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19화 (419/500)

419화. 꿀에는 벌레가 꼬인다 (6)

“어? 조사단이라고요? 이 사람이?”

김선희가 두 눈을 깜빡였다.

믿을 수 없다기보다는 지금 이 상황을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슨 몰래카메라 하는 것도 아니고. 에이, 재미없어요.”

김선희는 계속 웃기만 했다.

절대 믿지 않겠다는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최서웅도 마찬가지였다.

“신재현 팀장님, 우리 놀리는 게 재밌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신재현은 오히려 되물었다.

“저희 단원이 뭔가 사고라도 쳤습니까? 그럼 제가 책임지는 게 맞는데.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세요.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사과드리고 책임을 지겠습니다.”

부하 직원을 관리하는 것은 상사의 책임이다.

신재현이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왜 팀장님이 이 사람을 두둔하는 거예요? 무슨 관계길래?”

“저희 팀이니까요.”

“그니까 왜 거짓말까지 하면서 감싸주냐고요.”

“……전 거짓말한 적 없는데요?”

이쯤 되면 뭔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자꾸만 되풀이되는 이상한 전개에 신재현이 결국 박원형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금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서.

“박원형 조사관님. 무슨 일 있었습니까? 본인 입으로 말씀하세요.”

조사단 내부에서 신재현 이름을 팔고 다니는 사람을 잡으려 했다고 말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이건 어찌 보면 조사단의 치부였다.

신재현의 이름을 깎아 먹는 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몰래 정보를 캐려고 했던 건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정치질이나 정보 수집과는 평생 연관 없는 삶을 살았던 평범한 직원의 서툰 솜씨 때문이었다.

박원형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신재현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대로 전부 말씀하십시오. 지금 본인 입으로 얘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박원형은 뭐라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김선희를 가리켰다.

이미 많은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었다.

“이분이 조사단 소속 누군가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답니다.”

알아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신재현의 눈치는 귀신같았다.

신재현은 바로 김선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희 팀원이 무례하게 굴었다면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잠시 얘기 가능하실까요?”

김선희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유명인이 자신을 알아봐 준 것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생각하기에 신재현은 곧 자신이 탄 라인의 끝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근데 곧 사무실 들어가 봐야 해서요.”

점심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재현은 그것도 간단하게 해결했다.

“급한 일 있으세요? 2시 안에 결재 올라가야 하는 건 있다든가.”

“아니요, 그건 없는데…….”

“그럼 장세훈 조사관님, 강혜원 조사관님. 이분 근무하시는 과에 가셔서 30분만 빌리겠다고 양해 구해주실 수 있을까요?”

장세훈과 강혜원이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어어? 하는 사이에 법령해석과의 일반 직원들이 주르르 끌려갔다.

어차피 사무실 들어가야 하는 건 맞았지만 뒷내용을 보고 싶었던 직원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사라져 갔다.

남은 건 최서웅과 권새호였다.

“저는 따질 게 있어서 좀 남겠습니다.”

최서웅은 당당하게 말하며 팔짱을 꼈고 권새호는 조금 고민했다.

“이쪽 분은?”

그를 붙잡은 것은 권새호였다.

“설명드릴 것도 있어서 함께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괜찮으실까요, 권새호 조사관님?”

권새호의 마음속 저울이 순간 기울었다.

어떤 설명이 나올지 궁금해진 것이다.

“급한 일은 없으니 괜찮습니다. 함께 가시죠.”

“좋습니다. 여기는 대화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으니 이동하시죠.”

신재현이 선두에 서서 조사단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발은 같은 곳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각각 달랐다.

김선희는 아직도 박원형을 믿지 않았다.

저런 속물적인 인간이 조사단이라니, 자신의 환상이 깨지는 것 같았다.

다만 자신이 아는 라인의 수장인 신재현이 함께 가자고 했으니 그 명령을 따르는 것뿐이었다.

어찌 보면 충실한 공무원이었다.

최서웅은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지나가다 이런 광경을 보면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더라도 발길을 멈추고 끝까지 구경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조사단에 얽힌 뒷얘기라면 더욱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원래 조사단과 신재현을 고깝게 생각하기도 했고, 잘하면 신재현의 뒷모습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권새호는 이 중에서 가장 애매했다.

기본적으로 그가 박원형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했던 이유는 그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연수원에서 공부하고 고생한 동기인 것만 해도 어느 정도 마음이 간다.

그런데 그런 동기가 원칙을 지키다가 지방으로 가지 않았는가.

