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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435화 (435/500)

435화. 이게 조사단이다 (4)

“와, 날씨 맑다!”

나는 국세청 입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6월의 하늘에는 구름이 옅게 끼어 있었고, 드문드문 그 사이로 햇빛이 내렸다.

날씨도 꽤 더워졌다.

이젠 정장만 입고 있어도 돌아다니다 보면 금세 땀이 흘렀다.

구름이 없는 날에는 밖을 걸어 다니면 햇볕이 따갑게 느껴졌다.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팀장님, 왜 나와 계세요?”

국세청 입구 계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던 직원들이 말을 걸었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남은 나를 아는 상황은 이제 익숙하다.

“누굴 좀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대답하자 질문한 직원이 어머, 하고 눈을 깜빡이며 입을 막았다.

아니, 그 표정은 뭡니까.

무슨 생각을 하신 거예요.

내가 국세청 앞에서 친구나 기다릴 사람은 아니잖아.

직원은 진지하게 물었다.

“대선 후보예요? 아니면 어디 청장님……? 아, 조사 대상에 대한 건 물어보면 안 되죠?”

착각한 건 나였구나.

오히려 정확하게 파악한 건 직원이었다.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잠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대체 국세청 내에서 내 이미지는 어떤 거지?

여기서 어떻게 ‘청장이 조사 대상이냐’는 전제로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걸까.

내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자 직원이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여기 계시는 건 처음 본 것 같아서 괜히 호기심에…… 조사 관련해서는 자기 팀 아니면 얘기 안 하는 게 맞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들어가려는 직원을 얼른 붙잡았다.

“아뇨, 아닙니다. 저희 팀원들 기다려요. 세 군데 나눠서 동시에 가기로 했거든요. 저하고 1반, 2반 반장님들이 각각 다른 곳으로 나갔는데 제가 제일 먼저 돌아와서 다른 반 마중 나온 겁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씨익 웃었다.

“아하, 남들한테 현장 책임 맡겨보신 게 처음이구나.”

“그…… 처음까지는 아닌데 멀리 보내놓고 보니 조금 신경이 쓰여서요. 먼 길 출장 다녀오시는데 마중이라도 해드릴까 싶어서.”

못 믿는다는 건 아니다.

걱정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저 멀리 보내놓고 나 혼자 있자니 사무실이 텅 비어 보여서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미안함도 아니고 불안함도 아닌데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딱 맞는 설명을 찾지 못해서 말을 흐리고 있자 직원이 맑게 웃었다.

“조사단은 부럽네요. 부단장님이 이렇게 신경 써주시고. 멀리서 보니 사이가 좋아 보이던데 그 이유가 있었군요.”

“사이가 좋아 보였나요?”

“네. 그래도 30명씩이나 되면 누군가는 겉돌거든요. 일이 힘들면 예민해지고. 근데 조사단은 가끔 마주치면 다들 웃고 즐거워 보여요. 일하는 거 보면 분명히 힘들 텐데. 뉴스에 발표되는 것만 해도 야근 각이 딱 나오잖아요. 근데 발표되지 않는 것까지 하면 얼마나 많이 일하겠어요. 퇴근하면서 보면 항상 조사단 사무실에 불 켜져 있어서 저기는 대체 언제 불이 꺼지나 본 적도 있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업무하고 상관없이 직원들끼리 싸우는 게 가장 난감한데 다행히 우리 조사단에는 아직 그런 게 없었다.

솔직히 팀장으로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정말 별의별 인간이 다 나오는데 조사단은 그 큰 건을 다루면서 딱히 잡음이 나오지도 않고. 참 신기해요.”

순간 머리 한구석에 한 사람의 이름이 어른거렸다.

내가 쫓아낸 전 2반 반장 엄배홍 말이다.

“잡음이 없었던 건 아니죠. 저번에 국세청 좀 시끄러웠죠?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 얘기는 이미 국세청 전체에 다 퍼졌어요. 오히려 조기에 깔끔하게 처리하셨다고 소문이 자자한데요.”

“그런 거면 다행인데 사실 저희 팀이 조용한 날이 없잖아요. 다른 조사관님들께 피해가 갈까 봐 걱정입니다.”

“제가 생각한 부단장님 이미지랑 확 다른데. 왜 이렇게 약한 말씀을 하세요. 부단장님이 놔뒀으면 나중에 본청에 더 큰 분란이 터졌을 걸요? 청장님도 동의하셨으니까 그렇게 처리하신 거잖아요. 그리고 조용한 날 없는 거야 뭐 일하시느라 그런 건데. 저희한테 피해 올 게 있긴 한가요. 정작 힘든 건 그거 다 감당하면서 일하는 조사단이죠.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살짝 감동을 느꼈다.

처음 인사할 땐 시간 때우기로 잡담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이 나네요.”

“네. 그럼 또 어떤 뉴스 나올지 기대하고 있을게요.”

“어? 뉴스요? 저희가 어디까지 조사하는지 어떻게 아시고…….”

