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32화 (432/500)

432화. 이게 조사단이다 (1)

조사단의 팀장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서울에 있는 조사단 본부 오피스텔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만 쓰이는 사무실이었다.

단장인 경제수석 임현승은 첫날 발족식 이후로 조사단에 얼굴을 보인 적이 없었고 부단장인 나와 지현석 검사, 그리고 회의 참석자인 팀장들은 전부 각각 소속된 기관이 다르다.

평소에는 각 기관에서 일하다가 전화로 회의가 어려운 때, 혹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들어가기 전에 회의가 필요할 때나 서울 종로의 사무실로 모이곤 했다.

이것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특별 취급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각 부서 관할을 넘어선 특별팀을 만들게 되면 그 팀을 설치한 기관에 사무실을 가지게 마련이다.

검경합동 수사팀이 검찰이나 경찰, 어느 한쪽에 세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조사단은 청와대 직속이면서도 절차상 검찰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다.

조사단의 핵심은 국세청이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데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중립성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물리적으로 아예 사무실 자체가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기관 외부에 따로 사무실을 가지는 건 중립성,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특검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본부 명목의 독립된 사무실은 필요했지만 솔직히 월세가 아까웠다.

평소엔 다들 자기 근무지에 가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한 해결책은 이거였다.

자주 사용하기.

일단 쓰면 덜 아깝지.

그리고 본부를 자주 쓴다는 말은 거대 규모의 조사를 또 하겠다는 뜻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오랜만에 뵙네요. 다들 잘 지내셨죠?”

한참 국회 조사 중일 때는 외압도 들어오고 난리여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회의실에 모였다.

그 후에는 주1회, 또는 격주로 만나며 과정만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야 탈세 금액 과세하면 끝이지만 아직 다른 기관은 끝나지 않은 곳도 많았다.

국회 건은 그나마 검찰에서도 마무리 단계라고 들었다.

지현석이 수집하고 정리한 증거와 서류를 공판 검사에게 넘기기만 하면 끝이라던가.

수사한 검사 본인이 법원 공판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길어지니 넘긴 것 같았다.

조사단은 국회 말고도 조사할 데가 많다.

“저희는 언제 불러주시나 이제나저제나 기다렸어요. 일거리 진작 마무리했거든요.”

고용노동부의 팀장이 의욕 넘치는 얼굴로 웃었다.

반대로 지현석은 해쓱해 보였다.

“시장 건 아직 진행 중인데 경찰 측하고 협력 중이라 이번 주 내로는 증거 정리될 것 같습니다.”

노동부 팀장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경찰 쪽 관계자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도 눈가가 퀭했다.

노동부 팀장이 어머,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리자 지현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각자 업무 범위랑 처리 시기가 다른 것뿐이니까. 오히려 조사단의 그 많은 사람들이 노는 게 문제죠. 저희가 정 쳐내기 힘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기관의 팀장들이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지만 나는 안다.

지현석은 평소에도 저런 표정이다.

접어 올린 소매와 느슨하게 맨 넥타이, 흘러내린 안경.

눈이 반쯤 감겨 있는 걸 보니 야근 좀 하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아직 더 일해도 된다.

셔츠를 보니 집에는 들어가고 있는 것 같거든.

정말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바빠서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거면 셔츠에서 벌써 티가 날 것이다.

그런 고로 나는 복사해 온 자료를 한 부씩 돌렸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종이를 보자마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결국 이걸 치시네요.”

“공기업? 한 번쯤 건드려 볼 만하죠.”

“이번에도 대규모로 터지겠네.”

“공기업 전부 치실 건가요? 아니면 엄선해서 몇 군데만?”

“청탁 관련 문제가 좀 있을 것 같은데.”

“노동부도 좀 바쁘겠네요. 공항 쪽은 관세청에서 잘 아시던가요?”

“네. 공항에 세관이랑 검색대가 있으니까요.”

이제는 지레 겁먹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익숙해졌는지 어딜 어떻게 조사할지 견적부터 내보고 있었다.

나는 배경 설명을 시작했다.

“한 회계법인에서 감사를 맡고 있는 거래처입니다. 회계법인은 저희 국세청에서 우선적으로 조사하면 되고…… 보니까 감사 맡아주고 있는 공기업에 채용 청탁한 정황도 좀 있더라고요. 이거는 검찰 쪽에서 봐주실 수 있습니까?”

“네. 같이 가시죠.”

“그리고 지금 리스트에 올라 있는 공기업 중에서 3군데는 장부에서 여러 이상한 점이 발견된 곳입니다. 일차적으로 이 세 곳을 조사하면 되겠습니다. 그다음에 이 회계법인에서 감사하고 있는 나머지 공기업들 조사 들어갈 겁니다.”

“부단장님! 공기업은 이 7군데만 조사하실 생각인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당연히 7개로 끝날 리가 없죠. 추가로 공기업 전체를 싹 훑어볼까 합니다. 2차 명단은 기재부 쪽에서 작성 가능하실까요?”

