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17화 (417/500)

417화. 꿀에는 벌레가 꼬인다 (4)

대화 장소는 카페로 바뀌었다.

‘자세히 얘기 좀 들려주세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박원형이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당초 박원형이 카페로 데려간 것은 대세에 합류했니 마니 떠들던 여자, 김선희뿐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진 권새호가 따라붙었고, 조사단을 고까워하던 남자 직원 최서웅도 뒤를 따랐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은 동료 직원들도 구경하러 따라 나왔다.

카페에 무려 7명이 둘러앉았다.

권새호는 정면으로 마주 보고 앉은 두 남녀, 박원형과 김선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대세고 뭐고 이런 건 비밀이야기 아닌가? 다 따라왔는데 그냥 보고 있네.’

같은 과에서 일하는 김선희가 왜 이러는지는 이해가 갔다.

아까 우리 과가 중요하네 어쩌네 징징거리던 최서웅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동아줄을 잡았어. 너는 그냥 능력도 없으면서 노력할 생각도 안 하고 징징거리기만 할 뿐이야.

왜 김선희가 잘난 척하듯 이야기를 꺼냈는지도 이해했다.

최서웅은 틈만 나면 조사국으로 가고 싶다며 우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본청씩이나 와서 대체 무슨 열등감인지는 모르겠는데 매일같이 듣고 있자면 짜증이 치솟는다.

그 입을 막아주고 싶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기회에 깨갱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권새호가 보기에는 김선희도 그다지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마음이야 이해는 가지만 이건 어찌 보자면 자랑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유력 파벌에 합류했다는 자랑 말이다.

이걸 대놓고 보여주겠다는 속셈이 보여서 씁쓸해졌다.

이러면 신재현 안티도 늘어날 텐데.

어느 조직이든 능력이 아닌 정치질로 요직이 정해진다면 당연히 반발하는 사람이 생긴다.

오낙현이 청장이 되면서 파벌도 유명무실해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생각했더니, 이제 새로운 파란이 불게 생겼다.

김선희든 최서웅이든 둘 다 도긴개긴이라는 생각과 함께 문득 의문이 스쳤다.

그렇다면 김선희와 마주 앉은 이 남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지나가다가 갑자기 ‘자세히 들려달라’니.

일반 공무원이 할 법한 소리는 아니었다.

이 사람도 권력욕이 있는 건가?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사단에 숟가락 한 번 얹어보고 싶다고?

그렇다기에는 분위기가 기묘했다.

진짜 조사단에 붙고 싶은 거라면 김선희보다는 그쪽에 비비는 게 맞지 않을까.

‘아, 조사단 쪽에서는 이제 사람 안 받아주나? 아닌데, 듣기로는 공격적으로 세를 불리는 것 같았는데. 그럼 뭐지? 자기도 소개해 달라는 건가?’

권새호는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김선희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진짜 궁금합니다. 조사단에서 사람을 구하는 게 맞습니까?”

남자의 질문에 김선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과도한 관심에 조금 부담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금세 익숙해졌다.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글쎄요. 저야 내부 사정은 모르죠. 하지만 직계가 포섭하고 다니는 걸 봐선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 직계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말에 권새호는 조용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았다.

말을 건 저 청년이 커피를 사 준 건 김선희뿐이었기 때문에 따라온 직원들은 사비로 먹고 싶은 걸 알아서 결제한 상태였다.

“직계라고요? 그런 단어를 용케 쓰시네요.”

청년의 얼굴에 약간의 비웃음이 서렸다.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청년이다 싶었다.

김선희가 정색했다.

“제가 지은 단어가 아니에요. 그런 말이 굳어졌다니까요?”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박원형의 질문이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쳤다.

“김선희 조사관님 끌어들인 사람이 그런 말을 썼나요?”

“네. 들은 얘깁니다.”

“본인 스스로 뭐라고 하던가요? 아, 제가 절대 김선희 조사관님을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정말 확실하신 건지 궁금해서 그래요. 저도 그쪽에 관심이 많거든요.”

