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13화 (413/500)

413화. 끝장나는 건 너다!

[입을 연 시장 보좌관, 모든 것은 시장의 여론전이었다]

-서울시장 진석필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 시장이 신재현 부단장에 대해 제기한 의혹은 전부 본인의 허물을 감추고 세무조사를 피해가기 위한 네거티브 공세였다는 사실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보좌관 A씨는 더불어 진 시장의 차명 계좌의 존재를 밝히며 검찰 측에 성실한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A보좌관의 고백에 양심의 승리라는 정치권의 응원과 시장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세청에서는 진 시장이 직접 찾아와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시장이 직접 고개를 숙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끼오오오옷!!! 이렇게 되면 끝까지 신재현을 믿은 내 승리네!

└야아악! 시장 코인 상폐 가나요!!!

└와, 시장이 이럴 줄은 몰랐는데. 우리 시장이 이런 놈이었다고? 어째서? 나 시장 선거 때 얘 뽑았는데?

└우리나라에 이런 놈들밖에 없어? 내 믿음 어쩔 거야. 내 믿음 돌려줘!

└앞으로 정치판에 발 하나라도 담근 놈은 절대 안 믿는다. 엉엉어어엉ㅠ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ㅠㅠ

└여기 큰일 날 놈들 많네. 시장을 믿었다는 거면 신재현이 인간쓰레기라는 루머를 믿었다는 건데. 신재현 VS 시장. 누가 더 믿음 가는지는 확실하지 않냐?

└아뇨. 안 확실한데요…… 전 몰랐는데요. 어떻게 알아요. 시장인데 당연히 믿지…….

└남의 집에 불이 났길래 구경하러 갔더니 우리 시장이었어요. 내가 뽑은 시장이죠.

└그래서 신재현/논란 만든 놈 어디 갔어? 내가 그 문서에서 3시간 동안 싸웠거든? 지난 주 일요일 새벽 1시에 수정 전쟁한 놈 어디 있냐고!!! 나 너 때문에 아침에 회사 지각했어, 샛기야!

└아, 그때 열심히 싸우던 게 너였냐? 잠 안 와가지고 문서 구경하러 갔더니 1분마다 뭐가 신나게 바뀌더라. 어떤 미친놈들이 그 새벽에 싸우나 했다.

└나도 실시간으로 봄ㅋㅋㅋㅋㅋ 얘네 진짜 웃긴 게 하나는 ‘신재현이 세무조사를 예고한 이상 시장의 거짓이라는 설이 더 우세한 상황이다’ 이 문구를 꼭 넣겠다는 놈하고 개인적 의견이니 빼야 한다는 놈하고 싸움 붙어 있는 거임ㅋㅋㅋㅋㅋ 아니, 그 문장이 그렇게 중요해? 3시간이나 싸울 정도로?

└(엄격근엄진지)사실이거든요? 사실을 적는 건 중요한 일이거든요?

└즈기요. 지금이야 결과를 아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 당시엔 객관적으로 써야 했거든요? 신재현 입장에서 쓰는 게 너무 적나라하잖아요.

└본인 등판!

└둘이 싸워라! 2차전! 2차전!

└지금 싸움 구경 할 때가 아니거든? 우리 시장이 알고 보니 개쓰레기였거든? 지금 나는 시장이 탈세했다는 사실보다 멀쩡한 공무원 하나 묻어 버리려고 한 게 더 충격임.

└우리 시장 아닌데~ 너희 시장인데~

└너 어디 사냐. 너네 시장도 까보면 어떨지 몰라. 이렇게 된 이상 시장이고 도지사고 일단 다 조지자. 서울시만 조질 순 없지!

└근데 여러분 지금 제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지 않나요? 신재현한테 미안하단 말은 해야지.

└뎨둉합니다뎨둉합니다…….

└내가 그동안 신재현 의심한 놈들 다 박제해 놨음. 한 80명 된다.

└그렇게 많이 찍었어? 이거 미친놈 아니야? 너 팬카페 회장이지? 그런 집착은 팬카페 회장만 가능해.

└일단 시장 사과부터 들어야겠는데. 그랜절 가나요? 시장 그랜절 보고 싶다.

└아, 지금 장난칠 때 아니라고…… 현직 시장이 체포되게 생겼다고. 나라 망신이다, 나라 망신. 이게 지금 어떤 의미인지 알기나 해?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에요. 도둑놈이 많은 거예요. 어떻게 깨끗한 놈이 하나도 없냐.