내가 두 눈을 깜빡이자 직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조사단 움직이기만 하면 뉴스 메인에 뜨잖아요. 팀 나눠서 멀리 출장까지 가셨으면 당연히 다음 뉴스도 따놓은 거 아닌가요?”

“아, 맞다.”

내가 멋쩍게 웃자 직원은 살풋 웃으며 양손의 주먹을 쥐어 보였다.

화이팅 포즈다.

“그럼 이번 조사도 힘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청사 안으로 향하는 직원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다시 국세청 정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나가는 직원들이 인사하거나 손을 흔들며 알은척을 해주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냥 국세청의 명물 취급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예를 들어 저기 국세청 앞에 서 있는 기괴한 동상처럼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깜짝 놀란다는 갓 쓴 선비 모양의 동상으로, 그 별명도 저승사자였다.

서울청의 조사4국이나 나한테 붙은 별명과는 결이 좀 다르다.

한밤중에 퇴근하다 보면 나도 가끔 깜짝 놀라곤 한다.

알면서도 그렇다.

장세훈은 자꾸 보면 친근감 간다고 좋아하고, 안길진은 반대로 밤에 퇴근할 때마다 놀라서 장세훈이 안길진을 놀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참고로 나는 가끔 놀라면서도 애써 담담한 척을 하곤 한다.

저거 좀 치워주면 안 되나.

멍하니 동상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익숙한 트럭과 자동차 행렬이 보였다.

저 먼 대한농어촌공사까지 갔던 1반의 행렬이었다.

트럭에 뭔가를 바리바리 싸온 걸 보니 저쪽도 꽤 수확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 팀장님 왜 나와 계세요?”

“환영해 주려구요.”

“뭘 환영까지 해요. 그럼 나오신 김에 이것 좀 들어주세요.”

“아, 넵.”

채유림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내 손에 박스를 들려 주었다.

그런 채유림도 양손에 한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회사를 아예 털어왔어요?”

“네. 할 말이 아주 많아요. 일단 들어가시죠.”

채유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욕에 활활 불타고 있었다.

트럭과 승용차 트렁크에서 직원들이 박스를 내리고 옮기는 동안 2반 역시 도착했다.

이번엔 대한철도공사로 갔던 사람들이다.

2반은 1반만큼 싹 털어온 건 아니었지만 그들도 나름 갖고 온 것이 많았다.

2반 반장은 1반이 한창 옮기는 것을 보더니 기겁했다.

“채 반장님. 이거 거의 영업 정지 수준 아니에요? 저번에 검찰에서 압수수색할 때 이렇게 가져오던 것 같던데.”

“반장님도 만만치 않은데요? 트럭에 반 넘게 찼네, 뭐!”

“크흠. 최소한으로 가져온 겁니다. 거기도 일은 해야 되잖아요.”

“저 정도 가져오셨으면 이미 사무는 마비거든요? 일단 들어가요. 우리 진짜 바쁘게 생겼으니까.”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시네요. 대한철도공사도…… 아니다, 들어가서 얘기하죠. 일단 옮기면 되죠?”

“네.”

둘 다 다른 의미로 잘 풀린 것 같았다.

우리끼리 옮기기엔 몇 번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아서 사무실에 남아 있던 다른 직원까지 총동원해서 짐을 옮겼다.

이제 겨우 공기업 3군데를 조사하는데도 이렇게 많다니.

우리는 사무실 벽을 따라 상자를 쌓았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옆에 딸린 자그마한 회의실에도 꽉꽉 상자를 채워놓은 후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 자리에 앉아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장세훈과 황민우 등 예전 내 팀원들이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1반과 2반이 실어온 자료들을 사무실에 옮겨놓고, 다른 직원들이 정리하는 동안 내 심부름을 다녀온 것이다.

그들은 봉투에서 캔 커피와 음료수, 과자나 빵 등을 꺼내서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선풍기까지 켜고 나자 다들 ‘살았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늘어졌다.

날이 꽤 덥긴 했다.

“편하게 쉬시면서 들으세요. 이번에는 짐작하셨겠지만 팀을 셋으로 나눌 겁니다. 각자 현장 조사 나간 곳이 자신이 담당할 기업체예요. 따라서 대한공항공사는 제가 맡고 대한농어촌공사는 1반 채유림 반장님, 대한철도공사는 2반 정청두 반장님이 지휘를 맡으실 겁니다. 물론 중간중간 제가 체크는 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채유림은 여유 있게, 정청두는 살짝 긴장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 공기업 중에서 하필 내가 대한공항공사를 맡은 이유는 간단했다.

거기가 가장 탈세액이 컸기 때문이다.

사장과 이사 등 주요 임직원의 명단을 훑어본 결과도 비슷했다.

대한공항공사의 탈세액은 압도적이었다.

원래 공기업이 이렇게 많이 탈세했나 싶을 정도로.

아니, 이렇게 탈세해 놓고도 안 걸릴 거라 생각했나?

어이가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지금 회계법인 고송 덕분에 내 눈에 띈 것뿐이지 이 법인의 거래처가 아닌, 다른 공기업은 또 어떻겠는가.

