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24화 (424/500)

424화. 업무 협약식 (2)

나는 맨 앞줄에 앉아서 지루한 식순을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은 세무사회장이 뭔가 연설을 하는 중이었다.

“저희 세무사회는 납세자를 대리하고 과세기관의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하는 얘기는 사실 뻔하다.

세무사의 역할과 중요성을 설파하고 국세청과 앞으로 협력을 해나가겠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그보다 내가 신경 쓰이는 것은 아까 그 회계사였다.

독보적으로 많은 숫자를 달고 다니던 사람 말이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세무사회장이 이따 신상명세를 알아봐준다고 약속은 했는데, 과연 어떻게 알아봐 주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연설보다는 다른 데에 정신이 팔린 게 티가 났는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청장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심심해?”

청장이 데려온 건데 여기서는 당연히 아니라고 해야 모범답안이겠지.

예전 같으면 그렇게 말했을 거라는 얘기였다.

나는 단호하게 솔직한 내 마음을 얘기했다.

“네. 근데 필요한 행사인 건 맞으니까요. 괜찮습니다.”

“그래. 청장 주 업무가 이런 거야. 얼굴 비춰주고 국세청 위신 올리는 거.”

“제가 오는 게 도움이 되긴 하나 봅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사실 지금의 조사단 사무실은 내가 빠져나오긴 조금 애매한 시점이었다.

2반 반장을 쳐냈기 때문이다.

지휘체계에서 중간에 구멍이 났으니 1반 반장인 채유림 혼자 버텨야 한다.

그나마 매일같이 밖으로 쏘다니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사무실에 붙어 있는 일이 많아서 내가 최대한 공백을 채우려고 했다.

그런데 청장이 내가 필요하다며 데리고 나온 것이다.

지금도 사무실이 잘 굴러가고 있을지 신경이 쓰였지만 막상 와보고 나서 이해했다.

회계사든 세무사든 우리랑 연관이 깊은 전문직이다.

거기에 협회 임원들이면 나름 이름값 있는 사람들이고.

변호사도 급에 따라 나뉘듯이 회계사, 세무사도 그들만의 급이 있었다.

게다가 세무사 중에는 공무원 출신인 사람, 즉 전관이 많다 보니 국세청장으로서도 꿀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직 상대로 맞먹을 가장 좋은 카드가 무엇이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다 엎어버리는 공무원, 그러니까 바로 나다.

“그럼. 당연히 도움 되지. 안 그러면 바쁜 걸 뻔히 알면서 내가 끌고 왔겠어?”

저들에게는 직위로 맞서는 것보다 ‘여러분, 탈세 보이면 썰어 버릴 거예요’라고 보여주는 게 훨씬 잘 먹힌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이런 행사 자체가 원래 그렇다.

무지하게 심심한 것이다.

그렇다고 맨 앞에 내빈으로 앉아 있으면서 졸 수도 없고.

나는 졸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그걸 본 청장이 말을 걸었다.

“그럼 나랑 얘기나 하자고. 여기 앉아서 시간만 보내는 것도 아까우니까.”

“경청하겠습니다.”

맨 앞에서 떠드는데 단상 위의 연설자가 모를 리가 있나.

세무사회장이 힐끔 우리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뜨끔해서 말을 멈췄는데 그는 오히려 히죽 웃었다.

괜찮다는 표시인 것 같다.

애초에 청장은 연설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세무사랑 회계사 차이는 알지?”

“네. 회계사 주 업무는 기업의 감사고 세무사의 주 업무는 세법을 활용한 세무신고잖아요.”

회계사와 세무사는 영역이 겹치는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자고로 회사는 장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재무제표라고 불렀다.

재무재표가 아니라 제표인 이유는 모두 제諸 자를 써서 그렇다.

재무에 관해 적어 놓은 모든 표를 말하는 것이다.

재무제표라 불릴 수 있는 표의 종류는 5가지다.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 주석.

