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화. 모두가 행복한 긴급회의
오랜만에 국세청 본청에서 국장 회의가 열렸다.
본래 업무상 회의 자체는 자주 열리긴 하는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예고 없이 청장의 일방적인 소집 통보가 하달되어 왔다.
슬프게도 징세법무국에는 국장 자리가 비어 있었다.
며칠 전 법령해석과 사무실에서 한바탕 실랑이가 있었던 후에 국장은 신재현을 졸졸 따라 나갔다.
그 후로 국장을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세청 안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을 리도 없으니 청장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과장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궁금해 미치겠네.’
과장이 결재를 받을 겸 궁금해서 국장실을 찾았지만 자리는 비어 있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징세법무국 소속의 다른 과, 그러니까 징세과나 법무과, 세정홍보과까지 돌았다.
빈손으로 가긴 뭐해서 캔커피를 사들고.
그런데 거기 과장이나 직원들도 국장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뭐야. 버뮤다 삼각지대야? 뜬금없이 웬 실종사건이야?’
신재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을 텐데.
조사단에 가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어쩐지 꺼려졌다.
국장이 그렇게 가고 난 후부터 신재현이 같은 공무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뭔가 자신도 들어갔다가 실종되는 것 아닐까 하는 막연한 거리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건 당연히 안다.
그래도 막연하게 하기 싫을 때가 있지 않은가.
과장이 지금 딱 그랬다.
‘박원형 조사관 안 오나? 볼일 있어서 온 것 같던데.’
볼일 있는 게 아니었으면 층도 다른 조사단 직원이 왜 아무 상관없는 법령해석과까지 왔겠는가.
그날은 분위기 때문인지 또 그냥 돌아갔지만, 그 후에 한 번쯤 오지 않을까 싶었다.
오면 국장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이상하게 박원형이 찾아오질 않았다.
사실 박원형은 사무실 자체가 아니라 법령해석과 직원들에게 볼일이 있던 것이었기 때문에 식당에서 우연인 척하고 따로 만났다는 걸 모르는 과장은 이제나저제나 박원형이 사무실에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국장급 회의가 열렸다.
국장이 두문불출 실종 상태니, 대리로 누군가가 나가야 한다.
당연히 징세법무국 소속 4명의 과장이 머리를 맞댔다.
그중 뽑힌 이가 법령해석과의 과장이었다.
그보다 쟁쟁한 징세과나 법무과가 있는데 왜 하필 법령해석과장이 뽑혔는가 하면, 국장이 가장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법령해석과였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국장의 말 없는 잠수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번 국장 회의에서 최우선적으로 알아봐야 할 것이 바로 국장의 거취 문제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국장님 사건을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이 법령해석과 과장님이시잖아요. 자초지종을 아는 분이 가셔야 할 것 같은데.’
‘저도 지금 급한 건 있어서요. 법령해석과장님이 다녀오세요.’
그렇게 등을 떠밀린 법령해석과장이 회의실에 도착했다.
국장 회의라면 참석자는 당연히 국장 이상이다.
과장 자신보다 높은 사람들이 참석할 테니 당연히 그들보다 일찍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슬프게도 다른 과장들과 의논을 하다 그만 늦고 말았다.
과장이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반 정도의 자리가 찬 후였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지 시간은 아직 좀 남았지만 과장은 일단 고개부터 숙였다.
“괜찮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신데 징세법무국장 대신 오셨나?”
국장은 과장을 모르더라도 과장은 국장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온화한 인상의 자산과세국장이 부드럽게 다독였다.
일할 때는 칼 같지만 직원들에게는 따뜻하게 잘 해준다고 명성이 자자한 자산과세국의 허송미 국장이었다.
과장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잔뜩 몸을 낮췄다.
“예. 국장님께서 부재중이셔서 부득이하게 제가 왔습니다.”
“그렇구만. 아무데나 앉아도 되는데 잘 모르겠으면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감사합니다, 국장님.”
허송미가 신경을 써줬다.
과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허송미의 옆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장들이 과장에게 ‘거기 국장님은 어디 가셨나요?’라고 묻지 않았다.
이미 사정을 아는 것처럼.
