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외나무다리 (3)
‘저놈이 조사단에 들어갔다고?’
국장은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신재현이라는 사람이 헛소리를 할 인사는 아니지 않은가.
신재현이 눈을 부릅뜨며 대답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국장은 쉽사리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박원형이 조사단에 들어갔다는 게 사실이라면 쉽게 끝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국장은 일단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오씨, 정말 뭣도 아닌 놈이 어디서 눈에 좀 띄었나 보구만. 무슨 조사단은 저런 놈까지 데려다 놨어? 진짜 전국 세무 공무원을 싹 훑었나?’
일부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치워놨건만, 이렇게 본청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국장에게 있어서 박원형은 이름과 얼굴조차 까먹을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자신의 입김 한 방에 날아가는 어디에나 있는 직원.
아까 최서웅의 얘길 들으니 겨우 생각이 났지만 그뿐이다.
절대 자신에게 비수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박원형이 눈앞에 서 있는 지금도, 신재현이 캐묻는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왜냐?
인사고과는 엄연히 상사의 권한이니까.
일을 못해서 점수를 짜게 줬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이고 증거가 될 것은 박원형의 말뿐이다.
하물며 외압을 줬던 국회의원은 이미 세무조사를 받고 낙선했다.
겨우 공무원 하나 억울함을 밝히겠다고, 낙선해서 국세청을 원수로 여기는 전 국회의원에게 증언을 요청할까?
그러니 국장이 입만 잘 털면 조금 이상함은 있더라도 더 추궁하지 못하고 넘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새삼 박원형이 얄미워 보였다.
‘그냥 거기에 가만히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본청까지 꾸역꾸역 기어와서 피곤하게 만들어? 그때도 그랬는데. 건들지 말라는 걸 굳이 건드려 가지고 의원한테 한소리 듣게 만들고. 진짜 도움이 안 되는 족속이구만.’
국장은 입맛을 다시며 화제의 청년을 보았다.
박원형 옆에서 우뚝 지키고 서 있는 신재현은 도저히 물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반드시 납득 가는 설명을 듣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아, 귀찮게 됐네.’
징세법무국장인 그는 조사국과 조금 거리가 멀었다.
신재현의 활약과 위상은 TV로 봐서 익히 알고 있었다.
국장 회의에서 얘기도 자주 나왔다.
신재현에 대한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화제였다.
누굴 만나기만 하면 ‘신재현 고놈 오늘은 무슨 짓을 했더라, 조용할 날이 없다’라고 말하며 웃곤 했다.
신재현이 특별히 좋거나 나빠서가 아니라 잡담하기에 딱 좋은 주제였고, 실제로 신재현이 조용해질 만하면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장은 신재현이 까마득하게 낮은 급수라 해도 얕보지 않았다.
무려 국세청 2급 국장인 그가 이런 마음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최상급 대우이기도 했다.
물론 신재현은 최상급 대우든 하대든 상관이 없었지만.
“국장님, 실례인 줄은 압니다만 저희 직원에 대한 문제면 제가 끼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재현의 말은 공손했지만 눈빛은 오만불손했다.
거기서 국장은 한 가지 일화를 떠올렸다.
국세청에 퍼진 수많은 소문 중에 서울청의 건이 있었다.
조사국 제2국장이 내부의 조사 정보를 당사자에게 흘렸는데 신재현이 그걸 알아내서 쳐냈다든가.
그것 말고도 흉흉한 스토리는 많았다.
제주도로 좌천되어 날아갔는데 사실 알고 보니 좌천이 아니라 보호차 잠시 청장이 숨겨둔 것이었고, 가서는 국세청의 전 대세였던 손경진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든가.
지금 청장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안전하게 수장 자리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신재현이 손경진을 억제했기 때문이라는 아주 살벌한 소문이었다.
물론 소문은 과장되게 마련이었다.
세상에 어떤 6급이 전직 청장, 그것도 수장이 될 뻔한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법은 없다.
부풀려진 점은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보았다.
국장은 그 소문에서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이놈은 국장이라고 절대 무서워할 놈이 아니야. 국회의원도 조사한 놈인데.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잘 빠져나가야겠구만.’
신재현이 딱히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래, 신재현하고 얽히면 무조건 소문이 난다고. 다들 보고 있는데 괜히 아랫사람과 싸워서 망신을 당할 필요는 없지.’
국장은 일단 부드럽게 말했다.