이중 재무상태표는 원래 대차대조표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몇 년 전 바뀌었는데, 청장처럼 일한 지 오래된 사람은 본인에게 익숙한 대차대조표라고 부르곤 했다.

내가 알바하던 곳의 세무사도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대차대조표라고 불렀는데, 그 때문에 나도 초반엔 대차대조표라고 불렀다.

지금은 둘 다 섞어서 쓰지만.

회계사는 그 재무제표를 작성하기도 하고, 작성 과정에서 룰에 따라 정당하게 만들어졌는지 감사를 하기도 한다.

룰이라고 하는 건 국제회계기준을 말한다.

회계는 기업의 정체를 숫자화해서 종이 위에 나타내도록 해주는 언어라고도 볼 수 있다.

당연히 마음대로 하면 안 되고 일정 법칙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전 세계가 동일하게 사용하는 국제회계기준이다.

우리나라도 이 국제회계기준을 사용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

“그렇지. 회계사도 세무대리를 하기도 하고, 반대로 세무사가 재무제표 작성을 하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차이점은 그거지. 회계사는 감사, 세무사는 세법.”

세무사는 세법만 아예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직업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금감원이 자주 상대하는 것은 회계사고 우리 국세청과 연관이 깊은 것은 세무사인 것이다.

“그럼 여기서 문제야. 회계사회랑 세무사회. 둘 중 어디 힘이 더 셀 것 같아?”

나는 질문의 의도를 몰라서 잠시 망설였다.

두 전문직의 분야가 다르다 보니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회계사가 세무사보다 업무 범위가 더 넓지 않나?

회계사는 세무사의 고유 업무인 세무대리를 할 수 있지만 세무사는 감사를 못 하니까.

상대하는 기업의 크기도 다르다.

회계사가 좀 더 큰 건을 많이 다룬다.

애초에 감사라는 것이 일정 기준 이상이어야 의무적으로 받게 되어 있는데 그 기준이 꽤 높다.

매출 500억 이상, 자산 500억 이상.

아니면 주권상장법인.

이런 식이다.

자연히 회계사가 감사하는 회사는 대부분 클 수밖에 없다.

굳이 둘을 비교해 본다 치면 회계사회가 좀 더 영향력이 크지 않을까?

“회계사회요.”

“틀렸어. 세무사회야.”

“그래요?”

“으하하, 물어보길 잘했네. 신 팀장도 이건 모르는구만?”

내가 시원하게 틀리자 청장이 기뻐하며 웃었다.

“이번 기회에 알아놔. 나쁠 거 없는 뒷얘기니까. 원펌하고 독립채산제가 뭔지는 알아?”

국세청에 있으면서 저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고개를 젓자 청장이 신나서 설명했다.

“회계사든 세무사든 개인으로 활동하는 사람 있고 법인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잖아.”

“네. 자기 사무실 만들어서 개인으로 일하냐, 회사 소속되어서 일하냐의 차이죠?”

“그렇지. 근데 보통 법인을 만드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잖아.”

“아, 절세하려고 법인 세우는 분들 많죠.”

“근데 세무사 여럿이 모여서 법인은 세우고 싶은데 업무는 공유하기 싫어. 그럼 어떻게 할 것 같아?”

“글쎄요. 소호 사무실 공유하듯이 사무실하고 회사 이름만 동일하게 쓰고 일은 따로 하나요?”

“잘 아네. 그런 식이야.”

“……그래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원펌은 뭐예요?”

“일반 회사처럼 맨 위에 대표 있고 그 밑에 임직원 있고 각자 부서 나뉘어 있는 거지. 영업만 하는 영업팀, 컨설팅 하는 컨설팅팀, 세법계산하는 소득세팀, 법인세팀, 재산제세팀 있는 체계적인 회사 말이야.”

“그럼 여기서는 일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요? 영업팀이 일거리 가져오면 검토해서 각자 해당된 세법 팀에 넘기는 건가요?”

