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세청 망나니-412화 (412/500)

412화. 개봉박두, 단두대 매치 (3)

“지금 뭐, 뭐라고…… 별거 아니라고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시장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얼마 전 저 얘기를 들었다.

별거 아니라고 했던 생방송에서는 정상훈이 어떻게 되었는가.

보고 있던 시장의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걸 지금 여기서 하겠다고?

자신이 그 대상이 된다면 어떨까 수도 없이 상상을 해봤다.

신재현에게 추궁당하는 꿈을 꾸고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적도 있었다.

결론은 항상 하나였다.

절대 그 상황이 되면 안 된다!

버틸 수가 없다!

“절대 안 돼!”

“왜 안 됩니까?”

“이렇게 갑자기 쳐들어와서 사람을 핍박해도 되는 겁니까?”

“예? 제 업무를 하는 것도 핍박입니까?”

신재현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순진하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튼 갑작스러우니 곤란합니다. 저도 대비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통지서 보내고 2주 후에 온 것 아닙니까. 이미 세무대리인과 대비는 다 끝내고도 남으셨을 시간인데요. 아니면 더 시간을 달라는 겁니까? 다른 납세자들은 다들 이렇게 하십니다.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건가요? 정상훈 대표님은 급작스러운 조사에도 깔끔하게 대답을 해주셨는데요. 시장님은 그렇게 못 하시는 겁니까?”

이미 이런 상황에서 무탈하고 깨끗하게 넘긴 선례가 있다.

평소라면 갑작스러운 세무조사에 항의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훈의 예가 있으니 시장의 행동이 뭔가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 글쎄. 이건 폭거라니까요!”

“제가 그렇게 어려운 사항은 여쭙지 않을 겁니다. 시간도 10분 정도밖에 안 걸릴 거예요. 그냥 가족분의 회사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직전에 가벼운 질문 좀 드리겠다는 건데, 그게 이렇게 민감하고 곤란한 질문입니까?”

어떻게든 거부하려는 시장과 달리 신재현은 여유가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시장에게 불리해지는 것이다.

시장의 뒤에 병풍처럼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보좌관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네.’

시장은 끝장이다.

도저히 살아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누구는 정말 죽일 것처럼 질문을 던져도 스스로 결백을 증명했다.

시장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차라리 신재현의 질문을 받고 ‘잘 모르겠습니다’로 일관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 없구나.’

보좌관은 씁쓸하게 웃었다.

근 5년을 모셔온 정치적 스승이 이렇게 몰락하다니.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가 아는데 시장 혼자서만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자기 미래가 끝장나게 생겼는데 최대한 버티려고 하겠지. 그 추잡한 공세도 거리낌 없이 해낸 사람이니까.’

참으로 추하다.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정치인의 말로는 참으로 추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장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이미 머리 위에서 칼날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몸짓이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잘못 건드렸어. 청와대와 국세청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설 줄이야.’

보좌관은 냉철하게 생각했다.

충분히 이미지를 깎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처가 너무 빨랐다.

대체 저 청년이 뭐길래 이렇게 감싸고돈단 말인가.

청년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보호에 보좌관은 새삼 질투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도 절대적인 진리를 안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

청년이 이렇게 거물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은 그 역시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지금 국민적 관심도와 승승장구할 그의 미래를 본다면 동급일 수도 있겠다.

과연 시장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대선에 나오지 않았으면 그 알량한 명예를 지키고 은퇴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이미 시장의 자리에 앉은 이상, 그리고 그가 탈세와 불법을 저지른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재난이었다.

방법은 딱 하나.

정상훈처럼 결백한 삶을 살았어야 했다.

‘우리 시장님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보좌관은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해를 번갈아 보았다.

“시장님, 아드님께서 운영하시는 사업체가 시장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건 사실이시죠?”

“아니라니까요! 대체 뭘 묻고 싶은 겁니까! 내가 차명이라도 썼다는 거예요?”

