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15화 (415/500)

415화. 꿀에는 벌레가 꼬인다 (2)

“그거 알아? 이제 대세는 신재현이야.”

조사단 제1반 멤버인 박원형은 이런 얘기가 들려올 때마다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화장실에 갔다가 복도를 지나오는데 다른 과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사무실에서 나오던 직원들이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는 길이었나 보다.

삼삼오오 짝지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직원들의 화제는 단연 조사단이었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건만 저절로 발이 멈췄다.

‘그래, 이건 엿듣는 게 아니다. 지나가는데 들려온 거야!’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박원형은 아주 천천히 복도를 걷는 척했다.

직원들의 목소리는 꽤 컸기 때문에 복도 중간까지 왕왕 울렸다.

그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완전 승승장구하는 거 봤어요? 처음에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때 들어오랄 때 들어갈 걸 그랬나?”

박원형은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소리가 새어 나갈 것 같아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에게는 따로 제안이랄 게 오지 않았다.

신재현이 부산청에 파견 나가 있을 때 일이다.

박원형은 지역 2급지 세무서에서 법인 세무 조사를 하다가 지역 유지와 과장이 유착 관계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지나가면 편하겠지만 박원형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신재현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왔다.

과장을 쳐내고 스리슬쩍 넘어가려던 법인의 세금도 올바르게 과세되었다.

그때 신재현이 직접 할 수 있는 걸 해보라며 쥐여 주고 간 명함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항상 지갑 속에 넣어두고 다닐 정도였다.

얼마나 고이 갖고 다녔는지 아직도 끝부분 조금 구겨진 것만 빼면 때도 타지 않았다.

그저 작은 명함 한 장이었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이것을 볼 때면 불의를 외면하지 않기로 결심한 날, 그리고 세상에 정의가 있다는 것을 직접 본 날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동시에 그가 그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한 상징이기도 했다.

일이 힘들거나 마음이 해이해지면 명함을 떠올리며 그날의 짜릿했던 기억을 되새김하는 것이다.

신재현도 박원형을 잊지 않았는지 그에게는 따로 제안이랄 것이 오지 않았다.

대신 바로 국세청으로 발령이 났다.

자신의 의사를 묻지 않은 처사였지만 환호했다.

원래 공무원의 발령이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이동하는 일이 흔하다.

지방의 2급지 세무서에서 국세청 본청의 주요 부서라니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나와 있다.

그런데 조사단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미리 제안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위험할 수도 있다 보니 각오가 된 사람만 받는 것 같았다.

‘그럼 난 물어볼 필요도 없이 믿고 있다는 말이겠네.’

그것이 박원형을 더욱 기쁘게 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팀에 넣었다는 뜻이니까.

지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말하는 직원들도 그 대상이었나 보다.

“어? 효진 씨가 제안을 받았었어요?”

“네. 받긴 했는데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날 바로 거절했거든요.”

“아니, 고민도 안 해보고?”

“그 당시엔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신재현 팀장님 별명이 저승사자라는 건 그만큼 폭풍을 몰고 다닌다는 뜻이잖아요. 그야 옆에서 보면 응원하고 싶고 멋있긴 한데…….”

제안을 거절했다는 직원이 말끝을 흐렸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껄끄러운 내용인 것이다.

그러자 동료 직원이 정곡을 찔렀다.

“솔직히 무섭죠. 아, 팀장님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무섭다는 뜻이에요.”

“네. 그거예요. 초반에 시작하자마자 그 소문도 돌았잖아요. 조사단 가족들한테 외압 들어왔다고. 저 그 얘기 듣자마자 소름 돋았어요.”

“어, 그거 소문 진짜예요? 저도 듣긴 들었는데 설마, 하고 넘겼거든요.”

직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때문에 박원형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쫑긋했다.

“그거 진짜 맞대요. 조사단에 있는 제 동기한테서 들었어요.”

“와…… 장난 아니다. 역시 여의도가 그렇게 무섭다니까요?”

“바로 그거예요! 제가 제안 받고서 딱 생각난 게, 신 팀장님이 1년차 때 국회의원 한 명 건드린 사건 있었잖아요. 그걸로 한창 난리 났었는데.”

