당연히 원칙대로라고 생각해서 이런 판례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거든요. 아마 팀장님 아니었으면 판례 찾지도 않았을 겁니다.”

형광펜을 손 안에서 돌리던 신재현이 고개를 들었다.

“별말씀을요. 이미 이상함 느끼셨으니 언젠가는 판례를 발견하셨을 겁니다. 저는 그냥 시간만 줄여드린 거예요.”

“아닙니다. 그것만 해도 큰 공부가 됐습니다. 제가 원칙대로 과세했더라도 물론 팀장님께서 결재 라인에서 쳐내주셨겠지만, 그때는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을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치 않게 직원들의 학구열을 불태운 신재현이 멋쩍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덕분에 든든하네요.”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짓는 가운데 채유림이 주위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한 손을 들었다.

아까부터 신재현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무언가 사정이 있는 듯했다.

“저, 화기애애한 분위기 깨서 죄송한데요. 손님이 온다는 연락입니다.”

신재현이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의아한 얼굴로 채유림을 보았다.

“지금 비 오는데요? 아니, 이렇게 갑자기? 대체 누가요?”

“이번에 제가 맡은 대한농어촌공사의 재무부 소속인 김기훈 세무사입니다.”

채유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랑 동기예요. 이렇게 갑자기 오는 걸 보니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네요.”

“꿍꿍이라 이거죠…….”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신재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수작 부리려고 기습 방문 하는 거라면 망신당하고 갈 텐데…….’

채유림은 동기에게 애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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