“네. 가능합니다만 조사 범위를 어디까지 잡으시겠습니까?”

공기업은 굉장히 좁은 의미의 단어였다.

나도 국세청에 들어와 보기 전에는 몰랐다.

도로공사나 국민연금공단처럼 공적인 업무를 하면 다 공기업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공적인 업무를 하는 곳’에 해당하는 것은 공공기관이었다.

공공기관이라는 큰 범위가 있고 그 안에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나뉜다.

공공기관의 의미도 공적인 업무를 해서 공공기관이라기보다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투자, 재정 지원한 곳을 공공기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았다.

정부가 출자했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소유권을 갖고 있거나 통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정부에서 투자하고 재정 지원을 할 정도면 공적인 성격이 강하니, 공적인 업무를 해서 공기업이라는 말도 굳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사기업이 파산했을 때 국가 입장에서 중요하다 싶으면 재정 지원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재정 지원을 했다고 무조건 공공기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결국 공공기관의 정의가 어떻게 되느냐.

기재부 장관이 지정하면 된다.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셋 다 기재부 장관이 지정하는 것이었다.

공적인 업무를 하면서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기관들, 그중에서도 직원이 50인 이상이면서 자체 수입 비율이 50%를 넘어서면 공기업, 넘지 못하면 준정부기관으로 지정했다.

예를 들어 한국조폐공사나 한국공항공사는 공기업이고, 근로복지공단이나 한국소비자원은 준정부기관이다.

마지막으로 공무적 성격은 조금 약하지만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곳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었다.

영화진흥위원회나 국방과학연구소, 한국지식재산연구원 등이 그랬다.

이들 공공기관도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무슨 법률을 근거로 설립하고, 시장형과 준시장형으로 나뉘는 등 세세한 명칭이 많은데,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공기업은 36개, 준정부기관은 96개, 기타공공기관은 218개나 된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도 어디를 먼저 손댈 것인가, 그걸 결정해야 한다.

“우선순위 말씀드리겠습니다. 순차적으로 갈 거예요.”

구성원이 100명이나 되는 만큼 방향을 확실히 잡아줘야 중구난방으로 중간에서 튀어나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내가 모든 단원을 직접 확인하고 업무를 체크할 수 없는 이상 내가 팀장들에게 확실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우선순위를 짚었다.

“회계법인과 그 거래처 중에서도 장부가 의심스러운 3개의 공기업이 최우선 조사 대상입니다. 그다음은 회계법인의 거래처 중 최우선에서 빠진 6개의 공기업. 그리고 전체 36개의 공기업 중에서 이미 조사한 9군데를 뺀 27개의 공기업입니다.”

팀장들은 각자 펜을 들고 받아 적었다.

“이렇게 하면 몇 달이 훌쩍 지나갈 겁니다. 그 후에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상황이요?”

팀장들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엿보였다.

아, 말을 오해할 만하게 했구나.

나는 서둘러 덧붙였다.

“아뇨. 해체나 그런 게 아니라. 그때는 대선이 가깝잖아요. 급하게 또 조사할 일이 생길 수도 있죠…….”

지현석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묻는 것이 두렵다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대선 후보?”

“오케이…….”

점점 불어나는 일에 암담한 표정을 하는 지현석을 뒤로하고 나는 접었던 손가락을 폈다.

“그래서 그 이후 일은 가봐야 알겠지만 만약 별다른 일이 없을 경우에는 준정부기관도 훑을 겁니다.”

“그다음엔 기타공공기관도 가실 거죠?”

“거기까지 가면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거예요. 그래도 욕심은 나네요. 왜냐면 업계 전수조사 한다 치면 그 업종, 업계에 속한 회사가 수만 개라서 조사가 불가능하잖아요. 근데 공공기관이면 다 합쳐봐야 500개가 안 되는데…….”

팀장들의 얼굴에 뜨악한 빛이 서리길래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크흠. 지금 당장 하자는 건 아닙니다. 만약 하더라도 시간 충분히 두고 할 거예요.”

안 하겠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은 예전부터 이런저런 소문이 많이 들렸다.

내가 국세청 들어오기 전부터 그랬다.

국회의원 채용 청탁 기사가 떴다 하면 거의 공공기관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처벌을 받은 걸 본 적도 없었다.

사장이나 임원도 은퇴한 고위 공무원에게 노후 대책 대신으로 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모든 공공기관이 개판이진 않겠지.

깨끗하게 잘 돌아가는 곳도 있을 것이다.

어느 업계든 마찬가지다.

잘하는 곳도 있고 탈세하는 곳도 있고.

문제가 하나 있다면 공기업 중에서 내 눈에 탈세액이 보이는 곳이 많다는 것이지만.

인간적으로 350개면 해볼 만하다.

“일단은 첫 목표인 공기업 3군데에 집중합시다. 조사 들어가도 국회 때처럼 급하게 시간 갈아가면서 할 필요까진 없습니다. 이제는 외압도 없을 테니까요.”

