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썩기 전에 도려낸다 (1)
예전에 이선균에게 여러 가지를 배울 때 들은 적이 있다.
부하 직원을 조질 땐 확실하게 조지라고.
대신 감정적으로 행동하거나 트집을 잡아 인신공격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여기는 직장이고 다 같은 어른들이다.
상사라고 해서 무조건 부하 직원을 혼낼 권리는 없는 것이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사로서 업무적 실수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뿐이다.
이 개념이 내게는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상사들을 떠올렸다.
예전에 중소기업에서 일할 때는 어땠더라?
제일 만만한 게 우리였던 것 같다.
부장은 우리에게 화풀이하기 일쑤였다.
직원들이 제대로 일 처리를 하더라도 그날 부장의 기분이 나쁘면 보고서를 내던졌다.
-오타 났잖아. 이것도 못해? 다시 해 와!
그러는 부장 자신은 일을 잘하냐?
전혀 아니었다.
거래처에도 고압적인 태도로 대하다가 계약을 날려먹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부장 본인이 항상 지적하는 것처럼 보고서를 잘 쓰냐 하면 역시 그것도 아니다.
부장은 툭하면 맞춤법을 틀렸다.
그때 직원들의 평가는 이랬던 걸로 기억한다.
-자기나 잘할 것이지 내로남불이야.
부장은 자기 실수에는 관대하고 남의 실수에는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대했다.
당연히 사기는 떨어지고 부장의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다.
부장이 혼내는 기준이 너무나도 기분 위주다 보니 혼나면서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회식 때마다 부장은 말버릇처럼 ‘윗사람을 존경해야 아랫사람도 존중받는 거야’라고 하곤 했는데 존경은 개뿔.
부장을 진심으로 따른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안 잘리고 살아남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부장은 임원에게 엄청나게 잘 대했다.
임원이 어디 출장을 가거나 하면 쉬는 날에도 재깍 달려가 수발을 들었다.
입안의 혀처럼 구니 임원진도 그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직원들이 힘들다고 호소하든 말든 임원진 입장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일은 좀 못하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고, 무엇보다 임원진에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
윗선에서 생각하기에 계속 앉혀 놓기 적당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임원한테 수모를 받고 그 화풀이를 우리에게 해서 문제였지.
이선균이 말한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은 아마 이것을 얘기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내가 공무원이 되고 나서 겪은 사람들은 어땠는가.
공무원이라고 다 착하거나 나쁜 건 아니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용산세무서 시절 조사과장이었다.
그는 자기 휘하의 직원들이 무슨 업무를 맡았는지, 지금 어디까지 조사했는지, 그날그날 전부 보고를 받고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통제가 심했지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리사욕으로 괴롭히기 위해 하는 짓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조사라는 것 자체가 막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사실 부하 직원이라는 게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자신의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손에 칼까지 쥐고 있다?
조사과장은 통제 불가능으로 사고가 터지기 전에 꽉 잡고 있는 것을 원했다.
덕분에 귀찮긴 했지만 업무 처리는 편했다.
원래 상사가 실무를 잘 알지 못할 때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실무와 책상물림에서 오는 괴리감 말이다.
김명중 조사과장은 적어도 그런 불통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선균 과장.
그는 규모가 큰 세무서를 맡다 보니 일일이 통제하지는 않았다.
직원들이 하는 걸 가만히 놔두는 대신, 지켜보고 있다가 필요하면 적절한 때에 개입했다.
민치호는 더했다.
그는 뭐 기본적으로 수십 명을 거느린 국장이었고 지금은 청장이니까.
밑에서 대형 사고를 쳤을 때 수습하는 게 주 업무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어떤 상사인가 생각해 보면,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자리는 그냥 일만 잘한다고 되는 자리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팀원들에게 잔소리한 적은 없었다.
서울청에서 5명짜리 자그마한 팀이었을 때는 서로 친구처럼 지내면서 풀었다.
지금도 내 결재도장을 받아가는 저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아랫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그래도 해야 한다.
나는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남자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2반 반장 엄배홍.
내 이름을 팔아서 세력을 모은 사람이다.
솔직히 그의 목적은 아직도 모르겠다.
조사단 반장이라는 자리가 부족했던 걸까?
내가 그에게 뭔가를 섭섭하게 대했던 걸까?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을 접었다.
지금 중요한 건 2반 반장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거니까.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내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굳이 말하자면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팀원을 내 손으로 쳐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생판 모르던 남을 세무조사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같은 공무원이어도 법을 어긴 사람들을 치는 건 조금도 껄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을 함께 야근하고 고생한 반장이 원흉이라고 생각하니 가슴께가 일렁거렸다.
배신감도 느껴졌다.
그냥 일만 열심히 하는 게 그렇게 힘드나?
내 분위기가 평소와 달라져서일까, 채유림이 아까부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창밖에는 주룩주룩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걸 살펴보는 척하면서 흘끔 내 쪽을 곁눈질했다.
상사 눈치 보느라 일을 못한다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무실 분위기다.
결심은 이미 되어 있다.
