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화. 꿀에는 벌레가 꼬인다 (1)
-와작, 와작.
나는 과자를 먹으며 TV 앞에 앉아 있었다.
장소는?
오랜만에 집이었다.
낮에 햇빛을 받으며 집에 있자니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었다.
요즘 하도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 그럴 만하다.
퇴근하면 바로 한밤중이다 보니 잠만 자고 나가기 일쑤였다.
덕분에 이 집으로 이사 온 후로는 여기서 햇빛을 본 적이 손에 꼽는다.
“재현아. 딸기 좀 먹어라.”
“어? 나 과자 먹는데.”
어머니가 마침 방금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아, 괜히 과자 먹었네.
“괜찮아. 달아서 상관없겠다.”
어머니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반을 동그란 그릇에 받쳐 놓았다.
나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 입구를 고이 접은 후 빨래집게를 꽂아 옆에 내려놓았다.
어머니 말대로였다.
딸기를 내려놓자마자 달콤한 향기가 훅 끼쳐 왔다.
크기도 꽤 커 보였다.
나는 홀린 듯이 새빨갛게 익은 딸기 한 알을 집어 들었다.
베어 먹을까 하다가 사치를 좀 부려보기로 했다.
한입에 집어넣고 깨물자 말랑한 과육 사이로 달달한 과즙이 터져 나왔다.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우와, 맛있네. 벌써 딸기 철인가?”
“벌써는 무슨. 철 다 끝나가. 이제 노지 딸기는 슬슬 끝이야. 다음 달에 나오는 딸기는 물 빠져서 맛없을걸?”
헉, 벌써 그렇게 되었나?
자동으로 벽에 걸린 달력에 눈길이 갔다.
4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일하다 보면 이게 문제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냥 사무실과 집만 반복하다 보면 한 달이 순식간이다.
내가 달력을 보며 굳어 있는 사이 어머니는 딸기를 먹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역시 비싼 거 사니까 맛이 좋네. 3팩에 만 원짜리 살까, 이거 살까 고민했는데. 이거 사길 잘했다.”
그 말을 듣자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딸기 한 팩 사는 것도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형편이 바로 몇 년 전이었는데.
딸기 한 팩에 비싸봤자 7천 원이다.
겨우 3~4천 원 아끼기 위해 그렇게 고민했던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엄마 좋아하는 과일 많잖아. 먹고 싶은 거 그냥 사. 그거 아낀다고 부자 안 돼.”
“그래도 어떻게 네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그렇게 쓰냐. 얘는 좀 번다고 막 쓰려고 하네.”
공무원이 박봉이라지만 주말근무에 초과수당까지 붙으니 그래도 꽤 나왔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만 벌어봤으면…….’ 하고 생각했을 금액이다.
어머니와 나, 둘이서 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긴다 싶으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걸 사 드리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한사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힘들게 번 돈인데 이렇게 쓰면 되겠니. 저축을 해. 나중에 어떻게 필요할 줄 알고.
어찌 보면 몸에 밴 것 같아서 슬프기도 했다.
나는 딸기 하나의 꼭지를 떼어 어머니 입안에 밀어 넣으며 웃었다.
“엄마 먹는 건데 막 써도 되지.”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그리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엄마가 체리 좋아하던가?”
“어후, 그건 너무 비싸더라. 들었다가 그냥 놨어.”
“그럼 다음에 내가 사 와야겠네.”
“아니야, 체리 그거 안 먹는다고 안 죽어. 됐어, 됐어.”
손사래를 치는 어머니를 보고서 나는 구석지에 던져두었던 핸드폰을 가져와 조용히 메모했다.
내일 잊지 말고 사 와야겠다.
“엄마, 카드에 여유 있게 넣어놨으니까 먹고 싶은 거 사고 그래.”
습관처럼 하는 말인데 혹시나 몰라 또 강조해 보았다.
이렇게 말해도 아마 다음에 마트를 가면 또 고민하다 적당히 타협해서 내려놓고 오겠지.
그나마 이 딸기를 사 온 게 큰 발전이었다.
나는 딸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거 봐봐. 비싼 건 돈값을 한다니까? 우리가 그렇게 비싼 거 먹는 것도 아니고 몇 천 원 더 쓰는 건데 뭐 어때.”
“아이구, 알았어. 이놈아.”
잔소리에 귀가 아프다는 듯 어머니가 손을 저으며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TV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번 주는 국세청의 최근 행적에 대해서였다.
즉, 시장 말이다.
“이거 본다고 오늘 집에 있는 거였어?”
어머니가 TV 화면에 나오는 시장의 시커멓게 죽은 안색을 보더니 말했다.
“꼭 볼 필요는 없긴 한데, 가끔 궁금하더라고. 언론에서 어떻게 정리하는지.”