└이미 국회 털렸을 때부터 나라 망신이었어ㅋㅋㅋ 이렇게 된 거 다 불태우자! 끼야옷!

나는 홀린 듯이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오래 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직도 내 의심이 더 큰지 살펴보기 위해서 여론 좀 보려고 했던 것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도 기자회견을 하든 서면 발표를 하든 해명을 추가로 해야 하니까.

그런데 댓글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ABS방송국 독점 취재─시장 집무실의 폭로]

[경선 후보자 생생 비하인드]

방송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리 찍어두었던 시장의 뒷모습을 타이밍 좋게 터뜨렸다.

당장 시장을 끌어내리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국회, 전식필 시장 성토에 한목소리]

-지난 국회에서 제1야당이었던 현 제5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주흥태 의원은 진석필 의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국회가 한 번 물갈이되고 깨끗함을 되찾은 만큼, 시장 역시 당당하게 출두하여 성실히 조사받아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주흥태 의원 외에도 다른 의원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시장은 즉시 대국민 사과와 함께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고 검찰청과 국세청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일제히 성토하고 있습니다.

반면, 진석필 시장의 비리를 폭로한 A 보좌관에 대해서는 응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당에서는 진석필 의원의 비판에 이어 A 보좌관의 지지에 나섰습니다.

나는 기사를 보자마자 그 속셈에 피식 웃었다.

시장은 국회의원 시절 여당 소속이었다.

이미 큰 타격을 입고 의원도 많이 빠져나간 여당 입장에서 시장의 일탈은 악재 중 악재.

어떻게든 잘라내야 했을 것이다.

시장을 비판하고 조사를 종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었지만, 여당의 이미지를 씻어내는 더 쉬운 방법이 있었다.

바로 보좌관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보좌관 역시 내부고발자라고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보좌관을 영웅으로 만들고 그를 여당으로 영입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 그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보좌관이 그렇게 깨끗한지는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때 시장이 유리했다면 절대 입을 열지 않을 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폭로해 주니 편한 건 사실이다.

내가 해명할 필요도 없었다.

며칠 지나자 방송사의 졸업생 인터뷰가 30회를 넘어갔다.

그중에는 작년에 고등학교 축제를 찾아갔을 때 만났던 친구, 채성현도 있었다.

-같은 반이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었고요. 아마 다들 저랑 똑같이 얘기할 겁니다. 재현이가 학폭을 일으킨 게 아니라 막은 거라고요.

그는 살짝 화가 난 것처럼 목소리가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작년 학교 축제 이후로 못 만났는데, 여전히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했다.

그 외에도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몇 보였다.

10년이나 지난지라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10년 전의 앳된 얼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움과 고마움이 느껴졌다.

나 때문에 일부러 귀찮게 인터뷰까지 해주다니.

나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인터뷰 전부를 찬찬히 훑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만날 일도 있겠지.

-진석필 시장의 보좌관이었던 최승균 씨에 대한 응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장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승균 씨는 깨끗한 정치를 약속하며 제2야당에 입당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보좌관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긴 지금 관심을 받을 때 입지를 확고하게 굳히지 않으면 다음에는 정치권에 입성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내부고발자란 곧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정당에서는 경선에 돌입했다.

시장은 당연하게도 경선에 나갈 수 없었다.

국세청에 한 번 와 달라고 출석 요구서를 보냈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어차피 시장은 끝이다.

남은 건 조사뿐.

나는 이미 시장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데다, 그는 더 이상 내가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팀장님! 주신 명단에서 1차 조사 끝났습니다. 결재 부탁드려요!”

“넵. 감사합니다!”

내가 부탁한 명단은 생각보다 빨리 조사가 끝났다.

새로 구성된 23대 국회의 주요 인물들 얘기다.

아무리 서른 명밖에 안 된다고 해도 1반이 대충 했을 리는 없다.

채유림이 열심히 독려했다는 뜻이었다.

그 명단에는 당연하게도 정상훈 같은 정당 중진 의원도 있었고, 황인영 같은 후보자들도 있었다.

일찌감치 검증을 끝내뒀으니 판단재료로는 충분하겠지.

그 와중에 2반 반장도 조사 결과를 보고하러 왔다.