“크흠, 내가 괜히 혼냈겠습니까.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신 팀장이 놀란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일 좀 하다 보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꾸짖을 때도 있는 법입니다. 특히 여기 이 조사관은 예전에 내 밑에 있던 사람이라 내가 좀 흥분을 했어요. 신 팀장이 불쾌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내가 이 조사관 좀 꾸짖은 것뿐이니까.”
국장으로서는 엄청나게 타협한 것이었다.
한참 아랫줄인 신재현에게 양해를 구한 데다가 구구절절 설명까지 했다.
원래라면 국장이 뭘 하면 아래의 과장이나 팀장은 이유도 묻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나마 상대가 신재현이라 국장이 길게 설명을 늘어놓은 것이다.
물론 그걸 들은 박원형은 억울함에 몸서리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국장이 옛 부하 좀 혼내겠다는데 뭐라고 끼어들겠는가.
심지어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면 박원형이 잘못을 했고, 국장이 혼내는 걸로만 보였다.
이 상황에서 국장이 할 수 있는 태도는 하나뿐이었다.
박원형에게 일방적으로 잘못을 덮어씌우는 것, 그리고 너무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 것.
적당히 이 자리를 모면하고 신재현을 피할 생각이었다.
“이 조사관은 지금 어떤가요. 조사단에 있는 걸 보니 일은 열심히 하나 본데 이제 좀 정신을 차렸나요? 내 밑에 있을 때는 아주 글러먹어서, 내가 일부러 정신 좀 바짝 들라고 멀리 보냈거든.”
박원형이 답답함에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참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신재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지방 세무서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신재현만은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아직 옳게 돌아가고 있다고, 죄를 짓고 살면 그 대가가 꼭 돌아온다고 믿었다.
신재현이 사정을 다 알면서도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박원형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국장은 쾌재를 불렀다.
‘반박할 줄 알았는데 말을 못 하는구만? 오호, 이놈 이거 요즘엔 정신 좀 차렸나 보네.’
국장은 단단히 오해한 채로 신재현을 구슬렸다.
“내가 아까 소리친 건 미안하게 됐습니다. 국장이라는 사람이 직원들 다 보는 데서 남의 직원 혼내는 거 아닌데, 내가 옛날 생각이 나서 감정 조절이 잘 안 됐어요. 신 팀장이 좀 이해해 줍시다.”
지켜보던 법령해석과의 직원들은 다들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상대가 신재현이라고 해도 6급에게 국장이 사과를 하다니.
평소 결재나 보고서를 올리면 국장의 실수 때문에 일이 틀어져도 절대 사과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금 상황으로만 보면 사과 타이밍이 굉장히 미묘했다.
박원형과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건 지금은 문 열고 들어온 것밖에 없는데 다짜고짜 화내지 않았는가.
그걸 쉽사리 인정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혼자 화내고 혼자 사과하다니.
그러니 그로서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엄청난 양보를 한 셈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그만하자.’
국장은 연신 시그널을 보냈다.
대충 사과를 받아들인다는 식의 말만 나오면 얼른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그런데 신재현은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얘기를 꺼냈다.
“국장님. 지금 말고 예전 국회 말입니다. 거기 여당 의원님한테 얼마 받으셨어요?”
“……뭐? 다짜고짜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어떻게 그런 큰일 날 소리를! 내가 신 팀장에게 거슬리는 소리라도 했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없는 일을 지어내면 어쩝니까!”
이건 다른 직원들도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신재현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면서도 무리수를 던진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박원형조차도 예? 하고 되물었다.
“진짜 안 받으셨어요? 그럼 다른 거에서 받으셨나?”
신재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의 시선은 잠시 국장의 위에 머물렀는데, 초점이 허공의 어느 한 점에 멈춰 있었다.
순간 국장은 뒷골이 섬뜩했다.
그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신재현의 시선이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하며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얘기하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혹시 귀신 보나? 신기가 있나?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 알았나 싶은 것들도 척척 맞힌 건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신재현이 본 것은 국장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탈세액이었지만.
공무원은 나라에서 월급을 주니 근로소득으로 탈세하는 건 일단 불가능하다.
겸직이 불가능하니 사업소득으로 탈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물론 가족의 이름을 빌려 차명으로 사업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탈세가 맞지만, 국세청 고위 공무원이 설마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싶어 신재현은 다른 종류의 탈세를 떠올렸다.
그중 제일 만만한 것이 증여세였다.
누군가에게 공짜로 뭘 받으면 내야 하는 세금 말이다.
