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30화 (430/500)

430화. 기선제압에는 기선제압 (1)

조사단은 재정비를 마쳤다.

법령해석과의 과장은 선뜻 사람을 내주었다.

바로 권새호다.

나는 그가 순수하게 박원형의 승진을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그런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다.

형제가 잘된다고 배 아파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슬프게도 요즘 현실이다.

그는 생판 남인데도 박원형을 안타까워했고, 지금 그보다 더 출세한 거나 다름없는데도 순수하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걸 보는 순간 욕심이 났다.

바로 민치호에게 부탁해서 권새호에 대한 이력 사항을 받아보았다.

권새호 역시 괜히 본청에 앉아 있는 건 아니었다.

연수원 성적은 상위권이었고 세무서에서는 바로 조사과로 들어갔다.

민치호의 첨부된 평가에 의하면 이랬다.

-너처럼 임기응변이 빠르거나 머리가 확확 돌아가는 건 아닌데 우직하게 일을 잘하나 봐. 그래서 당시 조사과장이 탐냈다고 하네. 일머리 자체는 그럭저럭 있어. 딱 본청에서 많이 보이는 유형의 인물이야.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력사항에서 나왔다.

-영덕 세무서의 부가소득팀 지역 유착 사건 때 팀에서 유일하게 유착에 가담하지 않음. 그 건으로 수도권 세무서로 전출됨.

내가 공무원이 되기 전의 일이라 잘 모르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이것도 따로 조사해 봤다.

전국구 신문에는 아주 짤막하게 실려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이선균에게 전화하니 바로 설명해 주었다.

-정확히는 카드깡을 한 사건입니다. 한 6년 됐나? 회식은 하지도 않으면서 아는 식당에 가서 업무 집행비로 카드를 긁고 그 돈을 서로 나눠 가진 거죠. 당시 부가소득팀은 4명밖에 안 됐거든요. 계기는 간단합니다. 보통 큰 건 끝나면 회식하러 가잖아요? 지방은 큰 건이래 봤자 별게 없어요. 그리고 멀리까지 발령 나와 있고 하니까 가족은 안 따라가는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평소에도 일 끝나면 팀원들끼리 자주 모여서 밥 먹고 술 먹고그래요. 집에 가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먹기 심심하니까. 근데 또 지방에는 식당도 많지가 않아요. 그렇게 모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어차피 매일 만나서 밥 먹는데 굳이 회식까지 해야 하나? 그냥 이거 우리 회식했다고 하고 갈라먹으면 될 것 같은데’. 그때 변명한 걸 봤는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어차피 우리가 회식해서 쓸 돈이었는데 밥 안 먹고 나눠 가진 것뿐이다. 이게 왜 불법이냐.

이선균의 설명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저런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다르다.

실제로 밥을 사 먹지도 않았으면서 회식대를 빼돌려놓고 그게 왜 불법이 아니냐고?

어차피 회식했으면 자기들에게 들어갔을 돈이니 가져가도 상관없다고?

공무원이라고 다들 똑똑하고 착한 건 아니라지만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해할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권새호도 같은 팀이었는데 유일하게 참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왜 그가 뻔히 아는데도 카드깡을 했는가?

권새호가 조용히 입 다물고 넘어갈 거라 생각한 건가?

그렇게 멍청했다고?

이선균은 그 이유도 설명해 줬다.

-회식대 빼돌리는 것까진 좋았는데 나중에 권새호 조사관이 윗선에 알릴까 봐 걱정해서 음료수를 사 줬답니다. 빼돌린 돈으로 음료수를 사 줬대요. 그러고 나서 그 돈으로 산 거라고 알려주고, 너도 이제 공범이니 같이 잡혀 들어가는 거다, 했대요.

나는 바로 이해를 포기했다.

그냥 세상에 이런 놈들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게 마음 편하다.

권새호는 당시 공무원으로 근무한지 몇 년 안 된 상태라 처음에는 말리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다 못 견뎌서 위에 알린 것이고.

그렇게 팀 하나가 해체된 뒤 그를 눈여겨본 윗선에서 수도권 세무서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러다 본청까지 오게 된 것이고.

이제 내 눈에 띄어서 조사단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중간에 합류하는 것이다 보니 조금 어색하고 긴장한 태도로 자기소개를 했다.

법령해석과의 분위기를 슬쩍 보고 온 박원형의 말로는 최서웅이 부러움에 불타서 미칠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야 애초부터 생각도 안 했다.

머지않아 내 기억 속에서 이름도 지워 버릴 거다.

문제는 김선희인데.

-질투라기보다 승부욕인 것 같았어요. 권새호 조사관님 배웅하면서 ‘곧 따라갈 테니까 의자 데워놓고 계세요.’ 이러던데요.