“맡겨주신 대로 진석필 시장의 1차 조사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자료만으로 어려운 게 있어서요. 그쪽 보좌관이 협조한 게 있긴 한데 역시 본인이 오셔야 합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시장은 아직도 출석 요구서를 무시하고 있었다.

여론은 당장 시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들끓는데, 본인은 그 자리에 꿀이라도 발라둔 것처럼 끈덕지게 버텼다.

그런다고 소용없을 텐데.

“흠, 마지막으로 경고차 직접 전화 한 번 해주세요. 그러고도 안 오면 쳐들어가죠, 뭐.”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가?

꽤 끈질기다.

우리는 안 오면 찾아가는 서비스인데.

“그리고 그 소식 보셨습니까?”

내가 국회 쪽을 신경 쓴다는 게 좀 티가 났나 보다.

2반 반장은 슬그머니 다가와 내 의중을 물었다.

“제1야당의 경선 결과, 황인영 의원이 대선 후보로 결정되었다고 하더군요.”

벌써 경선이 끝났구나.

정신없이 국세청에 처박혀 있는 동안 각 당마다 경선을 마친 모양이다.

이번엔 어차피 대부분 물갈이가 되어서 뚜렷한 후보자도 없었을 것이다.

“제1야당은 전 국세청장님의 당 아닙니까. 혹시 따로 기대한 분 있으셨습니까?”

가장 깨끗하고 스토리가 있던 사람이라 될 것 같긴 했다.

되길 바란 건 아니었고.

그래서 더 뜨기 전에 불러다 경고한 것이었는데 역시나 됐구나.

나는 한 손을 좌우로 흔들어 보이고는 시선을 내렸다.

그것도 더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지금 할 일이 많은데.

“그쪽은 이제 신경 안 씁니다. 제가 정치할 것도 아닌데요. 그쪽에서 알아서 하시겠죠.”

2반 반장이 오히려 의아한 얼굴을 했다.

“전 청장님처럼 정치 쪽에 관심 있으신 거 아니었습니까? 저는 미리 길을 닦아두신 거라 생각했는데요.”

대체 뭘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던 거지?

내 평소 모습을 보고 오해한 거면 곤란한데.

나는 미간을 모으고는 2반 반장을 보았다.

그가 내 시선을 받더니 움찔했다.

“반장님, 제가 그동안 정치권에 과하게 접근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 정치에 발 담글 생각은 없어요.”

지금까지 필요에 의해 국회를 자주 들락거리고 정치인도 만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랬던 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조사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수월하게 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혹시라도 다른 직원들까지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나는 굳은 얼굴로 다른 사람도 모두 들을 수 있도록 2반 반장에게 말했다.

“저는 공무원으로 은퇴할 겁니다. 국세청이 평생직장이거든요.”

어느 정도 국회 쪽 일단락도 되었겠다, 이제는 좀 거리를 둬야지.

아, 물론 또 국세청을 위협하면 그땐 사정이 다르다.

“넵. 알겠습니다. 이해했습니다.”

2반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진짜 남은 조사는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조사를 들어가야겠는데.

내가 손끝으로 펜을 돌리고 있을 때, 복도 쪽에서 무언가 우당탕 소리가 났다.

“팀장님! 아니, 부단장님! 아닌가? 팀장님!”

국세청에서는 팀장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꽤 당황한 모양이다.

우리 사무실의 직원 중 하나였다.

그는 공무원증을 찍고 사무실 문을 열려다 발이 꼬여 넘어질 뻔했다.

우리 사무실 사람들은 이제 웬만하면 놀라지도 않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인가.

직원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시장님! 시장님이 왔어요!”

출석 요구서를 보낸 게 대체 몇 번짼데 이제 겨우 왔네.

당황한 직원들이 일어선 가운데, 시장이 홀로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한참 지치고 초췌해진 얼굴로 입구에 우뚝 서더니 사무실 내를 한차례 훑었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내가 앉아 있는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눈동자의 초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

혼이 나간 얼굴로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적당히 넘어가 줄 겁니까? 내가 졌습니다. 패배 선언이면 되겠습니까? 사과를 바라는 겁니까?”

이 상황이 되어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나는 산뜻하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정말 간단한 건데요. 세금 내세요. 오신 김에 조사받고 가시면 되겠네요. 반장님, 안내 부탁드립니다.”

시장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우물거렸지만 곧바로 직원들에게 붙잡혀 밖으로 향했다.

그가 뭘 바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본인이 출석하지 않아 미뤄두었던 조사를 드디어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한층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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