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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망나니-434화 (434/500)

434화. 이게 조사단이다 (3)

조사단이 공기업을 타깃으로 잡았다!

국세청의 조사단 이름으로 세무조사 예고 통지서가 날아간 이상 이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통지서를 보내놓고 안 나올 사람도 아니고, 막상 나와서 적당히 봐줄 사람도 아니다.

때문에 통지서를 받은 세 곳의 공기업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

‘재수 없으면 걸릴 거라더니 진짜 재수 옴 붙었네.’

저승사자가 눈길을 줬으니 그 어느 때보다 재수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들은 ‘왜 하필 내가 임원일 때 이런 일이 생기냐’며 한탄하면서도 숙연하게 조사를 준비했다.

그 준비라는 것은 국세청에서 물어볼 질문이나 탈세 혐의에 대한 소명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현금’을 만드는 일도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고 최악의 경우 얼마나 세금을 내야 하는지.

‘내는 건 기정사실이고 얼마를 내느냐가 문제다.’

자체적으로 예상 세액을 계산해 본 세 곳의 임원들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여 현금을 마련했다.

피해 간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지난 2주간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예정된 날짜가 되자 어김없이 조사단이 들이닥쳤다.

신재현은 조사단의 방대한 인원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동시에 세 군데의 공기업에 들이닥친 것이다.

로비에 조사단을 맞으러 나간 임원들은 간절히 기도하며 당당하게 건물에 들어서는 단원들의 얼굴을 면밀히 훑었다.

‘제발 우리 쪽에 오지 마라. 제발 여기에 없기를!’

바로 신재현의 위치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리 저승사자네, 자연재해네 하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어도 엄연히 사람이다.

동시에 세 군데에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숙연한 분위기에서 손님을 맞은 임원들은 제각기 희비가 엇갈렸다.

신재현이 없는 쪽에는 ‘살았다’ 하는 안도의 한숨을, 조사단원 선두에 선 신재현을 본 기업에서는 죽는 날을 받아둔 사람처럼 탄식이 어렸다.

신재현도 자신을 발견하고 순간 스치는 실망 어린 표정을 봤지만 씁쓸하다기보다는 웃겼다.

‘내가 없다고 해서 신경 안 쓰는 건 아닌데.’

신재현이 있다고 좀 더 빡세거나 없다고 널널한 건 아니었다.

신재현이 하는 걸 가장 옆에서 보고 배운 곳이 바로 조사단이다.

다른 곳에는 각각 1반과 2반의 반장이 팀원들을 이끌었다.

원래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조사단 소속이 된 후 마음껏 조사하다 보니 지금은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만개한 수준이 되었다.

애초에 신재현이 현장을 맡겼다는 것부터가 그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절대 만만히 볼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들어가면 내가 다 볼 텐데.’

현장 조사만 따로 하는 것뿐이니 다 같은 조사단이다.

신재현이 안 왔다고 기뻐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다고 기업체의 오해를 바로잡아줄 생각은 없었다.

‘뭐, 반장님들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

신재현은 다른 반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여기만 해도 할 일이 많았다.

“그럼 먼저 요청 자료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재현은 마중 나온 대한공항공사 직원들에게 사무적으로 읊었다.

대한공항공사 직원들의 분위기는 회계법인 고송에 두 번째로 갔을 때와 비슷했다.

“네. 먼저 이쪽으로 오시죠. 사무실을 하나 마련해 놨습니다.”

마중 나온 것은 회계 관련 부서의 직원만이 아니었다.

임원들도 긴장한 얼굴로 신재현을 맞이했다.

이번에도 신재현 쪽을 따라 온 권새호는 새삼 조사단의 위상을 실감했다.

세무조사를 간다고 본부장급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여기는 사장만 안 나왔을 뿐이지 거의 모든 임원이 총출동한 상태였다.

그것은 최소한 신재현을 맞이하는 데는 임원이 다 나와야 할 정도로 중대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사단에 들어왔을 뿐인데 확 달라진 대우를 온몸으로 체감했다.

공기업 임원들이 원래 공무원들에게는 꼼짝 못한다지만 이렇게 총출동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임원들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면서, 권새호는 다른 기업으로 간 동료 직원들을 떠올렸다.

‘반장님들 간 쪽에도 이런 식이려나?’

솔직히 궁금했다.

신재현이 가지 않은 곳도 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

그렇다면 신재현뿐 아니라 조사단 자체가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도 얼른 한몫해야지.’

이제 막 들어간 신입이나 다름없다 보니 첫 대규모 조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한 건 터뜨려 보고 싶다는 의욕이 앞섰다.