“그래. 반대로 독립채산제는 소속 세무사가 말만 소속이지, 개인 사무실 대표나 다름없어. 직원도 세무사마다 따로 두고. 세무사가 따온 일은 자기 직원한테 시키는 식이지. A세무사가 B세무사의 직원을 부릴 순 없어. 매출이나 비용도 세무사마다 각자 계산하지.”

“그거 말만 법인 아니에요? 그냥 개인 사무실 여러 개가 모인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래서 독립채산제라고 하는 거야. 법인의 절세 효과하고 법인 이름값을 노린 거지. 법인이면 아무래도 몸집이 커지기도 하고 이름 알리기도 편하니까.”

그러니까 원펌은 다 같이 일을 공유하는 일반 회사와 다름없고, 독립채산제는 개인 사무실 여러 개가 한 회사 이름을 달고 있는 거란 소리다.

“그런데 이거랑 협회 힘 센 거하고는 무슨 상관이에요?”

“아, 일단 들어봐. 회계사는 주 업무가 감사잖아? 감사받는 법인은 대부분 몸집이 크지?”

“네. 아무래도 의무적으로 감사받는 회사는 대부분 큼직한 회사들이니까요.”

“걔네들이 개인 회계사한테 맡길 것 같아? 아, 물론 유명한 회계사라면 맡기겠지만 그런 예외적인 케이스는 제외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회사라면 아무래도 개인보다는 회계법인에게 맡길 것 같다.

개인 사무실을 낸 회계사는 그 사람의 이력을 따로 알아봐야 하지만 법인이라면 그 이름값을 할 테니까.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아, 혹시 회계사는 일감이 대부분 회계법인으로 몰리나요?”

“그래, 그거야. 특히 이름 높은 유명 회계법인 쪽에 일감이 몰려. 흔히 말하는 3대 회계법인, 5대 회계법인 얘기 들어봤지? 대기업들은 다 이런 데다 맡긴단 말이야.”

이제 이해가 되었다.

회계사는 업무상 법인에 소속된 사람이 훨씬 많겠구나.

그것도 원펌.

보통 회계법인의 이름을 보고 찾아오는 거물들이 많을 테니까.

“자, 여기서 문제야. 회계사는 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는 피식 웃었다.

“어렵겠는데요. 대부분이 법인 소속이라면 회계사회에 소속된다 해도 법인의 뜻과 반대되는 의견은 내기 힘들죠.”

“그래서 회계사회는 대부분 원펌 대표들의 잔치야. 그들의 관심은 자기 연봉과 자신이 소속된 회계법인의 이득에 쏠려 있지. 아, 이걸 나쁘다고 하는 건 아냐.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 먼저 챙기게 되어 있는 건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해.”

“회계사회에 의견이 모이지 않는 거군요?”

“가만히 있어도 유명 회계법인에는 대기업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와. 감사 잘 해달라고. 협회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 법인의 회계사들 입장에서는 굳이 앞장서서 일을 벌일 필요가 없는 거지.”

“그럼 세무사회는요?”

“거기는 유사 정치판이야.”

청장은 뭐가 웃긴지 피식 웃어댔다.

막 세무사회장의 연설이 끝나고 다음 순서로 회계사회장이 단상에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가장 앞줄에서 잡담하고 있는 것이 못마땅한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우리는 바로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솔직히 업계 뒷얘기가 너무 흥미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세무사들은 개인 사무실 내도 아무 문제 없잖아.”

“세무사들도 회계사랑 마찬가지로 삼대 세무법인 같은 거 있지 않아요?”

“당연히 있지. 거기 들어가면 연봉도 세고 큼직한 일도 맡고 경력에는 좋지. 근데 굳이 안 들어가도 되잖아.”

“어…… 그렇긴 하죠? 세무사는 동네 장사라는 말도 있으니까. 중소기업 사장님들 대상으로 하는 세무사가 많잖아요.”