신재현은 탈세라는 확신을 갖고 상대의 틈을 끌어내기 위해 일단 찔러본 것이었지만, 그 확신이 국장에게는 두려움을 주었다.
사실 국장이 탈세한 세목이 증여세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탈세를 들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제 발 저려서 틈을 보이게 마련이니까.
신재현이 생각한 이유와는 다른 것이었지만, 어쨌건 국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림수가 통하고 있다고 생각한 신재현은 여유로운 태도로 웃었다.
“국장님은 본인이 망쳐 버린 직원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시는군요. 여기 이분의 성은 이씨가 아니라 박씨입니다. 박원형 조사관님이시죠. 저는 박 조사관님을 지방의 세무서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들었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그 얘기는 본청에서 좀 유명합니다. 서울의 세무서에 있다가 지방, 그리고 단숨에 본청으로 올라와서 조사단 소속이 되다니 누가 봐도 사연이 있어 보이는 스토리잖아요.”
“다…… 안다고요? 그거를?”
“네에. 심지어 여기 법령해석과의 직원분들도 알고 계십니다. 여기 분들은 소문이 조금 느리셔서 안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요.”
국장이 뻣뻣하게 돌아서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긴가민가한 얼굴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경멸의 눈빛을 띠고 있었다.
국회의원 아들놈을 건드렸다고 쫓아낸 그 원흉이 바로 저 국장이라니.
잘 알고 지내던 사람, 그것도 자신이 모시던 국장이라는 게 충격인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공공의 적을 보는 듯한 몇 쌍의 눈동자에 둘러싸인 국장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 신재현을 보았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하는 말은…… 다 알면서도 듣고 있었던 겁니까?”
“그럼요. 무슨 말씀을 어떻게 하시나 궁금하더군요. 그리고 국세청을 얼마나 기만하시는지, 부하 직원들 앞에서 부끄러움도 잊고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신기해서요.”
“그럼 아까 돈 받았냐는 건 뭡니까. 그것도 알고 물어본 거예요?”
“정말 받으셨나 보네요?”
“아니! 받았다는 게 아니라!”
“부인하셔도 상관은 없어요. 어차피 통장 까고 재산 형성 과정 역추적하면 나오는 거 국장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안 받았다니까!”
“네. 지금은 일단 그런 걸로 해두겠습니다.”
과거 국장이 박원형에게 딱 이런 식이었다.
박원형이 뭐라 억울함을 토로하든 듣는 둥 마는 둥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그것을 지금 똑같이 당하고 있었다.
“진짜 뇌물은 안 받았다니까……!”
“네에. 국장님 입장은 그러시군요.”
직원들의 표정이 더더욱 썩어 들어갔다.
이제 국장은 정직한 공무원을 멋대로 날려 보낸 파렴치한 놈에서 뇌물까지 받은 쓰레기로 위치가 점점 격하되고 있었다.
이미 국장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국장님께서 박 조사관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감히, 라는 말까지 붙여서 쫓아내려고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안 왔으면 이번에도 온갖 이유를 붙여서 또 쫓아낼 생각이셨습니까? 국세청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하신 것 같은데.”
“아, 신 팀장님. 그건 말이죠. 내가 좀 흥분해서 말이 헛나온 거고…….”
“국장님의 입장은 아주 잘 알았습니다. 외압 때문에 그러신 건가 눈곱만큼이라도 이해를 해볼까 했는데 역시 아니었습니다. 외압과 아무런 상관없는 지금도 충분히 그럴 분이라는 것도요. 그러니 제 입장은 하나입니다. 본청에 있지 말아야 할 사람은 박원형 조사관님이 아니라 국장님 같은 분이라는 걸요.”
6급 직원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엄청난 모욕이었지만 지금은 수치심보다 공포가 앞섰다.
신재현이 말을 끝내자마자 꾸벅 인사를 하더니 뒤를 돌아 사무실을 나갔기 때문이다.
‘뭐, 뭐야. 절대 얌전히 넘어갈 성격이 아닌데 그냥 가네? 뭐지? ……설마?’
국장이 헐레벌떡 복도로 뛰어나갔다.
복도에서 국장의 애절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설마 청장님한테 가는 건 아니죠? 잠깐 나랑 얘기 좀 합시다. 신 팀장님. 신재현 씨!”
멀어져 가는 국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법령해석과의 과장이 중얼거렸다.
“세상에 쓰레기가 말도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