“그때 확 주목을 받으셨죠. 아마 그 사건 이후일 거예요. 팀장님이 뉴스를 타고 여론에 오르내리신 게.”

“네. 그게 떠오르면서 아, 조사단까지 만들 생각이면 정말 거물만 치겠구나. 그건 좀 위험한데, 싶어서 바로 거절한 거예요.”

또 다른 직원 하나가 말끝을 흐렸다.

조금 의견이 다른 것 같았다.

“네에.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긴 한데. 실제로 팀장님이 다 해결했잖아요. 전 그게 더 소름 돋던데.”

“그게 제 판단 실수죠. 아니, 국회의원이 작정하고 죽이려고 덤비는데 그걸 막아내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박원형은 자기 칭찬을 들은 것처럼 마냥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그리고 너무 복도에 오래 있었나 싶어 괜히 벽에 붙은 포스터를 읽는 척했다.

청렴 기관이 되자는 내용의 포스터였는데 글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쉽다는 거예요? 에이, 그때 그렇게 단칼에 거절한 거면 아쉬울 것도 없죠.”

옳소!

박원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원래 힘들 때 진짜 친구를 알아볼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신재현이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을 때, 조사단에 합류하겠냐는 제안을 받은 사람들은 다들 똑같은 고민에 휩싸였을 것이다.

저 직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공무원 생활을 걸고 성역을 조사해 볼 것이냐, 아니면 위험하니 몸을 사리고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 것이냐.

누군가는 ‘그래, 한번 해보자’라며 흔쾌히 조사단에 합류했고 누군가는 저 직원처럼 몸을 사렸다.

한마디로 지금의 조사단원들은 저마다의 각오를 하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옥석을 가려내기에는 최적의 제안이었다.

만약 그때 조사단을 모집하던 윗선에서 ‘최대한 보호하겠다’라는 보장을 했다면 지금의 끈끈한 조사단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외부에서 흔들었을 때 금방 틈이 생겼겠지.

그러니 지금 저 직원의 말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 그때 들어오지. 이제 조사단이 잘 나가니까 젯밥이나 먹어볼까 하는 거 아냐. 본인 결정이면서 대체 뭐가 아쉽다는 건데.’

다행히도 저 직원의 동료는 박원형과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조금 날카로워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아쉽고 말고가 뭐 있겠어요. 그냥 끝인 거지. 저쪽 팀은 본인들이 잘릴 생각으로 들어간 거잖아요.”

“에휴, 그러니까 말이에요. 저도 이런 제가 싫긴 한데 솔직히 저 잘리고 싶지 않아요.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국세청까지 왔는데요. 지금 잘리면 취직할 데도 없고. 당장 생활도 어렵거든요. 제가 너무 이기적인가요?”

박원형은 잠시 숙연해졌다.

그래, 사람마다 사정은 다 있는 법이다.

박원형이야 부양할 가족도 없고 신재현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했으니 발령받았을 때 자신을 잊지 않고 기회를 줬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러나 얘기를 듣고 보니 무작정 비난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박원형이 힐끔 엘리베이터 쪽을 보자 동료 직원 역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제안을 거절했다는 직원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그럴 수 있죠. 우리 같은 소시민은 원래 파도 따라 쓸려가는 대로 사는 거예요. 조사단이 진짜 대단한 거지 우리가 못난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자고요.”

박원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조사단의 활약에 스스로 도취되어 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박원형은 반성했다.

‘맞는 말이네. 저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닌데. 왜 나는 괜히 경계했을까. 난 그냥 일개 직원일 뿐인데.’

너무 오래 복도에 서 있기도 했고 마침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나기에 박원형 역시 걸음을 떼었다.

다른 과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그런데 두 직원이 엘리베이터에 타기 직전에 들린 말이 그의 걸음을 다시 멈추었다.

“근데 진짜 아쉽잖아요. 지금 조사단이 신재현 파벌의 직계나 다름없는데, 대놓고 조사단 시켜서 파벌을 모으고 있잖아요. 앞으로 얼마나 큰 힘을 가지겠어요? 요직이란 요직은 다 앉을걸요? 아니지, 신 팀장님은 승진도 빠를 테고. 벌써 6급이니까 국장급 되면 저 사람들은 다 한자리씩…….”

뒷내용은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바람에 듣지 못했다.