지금 박원형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아직은 그를 좋게 생각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내내 박원형을 두둔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원판은 좋은 사람입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잠시 나쁜 생각을 한 것뿐이에요. 원래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안 좋은 생각에 물들게 되잖아요.

그리고 박원형을 다그쳐서라도 원래대로 돌릴 생각이었다.

‘국세청 공무원 입장에서 봐도 너무 아까우니까.’

공부 잘하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도 물론 귀하지만 마음가짐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더 찾아보기 힘들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권새호는 앞서가는 신재현과 그를 따라 조용히 걷는 박원형을 보았다.

박원형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권새호는 법령해석과의 둘과는 다르게 신재현의 말을 믿었다.

박원형이 자신의 단원이라고 한 말 말이다.

하지만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니 뭔가 큰 잘못을 한 듯싶었다.

‘조사단 소속이면서 권력욕 부리다 신재현에게 걸렸나 보구나.’

각각 다른 오해를 하고 있을 때, 정작 박원형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큰일 났다. 소문 다 나겠네. 조용히 알아봤어야 했는데. 믿고 맡겨준 걸 결국 팀장님이 나서게 만들다니. 아이고, 아이고! 남들은 물밑에서 아무도 모르게 정보 수집 잘하던데 나는 왜 못하는 거야!’

쓸데없이 많은 주목을 끌게 된 것과 신재현까지 등판하게 된 상황에 풀이 죽어 있었다.

그의 원래 목표는 이게 아니었다.

-팀장님! 제가 원흉을 알아왔습니다! 누가 법령해석과의 직원을 끌어들였더라구요!

신재현이 놀란 눈으로 웃으며 그의 노고를 칭찬하는 장면이 눈에 선했다.

이미 물 건너간 일이었지만.

‘짠! 하고 이름 말하려고 했는데! 미치겠네.’

박원형은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조사단이 가까워지자 신재현은 사무실 대신, 그 옆의 문에 공무원증을 찍었다.

조사단 사무실과도 연결된 자그마한 회의실 겸 응접실이었다.

여섯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나름 화이트보드도 갖춰져 있었다.

신재현뿐 아니라 국세청에 직접 출석한 납세자를 조사할 때 쓰기도 했다.

집중하는 다른 직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회의용으로 쓰는 직원도 있었다.

신재현은 들어오자마자 조사단 사무실과 통하는 문을 잠갔다.

그리고 자리를 권했다.

모자란 의자는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여분을 가져와 앉았다.

신재현은 깍지를 끼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희 박원형 조사관님이 좀 실례되는 행동을 했나 봅니다. 제가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따질 줄 알았던 신재현이 고개를 숙이자 김선희가 반사적으로 한쪽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저 아까부터 이해가 안 가는데요. 팀장님이 대체 왜 사과하시는 거예요?”

“아까도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희 단원이니까 제가 책임지는 건 당연하죠.”

“그러니까 왜 감싸주시냐는 뜻이에요.”

“……네?”

“예?”

김선희와 신재현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분명히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걸 본 박원형이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신재현이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잠시만요, 왜 박원형 조사관님이 조사단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것부터 단추가 잘못 꿰인 것 같은데요.”

“그야 저런 사람이 조사단일 리가 없으니까요.”

“어째서……?”

이쯤 되면 박원형 잘못이다.

신재현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박 조사관님……?”

신재현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낮아졌다.

박원형은 재깍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완벽한 계획이 실패하면서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었다!

박원형은 벌떡 일어서서 김선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아까 식당에서 우연히 김선희 조사관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모르는 척 끼어들었던 겁니다. 조사관님이 우리 팀장님 산하에 들어오셨다고 해서요.”

신재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 표정이었지만 일단 박원형이 설명으로 풀어내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김선희 조사관님을 스카우트한 사람 있죠? 제 목적은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걸 공개된 장소에서 대놓고 물어보자니 이목이 쏠리고 안 좋은 소문이 날 것 같아서 숨겼던 겁니다. 그게 오히려 역효과가 났지만요.”

김선희가 긴가민가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지금 그쪽이 조사단원이 맞다는 말씀이세요? 이 모든 게 제 오해라고?”

“네.”

박원형은 회의실 문으로 다가가더니 문 옆의 단말기에 공무원증을 갖다 댔다.

당연하게도 바로 인증되었다.

문이 찰칵 열리는 소리가 나자 김선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서 다가갔다.