당연히 깨끗하게 운영하는 곳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공기업 전부를 훑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근데 자료는 왜 이렇게 많이 가져오신 거예요? 이러면 대한농어촌공사 정말로 업무 마비될 텐데.”

탈세액을 생각하면 내 마음 같아서야 그쪽 업무가 어떻게 되든 싹 쓸어오고 싶지만 정작 피해를 보는 건 공사의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 직원과 농민들이다.

거기도 진행 중인 사업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또 채유림과 정청두 반장 모두 그렇게 막무가내인 사람들은 아니다.

이유가 있었으니 그런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역시나 채유림은 정색하며 말했다.

“팀장님. 장난 아니에요. 제가 시간상 거기서 자세히 보지는 못 했거든요? 그런데도 찾아낸 게 몇 개 있어요.”

채유림치고는 꽤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들고 온 상자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제가 이쪽 전문가는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은데 이 비슷한 걸 어디서 본 기억이 나거든요.”

채유림이 건넨 것은 무슨 사업 계획서였다.

땅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사들여서 깊이 얼마를 파고 어디를 묻고 이런 식의 개요가 적혀 있었는데, 솔직히 봐도 모른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위의 ‘저수지 준설 사업 계획서’ 라는 글귀였다.

“어? 저수지 준설? 저도 이거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래서 일단 들고 왔어요. 분명히 세법책 구석 어디선가 이런 비슷한 단어를 봤었거든요.”

솔직히 우리가 그 많은 세법을 다 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장 조사에서 어떤 자료가 탈세의 근거가 되는지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경험과 끝없는 공부.

공부한다고 다 외우는 것은 아니고 ‘이런 게 있었지’ 정도만 떠올릴 수 있어도 된다.

지금처럼 말이다.

“어디서 봤더라…….”

우리가 끙끙대고 있자 2반 반장인 정청두가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대한농어촌공사면 그쪽 관련 법이 따로 있지 않아요?”

“어?”

뭔가 생각날락 말락 했다.

뇌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뇌에서 입으로 끄집어내는 그 어딘가에서 턱 막힌 기분이었다.

그러다 머리에 전구가 켜진 듯 눈앞이 번쩍했다.

“아!!! 생각났다! 조특법에 있었어요!”

조세특례제한법에는 자주 변동되거나 감면, 한시적 규정 같은 자질구레한 세법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6급 승진 시험을 대비하면서 세법 전부를 읽어두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오! 맞아요! 거기 무슨 면세 관련 얘기였던 거 같은데!”

우리는 서둘러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을 켰다.

과연 저수지 준설사업은 면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다.

채유림은 세무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각종 자질구레한 세법을 훑어서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평소 한 번이라도 읽어보지 않았다면 눈앞에서 보고도 검토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놓쳤을 내용이었다.

그냥 기획서구나, 하고 넘겼을 테니까.

“이야, 미친 사람들이네. 그걸 다 기억해요?”

장세훈이 핸드폰으로 법령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직원들도 거의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공부하길 잘했다.

채유림도 아마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우리는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제 부가세 신고서 확인해 보면 되겠네요. 면세 처리했는지 과세 처리했는지.”

“네!”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다.

“엇, 팀장님. 제가 다녀온 대한철도공사도 좀 봐주셔야 합니다.”

정청두까지 합세해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큼직한 건들 분류를 시작했다.

“어휴, 정말 이러면 우리도 공부해야 될 것 같잖아.”

“웬만한 공부량으로는 조사단 일 자체를 못 따라간다니까요?”

직원들이 푸념하듯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덜컥 겁이 나 돌아봤는데 그다지 힘들다거나 불편한 표정은 아니었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한손에 캔 커피를 든 직원들이 하나둘 일어나 가져온 박스를 뒤집기 시작했다.

“팀장님~ 대한공항공사 탑승교 감가상각명세서요!”

“찾으시던 부가세 신고서요!”

“반장님! 계정별원장은 이쪽으로 빼놓을게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팀원들을 보면서 나는 내심 흐뭇해졌다.

내 눈에 보이는 탈세액이야 수백억 단위였지만 이걸 다 증명해서 과세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탈세라는 건 과세기관인 우리가 자료와 근거를 갖고 증명해야 하니까.

그런데 이 정도라면 대부분의 탈세액을 과세할 수 있을 것 같다.

“순서대로 훑읍시다. 손익계산서 계정 보고 감가상각 명세 보고 법인세 신고서상 세무조정 보고요.”

“네에!”

“분류부터 할게요!”

어마어마한 단위의 숫자들이 서류 위에서 흔들렸다.

대한공항공사 490억.

대한농어촌공사 379억.

대한철도공사 281억.

이 중 어디까지 증명해 낼 수 있을까.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안내 말씀

작중 공사명은 '대한공항공사, 대한농어촌공사, 대한철도공사'로 모두 픽션이며, 현실의 공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또한 작중에 나오는 모든 사건은 창작으로, 국세청 앞의 동상은 2019년 철거되었습니다

작품 감상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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