하기 싫다고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잖은가.
사람은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때가 오니까.
이대로 2반 반장을 내 팀에 남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예고도 없이 2반 반장을 불렀다.
“엄배홍 반장님.”
“아, 넵.”
중년 남자는 내가 부르자마자 벌떡 일어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걸 보자 마음이 약해지려는 걸 다잡았다.
국회의원 갈굴 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느낌이 확 다르네.
“2반 진척사항이 어떻게 되죠?”
반장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의아해하면서도 하나하나 읊었다.
“일전에 주신 30명의 명단은 1반과 나눠서 대부분 처리했습니다. 과정에서 잡음은 없었고요. 지금은 말씀하신 대로 대선 후보자들 추리고 있습니다. 아직 경선이 덜 끝난 정당이 있어서요. 명단 작성 끝나면 바로 조사 착수하겠습니다.”
내가 시켰던 대로였다.
시장은 내가 먼저 선타로 치고 나서 1반이 이어받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지금쯤이면 그 세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당장 시장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아우성과 연일 이어지는 탐사보도에 골머리를 썩고 있으려나.
이미 끝난 시장은 둘째 치고, 그다음으로 내가 준 명단은 탈세액이 있는 사람, 또는 지난 국회 조사 때 빠진 중요 의원들이었다.
이것도 우선도가 급한 거라 1반과 2반이 나눠서 처리했다.
다음으로는 현직 국회의원 중에서 후순위로 밀려 1차, 2차 조사 때 빠진 사람들과 대선 후보들을 따로 추려달라고 했다.
이왕 검증하기로 한 것, 대선 후보까지 확실하게 탈탈 털어줄 생각이었다.
자고로 대통령이 될 자라면 탈세액은 없어야지.
그런데 보고를 듣다 보니 2반 반장이 뭔가 달라진 게 보였다.
외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거물을 친다고 했을 때 겁먹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곤 했는데 지금은 꽤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게 우리 일을 통해 이루어진 선순환인 줄 알았다.
무조건 국회의원은 무섭고 건드려선 안 되는 존재라는 사고방식을 바꾼 결과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달랐던 걸까.
“반장님, 이제 거리낌이 없으신가봅니다. 예전에 대통령도 한 번쯤은 조사해 보자는 의견 나왔었는데 어떠신가요? 이제는 자신 있으신가요?”
의심하는 티를 내지 않고 내가 넌지시 묻자 반장은 바로 미끼를 물었다.
“으허헛! 네, 그렇습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좁은 세상에 잠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가 된 느낌이었어요. 세상에 안 되는 건 없고, 봐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거였는데 말이죠. 팀장님 덕분에 개안한 기분입니다.”
칭찬하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역겹게 들렸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차라리 오글거리면 오글거렸지 이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는데.
“그래서 힘을 얻고 싶으셨던 겁니까? 절 보고 배운 게 그거였나요? ‘힘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칠 수 있다’ 이게 반장님이 내린 결론이었습니까?”
내 싸늘한 말투에 반장이 우뚝 굳은 채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왜 그러시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아실 텐데요. 사람을 모으고 다니셨잖아요.”
“아…….”
엄배홍은 당황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언젠가는 들킬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질이 더 나쁜데.
들켜도 상관없다는 건 즉, 내가 용납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엄배홍은 당당한 얼굴로 웃었다.
“아이고, 벌써 눈치채셨습니까? 나중에 다 끝나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여기서부터 일단 어이가 없어졌다.
“다 끝나면? 대체 뭘 끝낸다는 겁니까?”
“이번 일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주눅 들지 않고 맞서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국세청은 지금보다 더 하나로 뭉치고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결국 이런 생각이었던 거구나.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불덩이를 내리누르고 차분하게 물었다.
그래, 감정적으로 대하면 안 된다.
무지 어렵지만 지금 소리 지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반장님은 지금 그게 옳은 거라고 생각하신 거군요?”
“팀장님도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버텨오신 것 아닙니까.”
“누가 반장님께 그러라고 했습니까?”
“아…… 제가 멋대로 행동한 게 기분 나쁘셨던 거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국세청과 조사단을 위해서…….”
“반장님이 왜요?”
“……네?”
엄배홍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는지 멍청하게 되물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차근차근 말했다.
덕분에 목소리는 한껏 낮아져 있었다.
“반장님은 국세청과 조사단을 위해서 한 것이 맞습니까?”
“그야 당연합니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고요?”
엄배홍은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본인도 정곡을 찔리는 게 있는 것이다.
“첫째. 반장님은 제가 뭘 생각하는지 물어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지레짐작해서 제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어느 조직에서 아무런 보고도 없이 그렇게 행동합니까? 반장님에게 누가 그런 권한을 줬습니까? 반장님이 단장 하실 겁니까?”
“예? 아니 그…….”
“아직 안 끝났습니다. 끝까지 들으세요. 둘째, 반장님은 제 이름을 팔아서 세력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포섭한 사람들에게 뭘 약속했습니까? 제가 안 받아들여 주면 어쩌려고 했습니까.”