우리는 탈세나 그 밖의 불법적인 증거를 찾고 절차대로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방송은 좀 달랐다.
말실수라든가 도의적으로 밝혀지면 곤란한 것들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우리 쪽에서는 이미 시장에 대한 조사가 끝나고 조금 여유가 난 상황인데, 언론에서는 이제 시작이었다.
때문에 시간이 나면 가끔 이렇게 챙겨보곤 한다.
우리는 조용히 딸기를 주섬주섬 입 안으로 넣으며 화면에 몰두했다.
-이 영상은 지난 생방송 토론회가 끝난 직후 진석필 시장의 돌발 행동을 담은 것입니다.
첫 장면이 나오자마자 어떤 영상인지 눈치챘다.
-신재현 부단장! 당신 공무원 실격이야!
역시 이거구나.
궁지에 몰린 시장이 나에게 따지러 오던 순간이다.
카메라는 몰래 다시 전원을 켰고 시장의 생떼를 그대로 담아냈다.
저 현장에서는 몰랐는데 카메라로 보니 그의 동요가 확실히 보였다.
내가 살살 긁으면 시장이 욱하며 씩씩대고, 그러면 내가 또 돌려 까고의 반복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시장의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이야, 저걸 찍었네.
“저, 저 쌍놈의 자식!”
“응?”
난데없이 바로 옆에서 터져 나온 고함에 놀라서 흠칫했다.
어머니가 TV 속 시장을 향해 욕을 퍼붓고 있었다.
“저놈 저거 저때부터 티가 났어. 다른 사람들은 아무시렁도 안 하는데 저놈만 제 발 저린 똥개처럼 어쩔 줄 몰라 하잖아. 그리고 뭐? 공무원 실격? 네놈이 공무원 실격이다, 이놈아!”
이미 끝난 일인데 어머니가 흥분하고 있었다.
아마 시장이 내게 한 말 때문에 화가 난 듯했다.
“엄마, 괜찮아. 이미 과세 다 때렸어. 세금만 10억 낼 거야.”
“10억만으로 되나? 저놈은 벌금 더 때려야 되는데.”
“나머지 혐의는 법정에서 알아서 하겠지. 걱정 마.”
어차피 시장은 곱게 끝나긴 글렀다.
그 사실을 아는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저놈이 날 욕하든 말든 나에겐 타격이 없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것에 내성이 없나 보다.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판사도 같은 편이면 어떡해? 그런 거 많잖아.”
“엄마, 요즘 무슨 판사 나오는 드라마 보더니 너무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거 아냐? 실제로 그렇게까지 썩었을 리가.”
“썩은 놈들이 있을 수도 있지!”
“진짜 그래도 문제는 안 돼.”
“시장 놈이 멀쩡하게 풀려나는데 왜 문제가 안 돼?”
나는 딸기 하나를 더 입에 넣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사법부도 엎어버리지 뭐.”
“어, 그렇네. 조사단 계속한댔지?”
“응. 지금 기회에 조사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럼 됐네.”
내 자신 있는 대답에 어머니가 한결 안심한 표정을 했다.
다시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늘어져서 시장의 행적을 추적한 시사 프로그램을 보았다.
나는 몰랐는데 시장이 국세청에 온 날, 나가면서 쓰러졌나 보다.
아니, 몰랐다기보다 소식을 듣긴 했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보여주기용 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영상을 보니 저건 진짜로 실신한 게 확실하다.
왜냐면 국세청에서 나오자마자 계단에서 헛디뎌 굴렀기 때문이다.
혼자 온 시장을 아무도 일으켜 주지 않는 바람에 계단 위에 엎어진 그 모습이 꽤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고 진짜 기절인 것을 알아차린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시장을 부축했다.
시장은 국세청에 올 때는 제 발로 왔지만 나갈 때는 구급차에 실려서 돌아간 것이다.
이어서 우리가 시장실에 쳐들어갔을 때의 영상도 생생하게 나왔다.
이야, 지금 봐도 오낙현이 잘 긁네.
멀쩡한 사람도 저렇게 긁어대면 화나지.
“아이구, 잘한다! 너네 청장님 말 진짜 잘하네!”
시장과 국세청장의 말싸움을 볼 수 있는 기회란 흔치 않다.
어머니는 이미 푹 빠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낙현도 여론을 보고 꽤 만족하겠는데.
전임 청장인 정상훈처럼 눈에 띄고 싶어 하던 오낙현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하지 않았을까.
“우리 청장님은 따로 있긴 한데. 저분도 할 때는 잘하는 분이야.”
“따로 있어? 아, 서울청장님?”
집에서는 일 얘기를 잘 안 하는지라 어머니는 민치호와 이선균을 그냥 친한 상사라고만 알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응. 차기 국세청장님이야.”