심상치 않음을 느낀 과장이 조용히 기다리자 속속들이 회의실 문이 열리고 국장들이 들어왔다.
개중에는 신재현도 있었다.
‘팀장이 국장 회의에 들어온다고?’
과장은 대리로 참석했다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신재현은 끼어들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여기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익숙한 몸짓으로 신재현과 인사를 나눴다.
옆에 있는 허송미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와요. 내 옆에 앉으실 건가?”
허송미 왼쪽에는 과장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남은 자리는 오른쪽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은 청장에 좀 더 가까운 자리라서, 어찌 보면 상석이나 다름없었다.
자리를 훑은 신재현은 정중히 거절했다.
“제가 거기 앉으면 안 될 것 같네요. 저는 여기로 하겠습니다.”
신재현이 손을 뻗은 것은 과장의 왼쪽 자리였다.
과장의 온몸에 긴장이 흘렀다.
‘왜 내 옆자리야?’
뻣뻣하게 굳은 과장을 사이에 두고 신재현과 다른 국장들이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두 번 만난 게 아닌지 사적인 잡담도 간간이 끼어 있었다.
“이번은 정기 회의가 아닌데, 혹시 신 팀장님 때문은 아니죠?”
“에이, 아닙니다. 제가 매일 사고만 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어차피 잠시 후면 알게 될 텐데. 지금 실토하는 게 나을걸요.”
“어…….”
이제껏 당당한 태도였던 신재현이 그 말에 움찔했다.
“어, 뭐야! 정말 사고 쳐서 긴급회의 잡힌 거예요?”
“아뇨, 솔직히 뭐 때문에 회의 잡힌 건지는 모르겠는데 좀 뜨끔한 게 있네요…….”
그 말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하던 허송미 국장이 실없이 웃었다.
“뭔가 하긴 했나 보네. 신 팀장 온 이후로 정말 잠잠할 날이 없네요. 청장님 골치깨나 썩이시겠는데?”
말만 들어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을 만든다며 경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투는 꽤 장난스러웠다.
실제로 다른 국장들도 허허 웃으며 신재현을 타박했다.
“청장님이 가만히 노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거라니까요.”
“우리 청장님 맨날 발등에 불 떨어지시네. 아침에 침대에서 눈 뜨면 출근하기 싫어지시는 거 아닐까요? 지난밤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심장이 떨려서 청사에 못나오는 거지.”
“크흠, 긴급회의가 소집되면 이유의 90% 이상은 한 사람의 활약 때문이죠. 그러니까 청장님 오시기 전에 이실직고합시다. 어제는 뭐 했습니까? 알리바이 조사예요.”
“아, 좋네. 어제 어디서 뭐 했어요?”
국장들이 한마디씩 거들자 신재현은 맥이 풀린 얼굴로 대답했다.
“야근했습니다. CCTV랑 퇴근 기록도 있다니까요?”
“누군가를 조사했다는 뜻이군요. 이번엔 누구지? 누구길래 긴급회의야?”
“아, 아닙니다. 국장님, 요즘에는 누구 치기 전에 미리 청장님께 말씀드리기로 약속까지 했어요.”
“그 청장님이 약속까지 받아내셨다고요? 현명하시군.”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국장들의 소소한 모습에 과장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다른 국장들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긴 하지만 간혹 만날 때는 행사나 타 과와 업무 협력이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으므로, 그가 아는 국장은 다들 엄격하고 근엄한 모습이 다였다.
“다들 신나 보이십니다. 이젠 긴급회의 정도에는 눈도 깜짝 안 한다 이거지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오낙현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다들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와중에 허송미가 은근슬쩍 받아쳤다.
“그야 단련이 되었으니까요. 이제 웬만한 건 익숙합니다.”
원래라면 긴급회의는 정말 긴급할 때만 걸리는 비상 소집령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신재현이 온 후에는 거의 2주에 1번은 꼬박꼬박 긴급회의가 걸렸다.
특히 국회의원 조사 때는 더했다.
때로는 몇몇 국회의원이 국세청에 전화 폭탄을 해대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 하루에도 2번씩 긴급회의가 잡힐 때도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신재현은 바빠서 참석하지 않은 적이 많았다.