박원형은 일부러 김선희를 의심하는 척했다.

김선희도 나름 본청까지 온 사람이니 머리가 있을 테고, 그렇다면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줘도 박원형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나마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감정적 동요를 일으켜야 했다.

그나마 신재현처럼 사람 보는 눈도 날카로운 종류의 사람이라면 안 통하겠지만, 김선희는 다행히 순진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욱한 김선희가 다른 생각을 떠올릴 틈도 없이 받아쳤다.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신재현 사단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그쪽에 스카우트를 받았고요.”

거짓말을 할 때는 진실을 섞어 말하라고 했던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김선희에게 사실을 말하긴 했다.

신재현 사단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니까.

사단이라고 부를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세무서 시절부터 신재현을 따라 온갖 고생을 다 한 4명의 원년 멤버들은 완전히 신재현의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조사단까지 손에 쥐면서 신재현의 세력은 일반 공무원들이 인식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예전에는 신재현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 잘하는데 막 나가는 또라이 공무원’ 정도였다면 지금은 ‘세력까지 갖춘 또라이’ 취급이었다.

한마디로 소수라 할지라도 이미 대세라 보고 있다는 뜻이다.

박원형은 눈썹을 꿈틀했다.

“이야, 피라미드처럼 조직도가 딱 짜여 있나 보네요. 그냥 파벌 수준이 아니네. 엄청 체계적인데요?”

“중심인물이 딱 잡혀 있으니까요. 예전에 민치호 청장님이나 오낙현 청장님 때도 그랬잖아요. 누가 누구 세력인지 딱 보이는 상황에서 싸움이 치열했죠. 물밑에서였지만.”

“그럼 그쪽에서 김선희 조사관님을 스카우트하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의심이 참 많으시네. 제가 비록 조사국은 아니지만 나름 세무서에 있을 적엔 큰 건을 해결한 전적이 있어요. 그리고 세법 해석하면 또 우리 과 아닙니까. 스카우트한다고 이상할 건 없죠.”

“의심한 건 아닙니다만 이상해서 그래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확실하게 자기가 조사단 소속이라고 했습니까?”

“그럼요. 확인도 했어요. 본인 공무원증으로 조사단 사무실도 열던데요?”

이 말에는 박원형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사단의 누군가가 사람들을 포섭하고 다니는 건 확실하다.

‘그럼 진짜 신재현이 사람 모으고 다니나?’

권새호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조사단 사람이 저러고 다니는 거라면 신재현의 묵인하에 그럴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박원형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구체적으로 그 사람이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 이름 말해주던가요?”

“이름 알면 직접 찾아가서 받아달라고 말씀하시게요?”

박원형의 행동 덕분에 김선희는 그를 지금 완전히 권력욕의 화신이라고 굳힌 상태였다.

‘저런 사람이 조사단에 들이대면 안 되지. 어쩜 국세청에 이렇게 권력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와 있을까? 절대 알려주지 말아야겠다.’

오히려 김선희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자리를 뜨려 했다.

“어? 어, 잠시만요.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해 주고 가세요!”

당황한 박원형이 잡으려는 순간,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던 남자가 시비를 걸듯 말했다.

계속 조사단을 아니꼽게 말하던 법령해석과의 직원, 최서웅이었다.

“거기서 무슨 부귀영화를 약속했는지 모르겠지만 공무원 긍지도 없나보네요. 권력의 중심에 붙으려고 하다니.”

울컥한 김선희가 도로 주저앉았다.

“거기가 권력의 중심인 건 맞죠. 근데 그렇다고 제가 권력을 탐하는 건 아니에요. 일 잘하고 청렴하고 과감하고 결단력 있고. 이런 사람들이 국세청의 미래인 건 맞잖아요. 같이 일해보면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가 잘못됐나요?”

“사람을 포섭한다는 것부터가 웃긴 일이라고요. 진짜 거기서 스카우트한 거 맞아요? 뭘 약속했는데. 다음에 조사국에 넣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냥 빈말로 칭찬한 건데 김칫국 마시는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둘의 싸움 구도가 됐지만 박원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를 얻을 절호의 기회다.