“큼직하고 복잡한 건보다 차라리 동네 사장님들 상대로 소소하게 돈 버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어.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법인 들어가는 게 의무가 아니잖아? 법인에서 맘에 안 드는 일 있다 치면 나와 가지고 개인 사무실 차리면 장땡 아냐?”

“그렇네요. 세무사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군요. 그래서 세무사회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건가요?”

이상하게 회계사회에서 뭘 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세무사회 얘기는 자주 들은 것 같다.

세무사회장 밑에 지방세무사회가 있고, 또 밑에 지역세무사회가 있는 것도 그렇다.

굉장히 조직적이고 뭔가를 많이 한다.

“세무사들은 매출 높고 능력 있으면 장땡이야. 아랫기수가 윗기수한테 눈 부릅뜨고 싸우는 일도 흔해. 왜냐면 협회에서 만나면 다 같은 개인 사무실 대표거든. 물론 그들도 좀 잘나가는 세무사는 더 존중하고 그런 게 있겠지. 하여튼 윗사람 눈치 볼 게 없는데 협회 가서 뭐 하겠어? 허구한 날 싸우지. 거긴 회장선거 엄청 치열해. 그렇게 치열하게 회장 되면 뭔가 일하는 걸 보여줘야 하잖아. 그래서 세무사회장은 직접 국회의원실 가서 협상하고 그래.”

“예? 국회에 들락거린다구요?”

“예전에는 공무원이나 회계사, 변호사한테 세무사 자격증 그냥 줬잖아. 그러다가 몇 년 전엔가 폐지됐지? 그것도 세무사회에서 국회 가서 드러눕고 그래서 이룩해 낸 거야.”

나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단상 아래에 내려온 세무사회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이 마주치자 또 싱긋 웃었다.

회계사회장이 단상 위에서 열심히 뭔가 연설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세무사회장이 슬금슬금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무슨 재밌는 얘기를 나누고 계십니까?”

거리낌 없이 끼어드는 이 친화력부터가 그랬다.

청장의 말을 듣고 보니 아까부터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야 알겠다.

전문직이라기보다 구의원이나 시의원 같은 예비 정치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좋은 자리가 만들어져서 아주 기쁘다는 얘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의뭉스럽게 말하자 청장이 허허 웃었다.

이놈 많이 늘었네, 하는 표정이다.

“그런 얘기라면 저도 환영입니다. 업계의 투명성을 위해서도 종종 이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청장님의 고견은 어떠십니까?”

“허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장은 일부러 무겁게 굴었다.

세무사회장은 사람 좋게 웃더니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아까 말씀하신 회계사분 말입니다. 제가 좀 알아봤는데 지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이따 따로 자리를 마련할까요?”

벌써 신상 명세를 캐왔다고?

나는 놀라며 말했다.

“자리를 마련할 정도로 비밀스럽거나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지금 말씀해 주셔도 무방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손하게 대답한 세무사회장은 내 귓가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이유를 밝히지 않은 이상 정말 별거 아닌지, 중요한 건인데 내가 일부러 가볍게 다루는 건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듣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십대 회계법인 중에서 고송이라고 있습니다. 거기 파트너 회계사인 고송철이라고 하는데 지금 한 15년차쯤 됩니다.”

“주로 다루는 분야가 있습니까?”

세무사든 회계사든 한 업종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있다.

그걸 물어본 것이었는데 세무사회장의 입에서는 재깍 답변이 나왔다.

“공기업 감사를 주로 한답니다.”

“아하, 공기업이요…….”

원하는 것은 얻었다.

나는 큼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또 어디 치려고?”

내 표정을 본 청장이 툭 던지듯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지?”

“뭐 할 때는 미리 보고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인마. 나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지.”

“알겠습니다. 돌아가자마자 기획서 올릴게요.”

“뭘 또 가자마자……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질린 듯 청장이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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