그 사태를 겪은 국장들은 신재현이 있는 국세청에 다른 의미로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신재현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아무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기도 했고.
때문에 신재현이 이 모든 고생을 알게 된 것은 모든 일이 끝난 후의 일이었다.
국장들과 사이가 좋아진 것도 그 후의 일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함께 고난을 헤쳐 나왔다는 전우애 비슷한 것이 생겨나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신 팀장은 일단 다른 국장님의 시간을 뺏은 것에 대해 인사 한 번 하고 앉으십시오.”
청장이 히죽 웃으며 자리에 앉자 신재현을 뺀 모든 국장들이 따라 앉으며 헛기침을 했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오늘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자, 얼른 이실직고하고 시작합시다.”
신재현이 머쓱하게 웃더니 거의 직각에 가깝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제가 국장님의 귀한 시간을 좀 뺏겠습니다. 미리 감사 인사 드리겠습니다.”
“회의할 때마다 신 팀장한테 인사 받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예요.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웃으면서 농담을 나누는 신재현을 보며 법령해석과의 과장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라면 감히 이렇게 말하지 못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과 더불어 부럽다는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자신에게 국장은 딱딱하고 어려운 사람이었다.
저렇게 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럼 가장 궁금할 사항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징세법무국 국장님은 대기발령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아마 곧 어딘가의 세무서장으로 가실 거예요.”
대리로 참석한 과장은 억 소리가 날 뻔했다.
국장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동요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청장의 말뜻은 간단했다.
징세법무국 국장은 두 번 다시 주류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쓰레기긴 했는데 국장을 이렇게 간단히 쳐낸다고?’
조직이란 자신의 허물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위공무원이 어떤 실수를 하면 위에서 덮어주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 회의의 분위기는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공무원이라는 조직과는 사뭇 달랐다.
다들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들과 같은 국장의 비보인데,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 국세청의 모습인가?’
때마침 창가로 드리운 햇살이 테이블 위에 환하게 드리웠다.
그 모습이 과장에게는 한 폭의 사진처럼 보였다.
사람이 모이다 보면 실수도 나오게 마련이고 이상한 놈도 생긴다.
그걸 허심탄회하게 인정하고 쇄신할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투명하고 깨끗한, 그야말로 자신이 그리던 이상적인 국세청이 아닌가.
“……장님. 과장님?”
“예? 네, 넵!”
넋을 놓고 있었나 보다.
청장이 그를 부르는 가운데 국장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청장이 말하는 와중에 한눈을 팔다니 큰일 날 짓이었지만 국장들은 웃기만 했다.
“과장님이 긴장했잖아요. 이게 다 신 팀장님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때문에 모인 거니까 제 탓이 맞죠.”
오른쪽에서 허송미가 부드럽게 말하고 왼쪽에서는 신재현이 받아쳤다.
과장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청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청장은 조금 못마땅해 보였지만 크게 문제삼지는 않았다.
“법령해석과의 과장님이라고 했던가요? 이 자리에 대표로 나오셨으니 당분간 징세법무국장 대리를 맡기겠습니다. 웬만한 일은 각 과 선에서 처리가 될 거고, 반드시 국장 이상의 결재가 필요한 안건은 제게 가져오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길어도 한 달이면 될 겁니다. 지금 계획은 세무서장님들 중에서 괜찮은 분을 국장으로 모셔올까 합니다. 능력 있으면서 서장으로 유유자적하는 건 가만둘 수 없지.”
그나마 대리 생활이 짧다는 건 다행이었다.
“징세법무국장이 어째서 대기발령 됐는지는 다들 알고 계시죠? 제가 있는 국세청은 예전과 다를 겁니다. 주목도 많이 받고 있는 만큼, 허튼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봐주지 않을 겁니다. 내 임기 동안 국세청은 쇄신과 개혁을 거듭할 거예요.”
자꾸만 국세청 내부에서도 못 참고 삐끗한 놈을 쳐내는 신재현 때문에 반은 등을 떠밀린 거나 다름없었지만, 청장은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차피 재주를 넘는 건 신재현이니 생색이라도 부려보겠다는 것이다.