이어서 그녀가 단말기에 자신의 공무원증을 대 보았지만 인증되지 않았다는 알림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녀는 멍하니 돌아서서 공무원증을 손에 든 채 말했다.

“진짜네?”

“네. 진짜라니까요! 김 조사관님이 저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셨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요. 제가 라인 하나 잡아보려고 어떻게든 붙는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맞는데, 아…… 잠시만요, 저 지금 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

김선희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 앉았다.

“흐아아, 말도 안 돼…… 아, 쪽팔려!”

그리고 김선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래도 김선희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순수하게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선의였으니까.

그녀 입장에서는 권력을 탐하는 기생충 같은 기회주의자가 들러붙는 걸 방지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최서웅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조사단이고 신재현이고, 심지어 박원형까지 다 못마땅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도 박원형 때문에 조사단에 구설수가 생기는 걸 보고 싶어서였으니 말 다했다.

김선희는 부끄러움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최서웅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는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지금 장난합니까? 조사단원이 대체 뭐 때문에 이러고 다녀요? 몰래카메라라도 찍습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다니는 거야?”

박원형이 자세한 뒷사정을 설명하려는 순간 신재현이 손을 들어 막았다.

최서웅에게서 안 좋은 느낌은 받은 것이다.

순수한 선의가 아닌 데서 피어오르는 불쾌감 말이다.

신재현은 찬찬히 그를 훑고는 이내 여유롭게 표정을 바꿨다.

“박 조사관님께는 제가 따로 부탁드린 게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분이 오해를 한 것 같은데요. 우리 단원이 혹시 피해를 끼치거나 실례되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만 아니라면 굳이 그렇게 화내실 필요가 있나요?”

김선희나 박원형을 대할 때와는 달랐다.

순식간에 날카롭게 바뀐 신재현의 모습에 최서웅이 움찔했다.

“아니면 뭡니까, 제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안 되나요? 다음부턴 조사관님께 허락이라도 받을까요?”

나이는 비록 어릴지라도 직급상으로는 신재현이 위였다.

지금 자신이 상사에게 명백히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서웅이 일어선 채로 굳었다.

공무원은 나이 제한이 풀린 이후로 개개인의 나이보다는 직급을 엄격하게 따졌다.

물론 하급자의 나이가 더 많으면 서로 존중해 주긴 하지만 지금 최서웅은 존중의 단계를 넘어섰다.

“박원형 조사관님, 확실하게 말씀하세요. 피해를 끼쳤습니까?”

박원형은 긴장한 얼굴로 빠릿하게 대답했다.

“제 짧은 생각이긴 하지만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말실수라도 할까 봐 일부러 말을 아꼈거든요. 그래서 이런 오해가 생기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군요. 혹시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매서운 눈빛에 최서웅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해 보면 박원형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억지로 막아서거나 무리하게 따지고 든 적도 없었다.

오히려 막아선 것은 그의 공무원증을 빼앗아 본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최서웅이었다.

할 말이 없어진 그는 머뭇거렸다.

평소의 성격이라면 뭐라 트집을 잡아 따지고 들었을 텐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주눅이 들었다.

헛소리 한마디만 하면 바로 불호령이 날아올 것 같았다.

‘나이도 한참 어린데 어째 이렇게 말 한마디를 못 하겠냐…….’

최서웅이 입 한번 떼지 못하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해결된 것 같네요. 그쪽 분은 혹시 이견 있으십니까?”

권새호에게 시선이 쏠리자 그는 화들짝 놀라며 눈동자를 굴리더니 새삼 진지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러니까 박원형 조사관님이 사실 조사단이고, 거기서 쭉 일해오셨다는 뜻이죠?”

참 못 믿는 사람이네, 하면서도 신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중간에 들어오신 분도 아니고 처음 결성 때부터 있었던 멤버입니다.”

“그럼 박 조사관님이 한 번도 정도에 어긋난 적이 없었단 말이죠?”

이건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의아해하면서도 신재현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대체 왜…….”

권새호는 긴장이 풀린 듯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여전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혼자만 다른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는 권새호를 보며 사람들은 잠시 멍해졌다.

“본청으로 오셔서 조사단까지 들어가시다니. 진짜 잘된 일입니다. 어휴, 좋은 사람 하나 잘못된 길로 가시는 줄 알고 걱정했잖습니까. 사람 놀라게 하지 좀 마세요.”

주위에서 어떤 눈으로 보든 간에 기쁜 얼굴로 헤실헤실 웃는 권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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