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꿀에는 벌레가 꼬인다 (3)
나는 박원형을 데리고 사무실에 연결된 자그마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서울청 시절의 내 팀인 4명도 뒤따라 들어왔다.
평소에도 이 넷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다행히 이상하게 보지는 않았다.
아마 시장 건도 끝났으니 새로 누굴 칠지 회의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예전에 삼성 세무서에 있을 때도 이랬던 적이 있는데, 이미 네 명은 내 사람이라고 인식이 박혀 있어서 따로 데리고 뭘 하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내가 따로 지시를 내리는 경우도 있고.
다만 박원형을 데려온 것은 좀 이상하게 볼 줄 알았는데 이것도 그냥 넘어갔다.
왜지?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이라 그런가?
어쨌건 회의실 문을 잠그고 둘러앉은 우리는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복도에서 들은 겁니다. 다른 과 직원이 얘기하고 있었거든요.”
이어지는 박원형의 말을 들을수록 나는 심호흡을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당초 제안을 거부했다는 그 직원 때문이 아니다.
그거야 그럴 수 있지.
자기 커리어를 거는 일인데 절대 남의 강요로 해서는 안 된다.
동료 직원의 말마따나 거절한 직원이 나쁜 게 아니라 흔쾌히 팀에 합류해 준 저들이 고마운 거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가 지금 국세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안다.
3년 만에 6급으로 승진한다는 것부터가 이례적이니까.
이선균과 내가 민치호의 사람인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민치호가 청장 자리에 앉게 되면 내게 한자리 줄 거라 생각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아직 내가 어리니 탄탄대로를 걸을 거라고 예상하겠지.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놈이 나쁜 거지.
“박원형 조사관님 말씀 들어보니까 소문이 꽤 구체적이고 멀리 퍼진 것 같네요.”
나는 이를 뿌득 갈았다.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데 강혜원이 박수를 짝 쳤다.
“제가 그랬잖아요, 팀장님. 지금 조사단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다들 여기가 엘리트 코스인 줄 알고 있다니까요?”
강혜원이 허리에 손을 얹으며 씩씩댔다.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덕분에 내 화가 쑥 가라앉았다.
그야 조사단에 있는 사람들은 능력도 입증했고 각오도 보여준 셈이니 국세청 입장에서는 믿고 쓸 수 있는 인재나 다름없다.
아마 조사단 해체되면 다른 사람들 예상대로 중용되겠지.
하지만 이건 나와 함께 일해서, 조사단원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능력과 마음가짐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단원들의 그 노력이 폄하된 것 같아 괜히 화가 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 제 이름 팔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네. 제가 듣기론 그랬습니다. 팀장님이 누군가를 시켜서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투였어요.”
장세훈도 거들었다.
“내가 들은 소문도 비슷해. 네가 자기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고. 그…….”
장세훈이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뭔가 소문의 내용이 더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나는 그를 재촉했다.
“괜찮아요. 사실대로 말씀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알고 대처할 것 아닙니까.”
거침없이 할 말 다 하는 장세훈까지 머뭇거릴 정도면 내용이 꽤 심각한가 본데.
나는 나름의 각오를 다졌다.
장세훈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어렵게 입을 떼었다.
“신재현이 자기만의 지지 세력을 만들고 있다. 오른팔, 왼팔이 되어줄 사람은 이미 찼고 그 밑에 조사단이 있다. 거기까지가 이른바 직계고, 그들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 대충 이런 얘기야.”
박원형이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냥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어이가 없네…….
“그래서 직계 얘기가 나온 거네요. 그니까 제가 우두머리고 조사단이 이미 다 저한테 포섭되었다 이거죠? 뭐야, 이건 그냥 사조직인데?”
아니, 파벌을 만든다 해도 이렇게 티 나게 사조직처럼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나.
파벌이고 나발이고 그건 다 국세청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내에서 하는 일이다.
지금 소문 속에서 나는 윗선의 편애와 묵인하에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사조직의 장이 되어 있었다.
민치호도 저런 식으로 파벌을 만들지는 않았다.
아니, 그랬다면 당시 청장이었던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겠지.
사조직이라니.
누가 그걸 용납하겠는가.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제가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건 할 수 있는 말이라 치고. 누군가를 시켜서, 라는 부분이 걸리네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잖아요. 목적이 뭘까요?”