“저는 아직 아무 의혹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요. 아드님 사업체에서 출처가 의심되는 돈이 왔다 갔다 했다는 걸 말씀드리면 기절하시겠습니다.”

“출처가 의심된다니! 증거도 없이 무슨 망발입니까!”

“증거도 없이 기자회견부터 자처하신 건 시장님이시구요. 저는 명확한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수평선 밑으로 넘어가지 않으려 마지막으로 발광하는 빛처럼 보였다.

하지만 서쪽 바다에 걸린 해는 보통 뜨겁지도, 눈부시지도 않는다.

동쪽의 해는 힘차고 맑은 흰빛을 내뿜는데 말이다.

보좌관은 새삼스럽게 집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입꼬리를 실룩이며 재밌다는 얼굴로 구경하는 국세청장 오낙현.

증거로 보이는 서류 뭉치를 들이미는 신재현.

그리고 시장의 마지막 발악을 담으며 히죽히죽 웃는 카메라 감독.

저 카메라의 내용이 터지는 날이 곧 시장의 제삿날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명확했다.

“국세청은 절차도 모릅니까! 정당한 절차를 밟아 오세요!”

“전 항상 절차를 밟습니다.”

변명거리도 떨어진 시장이 애들 싸움처럼 유치한 대처를 늘어놓고 있을 때, 보좌관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등을 돌리고 있던 시장은 몰랐지만 카메라는 바로 그의 얼굴을 잡았다.

중대 사항을 발표할 때의 정치인처럼 진지하고 근엄한 얼굴이었다.

“부단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뭘 말하려는지 모르지만 눈치 빠른 시장은 일단 입부터 막고 보았다.

“뭐, 뭐야? 아직 있었어? 자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가라앉는 배는 버리는 것이 옳다.

그것도 정치인이라면.

이미 버리기로 마음먹은 보좌관은 손속에 거침이 없었다.

“시장님은 애초부터 부단장님의 논란에 대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일단 던지고 본 겁니다. 무리수라는 거죠.”

흥미로운 고백이었다.

***

카메라맨은 입가에서 연신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평소 좋은 대학교 출신이 아니라고 방송가에서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던 그였지만, 이번만은 자신의 모교에 뼈저리게 감사했다.

나학진이 대학 선배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해왔기 때문이다.

왜 나학진이 저번 생방송을 책임진 피디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다른 방송사에도 연줄을 만들고 싶었을 수도 있고, 어느 한 명의 피디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저번 생방송이 순간 시청률 20%를 돌파한 이후로 방송가에서 신재현은 보증 수표였다.

그의 언론 쪽 창구인 나학진에게서 연락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니 나학진도 그런 모든 제반사항을 고려해서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어차피 이것은 다 그의 추측이고, 사실 속사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에게 영상을 부탁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족했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아니, 그 이상의 영상이 잡혔다.

언론에는 알게 모르게 지라시가 돌았다.

시장의 폭로와는 별개로, 이건 모두 시장의 술수라는 것이다.

시장 쪽의 정보원이 흘린 거라기보다는 그만큼 시장의 수가 얕았다는 뜻이다.

언론에서 눈치를 챌 만큼.

그러니 오늘은 생방송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재밌는 장면을 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장은 무리수를 두다가 청장과 신재현에게 휘말려 누가 봐도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보좌관이 폭로를 시작했다.

카메라맨은 한쪽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현직 시장이 나락으로 가는 광경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다니!

“신재현 부단장님에 대한 루머는 총 세 가지였죠? 학폭, 청탁, 양다리. 증인을 데려오라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 결백을 증명하신다고 인터뷰를 따고 증언을 모으고 하실 필요도 없어요. 왜냐면 다 거짓말이니까.”

“자네 지금 무슨 말이야! 아니야, 아닙니다. 지금 이 치가 모함을 하는 겁니다.”