그리고 그가 막 사무실로 들어설 무렵, 채유림 역시 자신이 맡은 조사 대상지로 입성했다.

바로 대한농어촌공사였다.

놀랍게도 여기는 사장이 직접 마중 나왔다.

“안녕하세요, 대한농어촌진흥공사의 사장 봉주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농어촌공사의 현장 조사 책임을 맡은 조사단 1반의 반장 채유림이라고 합니다.”

사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채유림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신재현 없이 이런 거물을 마주하며 현장 책임까지 맡은 것은 처음이라 그녀도 꽤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현장 조사는 신재현이 믿고 맡겨준 것일 뿐더러, 그녀 자신에게도 엄청난 경험이 될 터.

‘우리 팀장님이 어떻게 하셨더라?’

채유림은 국회의원 앞에서도 태연했던 신재현을 떠올리며 살풋 미소를 지었다.

윤기 있는 긴 생머리에 공무원답게 정갈한 바지 정장을 챙겨 입은 채유림이 은은한 미소를 띠자 긴장감이나 불안감 따위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쉽게 보면 안 될 것 같은 자신감과 당당함이 풍겨 나왔다.

사장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단장에 그 직원이라고 내가 직접 나와보길 잘했군.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일행에 신재현이 보이지 않길래 내심 안도했던 사장은 도로 긴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함께 마중 나온 임직원들에게 조용히 언질을 주었다.

‘잘 챙겨. 반장이라고 대충 대했다간 큰코다칠 거야.’

대한농어촌공사는 사장직을 응모로 결정한다.

사장 모집 공고를 올리면 지원자가 신청서를 넣는다.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후보자를 압축하면 주무부처인 농수산식품부에 올리고, 이후 농식품부에서 최종 후보를 결정해 청와대의 재가를 받는 식이다.

지금 사장인 봉주언은 전직 농촌진흥청장이었던 사람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사람 보는 눈치는 있었다.

그는 채유림의 당당한 태도에서부터 이미 이번 조사가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각오했다.

‘신재현이 없길래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네.’

사실 그는 운이 좋은 게 맞았다.

만약 신재현이 여기로 왔다면 사장의 머리 위를 보고는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서늘하게 웃었을 것이다.

사장의 머리 위에 있는 탈세액을 보지 못하는 채유림은 그의 신사적인 태도에, 어쩌면 자신이 맡은 농어촌공사가 깨끗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내가 제일 일 적은 거 아닐까? 그럼 얼른 하고 2반 일 도와줘야지. 2반 반장님은 반장 되고 나서 처음 책임지시는 대규모 프로젝트일 테니까.

채유림은 신이 나서 임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누군가 채유림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어! 채유림 씨!”

“네?”

아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긴 했지만 이건 아는 사람을 부르는 어투에 가까웠다.

채유림이 시선을 돌리자 어쩐지 낯이 익은 사람이 있었다.

채유림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가물가물한 기억 저편에서 한 남자를 떠올렸다.

“어! 그그…… 같이 학원 다녔던 분 맞죠!”

“네, 맞아요!”

반갑게 손을 흔든 남자는 바로 채유림과 함께 세무사 학원을 다녔던 사람이었다.

채유림은 세무사에 합격하고 난 후 바로 7급 공무원 시험을 봤기 때문에 쭉 세무사의 길을 걸은 사람들과는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남자는 그중 하나였다.

몇 년 전 함께 세무사 학원을 다녔고, 합격한 후에 연수도 함께 받았으며 그 후에는 세무법인으로 취직했다고 한 사람.

이제 와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좋은 곳으로 갔다고 동기방에서 자랑한 걸 본 기억이 난다.

조사관이 된 후에는 채유림이 일부러 동기방을 나왔기 때문에 소식을 몰랐는데, 대한농어촌공사의 회계 담당자로 취직한 모양이었다.

“우와, 여기서 다 만나네요. 잘 지내셨죠? 제 이름 기억나시려나? 저 김기훈입니다.”

“아……! 기훈 씨. 저는 보시다시피 잘 지냈습니다.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기훈 씨도 잘 지내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세무사도 합격 후엔 여러 가지 길이 있었다.

채유림처럼 세무직 공무원 시험을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세무사 업계에 있으면서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개업해서 본인의 사무실을 내든가, 대기업의 회계팀으로 가든가, 아니면 공기업으로 가든가.

그중에서 공기업은 꽤 좋은 선택지였다.

“채유림 씨가 책임자로 오시다니. 정말 잘됐습니다. 아니, 저희가 잘됐다는 게 아니라 유림 씨가 잘 지내셔서 기쁘다는 뜻이에요.”