“팀장님을 위해서는 당연히 아니겠죠?”
“정말 순수하게 절 위해서 저러는 거라면 너무 멍청한데요. 본청에서 일할 정도면 나름 공부도 많이 하고 머리도 있다는 건데 설마 그렇게까지 어리석겠어요?”
그런 사람이 본청까지 올라와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승진하고 연차 쌓여서 과장급에 올라갔다고 생각해 보자.
유능하고 열심인 상사는 피곤하지만, 무능하고 열심인 상사는 조직을 망친다.
거기에 벌써부터 보이는 정치질의 향기라니.
나중에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팀장님은 지금 조사단 내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내 생각을 꿰뚫어본 것처럼 강혜원이 물었다.
안길진이 조금 놀란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네. 조사단원이 제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졌는데 다른 과 사람이 파벌을 모으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소문 자체가 좀 그렇습니다. 제가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그 당사자에게 유리하게 짜인 것 같아서요.”
소문 속에서는 내가 우두머리인 것 같은데, 정작 나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진짜 날 위해 몰래 사람을 모으고 있던 거라면 아예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인재를 포섭하고 다니지 않았을까?
내 이름을 가장 앞에 내세웠으면서 정작 중요도는 조사단이 내 파벌의 직계다, 라는 데에 쏠려 있다.
그러니까 조사단원이라면 내 이름값을 빌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누군지 알아내야죠!”
강혜원이 당장 손에 잡히면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을 기세로 말했다.
“네. 그래야죠. 하지만 제가 직접 직원들에게 물어서 조사하는 건 하책입니다.”
대놓고 숨기라고 말해주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 이들이 중요했다.
박원형이 눈치 빠르게 끼어들었다.
“제가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박원형은 의욕 넘치는 얼굴이었다.
어째 당사자인 나보다 더 열정적이다.
하지만 고마운 일이다.
내가 직접 움직이면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누군지는 몰라도 내게 대놓고 말할 리도 없고.
“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도요. 가장 중요한 건 대체 누가 그러고 다니냐는 겁니다.”
옛 팀원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자 그들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의 출처를 알아봐 주시되 절대 먼저 그쪽에 접근하지는 마세요. 누군지만 제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박원형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대한 빨리 어떤 새끼…… 아니, 어느 분인지 이름을 대령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살의를 불태울 것까지는 없고.
이러다 잡히면 나보다 이 사람들이 먼저 사고 치겠네.
장세훈이 주먹을 문질러 우드득 소리를 냈다.
“잡히면 죽인다.”
아예 대놓고 죽인다고 말하네.
강혜원이 목을 좌우로 돌리고 황민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나는 머리를 짚었다.
어쩐지 나보다 화난 것 같은데 맡겨둬도 괜찮겠지?
그래도 다들 판단력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사무실에서 누군가를 믿고 일을 맡겨야 한다면 당연히 이 사람들이었다.
“죽이지만 마세요…….”
어딘가 불안한 내 당부와 함께 팀원들이 조용히 분노를 불태웠다.
***
국세청 세종시 본청은 다른 세무서나 지방청과 달리 관할을 따로 두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본청이 담당하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세정이니까.
때문에 본청에는 다른 곳에 없는 특별한 부서가 몇 있었다.
징세법무국 법령해석과도 그중 하나다.
법령해석과는 말 그대로 세법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실무진에게 지침을 세우는 일을 맡았다.
여타 법이 그렇듯 세법 역시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그럴 경우 대통령령으로 세법의 구멍을 메꾸거나 내부 지침을 만들었다.
그러고도 해석에 의견이 갈릴 경우 결국 소송, 그러니까 조세심판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그렇게까지 가면 납세자고 국세청이고 시간 낭비도 심할 뿐더러 손해도 막심하다.
그러기 전에 납세자가 미리 헷갈리는 세법을 물어볼 수 있는 창구가 있었다.
질의회신.
국세청은 국세법령정보시스템이라는 페이지에 모든 세법과 대통령령, 그리고 조세심판의 사례를 공개했다.
납세자에게 명확한 탈세의 기준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애매한 사례는 직접 국세청에 물어볼 수가 있었다.
그러면 누가 대답을 하느냐.
바로 국세청 본청의 법령해석과다.