“안 받으실 이유가 없잖습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은 일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엄배홍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자신이 왜 이런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걸 왜 반장님이 멋대로 판단합니까? 제 방침이 어떤지 모르시잖아요. 저는 제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한 후에 받아들입니다. 만약 일이 커져서, 나중에 반장님이 세력이랍시고 직원들을 데려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제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그분들에게 사기를 친 거나 다름없습니다. 반대로 제가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이를 갈며 노려보았다.
“제가 반장님 뜻대로 휘둘리길 바란 것 아닙니까.”
“예? 전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한테 아무 말 없이 움직인 것부터가 절 무시한 처사 아닙니까? 말씀해 보세요, 나중에 저한테 뭐라고 변명할 생각이었습니까?”
엄배홍은 반박하는 대신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미적미적 고개를 숙였다.
“예.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표정과 목소리를 봐서는 절대 죄송한 게 아닌데.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기껏 생각해서 움직여 줬더니 까다롭게 군다, 대충 이런 거겠지.
불퉁한 표정을 보고는 나도 대화할 마음이 사라졌다.
이런 놈을 타이르려고 했던 내가 바보다.
나는 그래서 침착하게 내 결정을 알려주었다.
“엄배홍 반장님은 오늘부로 조사단에서 퇴출하겠습니다. 바로 개인 물품 정리해서 나가십시오.”
“……예?”
엄배홍의 얼굴에 그제야 균열이 갔다.
“지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더 이상 조사단 식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수인계도 됐습니다. 그냥 바로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엄배홍은 처음에 장난인 줄 알았나보다.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피식 웃더니 내가 정색하자 이내 얼굴색이 변했다.
“진심이십니까? 지금 나가면 저더러 어떻게 하라고요?”
“행동하기 전에 어떤 결과로 나올지 생각을 해보셨어야죠. 대기발령 형태로 계시게 될 겁니다. 추후 처분은 위에서 결정할 거고요.”
“아니, 잠깐! 제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습니까? 이렇게 쫓아낼 정도로?”
“그게 문제인 겁니다. 본인이 어떤 짓을 했는지 아직도 모르시는 거죠? 반장님은 국세청 안에 사조직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반장님이 국세청을 위해서 한 거라는 말도 믿기지가 않네요. 정말 그랬다면 최소한 저에게 물어보고 의견을 구했을 테니까. 반장님이 본인 안위를 위해 제 이름을 판 게 아닌가 싶지만, 이건 의심일 뿐이니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건 더는 믿고 일을 맡길 수 없다는 뜻이죠.”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팀장님, 제발.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렇게 나갈 순 없습니다. 팀장님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사권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차라리 징계나 경고로 끝내주세요. 팀장님!”
이미 고난의 시간은 다 지나갔고, 외압 받을 걱정도 없는데 이대로 물러나긴 아까웠을 것이다.
고생만 죽어라 하고 이제야 조금 편히 일해볼까 하는 시점이니.
물론 어림도 없다.
“조사단에 대한 구성은 전적으로 제 권한입니다. 제 발로 나가지 못하시겠다면 나가게 해드리죠.”
나는 한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장세훈과 황민우가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엄배홍의 양팔을 한쪽씩 붙잡았다.
가차 없이 끌어내는 둘은 많이 해본 것처럼 편안한 표정이었다.
“제발, 팀장님!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아악!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그냥 사람 좀 모아본 것뿐인……!”
사무실 문이 닫히자 복도에서 고함이 웅웅거리며 들렸다.
방음이 잘 되어 있다 보니 뭐라고 하는지 그 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장세훈이 잊지 않고 챙겨온 엄배홍의 공무원증을 내게 내밀었다.
공무원증에 사무실 출입 권한이 있다 보니 일단 수거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멍해져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별탈 없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팀원이 쫓겨나니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방금 보셨듯 엄배홍 조사관님은 오늘부로 우리 팀이 아닙니다. 이야기 들으면서 짐작하셨겠지만, 조사단과 제 이름을 대며 국세청 내에 사조직을 만들려 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고생하시고 노력하셨는지는 지켜본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이름을 팔아 사리사욕을 채우는 행동은 제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조사단이 권력싸움으로 변질되길 원치 않습니다. 이것은 제 경고이자 조사단의 부단장으로서 임하는 각오입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났고 나는 사무실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 명 잘라냈으니 위에 보고도 하고 뒷수습도 해야 했다.
그리고 엄배홍에 대해서는 대기발령만으로 끝낼 생각도 없었다.
사무실 문을 열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눈과 귀, 입을 다 막은 채 일하라는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잖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우리 조사단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남아 있는 한 끝까지 안고 갈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봅시다.”
“네, 넵…….”
긴장된 목소리가 몇 명에게서 새어 나왔다.
일단은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더 낫겠지.
채유림과 서울청 시절 팀원들이 분위기를 잘 수습해 주길 바랄 뿐이다.
나는 미련 없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뒷정리를 위해 가장 먼저 보고를 올려야 할 곳은 국세청장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