보좌관은 시장 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제 양심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량하고 유능한 공무원을 단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이미지를 깎아내다뇨. 국가에 대한 손해고 국민에 대한 배신입니다. 저는 청렴강직한 줄 알았던 시장님을 모시던 보좌관으로서 양심 고백을 하려는 겁니다.”

“찍지 마! 찍지 말라고!”

허둥대던 시장이 온몸으로 카메라를 막았다.

카메라 감독은 거치대에서 카메라를 뽑고는 어깨에 얹었다.

그리고 현란한 스텝을 밟으며 요리조리 집무실 안을 누볐다.

왕년에 음악 방송에서 아이돌 좀 찍어본 솜씨였다.

현직 시장이라는 작자는 카메라를 잡기 위해 뛰어다니다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그의 보좌관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부정을 폭로하고.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참으로 촌극이었다.

“그럼 시장님의 부정 축재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시나요? 지금 여기서 대답할 수 있으십니까?”

신재현이 진지하게 묻자 보좌관도 눈에 힘을 주며 마주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아는 대로 말씀드릴 테니 물어보시죠. 시장님께 하시려던 질문, 제가 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아드님께서 유학을 가신 동안 사업체를 관리하신 건 누구입니까? 그 사업체에 행적이 불분명한 사람들의 돈이 1억, 2억씩 들어왔다 나간 흔적이 있는데요. 아, 여기서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말은 생활 반응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생활을 하려면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고 취직을 하고 카드를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흔적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 경우 저희는 보통 차명을 의심합니다. 어떻습니까?”

시장이 헐떡거리며 아니야, 라고 소리를 지르자 보좌관이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예, 맞습니다. 신용불량자의 이름을 몇 빌렸습니다. 참고로 그 명의는 아는 사채업자에게서 넘겨받았습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생활의 흔적이 전혀 없어서 명의만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신용불량자라 카드도 없었던 거군요.”

“아는 사채업자 몇 있으면 신불자 신원 넘겨받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시장님이 사채업자와 직접 거래하신 건 아니고, 그 일을 전담하는 보좌관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둘 다 신상명세를 알려 드리죠.”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쉬워지겠네요.”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그동안 알고도 모른 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양심에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보좌관과 신재현이 하하하, 소리 나게 웃었다.

둘이 아주 합이 잘 맞았다.

시장이 어이없는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다가 보좌관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네가 감히, 날 배신해?”

“시장님이 잘못하신 건 맞잖습니까.”

보좌관의 표정도 노골적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둘의 분위기가 슬슬 험악해지자 신재현이 일어서서 다가갔다.

그러고는 시장이 잡은 멱살을 떼어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장님. 세금은 내셔야죠.”

그의 머리 위에 영롱하게 빛나는 숫자는 무려 10억 대.

일반인이라도 그냥 넘길 수 없는 금액이다.

거기에 그가 2주간 온갖 헛소문으로 여론몰이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대 날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신재현은 그 감정을 꾹꾹 누르고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내뱉었다.

“제가 시장님께 더 여쭤볼 것은 없을 것 같군요. 차명에 돈세탁, 곧 조사단에서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자, 잠깐! 이렇게 가면 안 돼!”

다급해진 시장은 딱히 방법이 없으면서도 가로막으려 했다.

그러자 청장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안 될 게 뭡니까! 지금 힘으로 막겠다는 겁니까!”

“아, 아니……!”

시장이 당황한 가운데 신재현이 선두에 앞장서며 보좌관에게 눈짓했다.

“함께 가시죠. 들을 얘기가 많습니다.”

“넵.”

보좌관이 흘끗 후련한 눈빛으로 시장을 일별했다.

앞서 나가는 신재현과 보좌관, 그리고 청장의 뒷모습을 카메라 남김없이 담았다.

대선?

어림도 없다.

당장 시장 자리조차 위험하겠지.

카메라맨은 철수 직전, 그 렌즈에 마지막으로 시장의 모습을 담았다.

시장이 테이블 위에 쌓여 있던 서류를 집어다 던지고 있었다.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종이 낱장 사이로, 시장이 천천히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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