저도 모르게 본심이 나온 김기훈이었다.

채유림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자 급히 덧붙였지만 분위기 자체는 꽤 누그러졌다.

다른 임원들도 뭔가를 기대하는 듯했다.

채유림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공사 구분을 못하는 것,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쉬울 것 같았는데 잘못하면 많이 귀찮아지겠는데?’

채유림의 분위기를 파악한 김기훈이 얼른 수습해 보려 했지만 문제는 주위의 임원들이었다.

식약처에 있다 온 사람, 농촌진흥청에 있다 온 사람, 농업대학교에서 교수직 하다 온 사람 등 나이 지긋한 임원들은 잘됐다며 박수를 치며 특유의 친근감을 발휘했다.

“허허,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려나 봅니다. 저희 농어촌공사 입장에서도 복입니다.”

“참 잘 어울리는 청년 아닙니까. 한 분은 능력 있는 국세청의 조사관 여성분이시고 한 분은 우리 공사에서 자랑하는 재무부 인재시고. 이게 바로 하늘이 이어주는 인연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농어촌공사가 오작교가 된다면 영광이죠!”

눈치 없는 어르신들의 원치 않는 덕담이 이어졌다.

채유림뿐 아니라 김기훈 입장에서도 난감하고 기분 나쁜 일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은 사장뿐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합시다. 바쁘신 분들 붙잡고 이 무슨 주책입니까. 자자, 어서 들어가십시다. 담당을 누가 하기로 했죠?”

김기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는 여기서 인사드리고 들어가겠습니다. 김기훈 씨가 잘 모시도록 하세요. 이사님들은 주책 떨지 마시고 잘 모시기만 해요.”

불안함에 신신당부를 했지만, 사장이 들어가자마자 임원들은 어떻게든 말을 붙여보려고 시동을 걸었다.

운을 떼려는 걸 보고 김기훈이 바로 말을 잘랐다.

“이사님, 조사관님들 멀리서 오신 분들입니다. 이렇게 오래 세워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제가 얼른 모시고 들어가겠습니다.”

임원진은 그걸 또 이상하게 꼬아서 받아들였다.

머리에 아예 필터가 장착되어 있는 듯했다.

“허허, 그래요. 이거 우리가 얼른 빠져줘야 하는데 눈치가 없었군요. 들어가 보세요.”

마지막까지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는 임원진을 보며 김기훈이 절망적인 얼굴을 했다.

그 입을 막아 버리고 싶었다.

임원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둘이 아는 사이라 다행이네! 친해지면 적당히 봐주겠구만. 인연이야, 인연.

물론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김기훈이 조사단을 자료실로 안내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지랖이 있는 분들이어서…… 본인들은 좋은 뜻으로 말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기분 나쁘셨을 텐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김기훈은 솔직히 이번 조사는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채유림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까 눈살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괜찮아요. 어르신들이 그럴 수도 있죠. 그런 말 들었다고 조사에 영향 갈 거면 조사단 그만둬야죠.”

안 될 걸 알긴 알지만, 그래도 김기훈은 내심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그래도 아는 사이고 같은 학원에서 힘든 수험생 생활을 보냈는데, 너무 깐깐하게 하진 않겠지.

“제가 저희 부단장님한테 배운 게 있거든요. 언제든 평정심을 갖고 상대가 누구든 공평하게 세법에 의거해 일하시는 모습이요. 부단장님께서 믿고 맡겨주신 현장인 만큼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갖고 돌아가려고요.”

김기훈은 그 말뜻을 즉시 알아들었다.

그리고 한탄했다.

‘아, 완전 망했네. 봐주기 없다는 거잖아.’

그렇다고 사적인 감정이 포함된 것 같지는 않았다.

따로 준비한 사무실에 도착해 업무를 나누기 시작한 채유림을 지켜보며 김기훈은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원 다닐 때랑 분위기가 확 다르긴 다르네. 공무원들 돈 못 번다고 해서 공기업 온 건데 저건 좀 부럽다.’

연봉으로 따지면 당연히 김기훈이 몇 배는 많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거기에 신재현과 함께 일하는 반장이라니.

“김기훈 세무사님. 성과급 지급 내역, 복리후생비, 일용직 목록부터 보겠습니다. 그다음으로 공사에서 취급하는 프로젝트 집행비랑 각 사업단 회계 보겠습니다.”

익숙하게 팀원을 지휘하고 자료를 요청하는 옛 학원 친구를 보며, 그는 처음으로 공무원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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