이들은 조사과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어찌 보면 모든 국세 실무의 기준을 세우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보람과 긍지를 갖고 일했지만 지금 그것을 흔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반인들은 이런 과가 있는지조차 모른단 말이죠. 사실 얼마나 중요한 과인데.”
법령해석과의 직원 권새호는 동료의 말에 잠자코 귀를 기울여 주었다.
지금 권새호는 법령해석과 동료 직원들과 함께 식당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중이었다.
그중 한 명이 지금 열변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대외적인 일을 하고 눈에 띈다고 해서 모든 주목을 다른 과가 휩쓸어가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닌데. 권새호는 조용히 미역국을 떠먹으며 아무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과 사이에 알력싸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게다가 공무원은 매년 발령지가 다르다.
올해는 법령해석과였지만 내년에는 조사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초에 주목을 왜 받고 싶어 한단 말인가.
조사과가 화려해 보인다 해도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눈에 띄고 싶다고 저러고 다니겠는가.
법령해석과라고 누가 무시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뜬금없다고 느껴졌다.
‘무슨 공무원이 주목도를 따져. 어디 선거 나가나?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하고 월급 받아 가시면 되지.’
권새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불행하게도 열심히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는 남자가 바로 앞에 앉아 있기 때문에 권새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표정에 속마음이 드러날까 봐서였다.
‘이 사람은 요즘 들어 심해졌네. 예전엔 좋은 과 가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정도였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대?’
남자의 발언이 최근 들어 갑자기 이상해졌다.
누군가가 헛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남자는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말을 이어갔다.
“당장 최근에 국세청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너무 요란해요. 한쪽에 시선이 쏠리지 않습니까. 국세청에 그 과만 있는 것도 아닌데.”
아하, 조사단이 인기 얻으니까 질투하는 거였구나.
권새호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보면 볼수록 헛웃음이 나왔다.
‘정작 해보라고 판 깔아주면 국회의원 앞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면서. 말로만 하지 말고 진짜 해보고 큰소리치던가.’
남자는 말하다 말고 갑자기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파벌 얘기도 그렇습니다. 아니, 자기가 뭔데 벌써부터 사람을 모아? 국세청을 장악하겠다는 거야, 뭐야. 일 잘하고 열심히 하길래 좋게 봤는데 이미지가 확 깨졌어요. 역시 사람은 끝까지 봐야 해요. 속내를 이렇게 드러내잖아요.”
권새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조사단을 고깝게 보는 사람이 늘어난 이유에는 저 소문도 한몫했다.
아직 6급이면서 벌써 국세청을 손아귀에 쥐겠다는 심산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에도 조금 이상하긴 했다.
화제의 인물은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 급하게 나설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국세청의 중심이 될 인물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다른 직원들의 반감을 살 필요가 있었을까?
그가 고개를 갸웃하며 옆으로 돌리자,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흘리며 밥을 먹는 동료 직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또 시작이네, 듣기 싫다’라는 표정으로 조용히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명, 서른 초반의 여성만이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저 얼굴에 드러난 감정은 여유라기보다는 ‘가소롭다’에 가까웠다.
그 표정이 남자의 눈에 띄었나 보다.
남자는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 조사관님은 다른 생각이 있으신가 봅니다.”
여자는 내려다보듯 시선을 깔았다.
“대세인데 합류해야지 어쩌겠어요. 조사관님은 대세에 합류하지 못하셨나 봐요. 저는 성공했는데.”
직원들의 시선이 쏠리자 여자는 은근히 뽐내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조사단이 곧 차세대 국세청이에요. 그 사람들이 흩어져서 각각 국장, 과장을 맡으면 국세청의 중심은 누가 되겠어요?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른 바로 그 사람이지.”
누군가 ‘오, 조금 부러운데’라며 혼잣말을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다만 권새호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거부감이 일어났다.
‘내가 생각한 신재현이라는 사람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권새호가 뭐라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쾅!
누군가가 지나가다 말고 멈춰 서더니 이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누군지 모르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얼떨결에 테이블을 내리치고 아차 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목소리를 낮춰 은근하게 물었다.
“저도 그 얘기 관심이 많은데요. 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대세, 저도 타 보고 싶습니다.”
웃는 낯으로 냉큼 자리에 앉은 청년은 바로 박원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