김선희도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을 만큼.

조사단의 2반 빈자리는 권새호로 채운 후, 가장 중요한 2반 반장의 자리는 채유림의 추천을 받았다.

나도 생각은 해두었지만 함께 일해본 반장이 가장 잘 알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채유림이 추천한 사람은 2반의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였다.

인천청의 조사국에서 근무하다 온 사람인데 공인중개사 하다가 늦깎이로 공무원 공부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부동산 관련 실무는 기가 막히게 꿰뚫고 있었다.

현장에서 어떤 식으로 다운 계약서를 쓰는지도 술술 말하는 경험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봐도 적임이었다.

비었던 반장 자리도 찼겠다, 인원도 보충했겠다.

조사단은 이제 본격적으로 조사 준비에 착수했다.

미리 말했던 대로 회계법인 고송 그 자체와 그 법인이 감사를 맡았던 회사들을 쭉 리스트업했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척척 밑 자료가 갖춰졌다.

조사단 쪽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서 다음 차례는 선봉을 보내는 것이었다.

선봉장은 당연히 나다.

이제는 나 자신을 활용하는 방법도 깨우치는 중이었다.

내가 가는 경우와 빠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찔리는 회사는 조사단과 나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두려움은 동요를 만들고 그렇게 생긴 틈에서는 말실수가 나온다.

“같이 가실 분?”

“저요! 저 현장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한번도 조사단의 현장을 겪어보지 않은 권새호가 가장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다른 팀원들은 웃으면서 양보해 주었다.

“팀장님이랑 같이 나가면 재밌긴 하죠. 이번에 처음 들어오셨으니까 분위기도 익힐 겸, 팀장님이 어떤 분인지 파악도 할 겸, 권 조사관님이 다녀오세요. 앞으로 손발도 맞춰야 하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 동행으로 권새호가 결정되었다.

운영지원과에서 본청의 관용차를 빌리자 권새호가 냅다 운전대를 잡았다.

세종에서 서울까지 권새호는 들뜬 모습이었다.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생방송으로는 몇 번 봤는데 매번 궁금했거든요. 저기 가 있으면 무슨 기분일지.”

“영광씩이나…… 그렇게 특출 난 뭔가가 있지는 않아요. 조사관님도 현장 조사 몇 번 가보셨잖아요. 그거랑 별다를 건 없습니다.”

“상대가 다르죠.”

“아, 그건 그래요.”

그것 외에도 우리가 조금 변칙적으로 움직이긴 한다.

미리 가서 사전 답사를 한다든가, 정보를 얻기 위해 주변을 조사한다든가.

상대가 일반적이지 않으니 조사단도 자연히 대응이 바뀌었다.

모르긴 몰라도 조사단원들이 이 경험을 갖고 각 국으로 흩어지면 일선에서 좀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

그거야 뭐 지금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혼란이라고 믿으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회계법인이었다.

나는 개인 세무사 사무실만 알지 법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세무법인은 현장 조사할 겸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내가 가본 곳은 법인이라고 해서 그렇게 크진 않았다.

빌딩의 한 층을 빌려서 대표 세무사들이 있는 개인 방, 응접실, 그리고 중앙의 뻥 뚫린 직원들 사무공간이 있는 식이었다.

그런데 내가 찾아간 회계법인 고송은 좀 달랐다.

4층짜리 빌딩 한 채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자연히 로비에는 경비가 상주하고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경비에게 제지당했다.

“약속하고 오셨습니까?”

“네.”

경비원은 방문자 명부를 들여다보더니 곤란한 얼굴을 했다.

“저, 죄송합니다. 오늘 날짜가 맞으신지요? 예약 출입자 명단에 없습니다만…….”

의기양양하게 들떠서 따라온 권새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재차 확인해보라고 요청했다.

아하, 이렇게 나오시겠다.

내게 기선 제압을 하고 싶다는 건가 본데.

이상한 일이다.

나한테 기선 제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모르나?

자고로 협상이든 기선 제압이든 유리한 고지를 잡아야 할 때나 필요한 것이다.

대충 어떤 생각인지는 이해가 간다.

내가 자신들을 타깃으로 잡을까 봐 그런 거겠지.

내가 궁금한 건 이거다.

내가 그런다고 주눅 들어서 조사를 안 할 사람으로 보였나?

내가 피식 웃고만 있자 권새호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조사단이 현장에서 여러 가지 예외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는 일이 많다지만, 권새호 입장에서는 조사단 첫 현장인데 처음부터 너무 난감한 상황인가?

더 있다간 경비나 권새호 둘 다 괴롭히는 꼴이 될 것 같아서 나는 한 발짝 나섰다.

“고송철 파트너님께 전화 한번 넣어보세요.”