박원형은 홀린 듯이 복도를 가로질러 뛰어갔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내려간 후였다.

그는 잠시 멍하니 서서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신재현 파벌? 직계?’

말 자체는 이상할 게 없다.

원래 국세청에는 여러 파벌이 있었고 박원형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쯤에는 이미 3개의 파벌로 정립이 된 후였다.

손경진과 오낙현, 그리고 민치호가 주축이 된 세 파벌의 존재와 그들 간의 피 튀기는 싸움은 일반 직원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그나마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니 일반 직원들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여길 뿐이었다.

지금은 와해되다시피 했고, 현 청장 오낙현과 차기 청장 민치호의 구도가 확고해진 이상 파벌 싸움은 이제 옛말이었다.

싸울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차세대의 문제가 남는다.

청장 임기는 2년에서 3년인데 민치호까지 청장을 하고 끝나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되는가.

마땅히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없으니 또 파벌이 생기거나 후보들끼리 박 터지게 싸울 것이다.

그럼 신재현도 파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국세청의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지금 폭풍의 눈은 신재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할 테니까.

‘팀장님이 미리 자기 사람 만드시나?’

그럴듯했다.

그를 끌어주고 키워주던 민치호까지 은퇴해 버리면 신재현은 이제 홀로 서기를 해야 하니까.

이미 혼자서도 막강한 힘을 가지긴 했지만 사람이 따르면 더욱 장악력이 커진다.

민치호 이후의 국세청장 싸움을 대비해서 사람을 모아두려는 걸 수도 있었다.

‘민치호 청장님한테 배워서 따라하는 건가?’

정치싸움 하느라 개판이던 국세청을 딱 3개의 파벌만 남기고 깡그리 정리해 버린 게 바로 민치호다.

몇 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고 또다시 개판이 될 것을 우려해 수를 쓰는 거라면…….

하지만 박원형은 어쩐지 찝찝했다.

그가 아는 신재현은 이렇게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신재현은 필요하면 싸우기도 하고 정치질도 하지만 나름 정해둔 선이 있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모일 텐데 이렇게 급하게 파벌을 모은다고?

지금 바쁜 조사단원까지 동원해 가면서 미리 국세청을 장악하기 위해서?

박원형은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의문과 함께 의심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자신이 존경하는 신재현의 이면을 본 듯한 기분과 함께 갈등이 샘솟았다.

가서 물어볼까? 아니면 모른 척할까.

박원형은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투명한 필름 아래에 들어 있던 명함을 보자마자 박원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갈등이라니.

조사단에 처음 들어온 날, 뭐든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절대 그냥 넘기지 말자고 결심했는데 그새 흔들리고 말았다.

그 대상이 신재현이더라도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정말 그가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인지, 아니면 뭔가 어긋나고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박원형은 지갑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성큼성큼 사무실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신재현은 직원들과 떨어진 구석지에서 옛 팀원인 장세훈, 황민우와 뭔가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장한 얼굴로 다가가는 박원형을 본 신재현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조금 긴장한 박원형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팀장님. 파벌 얘기가 돌던데 혹시 사람 모으고 계십니까?”

너무 긴장했나, 직설적으로 물어보고 말았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아차 한 박원형이 입을 다물자 신재현은 장세훈, 황민우와 기묘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곧 그와 눈을 마주친 박원형은 흠칫했다.

보기 드물게 신재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화를 삭이려는지 천장을 쳐다보며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웃는 얼굴로 박원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분명 웃는 얼굴인데도 무서웠다.

“안 그래도 그 소문의 출처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조사단에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 계신 것 같아서요. 분명 걸러서 받았다고 들었는데 누굴까요. 이제 좀 상황이 풀리니까 초심을 잃으셨나?”

말투는 살벌했지만 박원형은 오히려 안도했다.

역시 이번 일의 시작은 신재현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팔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저 지금 진지합니다. 어떤 놈인지 찾아야겠거든요.”

박원형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에서 불을 내뿜는 듯한 신재현을 보며 박원형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놈이 먹칠을 하고 다니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범인 찾기 같이해도 되겠습니까?”

꼭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진 두 청년이 두 손을 맞잡았다.

흡사 항전의 결의를 보는 기분이라 황민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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