신재현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전 청장이 체납징세과를 신설해서 체납세액을 거두어들였듯 그도 뭔가 임기 내에 업적을 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전폭적으로 지지해 준다면 신재현으로서도 실리를 챙기는 일이 된다.
“그럼 징세법무국은 과장님이 고생을 좀 해주시고. 신 팀장이 조만간 또 어디 하나 치려고 준비 중이에요. 인터뷰 요청이나 기자들 연락 오면 당분간 모르는 척해 주세요. 그러면 어차피 기자들은 여느 때처럼 신 팀장 일인가 보다, 하고 적당히 포기할 겁니다. 신 팀장이 사건 끝나고 기삿거리 주는 건 다들 아니까.”
국장들이 잠시 각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다음 안건이 좀 중요한데, 청와대에서 이번 달 내로 국세청에 방문한다고 하십니다. 요즘 국세청의 활약에 인상 깊으셔서 격려차 방문하신다니 각자 마음의 준비는 해 놓으세요.”
국장들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진지해졌다.
청장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지나갔지만 사실 오늘 전달사항 중에 이게 가장 중요했다.
대통령의 방문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깐, 신 팀장. 대통령님 오실 때 청사에 있을 거지?”
“그때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사 한 건 들어가면 언제 현장 나갈지 모르잖습니까.”
“거참. 빈말이라도 앞장서서 맞이하겠다고 해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솔직하게 말해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일단 알겠어. 일정 나중에 전달할 테니 있을 거면 꼭 행사 참가라도 해줘.”
“넵.”
중요한 안건이 일단락되어 가자 신재현이 번쩍 손을 들었다.
청장이 눈가를 찌푸렸다.
“또 뭐야. 뭐 해주면 돼?”
“저, 청장님이 아니라 여기 법령해석과 과장님께 부탁이 있는데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숨도 조용히 쉬고 있던 과장이 불에 덴 듯 놀랐다.
“저요?”
“네.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법령해석과의 직원 하나가 너무 탐이 납니다. 조사단에 주실 수 없겠습니까.”
조사단의 반장이 나가면서 체계에 약간 조정이 있었다고는 들었다.
그래도 어느 과든 항상 사람이 부족한 법인데 사람을 달라니.
과장은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청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청장이 신재현을 타박했다.
“그래. 남의 사람 막 빼가 면 안 되는 거야. 뭐라도 해주고 데려가야지. 자, 과장님. 조사단에 뭐 시키고 싶은 거 없어요?”
“예에?”
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조사단에 뭘 시킨단 말인가.
이런 결정은 과장에게 너무 어려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회의에 안 나간다고 할 걸, 과장이 후회하는데 허송미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럼 국세청 기본통칙 제정 준비를 신 팀장님이 도와주시는 건 어떨까요?”
국세청에는 세법을 기반으로 어떤 식으로 일을 한다는 내부 지침이 따로 있었다.
세법만으로는 수많은 예외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국세청의 내부에서만 보는 기본통칙과 세법집행기준이었는데, 매년 바뀌는 세법에 맞추어 개정하고 정리하는 것이 바로 징세법무국이었다.
“법무국장님 안 계시니 새로 오신 법무국장님 지휘하에 해야 하는데, 오자마자 맡기면 신임 국장님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검토와 결재는 신임 국장님이 내리신다 하더라도 자료 준비는 직원들이 해야 하는 거죠? 그걸 팀장님이 도와주시면 어때요? 세법에 맞춰 기존 통칙 손보는 거니까 여러 경험과 사례를 쌓으신 팀장님이면 실무적 관점으로 잘 봐주실 것 같은데.”
법령해석과 과장의 눈이 뜨였다.
그는 말은 안 했어도 굉장히 솔깃한 것 같았다.
청장이 웃으며 물었다.
“그걸로 괜찮겠어요? 과장님이 지금은 국장 대리니까 한번 말해보세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좋다고 하네. 신 팀장, 이 정도는 해줘야지?”
신재현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해보겠습니다.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일단 기획된 조사 업무부터 착수하고, 간간이 들르겠습니다. 일정 있으시면 보내주세요. 제가 최대한 맞추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과장이 신재현의 손을 붙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일이 늘어난 신재현을 빼고는 모두 행복한 결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