국회보다 더한 외압을 줄 곳이 있을까?

청와대?

새로 누군가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조사단을 함부로 해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해산하면 몰라도.

조사단이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털어 버릴 생각이다.

특히 평소에 일반 공무원이 손댈 수 없는 곳들을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게 목표였다.

“그럼 시작은 2주 후입니다. 조사 안내 통지서 보내둘 테니 조사 기획안은 일주일 시간 드리면 되겠죠? 다음 주 월요일에 확인하겠습니다. 그때 세부 업무 할당하도록 하죠.”

나는 팀장들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또 대규모 조사가 시작되겠네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앉아서 인사했는데 팀장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까 질겁한 표정을 짓던 건 역시 한꺼번에 내가 일을 몰아주는 대참사를 벌일까 걱정돼서였나 보다.

하긴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성과금 팍팍 주지도 못하는데 사람만 갈아 넣으면 못 버티지.

나도 무작정 몰아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일 분배만 잘 한다면, 나중에 공공기관 전수조사를 해도 된다는 뜻이군.

나와 지현석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후 일어서서 마주 인사했다.

정중하게 깊이 고개를 숙인 팀장들을 향해서였다.

국회, 시장 이후로 조사단이 다시 실시간 랭킹에 오를 시간이었다.

***

이 주일 후, 단둘이 찾았던 회계법인 고송의 빌딩 앞에 이번에는 국세청 소속의 관용차 여럿이 멈춰 섰다.

개중에는 빌딩과 어울리지 않는 트럭도 한 대 껴 있었다.

좀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1톤짜리 트럭이었는데 운전대를 잡은 것은 권새호였다.

원래라면 2반 소속인 데다 조사단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그는 사무실 대기 인원이었다.

그런데 1종 보통 운전면허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냅다 손을 들었다.

평소 세무서에 있을 때는 납세자와 충돌하는 것이 싫어서 현장 조사를 기피하곤 했다.

때문에 웬만하면 납세자와 세무대리인을 세무서로 부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꼭 현장에 나가고 싶었다.

같은 세법을 기반으로 두고 있으니 다른 과와 조사 내용은 다를 게 없겠지만, 조사단의 현장 조사다.

궁금해서 잠도 설쳤다.

‘기대하면 실망하는 법인데.’

권새호는 빌딩 앞에 깔끔하게 주차한 후에 얼른 내려서 신재현의 뒤를 따랐다.

함께 온 조사관들이 다들 차를 세우는 동안, 신재현은 건물 앞에 서서 막판 점검을 하고 있었다.

“다른 건 가져오시면 안 됩니다. 공기업 3군데, 그리고 회계법인 자료. 아시죠?”

“네!”

역시나 조사단의 현장 풍경은 특이했다.

무엇보다 검찰, 경찰, 그리고 노동부 같은 다른 기관이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 생소했다.

한쪽에는 그야말로 온몸에서 칼날 같은 분위기를 풍겨내는 정장 차림의 남녀가 열을 맞춰 지현석 검사의 지휘를 받고 서 있었고, 그 옆에는 편한 차림의 남자들이 있었다.

딱 봐도 경찰이다.

또 그 옆에는 사무실에서만 근무할 것 같은 캐주얼 정장의 남녀가 늘어서 있다.

도저히 한 군데에 모일 만한 면면이 아니어서 권새호는 연신 눈동자를 굴렸다.

30명에 달하는 인원이 흐트러짐 없이 팀장의 명령을 따라 대기하는 것도 신기했고, 일사불란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입을 벌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권새호는 한눈을 팔다가 그만 앞사람에게 부딪히고 말았다.

저번에 신재현과 둘이 왔을 때 문전박대 당할 뻔했던 바로 그 로비였다.

‘드라마 보면 꼭 이런 데서 부딪히던데. 이렇게 많이 오면 어떡하냐, 영업 방해다 이런 소리 하려나.’

세무서 조사과에 있을 때도 그랬다.

세무조사 자체가 경영에 방해된다며 따지는 사람도 몇 있었다.

민원, 아니면 소송이라도 들어올까 걱정하느라 스트레스에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했다.

로비에 선 조사단의 직원들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마치 석상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람은 많은 수가 모이면 그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준다.

거기다 지금 근엄한 얼굴로 수십 명이 몰려와 있으니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권새호조차도 숙연한 기분이 되었다.

낯익은 얼굴의 경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 손끝이 달달 떨리는 것까지 보였다.

그리고 채 3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오셨습니까!”

엘리베이터를 탈 겨를도 없었나 보다.

비상구 문이 열리고 계단 너머로 우당탕 소리와 함께 10명은 넘어 보이는 회계사들이 달려왔다.

선두에 선 고송철은 휘청이는 걸음으로 신재현 앞으로 다가왔다.

전에 왔을 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회의실에서 봤던 익숙한 얼굴의 회계사들이 주춤거리며 얼굴을 푸들거리는 것을 보고, 권새호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이게 진짜 조사단의 모습이구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