어쩌면 중요한 힌트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박원형은 눈알이 빠질 것처럼 김선희의 입만 노려보았다.

“최 조사관님은 그냥 조사단이 싫으신 거잖아요. 아까 그랬죠? 조사단만 주목하고 우리 같은 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조사단에서 왜 저한테 제안이 왔겠어요? 세법해석과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요. 그 사람들은 권력, 이런 거 신경 쓰지 않아요. 그냥 어느 과든 상관없이 인재를 찾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어이구, 얼굴에 금칠은 아주 잘하시네. 그게 이상하단 말입니다! 왜 김 조사관님을 스카우트해요? 세법해석과에서 사람을 찾을 거면 가장 먼저 나한테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말은 그냥 흘려듣기 어려웠다.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최서웅에게 쏠렸다.

그는 감정에 북받쳐 말을 해놓고도 부끄러웠는지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 아니. 말하자면 그렇단 얘깁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머쓱해진 최서웅이 헛기침을 했다.

싸울 것처럼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하여튼 뭐, 진짜라면 축하드리겠는데 너무 좋아하실 일은 아니란 말입니다. 이렇게 소문이 돌 정도로 한꺼번에 많은 사람 포섭하는 거면 공수표를 남발할 수도 있어요. 그 사람들 다 안고 갈 수는 없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까 이상하네. 국세청에 상대할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자기 사람을 급하게 모으지?”

이성을 되찾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들었나 보다.

김선희도 이제야 머리가 굴러가는 듯했다.

“저도 그게 좀 이상하긴 했어요.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조사단이 정치인 상대를 많이 했잖아요. 국세청이 위협받을 가능성을 생각해서 미리 믿을 만한 사람을 모으려는 거 아니에요?”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 부끄럽지 않습니까?”

“최 조사관님도 아까 당당하게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안 부끄러운데요. 스카우트 받았다고 말한 마당에 이제 못할 말이 없다고요.”

“허 참…… 김 조사관님 가끔 보면 참 당돌해. 대단하단 말이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싸우던 둘이 얼굴을 맞대고 이상한 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박원형은 아쉬운 얼굴을 했다.

어떻게 끼어들어 정보를 캐낼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그런 박원형을 주시하는 직원이 하나 있었다.

권새호,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내내 박원형을 관찰했다.

김선희든 최서웅이든 그들의 사고방식은 이해의 범주 내에 있다.

그러나 어느 과인지도 모르겠는 이 청년의 경우에는 도무지 어떤 논리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경종을 울렸다.

떠오를 듯 말듯 간질간질한 감각이 이어지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직접 물어볼까 하다가 불현듯 6년 전의 연수원이 떠올랐다.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조용한 청년이었다.

별다른 특징도 없었고 오며가며 한두 마디 건넨 것밖에 없어서 지금 와서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소식은 그 후에 들었다.

-우리 동기 중에 거물 도련님 건드려서 2급지 세무서로 날아간 사람 있대.

그때도 뭐라고 대답했더라.

아, 진짜? 세상 진짜 뭣 같네.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또 귀신같이 까먹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이 세상에 불합리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안다고 해서 해결할 수도 없고 그냥 욕 한 번 세게 하고 털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청으로 와 있었구나.’

거물 도련님을 건드렸다면 나름 지조 있고 청렴한 공무원이라는 뜻일 것이다.

말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았지만 그런 동기가 승진해서 중앙으로 왔다니 기쁜 일이다.

솔직하게 축하해 주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영 아닌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아는 그 동기라면 절대 권력에 매달릴 사람이 아닌데 왜 김선희에게 접근했을까.

‘뭔가 있는 게 분명해.’

권새호는 고심 끝에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슬슬 점심시간도 끝나가고 둘의 말싸움도 유야무야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뭔가 목적이 있다면 이제 속내를 드러낼 때가 됐다.

과연 박원형은 손목시계를 흘끔 보더니 초조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김선희 조사관님. 저도 그쪽에 소개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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