어차피 내가 털면 다 나오는데 이 정도는 귀엽게 보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경비는 고송철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더니 사색이 되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리라고…… 아, 예. 예…… 알겠습니다.”

경비는 전화를 끊고는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았다.

“저, 부단장님…….”

“네. 자리에 없다고 하던가요?”

“그게, 긴급 회의 중이랍니다…….”

경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랑 기 싸움 하겠답시고 이렇게 뻔히 보이는 수를 쓰는 고송철이 문제지.

경비에게 화내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다.

내 직위를 앞세워서 억지로 뚫으려면 뚫을 수야 있겠지.

아마 고송철은 그걸 원한 것 아닐까 싶었다.

조사단 부단장이 직위를 이용해서 갑질했다, 뉴스에 보내기 딱 좋으니까.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술수를 쓴 사람은 다들 나한테 한 대씩 맞았다.

세금 고지서라는 이름의 국가적 폭력 말이다.

나는 나직하게 경비를 불렀다.

“선생님.”

“넵.”

공무원은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그러나 경비는 무언가 각오를 한 얼굴로 바짝 긴장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자, 먼저 오늘 약속했다는 증거를 보여 드릴게요. 여기 보시면 이 회계법인의 대표 회계사 고송철 씨와 문자한 내용이 있지요?”

이럴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약속 내용을 확인하는 건 내 습관이었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방문하겠습니다’라는 내 확인 문자에 그의 대답이 분명히 쓰여 있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문자를 확인한 경비가 난감해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께 뭐라 하는 게 아니에요. 위에서 실수한 거잖습니까. 다만 선생님, 위에서 절 돌려보내라고 지시가 온 건 아니죠? 좀 기다리라고 시킨 거잖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러면 제가 정당한 약속을 하고 온 건 확인하셨을 거고, 들어가도 문제는 없는 거잖아요?”

“어…….”

“제가 밖에서 서서 기다리면 오고가는 사람들이 다 볼 텐데. 그게 더 난감하지 않으실까요? 일단 윗층으로 가서 회의실이나 복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건 괜찮지 않겠어요?”

경비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민했다.

분명히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내 말을 반박할 마땅한 변명도 없는 것이다.

거기다 내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밖에서 기다리면 지나다니는 행인이나 이 회계법인에 볼일이 있어서 온 손님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나만 보면 ‘조사하러 왔나 보다’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로 인해 이상한 소문이 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경비는 얼결에 대답했다.

“긴급회의 들어가신 건 진짜일 겁니다. 제가 직원분한테 연락해 놓을 테니까 안내받으시면 될 겁니다. 빈 응접실이 있을 테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경비는 순순히 입구를 통과시켜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고 최상층을 누르자 권새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굉장히 부드럽게 통과했네요. 저는 싸우실 줄 알았습니다.”

기자회견이나 뉴스에서 보이는 내 모습 때문인가?

이미지가 싸움닭으로 박혀 있었다.

“넘어갈 때가 있고 싸워야 할 때가 있으니까요. 무작정 싸우면 당장 고소 들어올걸요? 이제 조사단은 명분도 걱정해야 하거든요.”

“아, 네…….”

“대신에 싸워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망설이지 마세요. 권 조사관님도 이제 조사단 식구니까 어디서 지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요. 차라리 일단 들이받고 제가 사과하러 가는 게 낫죠.”

“……네?”

권새호가 뜨악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사이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어디가 회의실일까,”

나는 직원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눈에 보이는 모든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어떤 문을 열자 너른 창가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가 놀란 얼굴로 날 보며 소리쳤고, 어떤 방에서는 직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뻐끔거렸다.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문을 열어가다 보니 회의실이라고 쓰여 있는 문을 발견했다.

나는 한 차례 노크한 후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덜컥.

10명쯤 되는 남녀가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상석에는 내가 찾는 사람이 떡하니 앉아 있었다.

“헉, 신재현이야.”

“뭐야, 왜 왔어?”

“세무조사하러 왔나?”

회의 참석자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나는 상석의 파트너 회계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권새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여 주었다.

“지금이 바로 싸울 때입니다.”

이어서 아주 반갑게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 계셨네요, 고송철 회계사님! 저랑 한 약속까지 깨시고 회의할 정도면 회사가 휘청할 정도의 위기인가 봅니다.”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저 엿 먹이려고 일부러 회의 여신 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그럼 저를 얕보고 그러신 거네요?”

고송철은 금세 평정심을 회복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날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느닷없이 시비를 거시는 걸로 보입니다만.”

“시비는 회계사님이 먼저 거셨죠. 제가 어리니까 만만해 보입니까? 기선제압하는 것도 파악 못 할 정도로 어수룩해 보였어요?”

회계사가 말없이 끙끙대는 가운데 나는 의자를 당겨 그의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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