“이미 내정이 됐어?”
어머니가 놀란 얼굴을 했다.
“그렇지. 지금 국세청장님도 서울청장님이 만들어준 거나 다름없거든.”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네. 저런 사람은 적으로 돌리면 안 돼. 위에서는 평온하지만 밑에서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 조용하다가 갑자기 뭔가 일어나서 보니까 그 사람이었더라, 하게 된다니까?”
어머니의 감은 날카로웠다.
민치호가 좀 그렇긴 하지.
아무도 모르게 판을 까는 사람이니까.
“괜찮아, 괜찮아. 같은 편이고 적어도 지금까지 선을 어긋난 적은 없었어.”
“그래? 네가 잘 하겠지마는…… 하긴, 사법부도 엎는다 어쩐다 하는데 청장이 잘못된 길 가면 놔둘 네가 아니지. 아들이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할게.”
“음…… 아니면 나중에 한번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내가? 너희 청장님이랑?”
“응. 내가 모시는 분이기도 하니까. 시간 봐서 같이 밥이라도 먹자.”
어머니가 당황한 얼굴로 딸기를 툭 떨어뜨렸다.
“내가 서울청장님이나 되는 분하고 무슨 밥을 먹어. 너 맛있는 거 먹고 와.”
“아니, 진짜 괜찮다니까. 나는 청장님 집에 놀러 가서 밥도 얻어먹었는데 뭐. 청장님도 좋아하실 거야. 엄마는 국세청장님이랑 밥도 같이 먹은 사이면서 뭘. 제주도에서 밥 같이 먹은 사람이 서울청장님보다 더 높아.”
“어, 듣고 보니 그렇구나.”
어머니가 빠르게 수긍했다.
요즘 계속 바빠서 언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민치호가 국세청장 자리에 앉기 전에는 가능하겠지.
아니다, 국세청장 되면 같은 세종시에 살게 되니까 더 편한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TV에 시장 보좌관 최승균이 나왔다.
그는 이제 완전히 정치계로 입성을 한 모양이다.
하긴 지금 열심히 활동하지 않으면 배신자로 낙인찍혀서 버려질지 모른다.
제2야당으로 간 걸 봐서는 제1야당에서 받아주지 않은 것 같은데.
솔직히 보좌관에 대해서는 좋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탈세액이야 지금으로서는 일반인 수준의 몇십만 원 정도이긴 한데 어쩐지 껄끄러웠다.
정말 양심고백이 맞다면 시장이 궁지에 몰리기 전에, 토론회 나올 때 하지 않았을까.
나와 오낙현이 결정타를 날리러 시장에게 찾아갔을 때도 막판에 시장의 몰락이 확실할 때 나섰고.
정상훈도 뭔가 껄끄러워서 그를 받지 않은 건가?
양심의 이미지로 내세우기 딱 좋은 인물인데 말이다.
물론 그의 속내가 어쨌든 간에 내부 고발을 한 건 사실이다.
기회주의자든 뭐든 옳은 일을 했으면 지금 이 순간은 칭찬을 받는 게 맞지.
나중에 탈세하면 그때 조사 들어가면 되는 거고.
나는 보좌관의 숫자를 자세히 외워두었다.
언제고 그의 탈세액이 늘어나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저 후레자식은 그냥 확 내가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려야 하는데.”
나에 대해 비방을 늘어놓은 시장의 업보는 컸다.
어머니는 TV에 시장의 얼굴만 나오면 거침없이 욕을 날렸다.
시장이 눈앞에 있으면 진짜 한 대 쳤을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이 지현석 검사지? 참 공부 잘하고 순하게 생겼네.”
어머니는 지현석의 인터뷰를 보며 칭찬하기도 하고.
“저놈 저거 아직도 시장 한대니? 얼른 내려와야지 국회는 뭐 해?”
시장을 욕하기도 하면서 함께 TV를 관람했다.
옆에서 리얼한 리액션을 해주는 어머니 덕분에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다.
찬 딸기를 먹자 추워하는 어머니에게 이불을 꺼내 무릎에 덮어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그새 핸드폰에 문자가 들어와 있었는지 불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나학진이었다.
방송 얘기인가 싶어 문자를 열어본 나는 눈가를 찌푸렸다.
[국세청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혹시 팀장님도 알고 계신가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정중하면서도 긴 문자에서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학진이 이런 표현을 썼다는 건 정말 기괴한 소문이 귀에 들어왔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채 1번 가기도 전에 나학진이 받았다.
-아, 팀장님. 통화 가능하십니까?
“네. 말씀해 주세요.”
나학진은 조금 주저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국세청 본청 내부에서 신재현 파벌이라는 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파벌의 가입을 권유하고 있어요.
이게 대체 뭔 개소리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